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33화 (33/279)

7. 첫 번째 동행 ( 4 )

"그건 무슨 마술이죠? 안 보이는 손으로 다른 사람을 때리는 건가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마레. 아이는 자기가 생각해도 부끄러워서 얼굴을 살짝 벌겋게 물들였다. 마레는 포크로 잘라낸 돼지껍질을 푹 찍어 먹으며 말을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고 싶었던 건 주의 인도다. 혹시 우리의 교리에 대해서 대충이라도 알고 있나?"

"음, 좀 이상하잖아요. 아탕칼리는 자기가 신이 아니라 무슨 대천사장이고, 다른 신들도 다 신이 아니라 그냥 천사인데 신 흉내내는 거라고 생각하고, 뭐 이 땅의 죄가 다 사라지면 잠들어 있던 진짜 신이 뿔나팔 소리를 듣고 깨어난다나 어쩐다나 그런 거 아닌가요?"

아탕칼리의 신앙의 형태는 다른 신과는 근본부터 사뭇 달랐다. 그래서 그 신앙을 조롱하는 농담이 하도 많이 존재해서, 세상물정에 그다지 밝지 않은 아이조차 이걸 알고 있을 정도였다.

"맞아. 우리는 이 다신의 시대, 만신전이나 다름없는 센디엘에서, 유일신의 신앙을 지키는 유일한 종파이자 학파다. 그래서 늘 한 가지 테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것을 연구하고 있지."

"그게 뭔데요?"

"악."

포크로 돼지껍질을 마구 긁어대는 마레. 그는 손장난을 하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분명히 우리의 가르침에서는, 하나의 순선하고 전지전능한 신이 세상 만물을 창조했다고 했는데, 그럼 왜 세상이 이따위로 끔찍한 악의 구렁텅이냔 말이야. 선한 자가 악을 왜 창조했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가잖아. 그래서 무슨 잠을 자고 있느니, 원죄가 있느니 하는 정신승리 같은 이론을 만들어다 강요하고 있는 거지."

"아니, 당신, 자기네 교리한테 정신승리라니..."

여기서 이미 파문당하기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마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더욱 대담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좀 다른 접근방식을 택했다. 악도, 나름대로의 존재의의가 있다는 거야."

"그런..."

"악의로 가득 차서 악행과 죄업만을 쌓는 존재도, 그것이 주에 의해 창조된 이상, 보이지 않는 손에 인도되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어떠한 선한 영향력을 세계에 퍼뜨리고 있다는 이론이었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아이에게는 어떤 병의 영역으로 보일 정도의 사고였다. 글을 너무 많이 읽고 논리적 기호에 함몰된 나머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을 조금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발표하자마자 천오백 부가 팔려나갔고, 나는 바로 종교재판에 회부됐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성 아우렐리우스에 의해 학적을 박탈당하고 심문관으로 쫓겨났지. 사실 그것도, 그 분이 힘써주신 자비로운 조치였다."

"그게 대체 무슨 이론인데요? 잘 이해가 안 가는데."

마레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담배를 꺼내더니, 또 흰 연기를 뿜어대기 시작한다.

"당연히 그렇겠지. 이 세상에 지금 내 이론을 나만큼 이해하고 있는 건 나 하나밖에 없을 테니까. 다른 사람들은, 이 이론의 형태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자마자 적대감을 가지고 공박하려고만 글을 읽었으니,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어. 모든 작가는 독자에게 최소한의 호의를 요구할 권리가 있는 법이다. 호의 없이 읽는 글은, 쓰레기같을 수밖에 없어."

"너는 좀 열심히 들어줬으면 좋겠군."

아이는 강아지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긴 얘기가 될거라고 생각한 걸까. 엉덩이를 더 편한 곳으로 옮겨 자세를 고쳐 앉는 마레. 아이 역시 무릎을 끌어안고 그것을 경청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당장 이 북서 자치령의 예를 들어보자. 이 사람들의 축제 문화로 봐서, 이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년에 한 번씩은 이렇게 그럴듯한 요리를 만들고 그럴듯한 춤을 출 수 있을 정도로 윤택했을 거야. 그렇지? 경험이 없다면 이렇게 괜찮은 통구이는 도저히 만들 수 없을 테니까."

돼지고기를 툭툭 치며 말하는 마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최근, 갑자기 기근을 피하고자 고리대에 손을 벌려야 할 정도로 궁핍해졌다는 건데. 그 이유가 뭘까?"

