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악취
같은 인간을 수백 , 수천이 나 실험으로 희 생시 킨,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올라오는 희대의 살인마가 당선영의 얼굴을 보 이며 이것이 진짜제 모습이라고 말했다.
“후후…, 많이 놀랐니?”
끈적이는 말투, 요염한 웃음소리,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지는 손길, 야릇 하고 애틋한눈빛, 코로 스며드는 미약 섞인 그녀 특유의 체취, 몸 전체에서 뿜어내는 분위기까지.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들이 그가 알고 있던 그녀와 일치하여 얼토당토 않은 주장에 힘을 싣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연기를 선보이는 것은, 어쩌면 지금까지 악녀에게 놀아 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배신감 같은 걸 들게 만들려는 것일까.
“어때, 감쪽같지?”
의문을 해결해줄 겸 그의 마음을 흔들어볼 겸해서 보여준 얼굴이 었다. 하 지만 진미연은 이내 스스로 연기를 그만두었다.
찰나에 불과했다. 백우진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린 것은.
얼굴이 변하는 순간 거세게 흔들렸던 눈빛은 그 이후로 단 한 번의 파문도 일지 않았다.
“대단한 역용술이네.”
백 우진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미 과거부터 얼굴과몸을 바꿀 수 있는 무공은 존재해왔다. 역용술과 축 골공이 바로 그것들이다.
역용술은 제 얼굴의 형태를 바꾸는 무공이고, 축골공은 뼈의 형태를 바꾸 어 체격을 조금 더 작거나 크게 만들 수 있는 무공이 었다.
허나 두 무공은 한계가 명확하다. 얼굴을 바꾼다 해도 원래의 얼굴에서 형 태만 살짝 바꿀 수 있고, 축골공 또한 어른이 어린아이 정도로 작아지는 것과 같은 파격적인 변화는 이뤄낼 수 없다.
그렇기에 그녀가보여준 역용술이 놀라운 것이다. 완벽하게 타인의 얼굴 로 변한 것으로 모자라 목소리까지 일치 시 켰다.
“교주님께서 직접 창안하신 무공이란다. 대단하지 않니 ?”
자부심 이 한껏 묻어나는 말투.
그들이 말하는 교주란 세간에서 천마라 부르는 이를 말함이다.
“이 손만 원하는 얼굴에 가져다 대면 바꿀 수 있는, 그야말로 신공이라 부 를만한 무공이지.”
그녀가자랑하듯 말을 늘어놓자, 뒤에 서 있던 당연신이 더 나아가려는그 녀의 말을 제지했다.
“거기까지만 하시오. 말이 너무 많은 것 같구려.”
“어머나.”
그녀 또한 애초부터 거 기 까지 말할 생 각은 아니 었는지 , 아차 하는 표정으 로 제 입을 손으로 가렸다.
“잠깐신이 났나봐요.”
“•••조심하시오.”
당선영의 얼굴에서 다시 시녀의 얼굴로 돌아온 진미연은 백우진을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헐렁하게 동여둔 앞섶이 흘러내려 그 안에 감춰져 있던 깊게 파인 가슴골 이 드러났다.
“이 무공이 라면 네 가 원하는 모든 여자가 되 어줄 수 있어.”
당선영 , 제 갈연지, 신예화, 유화연, 그 외 에 수많은 아리 따운 여 자들까지 모두.
“네가 내 것이 되어준다면 나또한 네게 뭐든 되어줄 수 있어.”
눈빛에서 강한 열망이 넘실거렸다.
이대로 마기에 서서히 잠식시켜 마인화 과정을 진행해가면 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온전히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기의 폭주하는 성향을 억눌러 마기의 잠식 과정을 늦춘다. 이것이 마인 의 이성을 남길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그녀는 확신하며 실험을 거듭해왔 다.
실패한 결과물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했다.
마기의 잠식 과정을 늦출수록 이성의 끈을 유지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 지만 인격의 변화는 불가피했다.
