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50화 (50/279)

10. Bookmaker ( 6 )

아이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명백한 규정 위반입니다!"

다나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 지른다. 3위계의 마술사까지는 마술의 가호가 없는 사람이라도 어떻게든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4위계부터는 격이 달라진다. 꿀벌 백 마리가 달라붙어도 장수말벌 한 마리를 해하지 못하듯이, 마술방벽과 신체강화로 무장한 4위계 마술사는 그 아래의 마술사를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도륙할 수 있었다.

그것도 대인전에서는 7학파중 가장 강하다는 두냐의 4위계라니, 다나는 입술을 떨었다. 물론 그녀는 아이가 카나기의 4위계를 여럿 이겼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마레의 보조와 공헌이 상당 부분 있어서 가능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저 멧돼지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이, 이 대상 지정에 관한 규정 7조를 보면, 대전에 나서는 갑 측의 대전사는 사전에 등록되어 자격을 받은 자에 한한다고 되어 있는데, 방금 즉흥적으로 합류한 저자는 분명히 등록이..."

다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어떻게든 가미온의 힘을 빌어 저 암살자를 투기장에서 치우려 들었다. 하지만 드미트리는 빙긋 웃으며 말할 뿐이었다.

"아, 이미 등록했습니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거짓말 아닙니다. 이미 등록했는데, 등록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을 뿐이지요. 규정상 등록 신고서는 7일 안에 제출하기만 하면 되니 말입니다. 그렇지요, 지배인?"

즉, 규정을 어기고 억지로 대전사로 자기 호위를 밀어넣기 위해, 구두계약을 했노라고 조작할 셈이었다. 지배인은 그 낌새를 알아채고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아, 아까 총지배인님이 등록하셨습니다!"

"어디서 씨발 씨도 안먹힐 구라치려고 이빨을 까요 이 좆같은 개조루 새끼들아!"

화나서 소리 지르는 다나. 본성이 튀어나와서 손으로 주먹감자를 날리고 말았다. 뜨악한 주변의 시선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그럼 어느 시점, 어떤 상황에 어떻게 만나서 어떤 방식으로 구두계약을 진행했고 보증인은 누구인지 소상히 밝히세요!"

"그, 저, 아까 저놈들이 카드 테이블에 있을 때? 화장실에서?"

"위증입니다! 그때 당신은 드링크바에서 브랜디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체리가 없다며 성질을 내고 심부름꾼에게 체리를 사 오라고 시켰죠. 그 영수증이 위증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건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뇌를 곤두세우고, 즉석에서 증거를 찾아내 지배인을 몰아세우는 다나. 지배인은 당황해서 덜덜 떨며 말을 이어갔다.

"그, 그럼..."

"아니, 조용히 하세요."

또 뭔가 제 살 깎아 먹는 불리한 말을 꺼내려는 지배인의 입을, 드미트리의 손이 가로막는다. 그는 목의 각도를 기묘하게 꺾고, 꼭두각시의 웃음 같은 공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희에게 그런 악의적인 추궁에 일일이 답해야 하는 의무라도 있습니까?"

"있죠! 이 규정을 반드시 준수하겠노라고 방방곡곡에 홍보하고 다닌 건 당신들 아닙니까! 당장 저, 저 멧돼지 대가리를 치우세요!"

"아, 좋아요, 규정의 준수. 그럼 법리의 싸움으로 넘어가 볼까요. 여기서 싸움을 중지하고, 그냥 재판으로 결론을 냅시다."

"예?"

눈을 끔뻑이는 다나. 드미트리는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갔다.

"뭐, 서로 신의성실의 원칙을 최대한으로 준수할 것을 맹세하고, 누가 더 정격적으로 규정을 준수했나 서로 요청하는 자료를 전부 제출하며 신께 판단을 맡기는 우극을 벌여보자 이 말입니다. 음, 당신의 베팅은 적법했을까요? 베팅 시점은 규정을 어긴 게 없을까요? 어음 발행행위는 문제가 없을까요? 뭐, 저 여자는 여자치곤 너무 건장하신 것 같은데, 사실은 여자가 아니라는 건 어떨까요?"

마지막 말에 다나의 얼굴이 처참하게 변한다. 이렇게 싸우는 게 싫으면, 서로 먼지떨이처럼 서로의 흠결을 털어 더 많이 털어낸 쪽이 이기는 궤변의 설전으로 붙어보자. 그럼 네가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런 협박이었다.

