136화
* * *
황운걸 장문인이 하병룡 앞에 내려서서 호통쳤다.
“이런 건방진 놈! 무당파의 위명에 먹칠을 할 놈!”
“죄송합니다, 장문인. 허나 김 소협은 제가 상대할 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게 대무당파의 차기 장문인으로서 내뱉을 말이더냐!”
“목숨을 바쳐서라도 무당파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다면 그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 소협은 그럴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실력을 증명해 보이라고 널 내보낸 내 잘못이 크구나! 무당파에 이런 망신을 안겨 주다니. 차기 장문인 자리는 엄중한 회의를 거쳐 다시 논의해 볼 것이니 그리 알거라!”
비무 대결 중엔 비무대 위엔 아무도 올라올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저 장문인이라는 자는 나는 보이지도 않는지 등을 보이고 서서 계속 하병룡을 나무라고 있었다.
“내 보아도 저자의 가진 재주가 제법이긴 하나, 고작 지구인에게 꼬리를 내린 것도 모자라 네놈이 무슨 자격으로 무당을 대표해 저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말고 한단 말이냐!”
사람을 바로 뒤에 두고 고작 지구인이라…….
“저는 무당의 안위를 위해서 그랬습니다.”
“이놈이 끝까지! 오냐, 내 오늘 네놈을 차기 장문인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파문시켜 주도록 하마.”
갑자기 끼어든 장문인의 태도에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호기심이 일었다.
상대를 파악할 줄도 모르는 눈먼 인물인가. 아니면 진짜 실력에 자신이 있는 인물인가.
후자라면 천마 이상의 실력을 갖췄다는 말일 텐데 아무리 관조해 봐도 그 정도로 보이진 않았다.
물론 여기 모인 사람 중에 가장 강하고 정제된 내공을 가지고 있어 보이긴 했다.
그럼 어디 실력 좀 볼까.
“어이, 장문인. 비무 대결이 끝나기 전엔 비무대에 아무도 못 오른다고 들었는데. 그럼 지금 너도 같이 이 대 일로 붙어보겠다는 거야?”
내 말에 먼저 반응한 건 장문인이 아닌 하병룡이었다.
조금 전까지 장문인에게 꾸지람을 듣던 그는 갑자기 장문인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김 소협. 죄송합니다. 저희 장문인이 워낙 다혈질이셔서 잠시 실례했습니다. 단지 저를 꾸짖기 위함이었으니 다시 저와 대결을 시작하시지요.”
“비켜라!”
황운걸 장문인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하병룡의 어깨를 거칠게 밀어냈다.
“오냐, 이 지구인 놈. 예의 바른 척하고 있더니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예의가 있는 사람한테만 예의를 차리는 타입이라서 말이지.”
“이런 건방진!”
옆으로 밀려났던 하병룡이 다시 우리 사이에 끼어들려고 했다.
나는 오른손으로 내력을 뿜어내 그의 몸을 옭아맸다. 허공섭물이었다.
하병룡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공중에 뜬 채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쪽과의 비무는 아까 끝났으니까 이제 비무대를 내려가세요.”
“이, 이건 김 소협과 저와의 대결입니… 커헉!”
하병룡의 몸을 쥐고 있는 내력에 힘을 더 불어넣자 금세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온몸에 피가 제대로 돌지 않고 있을 것이었다.
“무당파의 미래와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지금 내려가세요.”
그를 옭아매고 있던 내력을 풀어주었다. 하병룡은 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잠시 후, 그는 내게 포권을 한 번 취하고는 아무 말 없이 걸어서 비무대를 빠져나갔다.
나는 다시 장문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 무당파 대 메타디펜스. 제2 라운드 시작.”
“건방진 놈!”
황운걸 장문인 주위에서 급격한 마나 파동의 변화가 느껴졌다.
잠시 후 그의 긴 수염과 하얀 장삼이 공중으로 떠오르는가 싶더니 단단한 돌로 된 비무대 바닥이 그를 중심으로 쩍쩍 갈라지며 돌 조각이 공중으로 솟았다.
나는 천천히 그에게 걸어갔다.