피와 살을 탐하는 살육의 본능으로부터 몸부림치는 이성은 필연적으로 변화를 겪 었다. 좀 더 충동적 이고, 파괴 적으로 말이다.
‘그것이 죽을만큼 아까워.’
처음에는 수려한외모와 조각 같은 육체가하나의 예술작품 같아서 좋았 다. 그를 하나의 장식품으로 삼아 제 뒤 에 세워두기를 바랐다.
그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바뀌 었다. 온몸이 꽁꽁 묶인 실험대 위에서 선보 인 담대함이며, 공동을 살펴보며 자신들의 계획 대부분을 알아차린 통찰력 까지.
무엇 하나 잃고 싶지 않은 것으로 꽉꽉 채운 내면마저도 제것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충분히 혹할 만한 제 안이 었다. 원한다면 세 상 모든 여 자를 안을 수 있는 것과 진배없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백우진은 거절했다.
“미 안하지 만, 난 하나로는 만족을 못 하거든.”
굉장히 쓰레기 같은 말을 멋들어진 미소와 함께 버무려 내뱉었다.
“년 내 앞에서만큼은그누구도될 수 없어. 네가 어떤 얼굴, 체형을하고 있다고 해도 난 널 알아볼 수 있으니까.”
“헤에, 어떻게 알수 있는데?”
자존심이 상한 듯, 경직된 미소를 그리며 그녀가 물었다.
백우진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대답했다.
“너 에 게는 악취 가 나. 그것도 아주 심한 악취 가.”
“뭐…?”
예상치 못한 발언에 놀란 그녀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반사적으로 되물었 다.
“수백, 수천 명의 피를뒤집어쓴 네 몸뚱어리는 이미 썩을대로 썩어버렸어. ”
백우진이 싱긋 웃으며 신랄한 어조로 말을 이 었다.
“썩은 고기에 서 올라오는 냄 새를, 온갖 향신료로 뒤 덮어 고급 요리를 만 들어낸다고 해도….”
미식가를 속일 순 없는 법이지.
그녀의 얼굴이 점차 굳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애욕으로 뒤 덮여 있던 눈빛은 어느새 증오로 뒤바뀌 었다.
마지막 한마디 가, 뒤 바뀌 기 시작한 그녀의 감정에 방점을 찍었다.
“굳이 맛보지 않아도 알아.”
넌 맛이 없어.
사정 없이 깔아뭉개고, 짓밟는 듯한 신랄한 말투는 진미연의 역린을 건드 렸다.
“너어어어어어!”
마교의 천하를 위해 수십 년을 오로지 실험에만 몰두했다. 코를 강하게 찌르는 냄새는 그녀의 후각을 망가뜨렸고, 지독한 약물과 함께 보낸 시간은 그녀에게 젊음과 아름다움을 앗아갔다.
분명 그녀의 실험은 마교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거 기에 짓눌린 삶은 그야말로 가을의 낙엽처럼 바스라졌다.
교에 서 내 려준 신공이 라 부르기 에 모자람 없는 역용술은 그녀 가 희 생 한 삶을 어느 정도 보상해주긴 하였으나, 그 또한 썩 어 문드러진 마음에 온갖 향신료를 뒤 덮었을 뿐이 었으니 .
“감히나를모욕해?!”
거친 발길질이 백우진의 가슴팍에 닿았다.
| |.....
!..
.
퍼억
걷어차인 그의 몸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큭!
단순한 여인의 발길질이 아니었다.
진미 연이 아름답다고까지 평한 육체는 용사로서 살아온 지난 경험을 그 대로 녹여 만들어낸 군더더기 없는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
내공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해도 평범한 여인의 발길질에 맥없이 나자빠질 리가 없다.
“너 따위 가! 감히 ! 날!”
퍼억! 퍽! 뻐억!
분노의 발길질이 백우진의 전신을 난타했다. 짓밟고, 걷어차일 때마다 몸 이 들썩였다.
