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화 > 신룡조
한 편의 신파극이 회의 실을 휩쓸고 지 나갔다. 신예화 또한 지금까지 미 안 했다며 깍듯이 사과를 건네는 구왕수와 묵은 감정을 해소하고 있을 무렵, 마지막한 사람이 회의실에 당도했다.
“여기가 신룡조요?”
대뜸 문을 열고 들어와 묻는 사내.
청색, 적색, 녹색 그리고 백색이 뒤섞인 옷을 입고 있는그는 영락없이 무 속인처럼 보였다.
그가 바로 백우진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신룡조의 마지막 조원이었다.
그의 이름 장삼, 안휘성 황산에 터를 잡고 있는 중소문파인 황산파 (黃山派)의 제자였다.
“하하! 반갑소. 내 소개를 하자면….”
“황산파의 장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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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분 좋게 떠벌리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던 장삼이 백우진의 난입에 한껏 우울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가 장삼이오.”
“엑,가짜 점쟁이잖아.”
신예화가 구왕수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놀란 표정을 지 었다.
그는 학관 내 에 서 유명세를 떨친 경 력 이 있는 인물이 었다.
장삼이 발끈하여 소리쳤다.
“어허, 가짜 점쟁이라니 ! 이 몸은 모산파의 적법한 후계 문파인 황산파의 후예로서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부적술과 주술을 깨우치기 위해
매끄럽게 굴러가는혀가쉼 없이 말을 내뱉었다.
그의 사문인 황산파는 이미 수백 년 전에 사라진 모산파의 후예를 자처했 다.
모산파는 무공보다 주술이나 부적술에 능통했던 문파였는데, 황산파 또 한 뒤 를 잇는다며 주술과 부적술이 랍시고 이 것저 것 선보이 긴 하지 만 그다지 신통한 것이 없어 매번 비웃음을 사는 곳이 기도 했다.
장삼 또한 마찬가지 였다. 모산파의 후예를 자처하며 허 리춤에 부적을 수십 장씩 꽂고 다니 지만, 그것들 중 무엇 하나 힘을 발휘 하는 것이 없고, 점괘를 봐준답시고 내뱉은 말들이 처음에만 그럴싸하지, 맞는 것 하나 없어 가짜 점쟁 이라 불리는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 였다.
“쟤 너무시끄러워….”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는 장삼을 향해 신예화가눈살을 찌푸렸다.
백우진은 그의 말을 끊기 위해 철패를 냅 다 던졌다.
“으헉!”
제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철패를 보고 놀란 장삼이 헛바람을 들이 키 며 가 까스로 철패를 손에 쥐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크흠, 내 가 있는 한 신룡조의 길흉화복은 걱정 붙들어 매시오. 매 순간마 다 이 몸이 점괘를 통하여 ….”
틈만 줬다 하면 말을 쏟아내는 그를 보며 백우진이 쓴웃음을 지 었다.
‘이상한 놈이야.’
가짜 점쟁이라불리며 성적은 최하위에 가까운 장삼을 신룡조에 넣은 이 유는 딱하나였다.
‘기운이 달라.’
바로 그의 주변에 흐르고 있는 기가남들과는 매우 달랐기 때문이었다. 일 반적인 자연지 기와는 다른 조금 더 무겁고, 끈적하고, 음침한 느낌.
이 를 느낀 백 우진은 확신했다. 가짜 점 쟁 이 라 불리 는 그의 모습 말고도 숨 겨진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일단저 입좀닫자.’
백 우진이 또 날릴 만한 게 뭐 가 있을까 주변을 두리번거 리 기 시 작하자 이 를 눈치 챈 장삼이 그제 야 입 을 닫고 자리 에 앉았다.
마침내 신룡조 다섯 명이 모두 자리했다.
“다들 반갑다:
가벼운 인사로 시작을 열었다.
“서로에 대해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인사를 나누는 시간은 생략하 지.”
모두가 서로를 힐끔 쳐다보며 고개를 주억 거 렸다. 그나마 존재 감이 옅 었 던 제갈연지도 지난용봉 비무제 이후 모두의 기억 속에 얼굴과 이름 정도는 각인된 상태였다.
“우리는 정무학관 역사상 가장 적은 인원으로 이루어진 신룡조다.”
가벼웠던 표정은 어느새 묵직하게 변해 있었다. 그에 따라 내뱉는 목소리 에도 더욱 힘이 실렸다.
“나는 쓸데 없이 많은 머릿수보다 한 사람, 한 사람 믿을 수 있는 동료를 원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온전히 등을 맡길 수 있는 그런 동료.