"음, 전쟁 때문 아니에요? 일 년간, 전쟁을 해버렸기 때문에..."

"그래. 전쟁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했기 때문은 아니야."

마레는 담배를 후욱 내뱉고 말을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 버렸기 때문이다."

아연실색해진 아이. 마레는 담담하게 당연한 사실이라는 듯 말을 이어갔다.

"이 곳에서는, 몇십 년 전부터 카나기와 아지프가 자신들의 군병과 용병을 주둔시키면서 알력다툼을 하고 있었지. 유의미한 이권을 둔 다툼은 아니고, 그저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기 위한 데몬스트레이션의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인력이 주둔했어. 많은 인력이 주둔하고 있으니, 군량이 필요했겠지? 이 근처에서 제일 쓸모 있는 군량은, 밀이다."

"밀은 보존기한이 길지 않아. 놔두면, 금방 맥각이 붙거나 썩어버리지. 그래서, 그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군량으로 쓰고 남은 밀을 풀어서 구휼을 반복했다. 왜? 그냥 썩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어때, 분명히 악의로 가득한 두 악인 집단이 쓰레기 같은 전쟁놀이 짓거리나 했는데, 갑자기 구휼이 일어나버리지 않았나? 이건 분명히 주의 뜻이겠지."

"어, 어, 어?"

아이는 눈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헛소리같았지만, 대충은 무슨 말인지 윤곽이 잡힐 듯도 싶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 계속해서 용병이 유입되었으므로, 군사적 목적으로라도 가도를 정비할 필요성이 있었어.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돈을 들여서, 이 근방의 길을 닦고 괴물을 사냥해 최소한의 치안을 확보했다. 그러자 군납품을 대려는 상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지. 화살, 약, 붕대 따위의 소비재를 파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들이 빈 수레로 고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니 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특산물이 없나 찾아다니기 시작했어. 이 고장 전통의 수공예품이니, 연극 소품 따위가 그 수레에 실려 팔려나갔지. 그들이 남기고 간 돈은 쌀, 옷, 집이 되었다. 그래서, 북서 자치령의 이들은 압제에 신음하면서도,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경제적 혜택을 입으며 살아왔다고."

"무, 무슨..."

"그들이 고용해서 여기에 잔뜩 모인 용병들은, 저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으니까. 근처 유곽이든 축제든 주점이든 돌아다니며 급료로 받은 돈을 마구 썼다. 아지프의 손을 떠나, 용병의 손을 떠나, 마침내 북서 자치령의 가엾은 영민에게 도착한 돈은 이제 자기들끼리 순환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아무런 산업기반이 없는 북서 자치령도, 지역경제라는 걸 성립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는 한데..."

"봐봐. 이게 보이지 않는 손이다."

"오직 악의로 뭉친 두 집단이, 아무도, 본인들조차도 눈치채지 못한 새에, 이 지역의 생을 떠받치고 있었어. 이게 주님의 뜻이 아니면 뭔가?"

후우욱. 연기를 내뱉는 마레. 그의 녹색 눈에 모닥불의 불꽃이 투영되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엄밀히 따지면, 그 흐름을 만들어낸 돈은 아지프와 카나기가 다른 지역을 착취해서 번 혈금이니까. 보편적인 선의 총량이 늘어났다, 뭐 이딴 소리는 할 수 없겠지.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지역에 한해서만큼은 그건 분명 선이었다."

장작을 사른 잿빛의 연기가, 하늘로 흘러간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다."

"그러자, 그 모든 게 연기처럼 사라져버렸어. 구휼도, 군병도, 아지프와 카나기에게 흘러들어왔던 지원금도, 군납 상인도, 다 떠났단 말이야. 이 땅에 남은 건, 그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부풀어 있던 인구뿐이었다. 생산력이 줄어들었는데, 인구는 과잉되어 있으니, 이 북서 자치령의 생이라는 걸 담고 있는 잔이 갑자기 쪼그라든 셈이었지. 그럼 생은 흘러넘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흘러넘치기 시작한 잔의 가장자리에 있던 게, 이 마을이었던 거다. 그래서 기근이 찾아온 거지."

