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화〉일상
눈을 꼭 감은 채 영약에 의해 증폭된 기운을 갈무리하는 제갈연지.
이따금씩 눈썹을 씰룩이고, 코를 찡긋거리고, 입술을 바르르 떠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괜히 말했나.”
운기조식 끝나면 입맞춤 하자는 말에 저러나 싶어 덩달아 가슴이 가빠왔 다. 저 러 다 주화입 마라도 찾아오면 어 쩌 나 싶 어 한시 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우려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듯했다. 그녀의 몸 안팎을 넘실거리 던 기운이 서서히 안으로 갈무리되며 주변이 안정돼 가고 있었다.
스읍, 후우.
규칙적으로 내뱉던 호흡이 서서히 어긋나기 시작했다. 무인의 호흡은 본 디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도 쉬이 흐트러지지 않는 법이다.
호흡이 어긋나고 있다는 건 뻔했다. 운기조식은 이 미 끝났고, 입 맞춤 생 각 에 부끄러워 차마눈도 못 뜨고 있는 것일 터다.
백우진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녀의 앞에 바싹 붙어 앉았다.
“흐... ” 그、 •
무릎과무릎이 서로 맞닿자그녀의 입에서 귀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가 되 었다. 그럼에 도 눈은 꼭 감은 채 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제 그만 눈뜨는게 어때.”
얼굴을들이밀며 작게 속삭이자그녀의 몸이 제자리에서 통하고튀어 올 랐다가 내 려 앉았다.
“우으.”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이윽고 그녀가눈을 떴다.
코앞에 놓인 백 우진의 눈과 마주치 자마자 땅에 손을 짚고 뒤로 물러 나려 는 그녀의 무릎을 붙잡았다.
“어딜 도망가.”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이제는 양손을 들어 제 얼굴을 가렸다. 그러 면서 손가락 사이를 벌려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다시 막는 행동을 반복 한다.
“제갈소저가 선택해.”
“뭐,뭐를요….”
“입맞춤.
미 처 가리 지 못한 귀 가 새 빨갛게 변하는 모습을 실시 간으로 보게 됐다.
“할거야, 말거야.”
손 너머로 숨을 크게 쉬고 내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그녀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양손을 내렸다.
그녀가 백우진을 똑바로 응시했다. 눈빛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음에 도 고개만큼은 돌리지 않고 끝까지 마주 보며 떨리는 입술을 뗐다.
“하,할래요!”
“그래.”
기다렸다는듯,백우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거리를좁혀 다가왔다.
“흡!”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았다.
…
신예화는 해본 적 없는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가며 하나하나 배운 솜씨는 나름대로 그녀의 얼굴을 화사하게 꾸밀 수 있게 되 었 다.
“헤,우진이가 어떻게 생각할까.”
도와주었던 친구들도 몰라보게 예뻐졌다며, 이대로라면 정무사화도 유화 연이 아니라 예화네가뽑혔을 거라고 추켜세워주었다.
안 그래도 밝은 그녀의 미소가 한층 밝아졌다. 길을 거니는 그녀의 얼굴을 본 사내들이 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서서 그녀의 얼굴만을 뚫어져라 쳐다 봤다.
“가가, 지금어딜 보는거예욧!”
“오, 오해야!”
애꿎은 연인 한쌍이 불화에 휩싸이기까지 했다.
허나 그녀의 머릿속엔 오로지 백우진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남자 기숙사 앞에 당도했지만 백우진의 방은 이미 비어 있 다는 말이 돌아왔다.
“어디 간거지?”
문득 제갈연지의 음흉한 얼굴이 떠올랐다. 또 그녀와 함께 어디론가 가 있 는 것은 아닐까.
“이씽.”
선수를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안그래도두 사람의 사이가부쩍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 경계심이 부쩍 을 라간 상태였다.
‘빨리 찾아야 해 !’
그들이 있을 곳이라고 해봐야 결국 정무학관 내부일 터였다. 조금만 찾아 다니면 금세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대연무장을 비롯해 곳곳을 돌며 탐문 수사를 시작했다. 백우진과 제갈연 지를 어 디 선가 본 적 없냐는 물음에 모두가 모른다고 대 답하다가 마지 막 한 여인에게서 원하는 답을 들었다.
“개 인 연공실 쪽으로 가던 것 같은데 … ?”
문득 백우진이 신룡이 된 이후 엄청 커다란 개인 연공실을 받았다며 말하 던 때가 떠올랐다.
‘그 밀폐된 공간에서 단둘이?’
경각심이 단숨에 높아졌다. 가볍게 신법을 운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걸어가는 속도 또한 빨라졌다.
따로 분리되어 있는 신룡 전용의 개인 연공실에 다다른 그녀가 작게 숨을 들이마시 며 호흡을 가다듬으며 문고리를 손에 쥐 었다.
가볍게 움직여 보자틈이 살짝벌어지는 것을봐선 안에서 잠가놓지 않은 듯했다.
“하우우….”
문고리를 잡고 옆으로 밀면 되는데 그것이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왜 자꾸가슴이….’
불안했다. 이 문을 열고 들어 가면 둘이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
문고리를 손에 쥔 채 몇 번이나 심호흡을 거듭한뒤에야 마음을 다잡았다.
손에 핏줄까지 돋아가며 억지로 힘을 주어 연공실의 문을 천천히 열었다.
성적 우수자인 그녀에게 주어진 개인 연공실과는 차원이 다른 넓은 공간 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곳의 한가운데에 앉아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백우진 과 제 갈연지 가 차례 로 시 야에 잡혔다.