판타지 세계에서는 그런 동료를 얻기까지 참으로 오래 걸렸다. 그때는 모 든 게 처음이 라 사람 보는 눈이 지 지 리도 없어 뒤 통수도 얻 어맞고, 등에 칼도 꽂혀보고, 잠자는 도중에 기습도 당해봤다.
허나 지금은 그때보다 낫다. 적어도 눈앞의 인간이 내 등에 칼을 꽂을 인 간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파악할 수 있게 되 었다.
제법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제갈연지와 신예화는 말할 것도 없이 배신의 여지가 없다.
악연으로 만난 구왕수도 배신의 여지는 적 었다.
남궁수에게 버려져 이미 끈 떨어진 연 신세나다름없는 녀석이다.
오로지 이득으로묶인 관계에서 호되게 데인 탓에 정에 굶주려 있다.오죽 하면 감언이설로 던진 말에 스스로 감동하여 충성을 맹세할까.
‘불쌍한 녀석.’
백우진은 구왕수를 알뜰살뜰하게 잘 챙겨 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 결심 했다.
‘남은건 저놈인데.’
유일하게 장삼만이 모든 게 불가사의했다. 촉새처럼 말이 많다는 점을 제 외하면 실력도, 가진 재주도, 성격도 전부 미지수다.
그의 주변으로 흐르는 기운이 특이하다는 이유만으로 뽑은 만큼, 지금부 터 예의주시하며 어떤 인간인지 파악해가면 될 일이다.
“너희에게 동료의식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야.”
백우진은 동료의식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아주 잘 안다.
‘아주 빡세게 굴려버리면 돼!’
온갖구렁텅이에 밀어 넣으면 된다.
그럼 가장 기본적으로 동료 의식이 생길 만한 녀석인지, 아닌지를 판가름 할수있다.
동료에 대한 생 각이 아예 없는 놈들은 자기 혼자 살겠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친다. 여기서 동료 의식을 가질 수 없는 놈들이 걸러진다.
그렇게 남은 이들을 계속해서 굴리다 보면 옆에 있는 동료에 대한 애틋함, 소중함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 게 생 겨난다.
위에 동동 떠오르는 거품들을 거르고 걸러 진득하게 끓여낸 동료 의식이 다.
“동료 의식은 자연스럽게 생겨날 예정이니까 걱정 말고 내 말을 따르면 돼 ” •
-4- -4- -4- -4-
으으으으.
낮은 소리로 웃으며 내뱉은 말에서 네 사람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
“봄이 올 때까지는 훈련에 집중할 생각이다. 날이 따뜻해질 무렵에 조별 과제를 나설 거다.
그나마 기분 좋은 얘 기 였다.
빠르게 앞서나가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힌 일부 조장들은 한겨울에 과업 을 위해 학관을 나서는 어리석을 선택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질문 있는 사람?”
장삼이 기 다렸다는 듯 손을 들었다.
“첫 과제로 생각해둔 게 있소? 없다면 내가 또 기가 막힌 정보를 하나 들 은 것이….”
“ 있다.”
“•••아, 그렇소.”
시무룩한 얼굴로 입을 닫는 장삼.
반대 로 백우진은 더 없이 짙은 미소를 그렸다. 무얼 생 각하는지 입 맛을 다 시기도 했다.
“신룡조의 첫 과제는 마인 또는 마물 토벌이다.”
“헉.”
구왕수와 장삼의 숨이 동시에 막혔다.
…
서안에서 청해성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백리산은 예로부터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 한 곳이 었다.
산세가 험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높지 않아 길을 재촉하는 무림인들은 자 주 오르는 곳이 기도 했다.
“허억, 허억…!”
한 과객이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백리산을 넘다해가 저물었다.
“큰일이군. 급하게 오느라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
오늘 내로 산을 넘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초장에 길을 잃은 탓에 시 간이 지체되어 산속에서 밤을 맞이하고 말았다.
가벼운 걸음으로 달리면 해가 저물 즈음이면 산 너머 마을에 당도했을 거 라 예상했기에 야영에 필요한 무엇도 준비하지 않은 터라 더욱 난감한 상황 이었다.
“이를어쩐다….”
산에 내리깔린 밤은 무림인인 과객의 눈으로도 쉬이 꿰뚫어보기 힘들 정 도로 어두웠다.
이러한 어둠 속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란 불가능에 가까 워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무렵 이 었다.
“이보시오.”