"당신같은 무지렁이가 나에게 이길 가능성보다는, 놀라운 용력을 보여주신 저 아가씨가 내 호위를 이길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만."

드미트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투기장에 당당하고 우렁찬 소리가 울렸다.

"그냥 진행하세요!"

모두의 이목이 투기장 안으로 쏠렸다. 아이였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모아 손나팔을 만들고는 다나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괜찮아요, 오 분 안에 이기고 올라가겠습니다! 그냥 받아들이세요."

오 분, 그 광오한 선언에 사람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이는 그 경색된 공기를 잘못 이해했는지, 자신의 말을 고쳤다.

"오 분은 너무 긴가요? 그냥 삼 분! 삼 분으로 할게요!"

"죄송하지만, 당신 동료분 공포 때문에 돌아버린 거 아닙니까?"

실눈을 찌푸리며 다나에게 묻는 드미트리. 그는 원래 정말로 이렇게 억지를 부려서 싸움을 진행할 생각은 없었다. 이런 식으로 강짜를 부려서 투기를 진행하면, 조디악의 명성에 누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저들을 몰아넣곤 그냥 물러서라고 적당히 권고할 생각이었다. 그는 그냥 협박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다나는 그런 드미트리의 말을 무시하고, 당당하고 씩씩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누군가가 떠오르는 그 얼굴을.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진행하세요."

"음, 허, 음... 이걸 횡재라고 해야 할지, 만용이라고 해야 할지. 그대들이 동의한 겁니다. 이것은 더할 나위 없이 적법합니다. 혹시라도 바깥에 나가서 뒷말을 꺼내지는 마십시오."

드미트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뿔 나팔을 부는 나팔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개전의 신호였다. 뿌우우우! 우렁찬 나팔이 울려 퍼지고, 그 신호에 따라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투기장을 응시하기 시작한다.

두냐의 암살자는 네발짐승처럼 몸을 잔뜩 낮춘 채, 한 손으로 단검을 휘휘 돌리며 아이를 노려보았다. 아이는 두 손으로 환도의 칼자루를 굳세게 쥐어 잡은 채, 어떤 곳에서 공격이 들어와도 받아칠 수 있도록 빈틈없이 섰다.

'쌍검, 그리고 경장. 그렇다면 저 녀석의 검은 속검이다.'

반격하기 힘든 빠른 검을 여러 번 후려쳐, 얕은 데미지를 누적시켜 기능을 마비시키고 최후에는 목숨을 빼앗는 검.

'그렇다면, 선공권은 저쪽에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

예상대로였다. 엎드리듯 몸을 바짝 수그린 채 아이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틈을 노리던 암살자는, 일순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져 아이에게 덮쳐들었다.

"아니?"

구경꾼이 비명 같은 탄성을 질렀다. 그들의 눈에는 두냐의 암살자가 거의 공간전이를 사용한 듯 보였다.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그렇게 보일 정도의 재빠른 몸놀림이었다. 분명히 눈앞에 있었는데, 폭발적인 각력 강화로 뒤로 돌아가 뒤에서부터 짓쳐들었기 때문이다. 사마귀의 앞발처럼 달려드는 단검.

"키아악!"

그리고 그 단검 중 하나는 부러졌다. 살기를 감지한 아이의 환도가, 산맥을 휘도는 구름처럼 빙그르 돌아 그것을 받아쳤기 때문이었다. 단검을 깨고도 돌진한 칼날은, 암살자의 가슴께에 긴 상처를 만들었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몰라! 그런데, 이겼다! 저 여검사님이 받아쳤어!"

눈을 끔뻑이다 환성을 내지르는 농민들. 그들은 다나와 아이보다도, 더 절박한 심정으로 이 검투극을 바라보고 있었다. 암살자는 주춤거리다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진심을 담은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키야악!"

인간의 것이라기보단 괴물의 것 같은 기합. 아이는 슬쩍 고개를 흔들어 피했다. 그러나, 지저분하게 부러진 단검의 검면이 아이의 볼을 살짝 베고 지나가 피 한 줄기를 흘리게 만들었다. 공격은 끝나지 않는다. 이번엔 뒤통수를 노리고 짓쳐들었다. 아이는 옆으로 한 발자국 움직여 그것을 피했다.