“하아, 하아…!”
뼈가 부러지고, 피가 튀었다.
백 우진을 피 떡 으로 만든 뒤 에 야 진미 연은 거 친 숨을 몰아쉬 며 잃어버 렸던 이성을 되찾았다.
근육이 뭉개지고, 뼛골이 상한 백우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와중 에도 흔들림 없는 눈빛 만큼은 여전했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마음에 들어 했던 눈빛이, 지금은 신물이 났다.
“그래…, 내가잘못생각했어.”
주제도 모르고 나불대는 말과 행동은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온전히 얻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저 마교에 희생한 자신의 삶을 장식 할 한 점의 장식품이 면 그것으로 되 었다.
“그 인격을, 완전히 부숴줄게.”
굳게 다물어진 그의 입을 강제로 비틀어 열었다. 그 열린 틈 사이로 마기가 담긴 환약을 밀어 넣고 억지로 삼키게 했다.
“마음 같아선 단숨에 마인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데 …, 그것만은 참아야 겠지.”
그런 짓을 했다간 이성을 잃어버리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제 주인을 향해 이 빨을 들이 미 는 개 보다 못한 존재 가 되 어 버 릴 테 니.
다만 인격을 소중하게 여기며 고작 한 알씩 먹였던 환약의 양을 대폭 늘릴 셈이었다.
“조금만더 있으면 지옥이 시작될 거야.지금은 얌전히 잠들어 있는마기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서서히 깨어나 네 이성을 좀먹고, 내부를 검게 물들이겠지.”
그 과정은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괴로울 것이다.
“고통이 찾아오면…, 살려 달라고 애원해 보렴. 조아린 네 머리를 짓밟은 채로 진통제라도 놔줄 테니.”
백우진은 제 몸속에 들어온 마기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전신 곳곳으로 숨어드는 것을 느꼈다.
한층 더 묵직해 진 마기는 서서히 박동할 조짐을 보이 기 시 작했다. 이 대 로 라면 며칠 안에 그녀가말한마인화과정이 찾아오리라.
퉁퉁 부은 시선이 닿자, 그녀는 애써 되찾은 여유가 다시금 증발하고 있음 을느꼈다.
“꿈이 크네….”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단언하는 듯한 말투에 진미연은 주먹을 꽉 쥐 고 부르르 떨 다가 이 내 코웃음을 치 며 뒤로 돌아섰다.
“흥! 이만 가요.”
당연신은 바닥에 널부러진 백우진을 일별한 뒤, 성큼성큼 멀어져 가는 그 녀의 뒤를 따랐다.
…
진미연의 속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이후부터 백우진은 누리던 것들 중 대 다수를 잃었다.
더 이상 공동을 자유롭게 돌아다니 지 못하게 되 었고, 한 알씩 주어졌던 환 약의 개수가 세 개로 늘어 몸속에 쌓이는 마기의 양이 더 빠르게 늘어갔다.
“오히려 좋아….”
이제는 조금만 집중해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커진 마기를 보며 남은 시간 을 가늠해보았다.
대략 사나흘 정도면 억눌려 있던 마기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깨어날 듯 보인다.
“식사하십시오.”
오늘의 세 번째 식사가 도착했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화려했던 처음 의 밥상과는 거리가 제법 있는 조촐한 밥상이 눈앞에 내려왔다.
단단히 화가 난 그녀는 그렇게 돌아간 뒤로 미음인지 뭔지 모를 허여멀건 죽 한 그릇을 덜렁 던져놓았다.
이에 화가 난 백우진이 미친 듯이 항의했고, 어느 정도 돌려받은 게 이 정도였다.
“ 잠깐만.
식사를 내려놓고 곧장 떠 나려는 여인을 붙잡았다.
그녀가 뒤로 돌아섰다.
“무슨일입니까.”
“궁금한게 있어서.”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나름대로 긍정 의 표시였다.
“너희 일족은왜 마교에 투신한 거야?”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운 칼날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