그의 주변 기운은 점점 더 매섭게 변해 갔고, 그 와중에 부드럽게 휘젓고 있는 그의 양팔에서는 따뜻하고 차가운 기운이 함께 회전하고 있었다.
무당파 진영의 누군가 소리쳤다.
“양의무극신공(兩儀無極神功)!”
그 외침과 함께 황운걸을 바라보던 무당파 인물들의 술렁임이 커지는 것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새 돌 조각이 하늘로 치솟는 공간 안에 발을 디뎠다.
이렇게 넓은 지역에, 제법 강맹한 기운이었다.
아직은 세 걸음 이상 떨어진 거리.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 주먹을 뻗으면 저자에게 닿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친김에 주먹에 강한 내력을 밀어 넣고 황운걸 장문인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황운걸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내 주먹을 바라보면서도 더욱 기운을 끌어올렸다.
이번 공격을 막아내고 바로 이 모든 기운을 나에게 집중시켜 내 몸을 완전히 찢어놓을 계획인 것 같았다.
겪어보지 않았지만, 그자가 운용하는 기의 흐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퍼억!
내 주먹이 황운걸의 얼굴을 강타했다.
그가 나에게 끌려온 것인지, 내가 그에게 다가간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분명 주먹이 닿지 않을 거리였는데, 닿았다.
중력을 거스르던 강맹한 기운도, 어떤 공격이라도 흘려낼 것 같았던 기의 소용돌이도 모두 아무 소용이 없었다.
비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던 하병룡이 낮게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을 만드는 자!”
한참을 뒤로 밀려난 황운걸이 이번엔 방법을 바꾸어 빠르게 몸을 날렸다.
강하고 날카로운 공격.
손바닥을 앞으로 뻗고 나의 미간을 향해 정확히 날아오는 그의 공격을 간단히 왼팔을 들어서 막아냈다.
콰앙.
엄청난 충격과 함께 황운걸의 몸이 다시 튕겨 나갔다.
한참을 미끄러진 그는 이번엔 내가 아닌 다른 쪽으로 몸을 날렸다.
검술 대결을 포기하면서 하병룡이 바닥에 내려놓았던 검이 있는 곳이었다.
황운걸은 바닥에 박혀 있던 검을 뽑아냄과 동시에 나에게 검을 크게 휘둘렀다.
예리하고 맹렬한 은빛 검기가 반원 모양으로 나에게 쏘아져 들어왔다.
확실히 무기를 든 공격은 그 위세가 달랐다.
하지만 어림없는 건 매한가지.
나는 손바닥에 내력을 한껏 모은 뒤 날아오는 검기를 향해 뿜어냈다.
퍼엉.
한껏 압축된 내력과 황운걸의 검기가 부딪치자 그 매섭던 검기가 산산이 부서져 흩날렸다.
그제야 황운걸의 표정에 당혹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혹감이 곧 절망적인 표정으로 바뀐 황운걸이 혼자 중얼거렸다.
“저, 정말 입신의 경지? 그래서 갈무리된 저 힘을 읽어 내지 못했던 것인가. 지구인이기 때문에 단전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단전이 필요 없는 단계.”
다시 검을 고쳐 쥔 황운걸이 자신의 모든 내공을 검에 쏟아붓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도 무림의 것으로 맞서주지.
대천흑룡은 내력과 마나를 동시에 운용해 서로 부딪치게 만들어 발현하는 강맹한 기운.
마크네타 검 없이는 위력이 좀 반감되긴 했지만 어쨌든 가능하다는 걸 조금 전 하병룡과의 대결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왠지 이번엔 무림의 것으로 상대하고 싶어져 대천흑룡 대신 다른 걸 택했다.
몸 안을 자유롭게 노니는 내력을 앞으로 쭉 뻗은 두 손바닥에서 순간적으로 폭발시키며 쏘아냈다.
귀마왕을 물리친 천마의 비기 파천마공(破天魔功)이었다.
황운걸 역시 검 끝에 모든 기운을 모은 채 나에게 날아들었다.
콰아앙.
파열은 검 끝부터 차례대로 시작되었다.
황운걸의 검 끝이 파천마공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평범한 검이 아닌 무당파 장문인의 모든 기운을 담아낸 검. 하지만 지금은 굴러오는 바위에 부딪힌 바싹 마른 나뭇가지 꼴이었다.