그 부러진 검과 아직 부러지지 않은 단검이 있을 수 없는 각도에서 계속 짓쳐들어온다. 벽을 계속 걷어차 벽과 벽을 움직이며 덮쳐오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투기장의 좁은 벽을 전부 부서뜨릴 기세로 계속 박차고 뛰어다니며, 어떻게든 아이의 빈틈을 찾아 검을 밀어넣으려 애쓴다. 관람석에서 볼 때에는, 하나의 검은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 폭풍의 눈 속에 있는 아이의 표정은, 연주회라도 관람하는 듯 평안했다.

"여기구나."

"키이이익!"

아이는 환도를 붙잡고 크게 한 번 후려친다. 살점을 찢어발기는 검 끝. 마구 달려들던 암살자는 배를 부여잡고 나동그라졌다. 그 속검의 공격패턴을 가만히 바라보아 파악한 아이가, 맥을 짚어 덮쳐들 위치를 예상하고 큰 참격을 날린 것이다. 암살자의 속검은 맥없이 깨졌다.

"키이익... 키이이익..."

인간의 말을 할 줄 모르는 것일까? 저주든, 기합이든, 다짐이든. 말 한마디쯤은 할 법한데도, 암살자는 계속 그렇게 짐승같은 비명만을 지르며 몸을 추슬렀다. 농민들, 그리고 도박꾼의 함성이 투기장을 가득 메운다. 누가 봐도 승기는 아이 쪽에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창백해진 것은 지배인이었다.

"죽여! 왜, 왜 저딴 잡졸 하나 못 잡고 기어 다니는 거야! 그러라고 너희 버러지들한테 우리가 돈 주는 게 아니잖아!"

지배인의 고함. 그 말을 들은 암살자는 정말로 짐승인 것처럼 단검을 내던지고 두 손을 바닥에 짚어 네 발로 섰다. 그러자 그 몸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올라, 하나의 거대한 멧돼지와 같은 형상을 취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알아본 다나가 걱정의 고함을 질렀다.

"강신이다! 조심, 조심해요!"

강신(降神). 두냐의 마술사들이, 섬기는 정령을 몸에 임하게 만들어 그 힘을 빌리는 최후의 비기였다. 그 몸에 큰 부담을 주기에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기술이었다. 몽글몽글 피어오른 검은 기운에 휩싸여, 정말로 하나의 거대한 멧돼지로 보이는 암살자. 그는 또 비명을 내지르며 아이에게 덮쳐들었다.

그러나 아이의 표정은 그때까지도 평온했다. 어떠한 위기도 느끼지 못하겠다는 듯이.

"림, 레바테인."

혹여나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속삭였다. 그와 동시에, 손에 은백색 날의 거대한 쯔바이핸더가 솟아오른다.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덮쳐오는 멧돼지. 아이는 그 멧돼지를 노려보며 침착한 일섬을 날렸다. 붉은 검영이 그 멧돼지를 이루는 검은 기운을 산산이 깨부순다.

"키이이익!"

원래 강신의 마술로 짐승의 형상을 두르면, 그 형상은 하나의 마술방벽이 되어 자신이 감싼 대상을 철저히 보호한다. 그러나 참마의 대검, 레바테인은 그 마술을 형편없이 깨뜨려버렸다. 레바테인은 암살자의 늑골을 깨부수고, 그 길게 뻗은 크로스가드로 암살자가 뒤집어쓴 멧돼지 두개골마저 부숴버렸다.

투기장의 벽에는 레바테인이 남긴 거대한 검상이 초승달처럼 남았다. 검은 피부를 드러낸 두냐의 암살자는, 만신창이가 된 채 그 벽에 기대어 색색 가쁜 숨을 내쉴 뿐이었다. 아이는 은색의 대검을 한 손으로 든 채로, 저벅저벅 그에게 다가갔다.

"사람의 말을 할 줄 모르는 거니?"

어쩐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이것은 마술사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그저 힘일 뿐. 다른 마술사의 이익을 위해 길러지고 만들어진 듯 보였다. 그 말조차 알아듣지 못한 건지, 가쁜 숨을 내쉬며 아이를 노려보는 암살자. 이미 레바테인에 치명상을 입어 이미 살기 힘들어 보였다.

"편히 쉬기를."

