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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20화 (20/215)

<20화〉복귀

선선한 가을의 어느 날.

정무학관에 재미있는 소문 하나가 돌기 시작했다.

“자네 그거 들었나?”

“무얼 말인가.”

“면룡 있잖은가. 그 친구가 이번에 임무 수행에 나섰다가 마인을 만났다더

군.”

“허어, 마인이라니.”

어디서 짤막한 정보만주워 듣고왔는지, 처음엔 단순히 백우진이 마인과 조우했다는 이 야기 였다.

이를 접한 생도들은 한 달 실종됐다가 돌아와서 이번에는 마인이냐며 운 도 지지리도 없는 놈이라고 혀를 찼다.

하루쯤지나자소문은 더 상세한내용을 담은채 퍼져 나갔다.

“면룡이 마인을 잡았다더군.”

“그 얼굴만 잘난 놈이 마인을 어찌?”

모두가 반신반의했다.

구왕수와의 대련을 통해 어느 정도 그의 인식이 바뀌 기 시작한 것은 사실 이나 마인을 잡을 수 있을 정도까지 변한 것은 아니 었기에.

소문은 더욱 살을 붙였다.

“그 친구가 큰 부상을 입 었다더군.”

“저런! 얼굴은 안 다쳤다던가?”

그 재수없는 낯짝이 확 뭉개졌어 야 하는 건데.

사람들이 마구 떠들어대자 그 이야기는 백무혁과 신예화의 귀에도 들어 가게 되었다.

“오, 오라버니. 소문 들으셨어요?”

“그래….우진이 녀석이 마인을 만났다지.”

“크,크게 다쳤대요. 어떡하죠?”

“어디가 어떻게 다쳤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막막하구나.”

차라리 자신이 함께 갔어야 했다며, 신예화는 또 스스로를 자책했다.

“아,진짜아….”

그녀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짜증이 났다.

흔히들 말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신예화는 오히려 반대 였다. 백우진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에 대한 걱정은 반대급부 로커져만 갔다.

물가에 애를 내놓은 심정이 이런 건지, 자신이 없는곳에서 그가무얼 하고 있는지 자꾸만 궁금하고, 신경이 쓰였다.

“괜찮을게다.”

백무혁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네에….”

그녀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소매로 닦았다. 그렇지만 기분은 여전히 별로 였다.

한중으로 복귀하는 길은 순탄했다.

덤벼드는 산적 놈들은 죽은지 오래 였고, 남은 산적 놈들은 합리적인 선에 서 통행료를 챙기는 거래 대상에 불과했다.

백우진의 일과는 매우 단조로워졌다.

아침에 일어나꽃에 물주듯 마석이 담긴 수통의 술을 갈아주고, 제갈연지 에게 상처 치료를 받는다.

저녁이 되면 야영지를 조성하고, 저녁 식사가 마련되기 전까지 낭인들과 한바탕 지도 대련을 펼쳤다.

그렇게 닷새 가 지 나자 한중에 다다랐다.

백우진은 의뢰 가 끝난 낭인들에 게 은자가 가득 담긴 주머 니를 나눠 주었 다.

“소협, 이건대체…?”

석대가 나서서 물었다.

“불괴를 잡고 받은 보상금이다. 똑같이 넣었으니 비교하지 말고 품에 넣어 라.”

낭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표정 변화가 그다지 없는 석대도 이번만큼 은 놀랐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그, 그러니까 그걸 왜 우리에게 주시냔 말입니 다.”

.

!..

......

낭인들의 공격은통하지 않았다.도끼를 힘차게 휘두르고, 창을 세차게 내 질러도 불괴는 그것들을 모조리 피해냈다.

사실상 불괴 토벌에 대한 낭인들의 공적치는 한없이 0에 수렴했다. 아니, 오히려 절정 고수도 없는 와중에 살아남아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감사해 야할 일이었다.

“니들이 시간 못 끌었으면 내가 녀석을 끝장낼 시간도 못 벌었다.”

너희가 잡은 거나 다름없어.

퉁명스럽게 말하자 낭인들이 달려들었다.

“형니이이임!”

“지랄, 얻다대고형님이래!”

충성을 다하겠다며 달려드는 놈들을 모조리 한 대씩 쥐 어박은 뒤에야 사 태가 진정됐다.

낭인들 대 다수가 감사의 말과 함께 떠 나가고, 두 사람도 학관으로 복귀 해 야할시간이 찾아왔다.

“정말 고맙소.”

안세하가 포권을 취했다.

“백 소협과 제 갈 소저 가 아니 었다면 나 또한 그 자리 에 서 죽었을지도 모 르오.”

살려주어 정말고맙소.

감당키 어려운 인사에 제갈연지가 손사래를 치자 백우진은 웃으며 안세 하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켰다.

“다음에 좋은 술이나 기운 좋은 약초 같은 게 생기면 좀 보내주는 걸로 퉁 칩시다.”

“하하! 내 중원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제일 좋은 놈으로보내드리겠소.”

작은 인연을 맺어둔 뒤, 백우진은 제갈연지를 이끌고 상단을 나섰다.

“고생 많았어, 제갈소저.”

“아, 아니에요…. 저보단 백 공자가 더….”

제갈연지의 손가락이 꼬물거린다.

그녀와 제법 긴 시간동안 함께 하면서 어느 정도 행동 양식을 파악할수 있 게 된 그였다.

“부끄럽구나?”

“그, 그게…, 누군가한테 칭찬을들은게….”

“또 처음이냐…?”

“네에…, 히끅.”

또울려고 한다.

백우진은 당황하지 않고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울지 말고복귀나하자.”