어둠 속에서 별안간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 누구냐!”
놀란 과객이 허리춤에 찬 소도를 뽑아 목소리 가 들린 방향을 향해 겨눴다.
짙은 어둠이 깔린 숲 너머로 작은 불빛이 일렁거렸다.
어둠을 뚫고 나타난 이는 횃불을 손에 쥐고 있는 중년의 사내였다.
“놀랐다면 미 안하오. 난 단지 그대 가 야밤에 산속을 헤매는 듯하여 걱정 이되어온 것이오.”
과객 은 중년 사내 의 옷차림 을 살펴보았다. 떠 돌이 라기 엔 그 차림 새 가 무 척이나 간소한 것이 이 근방에 사는 사람으로 보였다.
“혹 이 근처에 사시오?”
“그렇소. 산골짜기에 작은 마을이 있소.”
과객의 얼굴이 단숨에 환해졌다.
“형장 말대로 길을 잃어 곤란해 하던 참이었소.혹 나를 형장이 사는 마을 에 데려다줄 수 있겠소?”
내 꼭 사례하리다.
과객의 간절한 부탁에 중년 사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 또한돌아가는 길이니 어렵지 않은 일이오.”
자, 나를 따라오시오.
고맙다는 말을 하며 사내의 뒤에 따라붙은과객은 앞서 가는중년 사내의 차림새를 보다 문득 궁금한 것이 생 겼다.
“헌데 형장께선 이 야밤에 어찌하여 마을을 나오셨소?”
아무리 마을이 근처라지만 경장 차림으로 야밤에 산속을 거니는 것이 의 아하게 느껴진 것이다.
“겨울이라 먹을 것이 부족하여 구하러 나온 참이었소. 시간이 지체되어 이 제 돌아가는 길이라오.”
“아아, 그러셨구려.”
산골짜기 마을이라면 겨울에 식량이 부족할 만도 했다. 농사를 지을 땅도 적을 테고, 산짐승들은 대부분 겨울잠에 들어 코빼기도 비추지 않을 테니 나 무뿌리 라도 캐 먹고 살아야 할 판일 테지.
“후우, 후우.
과객의 숨이 거칠어졌다. 낮부터 계속 신법을 운용한 탓에 단전에 남은 내 공은 한 줌도 채 되 지 않았고, 육신의 피로 또한 한계 에 가까워 진 상태 였다.
이쯤이면 마을에 당도했으면 싶건만 중년 사내는 묵묵히 걸어 나가는 중 이었다.
“형장, 얼마나더가야하오?”
“이제 거의 다왔소.”
“으음…!
앙다문 입술 사이로 침음성이 새어 나왔다.
얼마남지 않았다는 중년 사내의 말에 힘입어 조금 더 걸어가던 과객은 무 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본디 마을에는 작게나마 불빛이 새어 나오기 마련이다. 마을이 분명 멀지 않았다고 했는데 가도가도 어 둠뿐이 었다.
꺼 림칙함을 느껴 앞서 가던 중년 사내를 재차 부르려 할 때였다.
“자, 다 왔소.”
지치지도 않는지 쉼 없이 걸어가던 사내가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옆으로 비켜선 사내의 앞에 보이는 것은 짙게 깔린 어둠보다 더 까만 어둠 에 휩싸인 거대한 동굴이었다.
“이,이곳은 마을이 아니잖소!”
그제야 속았음을 깨달은 과객이 허리춤에 소도를 뽑아 사내를 향해 겨눴 다.
그순간,동굴의 어둠속에서 바람소리가났다.
콰득!
그와 동시에 듣기만 해도 섬뜩한 소리와 함께 소도를 쥔 채 길게 뻗어 있 던 과객의 팔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철퍼덕
“으, 으, 으으아아아…!”
고통에 억눌려 바람 빠진 비명이 피가 날 정도로 꽉 깨물고 있는 이빨 사이 를 비집고나왔다.
피가 솟구치는 팔뚝을 부여잡으며 주저앉은 과객의 곁으로 횃불을 든 중 년 사내가 걸어왔다.
“다행 이 지 뭐 요. 오늘도 빈손으로 돌아가나 했는데 마지 막에 그대를 만 났으니.
살려 달라고 빌어 라도 보기 위 해 억 지로 상체 를 들어 올린 순간.
과객은 보았다.
동굴의 짙은 어둠 너머로 번뜩이는 두 눈동자를.
“으, 으아아아!”
콰득!
“사,살려….”
콰직!
언제 그랬냐는 듯, 산은 금세 고요함을 되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