쿡! 레바테인이 암살자의 심장을 꿰뚫는다. 발버둥, 그리고 작은 죽음. 아이는 자그마하게 공양의 주문을 읊조렸다. 레바테인의 검날 끝에서 불길이 일어나며, 심장을 먹어치우고, 잠시 후에는 그 암살자의 시신 전체를 불태워 연기로 흩뿌린다. 림은 잠시 그 연기를 음미하더니, 나지막하게 기쁜 소식을 들려주었다.

'두냐의 암살자를 죽인 건 처음이구나. 축하한다. 너에게 새로운 검을 내려줄 수 있게 되었구나.'

'그 검의 이름은 독검 미제리코드(miséricorde). 자비라는 뜻이다. 이놈들은 5위계부터 불사조의 정령을 섬기는 걸 허락받지. 그러면, 그들의 몸에는 너의 몸에 있는 것과 같은 재생의 힘이 깃든다. 미제리코드는 그런 재생력을 가진 자의 피에 독을 들이부어 숨을 끊게 도와주는 검이야.'

자비. 검의 기능과 어울리는 좋은 이름이다. 아이는 도박장에 자욱한 담배 연기에 섞여들어가는, 두냐의 마술사였던 연기를 응시하며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고개를 돌려 객석을 쳐다본다. 시계에는 시간이 찍혀 있었다.

2분 58초. 선언대로, 아이는 3분도 지나지 않아 두냐의 4위계의 암살자를 무찌른 것이다.

당연히, 지금까지의 모든 함성과 성원을 합친 것보다도 거대한 성원이 터져나왔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저, 저 분은 대체 뭐야? 천사인가? 주께서 천사를 내려주신 건가?"

"아, 이게 꿈이라면 깨지 말게 해 주십시오."

"천사도 꿈도 아니야! 영웅이다! 영웅이 우리 고향에 찾아오신 거야!"

아이는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지배인은 얼이 빠져서 몸을 덜덜 떨었다. 파산, 파산이 확정됐다. 파산이 확정됐다는 것은 곧 자신의 죽음 또 자신의 식솔 전체의 죽음이 확정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매달리는 심정으로 드미트리를 쳐다보았다.

"총, 총지배인니이이임..."

그런데 드미트리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아이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자신의 턱을 매만지고 있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이. 그리고 크게 고함쳐 무언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대전사여! 그대의 용맹에 누를 끼치고 싶진 않지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 검은 대체 뭡니까?"

이 증오스러운 조디악의 간부인 드미트리. 그를 쳐다보는 아이의 눈 역시 곱지 않았다. 아이는 퉁명스럽게 소리쳤다. 마레가 떠나면서 알려준 거짓말을.

"이것은 먼 옛날 삿된 존재의 땅으로 원정을 떠났던 십자군이 전몰하며 그 땅에 남겼던 성유물입니다! 비록 그 붉은 몸뚱이는 전장에 가라앉았으나 그 푸른 넋은 이 검에 남아, 미력한 힘으로나마 이 땅에 정의를 펼치고자 하는 나의 오만한 의지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평소의 아이답지 않은 매끈한 달변이었다. 마레가 떠나면서 준 팔찌, 거기에는 성경만이 적혀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런 문답을 할 때를 대비해서 여러 가지의 대비책과 처세술이 적혀 있었다. 아이는 불침번을 설 때마다 그것을 뚫어져라 보며 외웠다. 드미트리는 빙긋빙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성유물이요? 무슨 성유물이 인신의 공양을 탐한단 말입니까. 방금 그것은 내 가엾은 호위의 시체를 먹어치워 어떤 힘을 얻은 듯 보였는데요? 혹시 그건 성유물이 아니라, 외신의 힘을 빌린 마검 아닙니까?"

"이미 한 번 자신의 신을 저버린 사람 답게 겁이 없군요. 신성모독을 주장하시는 겁니까?"

"무슨 말인지..."

홱, 고개를 돌리고 귀밑머리를 걷어내 귀걸이를 보여주는 아이. 마레가 주었던 귀걸이다. 아탕칼리의 고위 수도사가 신앙의 증명으로 선물하는 십자 귀걸이가 매달려 있었다. 외신, 즉 삿된 존재에 대한 처리는 기본적으로 아탕칼리의 담당이었다. 이걸 달고 있다는 건, 외신과는 관계가 없다는 증명이나 다름없었다.

