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천마신공
노인을 꼬드기 기 위 한 말들을 쏟아낸 후에 야 백우진은 무언가 이 상함을 눈치챘다.
차분하다.
언제 나 방정맞게 웃고, 발을 동동 구르던 노인의 자세 가 더 없이 안정적 이 다.
더 놀라운 것은 이쪽을 바라보는 눈빛이다.
흐릿하고, 혼탁한 것들로 가득 차 있던 눈동자에 정기가 넘쳐흐르고 있다.
이러한 경우는 단 하나.
‘정신 차렸나?’
정신이 돌아온 경우뿐이다.
백우진은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노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분명 행색은 같은데, 느껴지는 분위 기며 위 압감이 전에 만났을 때와는 완 전히 달라졌다.
자세 나 눈빛만으로 사람에 게 서 풍겨 나오는 기운이 이토록 달라질 수 있 다니.
어떤의미론 신기할지경.
그와동시에 백우진은 지금 상황이 썩 좋지 않음을 깨달았다.
‘최악이군.’
백우진이 추측하기에 방정맞은 치매 노인의 본모습은 선대 천마 또는 후 계자.
지금 노인이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면?
그는 천마 또는 천마의 후계자에게 술래잡기를 해줄 테니 천마신공을 내 놓으라고 말한 미친놈이 되 어버리고 만다.
그 말을 들은 노인은 어떤 느낌 일까.
생 판 모르는 놈이 갑자기 나타나선 술래 잡기를 하자고 하는 걸로도 모자 라선 천마신공을 내놓으라고 말했으니 .
‘죽여도할말이 없겠는데…?’
노인이 당장 날아와 주먹을 날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행인 일이 었다.
‘주워 담기는글렀고….’
말이란 건 애초에 주워 담을 수 없다.
너무나도 또렷하고 명확하게 내뱉은 말이었으니, 말실수라고 둘러댈 수 도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그냥 뻔뻔하게 나가자!’
기호지세 (땵虎之勢).
이 미 자신은 달리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상황이 다.
내 리 려고 해봤자 죽거 나 크게 다칠 뿐이 니 , 그대로 타고 달리는 수밖에.
백우진은 더욱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영감님, 술래잡기 안 할 거요? 그럼 나 그냥 갑니다?”
그가 진짜로 뒤로 돌아서자,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물끄러미 이쪽을 쳐다 보고 있던 노인에게서 마침내 반응이 돌아왔다.
조금 강압적 인 방식으로.
“불허한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강압적 인 말투.
그와동시에 노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백우진의 전신을 옭아매 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큭…!
창졸간에 온몸이 꽁꽁묶여버린 백우진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조금 놀랐다.
돌아서면 붙잡을 거란 예상은 했다.
이곳은 마경.
멀쩡 한 사람을 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곳이 기 에.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잡을 거라곤 예상을 못 했는데.’
히히, 하고 웃으며 천마군림보를 발사할 때부터 알아보기는 했지만 노인 의 경지는 이미 인간에게 있어 하늘이나 다름없는 경지에 다다라 있는 듯했 다.
‘현경, 그것도 거의 끝자락.’
화경의 고수를 이토록 쉽 게 옭아매 는 것은 그 정도가 아니 라면 불가능할 테니.
노인은 뒷짐을 진 채로 천천히 다가와 백우진을 훑어보았다.
“호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의 전신을 가늠한노인의 눈에 이채가서렸다.
깔끔하다.
체내에 마기가조금도쌓여 있지 않았다.
| |.....
‘흔적은 있는듯하지만….’
흔적은 존재했다.
그러 나 그것은 이 미 마기를 모조리 몰아내 고 난 뒤 에 남은 자국에 불과한 수준.
“천마신공을 배우고 싶다 하였느냐.”
노인이 물었다.
백 우진은 그나마 움직 임 이 허 락된 입술의 입꼬리 를 주욱 말아 올리 며 대 답했다.
“내가배우고싶다는게 아니라, 영감이 가르쳐준다고한거였지.”
거짓말이다.
천마신공을 배워보겠냐고 노인이 물어본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백우진이 몇 마디 말로써 이끌어낸 것.
그가 이러한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하나.
정신이 온전한 노인이 정신을 잃었을 당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 냐를 확인하기 위함이 었다.
“•••본좌가 말이냐?”
노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묻자, 백우진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 덕였다.
“본인이 직접 말했잖소. 나와술래잡기를오래 하고 싶으니, 천마신공을 익히라고. 그러면 이곳에서 오래 머물러도 괜찮다고 말이오.”
“수,술래잡기…, 끄응…!”
술래잡기라는 단어에 대경실색하는 노인.
설마 애들 장난 같은 놀이를 위해 누군지도 모르는 녀석에게 천마신공을 알려주려 했단 말인가.
‘상태 가 생 각보다 심 각하구나!’
정신을 잃었을 때 지금과 같지 않음은 충분히 예상했다.
돌아올 때마다 넝마주이 가 되 어 있는 의복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 었다.
그것기 단순히 모든 기억을 잃고 정처 없이 마경을 헤매기 때문이라 생각 했건만.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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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한숨을 내쉬는 노인을 보며 백우진은 확신했다.
‘기억 없구나.’
커다란 충격을 받는 표정으로 봐선 생전 처음 듣는 이 야기 인 듯했다.
‘그럴수 있지.’