아.”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온소리를 죽이기 위해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백우진의 오른손이 제갈연지의 머리를 자연스럽게 감싸 안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상체가그녀를향해 천천히 기울여졌다.
‘아,안돼.’
안돼, 안돼, 안돼.
왜인지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 아우성을 끊임없이 속으로 외쳐가며 그들 이 가까워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흡!”
짧게 숨 들이키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았다.
상상이나 춘화 속 그림으로만 보았던 남녀의 야릇한 순간이 눈앞에 펼쳐 지고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맞닿은 입술 안쪽으로 두 사람의 혀가 서로 얽히고설키는 게 내비쳐졌다.
‘아, 아아….’
백우진의 뒤통수 너머로 보이는 녹아내린 제갈연지의 얼굴은 춘화에서도 보지 못한 농밀함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두 눈을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보기 싫은데도 좀처럼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발, 제발 그만해…!’
속으로는 그만하라고 외치는데 이를 지켜보는 몸은 점차 뜨거워지기 시 작했다.
온몸 구석구석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몸이 간지러워졌다. 입을 틀 어막고 있던 손을 자꾸만 몸 곳곳으로 움직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몸이 그녀의 제 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허벅 지를 서로 마구 비벼대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털썩!
그 소리 가 츈, 츄웁 하고 입 맞추는 소리 만 들려 오던 연공실 에 울려 퍼 졌다.
열렬하게 맞닿아있던두 사람의 입이 떼어지고 가느다란 실이 두 사람 사 이에 늘어졌다.
백우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예화…?”
살짝 달아오른 그의 얼굴 위로 지금껏 보지 못했던 야릇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 |..
!....
......
.
읏!”
잠시 식어가던 몸이 단숨에 뜨거워져 몸이 움츠러들었다.
부끄러운 장면을 들켜버린 제갈연지가 하우우우, 하며 당황하고 있는 사 이 백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신예화를 향해 다가왔다.
“아, 아아….”
그가 다가올수록 야릇한 기운이 더욱 강해졌다. 숨을 들이쉬는 코끝으로 알 수 없는 향기 가 마구 들어와 콧속을 헤집는다.
“네가왜여기에 있어?”
백우진의 물음에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던 신예화가풀린 다리에 억지 로 힘을 넣어 자리에서 일어나 그와의 눈높이를 줄였다.
당장에라도 주저앉을 듯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두어 걸음 걸어가 양팔로 백우진의 옷자락을 손에 쥐었다.
“야,왜그래? 어디아프냐?”
묘한 시선으로 이쪽을 내려다보는 백우진의 얼굴이 요염하게 보였다. 평 생토록 봐온 얼굴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그녀 스스로도 혼란스러울 정 도였다.
“하아, 하아….”
가쁘게 숨을 몰아쉬 며 호흡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시금 백우진을 올려다 보며 물었다.
“너…, 제 갈 소저랑 사귀 기로 한거 야?”
백우진이 고개를 돌려 주저앉은 제갈연지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 렸다.
“그건 아니긴 한데.”
아직 까지 사귀 는 사이는 아니 었다. 애초에 오늘 입 맞춤을 하게 된 것도 생 각지 못한 일이었다.
백우진을 바라보는 신예화의 눈에 작은 원망이 깃들었다.
“넌 사귀 지도 않는 여자랑 입 맞춤부터 하는 거 야?”
듣고 보니 상당히 난봉꾼스러운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아니, 이건 어쩌다보니 벌어진 일이라.”
난색어린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대답하자 신예화가 옷자락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소리쳤다.
“그, 그럼 나랑도 할 수 있는 거 야?!”
이쪽에 매달리다시피 한그녀 때문에 명치 부근에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맞닿아있었다.
조금 전까지 제법 분위 기를 타고 있었던 탓에 음란마귀 가 몸에 씌 인 듯한 기분이다.
내려다보는그녀의 눈망울이며 입술이 굉장히 촉촉하게 강조되어 보이는 듯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머릿속에 가득 찬 음기를 털어냈다.
“제, 제 갈 소저랑도 어쩌다 그런 거라니까. 나 어디 가서 막 입 맞추고 그러 는 사람아니야.”
조금 전까지 진득하게 입을 맞춘 주제에 고결한 선비마냥 대답하는 모 양새가 신예화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어쩌 다가 어떻게 되는 건데 에!”
억울했다. 평생을 함께 해오면서 그 어쩌다가 자신에게는 왜 한 번도 일어 나지 않았단 말인가.
“말로설명하기 어려운그분위기란게 있어.”
알수 없는 말만빙빙 돌려서 하는 백우진의 모습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 다.
백우진으로서도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너와는 할 수 없다, 명확하게 선을 긋고 싶었지 만 그런 말을 꺼 내 려고 하면 자꾸만 몸이 망설 이 게 된 다.
자신이 경험하지도 않은그녀와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상처입히는 걸 꺼리 게 된다.
비무대 위에서 그녀에게 고백을 받았을 때도, 이미 늦었다는 그 말 한마디 를 돌려주는 데에 상당한 정신력이 소모됐다.
영혼이 달라졌다고 한들, 몸은 결국 ‘백우진’의 것이었다. 평생을 함께 해 온 기억이며 사념처럼 남아 있는 감정의 잔재들이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OOO ”
이글거리는 눈으로 백우진과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제갈연지를 번갈아 쳐다본 뒤 빼액 소리를 내질렀다.
“두고 봐 그 분위 기 라는 거, 나도 만들고 말 거니까!”
씨익씨익 콧김을 내뿜으며 돌아서더니 쿵쿵거리는 걸음으로 개인 연공실 을나가버렸다.
백우진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안타깝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