그의 말은 충격적이었지만, 형식적인 논리나 암호가 아니라 실증적인 관찰을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었다. 마레는, 아이의 품에서 잠자고 있는 꼬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조디악은 상인이다. 상인은, 이렇게 잔에서 흘러넘치는 생명을 절대로 놓치지 않아. 그 탐욕스러운 주둥이를 들이밀고 전부 꿀꺽꿀꺽 쳐 마셔버리지. 레버넌트는 이놈들의 일꾼이자, 징수꾼이자, 군사다. 놈들은 항상 레버넌트를 확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 그 놈들을 만들려면, 반드시 갚을 길 없는 빚을 진 채무자여야 한다는 제약이 있지. 그래서 레버넌트를 확보하려고 이런 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녔던 거야."

"그게 우리가 오늘 경험한 일의, 진정한 전말이다. 알겠나?"

"그러니까 무슨 소리에요, 이 사람들은 그러니까, 아니, 음, 카나기랑 아지프가 뭐 잘 했다는 소리에요? 다시 그 놈들 불러들여서 전쟁이라도 하라고요?"

버럭 소리를 지르는 아이. 마레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아니. 그건 아니다. 그러니까 좆같이 골때리는 거지. 내가 무슨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는지 아나?"

"뭐, 뭔데요."

"제악을 옹호한 죄였다. 신성모독이라고 하던데. 이런 식으로, 온갖 악의 보이지 않는 기여를 정리해서 논문으로 써냈더니, 이 모든 악을 옹호하려고 이런 도발적인 미친 소리를 해놨느냐며 나를 십자가에 매달고 팔다리를 자르려고 들더구나."

"그런 게 아니었는데. 편벽한 선악관으로 어설프게 악을 단죄해서는, 제일 피해를 보는 사람은 그 악행을 저지른 자가 아니라 그 보이지 않는 손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던 가엾은 사람들이라는 소리가 하고 싶었어."

다시 한 번 깊게 숨을 내쉬는 마레. 말의 끔찍한 내용과 달리, 올려다본 밤하늘, 그 별빛은 맑기만 했다.

"열세 시간동안, 나를 공박하는 수도사들과 토론을 했어. 내가 거의 다 이겼다. 그들 중 하나가 이 말을 외치기 전까지는."

"그래서, 그 따위로 악에 의존해 살아갈 삶이라면 죄를 짓기 전에 순교하는 게 낫다, 그게 주의 뜻이다! 이런 소리를 하더구나. 나는 그냥 할 말을 잃어버렸어."

"정말로 내가 미친 걸까? 아니면 세상이 미친 걸까. 가난한 게 죄는 아니잖아. 그런데 어떻게, 죄에 힘입어서라도 가난에서 벗어나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으라는 말을 저렇게 입에 쉽게 담을 수 있는 걸까."

"이 인간들은, 가난이 뭔지 모르니까. 평생 어디 책상에 앉아서 개소리만 끄적인 대가로, 주일마다 헌금통에 들어오는 돈으로 편안히 처먹고 살았으니까, 이따위 소리를 하는 인간들이 되었구나. 나는 이딴 허섭스레기 사이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거지, 뭐 이런 현기증이 몰려오더군."

"이들에게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는, 자신이 구원해서 선성을 입증해 주께 구원을 받기 위한 또 다른 방식의 제물, 오직 수난에 시달려야 하기에 수난곡에 박제되어 영원히 고통받는 고행자, 뭐 그런 거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그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었어. 그게 주의 뜻이었던 걸까."

아이는 무릎을 끌어안고, 조용히 그 말을 들었다. 마레는 마지막으로 담배를 깊이 들이쉬고, 남은 꽁초를 모닥불 속에 집어던졌다.

"마지막 결정타는, 우리 교구의 6위계 마술사였던 성 아우렐리우스에게서 나왔다."

"그래서, 대안은 있느냐."

"그 여섯 글자에 나는 무너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 나는 그 말을 결국 써내지 못했어. 악한 것도 제 나름대로의 기능이 있으니, 처벌하지 말고 놔둘까? 어린아이를 잡아가서 노예로 만들고, 쌀과 밀을 고리대로 수탈하는 걸 그냥 봐줘야 한단 말이냐. 그건 아니잖아. 그럼 우리가 악을 저질러 돈벌이에 나설까? 그것도 아니겠지."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론은, 아무리 정연하다고 해도 그냥 공염불이다. 나는 손잡이도 없는 칼을 휘두르려다 스스로 손을 베여 자빠진, 뭐 그런 거지."