아이는 그것으로 드미트리의 입을 다물게 시키고 한 마디 쏘아붙였다.

"트집을 잡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패배를 받아들이십시오. 당신은 저, 아니, 우리에게 졌습니다."

평소의 아이가 전혀 보여주지 않는 오연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은, 하나의 잘 조각된 석고 조각상처럼 우미하기 그지없었다. 드미트리는 또 자신의 턱을 붙잡고, 뚫어져라 아이를 쳐다보더니, 가면 같은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패배의 인정이었다.

"알겠습니다. 인정합니다. 지배인, 돈을 지급하십시오."

지배인은 절망하여 달라붙는다.

"안 돼! 총지배인, 당신도 나를 버리는 겁니까!"

"어쩔 수 없지요. 음, 당신에게는 여섯 살배기 딸이 있었지요? 그 녀석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가끔은 패배도 있어야 도박의 희열은 유지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빙긋이 웃는 표정 그대로 지배인을 걷어차는 드미트리. 배를 걷어차인 지배인은 형편없이 데굴데굴 굴러 난간에 몸을 들이받고는, 웅크려 떨다가, 갑자기 농민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궁지에 몰리면 폭력에 의존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못된 버릇은 사고를 정지한 뇌를 장악해 해서는 안 될 결정을 하게 만들었다.

삐이이익!

물새의 뼈를 깎아 만든 호각을 부는 지배인. 그리고 벌떡 일어난다. 드미트리는 안색을 딱딱하게 굳히고 지배인을 쳐다보았다.

"당신 지금 무엇을 하는 겁니까?"

"닥쳐라 애새끼야! 가, 가미온의 규약은, 손님을 해하는 게 금지되어 있지만, 이 촌놈새끼들은 생각해보니 손님이 아니잖아? 그럼 죽여도 되는 거겠지? 죽, 죽이고 돈을 빼앗으면 돼!"

"그만두십시오!"

"닥쳐!"

그 폭론을 들은 농민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또 호각을 불어제끼는 지배인. 그러자, 도박장의 천장을 빙 둘러싸고 새까만 인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황소, 곰, 독수리의 두개골을 검게 옻칠해 투구처럼 바꾸어 뒤집어쓴 암살자들.

소니아 아바키렌과의 계약에 따라, 이 도박장을 수호하며 숨어 있던 암살자들이었다. 1위계부터 3위계까지, 무려 서른에 달하는 암살자들이 도박장 전체의 천장에 표범처럼 앉아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 방금 지배인이 불어제낀 호각은, 이 암살자들을 호출해 싸움에 임하도록 하는 호각이었다.

"죽여! 이 버러지들을 전부 죽이고 내, 내 돈을 되찾아라!"

아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만한 수의 암살자를 전부 죽이는 건 가능할지 모른다. 어차피 4위계도 없는 잡졸들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가득한 농민을 지키면서 그걸 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어떻게 하지, 망설이며 레바테인의 손잡이를 붙잡은 순간.

낭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대에게 선고한다!"

휙, 모두의 이목이 그 목소리를 외친 여자에게 몰렸다. 다나였다. 어느새 검은 옷을 내던지고, 라달라리아의 율사의 법복을 드러낸 다나는, 정체를 드러내듯 조용히 머리를 말아 한 송이의 수국을 머리에 꽂았다.

"유, 율사?"

지배인의 얼굴이 샛노랗게 질렸다. 그는 지금 학살을 명령했다. 폭거였다. 조디악이 항상 노심초사하며 쓰고 있던 형식적 준법의 가면조차 내던진 폭거.

그리고 그 범행의 현장을 율사에게 들켜 약식 기소를 눈 앞에 두었다. 이 기소가 완성되면, 그 기소문과 판결문은 자동적으로 제도에 전송되게 되어 있었다. 그게, 노출되면. 이건 안 그래도 제국 내의 입지가 좁은 조디악에게 큰 해가 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제발, 멍청하면 제발 그냥 닥치고 계시면 안 되겠습니까?"

드미트리는 분을 참지 못하고 지배인을 후려쳤다. 무너지는 지배인. 드미트리는 그 지배인을 걷어차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나는 눈썹을 지켜뜨고, 검지를 내민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입이 다음의 선언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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