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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76화 (76/215)

<76 화 > 저예요

완연한 봄이 찾아오고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었다.

달라진 것은 딱히 없다. 필수 참여인 강의에만 들러 얼굴을 비추고, 나머지 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조원들을 조별 연공실에 불러 열심히 굴려주 는 일의 반복이다.

생활외적인 면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형인 백무혁이 玗학년이 되어 실습 의 목적으로무림맹에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진아. 이제는 형 없어도 잘 지낼 수 있지?”

“원 래부터 지내는 데 엔 문제 가 없었는데 • • •.”

“그래. 형은 의젓한 네 모습만 믿고 간다!”

한쪽만 눈물겨운 이별이 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학관을 거닐다 보면 풋풋한 새내 기들이 자주 보인다는 점이다.

나이 차이도 거의 안 날 텐데 어찌나 애기들 같아 보이는지, 지구에서도 경 험하지 못한 대학 생활을 이곳에서 즐기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착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깍듯이 인사를 건네오는 후배가 있는가 하면.

“선배님,제게 한수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가르쳐 달라는 공손한 말과는 달리 , 네까짓 게 신룡이 냐는 듯이 오만불손 한 태도를 보이며 다짜고짜 싸움을 걸어오는 놈들도 있었다.

제2의 남궁수가 될 자질이 엿보이는 놈들이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저 하 늘의 별로 만들어버렸다.

“뭐지, 이 따분함은.”

따분하다. 그것도 몹시.

이따금 객기를 부리는 1학년을 제외하면 명진과 함께 역대급 비무를 선보 이며 신룡이 된 백우진을 건드리는 간큰 인물은 이 학관에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한 번씩 기어오르는 녀석들을 상대하는 맛이라도 있었는데 그 것마저 사라지고 나니 어딘가공허해진 느낌마저 들 지경.

“에이, 회의실이나 가야지.”

.....

...

그래서 작은 취미를 하나 가지 기로 했다. 네 명이서 쓰기엔 너무나도 넓은 회의실을 꾸미는 일이었다.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식물도 몇 개 가져 다 놓고, 낡아 빠진 의 자들 은 죄다 치우고 하오문을 통해 장인이 직접 만들었다는 명품 의자들로 대체 했다.

넓게 빠진 뒤편에는 편히 쉴 수 있도록 침구류까지 구비하고, 비싼데 맛은 끝내주는 먹거리들도 가득 채워 넣었다.

대격변에 가까운 변화를 거친 이후 백우진은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곤 했다. 좁고 천편일률적인 기숙사보다 제 입맛대로 채워 바꾼 회의실 이 보다 마음에 들었다.

“응?

오늘은 또 어떤 간식에 술을 마실까 하는 생 각과 함께 회의 실이 있는 본관 에 들어선 그는 유독 많은 생도들을 보며 의 아함을 느꼈다.

“뭐지. 무슨일 있나?”

최근 백우진에게 부족한 것은 돈도 아니요, 술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남는 시간을 여유 있게 만들어 줄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사건이다.

한껏 기대감에 부푼 표정을 하고 모여 있는 생도들 사이를 기웃거리기 시 작했다.

“이것좀 봐.”

“검봉이 또 다른 조를 앞질렀어!”

사람들이 가장 몰려 있는곳은 본관복도에 위치한게시판이다. 이곳에는 각 학년별로 열 개의 조가 현재 어떤 조별 과제를 수행했고, 그로 인해 벌 어들인 점수와 등수가 매겨져 있는데, 이들이 놀라는 것은 2학년의 검봉조가 심상찮은 반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작보름전에 삼등이었거늘,벌써 이등이란말인가?허어….”

“한 번 나갈 때마다최소 세 개 이상의 과제를 수행하고 돌아온다더군.”

“그뿐인가?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동선을 짜고 그대로 움직 인다지 뭔가.”

최근 검봉유화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두어 달 전까지만해도 남들이 한창과제행을 나설 때 아무것도 하지 않던 검봉조가 날이 따뜻해지기가 무섭게 과제를 몰아서 해치우고 있기 때문이 다.

꼴찌였던 검봉조는 돌아올 때마다 앞선 조를 하나둘씩 갈아치우더니, 백 우진을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이등을 유지하고 있던 남궁수마저 제 치고 기어이 새로운 이 등으로 올라서며 생도들을 놀라게 만든 것이다.

“이러다 신룡조까지 이기는거 아니야?”

“에이, 거기에 비하면 점수가 아직 한참모자라던데?”

“그래도 지금 신룡조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 검봉조가 지금처럼 하 다보면….”

검봉조위에 남아 있는조는 이제 신룡조 하나뿐이다.