"그의 주름진 눈을 똑바로 보니, 아 이거 알겠더군. 이 사람도 나와 똑같은 것을 생각은 했었구나, 근데 대안을 못 찾았던 거구나. 뭐 그런 생각 말이야. 동류끼리는 눈을 마주치면 알기 마련이잖아. 그렇지? 그래서 나는 네 눈을 보자마자 네가 나처럼 순수하고 착한 귀염둥이라는 걸 알았지."

"끔찍한 소리 좀 하지 마세요, 이 난봉꾼 파계승 거짓말쟁이!"

소리내어 웃는 마레. 그리고, 잠시 후 놀라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뭐야, 이 자식, 고추 떨어진다. 눈에 불티 들어갔냐? 왜 울고 난리야? 내가 그렇게 불쌍했냐?"

"당신 같은 꼴초 마술사는 어떻게 되든 아무런 상관 없어요. 불쌍한 건, 이 땅의 사람들이잖아요."

패앵. 코를 풀고 말을 이어가는 아이. 아이는 자신의 품에 안겨 천사처럼 자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며 말한다.

"이 사람들이 살았던 게, 카나기와 아지프의 전쟁 때문이었다니, 그리고 그 전쟁이 끝나니 이제 사소필렌의 노예가 될 운명이라니, 그럼 이 사람들은 왜 태어난 건가요. 노예가 되려고 태어난 건가요. 그런 건, 아닐 텐데."

자신의 일처럼 서럽게 우는 아이. 눈물 몇 방울이, 품에 안겨 있는 여자아이의 뺨에 떨어진다.

"도와 주고 싶어요. 이런 건 싫은데. 이 사람들도 나라를 가지고, 음, 자기들을 위해 주는 지도자를 가지고, 음, 그래야 할 텐데."

마레는 그 모습을 보다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사람들한테도 나라는 있는데."

"어딘데요?"

"신국(神國)."

보석처럼 밝게 빛나는 별하늘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는 마레. 아이는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다시 거세게 고개를 흔들기 시작했다.

"결국 없다는 소리잖아요. 말장난하지 마세요."

마레는 턱을 괸 채로,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묻기 시작했다.

"너, 여기 출신이냐?"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아이.

"그럼 네 부모님이 여기 출신이냐?"

또 고개를 젓는다.

"그럼, 네가 사랑하는 여자가 여기 출신이냐?"

순간적으로 떠오른 건 란페이였다. 그것도 물론 아니었다. 아이가 고개를 젓자, 마레는 껄껄 웃으며 아이의 등을 쳤다.

"그런데 대체 이 땅을 왜 그렇게 사랑하고, 희생하려고 하나. 그럼 여긴 네 소관이 아닌 거다."

"만약 주가 너로 하여금 이 북서 자치령을 구원하게 할 생각이었다면, 셋 중 하나 정도는 안배했겠지. 네가 이 땅을 더욱더 사랑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사랑의 원인을 주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수학 공식을 말하듯, 냉정한 어투로 말한다.

"이 땅을 구할 사람은 따로 있을 거다."

"그치만..."

"너는 네게 속한 이들, 네가 갚아야 하는 죄에 주목해라. 인간은 신이 아니니까, 모든 것을 다 이룰 순 없어. 구원도 사랑도 선의도, 다 망망대해를 항행하는 범선의 물독의 물, 그것처럼 정량이 있는 것이다. 함부로 쓰면, 곧 고갈되어 버리지."

"그러니 주가 안배해준 자기 자신, 자기 가족, 자기 민족부터 사랑하고 구원해야 하는 거야. 자신을 깎아 무관계한 타인을 구원하는 건, 주님의 뜻이 아니야."

아이가 그래도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거두지 못하자, 마레는 엄하게 소리치듯 말했다.

"이건 아탕칼리의 수도사고 뭐고 다 좆까고, 그냥 네 동네 형 같은 존재로서의 조언인데 말이야."

"네..."

"넌 마음이 너무 여리니까, 삶을 살 때는 비극을 관람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게 나을 거다."

"삶의 모든 막과 모든 장마다 울다 보면, 정말 필요할 땐 눈물이 말라 있을 테니까."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휘적휘적 잠자리로 사라져버렸다. 아이는 그 십자가가 새겨진 붉은 등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하지 못한 말을 삼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당신도, 목숨을 깎아 번 돈을 전부 다.

혀끝에서 어른대는 말을 삼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레의 말이 품은 끔찍한 진실과는 달리, 시골 하늘의 높다란 밤하늘은 누군가 일일이 예쁜 꽃을 골라 수놓은 듯 정말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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