검 다음은 황운걸의 오른팔이었다. 그다음은 어깨. 그다음은 몸.
파천마공에 모두 차례로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쿠르르르.
무당파의 장문인을 공중분해 시켜 버리고도 힘이 남은 파천마공은 한참을 더 날아가 오룡궁의 가장 큰 대전 한쪽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지나갔다.
‘천마 할배가 봤으면 좋아했겠네. 파천마공이 무당파를 무너뜨리는 순간이라. …아닌가? 내가 자기를 넘어섰다고 또 시샘하려나?’
시샘해도 어쩔 수 없었다.
천마가 죽고 난 후, 생사현관 타통으로 전보다 훨씬 강해진 걸 느끼긴 했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내력 운용이 훨씬 자연스러워진 정도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싸움을 거듭할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천마 할배, 이러다 나 정말 등선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대전이 무너지며 내던 시끄러운 소리가 잦아들자, 장내에는 숨소리조차 크게 내는 사람이 없었다.
요란스럽던 연무장에 다시 맑은 산새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비무대를 내려오며 최수영에게 말했다.
“다 끝났다. 수영아, 이제 다친 사람들 치료 좀 해주자.”
“어? 어. 알았어, 오빠.”
멍하니 나를 쳐다보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최수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갈평부터 고쳐줄 생각인지 그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최수영이 잠깐 멈춰 섰다.
“오빠, 근데 좀 더 세진 것 같다?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지금은 마그네타 검도 없는데. 언제부터야?”
“딱히 콕 집어 언제부터라기보다는, 귀마왕 사건 이후로 싸우면 싸울수록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어 가고 있더라고.”
“그런 걸 나한테도 숨기고 있었어?”
“숨긴 적 없어. 점점 세지는 거 같다고 말도 했었고. 딱히 보여줄 일이 없었던 거지.”
“그런가? 아무튼 사람들 얼른 치료해 주고 올게.”
그러는 사이 하병룡 차기 장문인이 다가왔다.
“오늘… 비무 대결은 이걸로 끝마치면 되겠습니까.”
“그럼요. 여덟 판 다 했잖아요. 저흰 이제 내려가야죠. 혹시 무당파 장문인이 공중분해 된 책임을 묻겠다고 하시면, 좀 더 있다 가고요. 그땐 무당산이 어떻게 될지 저도 모르겠네요.”
“아, 아닙니다. 어쨌든 장문인이 대결 중 난입을 한 건 사실이고, 그에 따른 번외 비무를 하신 걸로 하겠습니다.”
“이제 장문인이 되시겠네요?”
“너무 급작스러운 상황이라……. 아마 장로들이 바로 절 따라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무당의 일이니 저희가 알아서 잘 하겠습니다. 제갈세가나 지구인 주둔지에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네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호북성 이웃사촌이잖아요. 무당파와 제갈세가와 지구인 주둔지.”
“알겠습니다. 내려가시는 길 살펴드리는 게 맞지만, 당장 이쪽 일을 정리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대신 젊은 무인들을 붙여드리겠습니다. 제갈세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호위는 필요 없지만, 호의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협.”
“소협이 대협이 되었네요?”
“외모로 나이를 짐작해 소협이라고 불러드렸습니다만, 그건 김 대협을 담기엔 너무 부족한 단어 같습니다.”
“뭐, 편하신 대로 부르세요. 저흰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김 대협.”
“제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하병룡 장문인은 무당파를 잘 이끌어 나가실 것 같네요.”
“그 전에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고생하세요.”
하병룡이 돌아갈 때쯤 최수영이 제갈세가 사람들의 치료를 마치고 다시 이쪽으로 걸어왔다.
“이제 엘리엇이랑 마쿤쿠만 치료해 주면 돼.”
“고마워, 수영아.”
“하하핫. 뭐가 고마워. 그리고 인사는 저쪽에서 지겹도록 충분히 듣고 왔어.”
그때, 약에 취해 자고 있다가 깨어난 건지 엘리엇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악! 빨리! 빨리 치료해 줘! 제일 위독한 나부터 치료하란 말이야!”
“오빠, 저 사람은 그냥 치료해 주지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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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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