무려 영물이 변하여 탄생한 마물을 퇴치한 대가로 어마어마한 점수를 챙 긴 신룡조는 단 한 번의 과제 이후로 아무런 행동조차 하지 않고 있음에도 일 등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기대했던 사건과는 거리가 먼 사건에 백우진이 침울한 표정을 짓다가 문 득 며칠 전에 우연히 본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날이 바짝서 있었지.’

때는 그녀가 갖은 과제를 마치고 조원들과 함께 학관으로 들어서고 있을 무렵이었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다 그녀를 보았는데, 온갖 산적들을 때려잡으며 복귀 한 신룡조의 모습보다 더 꼬질꼬질한 상태로 들어서고 있었다.

비록 겉은 추레했으나, 흉흉하게 날이 서 있던 그녀의 시선만큼은 잊을 수 가 없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과호흡을 일으켰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기세를 엿보 았다.

이 상태라면 조만간 일류를 넘어 절정에 다다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 정도.

‘예상을 빗나간 건 좋지만….’

그때 마주친 이후 예사롭지 않은 눈빛에 소설 속에서 보였던 광기어린 집착을 보여주면 어쩌나 하며 졸였던 가슴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그녀는 오로지 학관 생활에 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그때 자신이 냉담하게 지나치자 가망이 없음을 여실히 깨닫고 모 든 걸 잊기 위해서 더욱 일에 집중하는 것일지도모른다.

“음,좋아.

가슴 두근거 리는 흥미 로운 일은 없었지 만 나름대 로 잠깐의 여흥은 즐겼 다.

이대로 그녀가 자신은 까맣게 잊은 채 승승장구하길 바라며, 회의실로 들 어선 백우진은 아직 남은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하는 식의 하찮은 일로 시 간을 보냈다.

완연한 봄의 어느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챗바퀴처럼 굴러가는 생활에 몸을 싣고 있던 날이 었다.

학관에 발붙이고 있던 적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밖으로 나돌며 과제 수행에 힘쓴 유화연은 그 어느 때보다 형형한 안광을 뿌리고 있었다.

“정무사화라더니, 과연 대단하구나.”

“주변의 꽃도 시들게 만드는외모로다!”

시들었던 외모는 어느새 과거를 무색케 할 정도로 빛을 뿜었다. 우연히라 도 그와눈을 마주친 사내들 몇몇은 그녀에게 차마 말은 걸지 못하고 속앓이 하다 몇날 며칠 상사병을 앓았을 정도.

허나 주변에서 수없이 들려오는 칭찬과 찬사에도 그녀는 기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말들 따위는 아무런 상관없어.’

이 젠 아무래 도 상관없었던 제 외 모를 다시금 가꾼 것은 다른 이들이 으레 내뱉는 시답잖은 찬사를 듣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한 채, 그녀는 바삐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과거 조장들이 한 곳에 모였던 대회의실이 다.

‘드디 어 그날이 왔어.’

문 앞에 선 그녀는 짧은 심호흡 끝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넓은 탁자와 열 개의 의자. 다섯 자리는 채워져 있고, 다섯 자리는 공석이 다.

“오, 요즘 소문이 자자한 검봉이 오셨구려.”

텅 빈 대회의실에 가장 먼저 도착해 모두를 맞이하고 있던 명진이 검봉 또 한 맞이했다.

“과찬이에요.”

“허허! 그럴 리가.”

허허롭게 웃으며 검봉을 바라보는 명진의 두 눈동자에는 미약한 호승심 이 깃들어 있었다.

“소저와는용봉비무제에서 인연이 닿았었지요.”

“그랬었죠.”

두 사람은 과거 용봉 비무제에서 한 차례 검을 맞댄 적이 있었다. 물론 유 화연이 이전의 비무에서 큰 내상을 입은 상태로 비무대에 오른 바람에 싱거 운 끝을 맞이했지 만.

“그때도 제대로 된 비무를 못해 아쉬웠소만….”

웃고 있던 눈동자가 어느새 날카롭게 변했다.

“지금은 더욱아쉽구려.”

그때보다 훨씬 더 성장한 유화연의 기세를 명진 또한 알아본 것이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빈 의자에 앉았다. 첫 소룡회 때에 앉았던 어중간한 자리가 아닌, 백우진이 앉게 될 상석에서 가장 가까이에 놓인 의자였다.

맞은편에는 명진이 보였다. 그녀는 살포시 웃는 얼굴로 조금 전의 답을 들 려주었다.

“가벼운 비무라면 좋아요.”

“허허! 이토록 시원하게 받아들일 줄이야.”

자신감이 엿보이는 그녀의 대답에 명진 또한기대된다는듯 크게 웃었다.