정신을 잃은 당시의 모습을 기 억하지 못한다면 결국 누군가가 직 접 얘 기 해줘 야 그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건데, 이곳에는 사람이 하루도 채 살아남기 힘든 곳아닌가.
‘그렇다면 지금처럼 나아간다.’
앞으로의 태도를 결정했다.
지금처럼 뻔뻔하게 나아가기로.
이는 노인이 웬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닌 이상,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거 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귀 한 손님 이 다.
마경 에서 보기 드문, 마기 에 영 향을 극히 적 게 받아 오래 머물 수 있는 장 기투숙객.
정신을 잃었을 때와는 달리, 침중한 노인의 모습을 보며 백우진은 생각했 다.
‘삶의 목적이 분명히 있을 거야.’
치매를 앓으며 마경 속에서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음은 그가 죽을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일 터.
백 우진은 그를 슬쩍 떠보기 로 했다.
“보아하니 지금 정신을 되찾은 것 같은데, 술래잡기는 필요 없으시겠군?”
“물론이다! 본좌가술래잡기 따위를 할 것 같으냐!”
술래잡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노인.
백우진은 이에 시큰둥한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에잉...,천마신공 가르쳐준다기에 한번 어떤 무공인가궁금해서 와봤더 니.”
허탕이네, 허탕이야.
백우진의 태도는 그야말로 건성건성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했다.
천마신공을 대함에 있어 진심이라곤 요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말 과분위기.
그것이 노인의 심기를 더없이 거슬리게 했다.
“이노옴! 천마신공은 네놈처럼 시시껄렁한 자에게 허락되는 무공이 아니 다!”
모시던 신이 모욕당하는 걸 눈앞에서 지켜본 사람마냥 화를 내는 노인.
“네놈의 비루한 근골로는 절대 천마신공을 익힐 수 없…?”
끝을 모르고 치솟는 분노를 터뜨려가며 욕을 퍼부으려던 노인의 입이 틀어막혔다.
무아지 경 속에 서 눈에 띈 그의 몸뚱어리 가 무척 이 나 다부지 다는 것을 알 아챘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곧장 안력을 돋워 의복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그의 근골을 가늠 해보았다.
‘이,이놈 근골이….’
처음이었다.
이토록 이상적 인 근골을 가진 무재 (武敵)를 보는 것은.
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나기만해서 가질수 없는 종류의 근골이었다.
타고나기를 천재로 태어나, 노력만으로 따져도 누구보다 앞서나가는 독 종 중의 독종만이 일궈 낼 수 있는 것이 었다.
노인은 침을 꼴깍 삼켰다.
‘•••탐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극대노하고 있었던 터라 조금 창피하지만, 그러한 창 피를 무릅쓰는 게 아무렇지 않다고 여겨질 정도로 탐이 났다.
“근골이 뭐요.”
백우진이 짙게 웃으며 그에게 짓궂은물음을 던졌다.
신이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 바로 이 몸뚱어리다.
바꿔 말하자면 선천적 인 재 능으로 따지 면 이 세 상 그 누구보다 뛰 어 난 게 바로 그라는 뜻.
노인은 인상을 와락 구겼다.
마음 같아선 저 기고만장한 놈의 표정을 단숨에 뭉개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없다.’
그에게는죽기 직전에 꼭 이루고 싶은 사명이 있다.
이를위해서라면 그는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다.
그러 나 이 대로라면 불가능하다.
제 정신이 돌아오는 주기 가 더욱 길어 지고 있기 에 .
‘또한 아직은이르다.’
노인은 눈앞의 백우진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근골이 뛰 어나다는 것은 알았다.
그 정도가 우스갯소리로 백 년에 한 번 태 어날까 말까 한 수준이 라는 것도 , 자존심을 놓고 생각하면 그에게는 호재 중의 호재나 다름없다.
허나 천마신공은 근골 하나만으로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다.
지금처럼 하루 열두 시진 내내 붙어서 모든 구결을 풀어줄 사람이 없는 이 상은 더더욱.
“•••혹 천마신공의 구결에 대해 전해 들은 바 있느냐.”
백우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전반부 정도?”
“끄응.,,
노인의 입에서 침음성이 새어 나왔다.
천마신공을 가르쳐준다고 했을 때부터 설마 했는데, 진짜로 구결을 알려 주었을 줄이야.
“그렇다면 말해보거라.”
최 대 한 감정 을 추스른 노인 이 그를 지 그시 쳐 다보며 물었다.
“천마신공의 전반부 구결의 핵심은무엇이냐.”
노인이 제게 던지는 물음을 보며 백우진은 확신했다.
‘날 시험하고 있다.’
그는 지금 자신을 향한 모든 감정들을 접어둔 채로 오로지 이성만으로 판단하고 있다.
눈앞의 인간이 자신의 목적에 쓸모 있는 인간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그리고 그 목적은 공교롭게도 천마신공과 연결이 되어 있음이 분명해 보 인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천마신공의 구결을 이해하고 있는지를확인하기 위한 식의 물음을 던질 리가 없을 테니.
“전반부구결이라….”
노인의 더듬거리는 말투로 전해 들은 전반부 구결은 그야말로 난해함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왜 난해한지조차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화경에 오른 지금은 조 금씩 이해가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이 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이곳에 오는 동안 무던히도 생각했 다.
천마신공이 왜 이토록 난해하고, 복잡한지.
그리고 마침내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게 되 었다.
“천마신공은 역행의 무공이라는 거?”
“••••••!”
가볍게 던진 말에 노인의 동공이 사정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