그렇게 말하고 뒤 로 돌아서 자 제 갈연지 가 양손을 뻗 어 제 머 리 에 올려져 있던 백우진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저,저어….”

무언가 할 말이 라도 있는 듯, 손을 놓아주지 않은 채 그녀는 한참을 망설 였다.

백우진은 기다려주었다. 그녀의 성격상, 어떤 말이라도 남에게 한마디 건네기 위해선 수많은 고민을 거쳐야 함을 알고 있었기에.

저 멀리서 걸어오던 행인이 이곳을 지나쳐갈즈음,그녀의 입술이 벌어졌 다.

“하,학관에서…! 아, 아는척해도될까요?!”

오래 공들여 말한 것치곤 한없이 가벼운 부탁 아닌 부탁에 백우진은 저도 모르게 하하 웃으며 그녀가 꼭 쥐고 있는 손을 맞잡았다.

“오늘부터 친구인 걸로 하자고, 제갈 소저.”

“네,네헤에…!”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은 아름답게 피어나기 직전의 꽃봉오리 같았다.

학관에 복귀 한 백우진은 의 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우지이이인!”

“우진아!”

달려오는 신예화 그리고 백무혁.

저 두 사람은 자신이 지금 복귀한다는 걸 대체 어떻게 알고 이렇게 나왔을 까.

“괜찮으냐? 다친 덴…, 다쳤구나!”

“파,팔이….”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은 팔과 어깨를 본 두 사람이 호들갑을 떨어대기 시 작했다.

“아, 크게 다친 거 아니니까 걱정들 마셔.”

백우진이 입을 열자술냄새가진하게 풍겨왔다.

“야, 백우진! 아픈데 술을 마시면 어떡해!”

신예화가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씩씩거릴 때마다 가슴이 크게 들썩 였다.

백우진은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쳐다보다 제갈연지 가 옆구리를 쿡 찔러 준 덕분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약주야, 약주.”

“너 진짜…!”

그녀가 뭐라 또 쏘아붙이려 하자 백우진이 손을 앞으로 뻗으며 크게 소리 쳤다.

“과보호 멈춰!”

“머,멈춰!”

저도 모르게 제갈연지가 그걸 그대로 따라했다.

“에,엣?”

그녀가 당황하는 사이, 백무혁과 신예화의 시선이 비로소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우진아, 이쪽소저는…?”

“나랑 임무 같이 다녀온 제갈연지 소저야.”

백우진이 그녀의 등을 살짝떠밀었다.

“아, 안녕하세요오! 제, 제갈연지입니다….”

“아! 제갈소저셨구려. 소저도 고생 많으셨소. 어디 다친 덴….”

“어,없어요….”

쑥스러운 듯 그 말만을 남긴 채 백우진의 뒤로 쏙 숨어드는 제 갈연지.

“하하, 둘이 많이 친해졌나 보구나.”

백우진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 거렸다.

“뭐…, 친구가된건 맞지.”

여 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친구라 문제 지 만.

“친구…?”

이를 지켜보던 신예화는 살짝 멍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조금… 아니, 많이 이상했다.

지금까지 백우진에게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는데 다른 사람을 친구라며 소개하는 게 무척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제갈소저, 그만 좀나와.”

“네에….”

언제나 밝은 목소리를 내던 백우진의 낮게 깔린 목소리도 낯설었다.

신예화는 저도 모르게 제갈연지를 향해 다가가 말을 걸었다.

“반가워요, 제갈소저.”

“바,반가워요….”

“저는 우진이 소꿉친구 신예화예요.”

“네에….”

나지 막한 대 답 뒤 로 그보다 더 작은 말이 이 어 졌다.

알고 있어요.

백 씨 형제 에 게는 들리 지 않은 듯했지 만 신예화에 게는 그 말이 무척 또렷 하게 들렸다.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제갈연지와 눈을 마주쳤다.

길게 자란 앞머리 사이로 살짝 드러난 그녀의 두 눈동자는 수줍은 말투와 는 달리 이쪽을 또렷이 응시하고 있었다.

강렬한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여자로서의 직감이 경종을 울려댔다.

저여자,무언가이상하다고.

“당신….”

신예 화가 뭐 라 말하려 하자 제 갈연지 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다시 백 우진 의 등뒤로 숨어버렸다.

“뭐야, 왜그래?”

백 우진 이 의 아한 표정으로 뒤 를 돌아보며 묻자, 제 갈연지 는 까치 발을 들어 백우진의 귀에다대고 속삭였다.

“낯설어서 오래 대화하기가어렵다고…?”

제 갈연지 가 부끄럽 다는 듯 고개를 주억 거 리 자 백우진 이 쓴웃음을 지 었다 •

“낯가림이 심한애라두사람이 이해 좀해줘.”

“하하, 앞으로 자주 보며 낯을 익혀야겠구나.”

“…….”

백무혁이 이해한다는 듯 대답할 때, 신예화는 아무런 말없이 제갈연지를 지켜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또 히잇, 하며 더욱 꽁꽁 숨어버리는 모습을 보며 신예화 는 머리가 어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체 뭐냐구, 저여자는.’

아까 전까지만 해도 이쪽을 또렷이 쳐다보고 있었으면서 갑자기 부끄러운 척이라니.

심지어 낯을 가린다면서 백우진의 옷을 꼭 붙잡고 붙어 있는 건 또 뭐 란 말 인가.

그때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 나갔다.

‘설마저 여자…,우진이를?’

혹시나하는 마음은두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확신이 되었다.

분명했다.

저 여자는 지금 백우진을 노리고 있다.

제갈연지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아주 조금 날카롭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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