비 어 있던 자리 가 하나둘씩 채워 지 기 시 작했다. 이 제 빈 의 자는 두 개. 예정 된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즈음, 남궁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오시오, 검룡소협.”

“•••반갑소.”

명진의 따뜻한 환영 인사에 퉁명스러운 말 한마디와 함께 자리에 앉은 남 궁수는 곧장 유화연을 향해 시선을 내 던졌다.

요즘 꼴이 말이 아니게 된 그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 유화연.’

만나자는 연락은 만나지 못할 온갖 핑 계로 가득 채우더 니 이제는 갑자기 과제에 몰두하여 자신이 굳혀가던 이등의 자리를빼앗았다.

대 체 그녀 가 요즘 무슨 생 각을 하고 있는지, 남궁수는 알 수가 없어 속이 답답했다.

어느 정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조장들이 으레 주고받는 인사치레를 나 누고 있을때였다.

드르륵

쿠웅

필요 이상으로 거세게 문이 열리고, 마지막 한 자리의 주인공 백우진이 모 습을 드러냈다.

“얘들아, 안녕?”

모두를 짜증나게 만드는 해맑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예정되어 있던 시간을 훌쩍 넘은 때였다. 팔짱을 낀 채 백우진을 노려보고 있던 팽자인이 불만 가득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너무 늦는 거 아닌가요? 당신 하나 때문에 모두가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 잖아요.”

백우진은 자신을 향해 툭 쏘아붙인 팽자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 앞에 멈춰 섰다. 그러자팽자인이 당황한듯, 자리에서 일어나 그와의 눈높이를 맞 추었다.

“뭐,뭐예요?”

그녀 가 반문하자 백우진이 별안간 씨 익 웃더 니 팽 자인의 손을 쥐 었다.

“화 풀어.”

“이,이 손… 놔흐응…!”

엄 지로 손등을 가볍 게 쓸어 내 리 자 남자에 대 한 면역 이 라곤 요만큼도 없 던 그녀의 얼굴이 지금 막달군쇠처럼 빨갛게 변했다.

“오, 오늘만 봐주는 거예요. 다음은…, 다음은 야, 얄짤 없어요.”

“그래.”

오늘도 얼굴이 한 건 해결했다.

팽자인을 침몰시 키고 백우진이 상석에 앉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유화연은 제 손을 부여잡고 헤벌쭉 웃고 있는 팽자인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쏘아보

냈다.

‘저 여우 같은게.’

유화연에 게는 조금 전 보인 그녀의 행동이 모두 다 노리고 한 행동처럼 보 였다.

상석에 앉아 시야에 훤히 들어오는 조장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근데 오늘은 뭐 때문에 모인 거래?”

분명 담당 교수가 무언가 얘 기하기는 했지 만, 한 귀 로 듣고 흘린 터 라 기 억 이 나질 않았다.

대답을 해준 것은 명진이었다.

“아마그때가온 것아니겠소.”

“무슨 때?”

“신룡 쟁탈전 말이오.”

“ 아.”

용봉이 라는 자리는 한 번 앉았다고 쭉 유지되는 편안한 자리가 아니 었다. 용과봉은 일반생도들에게서 도전을 받아제 자리를 보존해야하고, 신룡은 그렇게 살아남은 용봉들로부터 도전을 받아 제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그들은 각각 자신들에게 도전해오는 최소 한 명 이상의 도전자들을 해치 웠다. 비무광인 명진은 도전해오는 족족 받아들여 벌써 네 명과 비무하여 모 두승리를 했고.

“그럼 내 자리에 도전하는 사람이 정해졌다는 건가?”

“그렇소.”

“혹시 너야?”

백 우진의 기 대 어 린 물음에 명 진은 아쉽 기 한량없는 표정 으로 재 차 고개 를 저었다.

“아쉽지만 아니오.”

“그럼 누구야?”

그가 던진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천천히 저을 때, 단 한 사람만이 손을 들 었다.

“저예요.”

유화연이었다.

백우진이 난색 어 린 표정을 하며 그녀와 눈을 마주치 지 않기 위 해 고개를 돌렸다.

가장 엮이지 않았으면 하는 대상이 비무 대상으로 정해졌다.

“신룡조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성적을 받은 건 저였어요. 당연히 제가 백 •••,공자에게 도전할권한을 갖게 되었죠.”

“•••그렇구나.”

불길한 생 각이 머 릿속을 스치고 지 나갔다.

혹 지금까지 그녀가과제에 미친 듯이 몰두한 건 모두 이 순간을 위해서가 아니었나 하는.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정식으로 신룡 백우진 공자께 도전하겠어요.”

빼도박도 못하게 된 상황에 백우진은 울상이 되었다.

“도전을…, 바, 받아들이지.”

전 연인 사이의 신룡쟁탈전이 성립되었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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