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74화 (74/279)

13. 증명 ( 5 )

데스티노 라디오소.

광휘의 운명이라는 뜻의 고어. 이것은 아셀라이와 같은, 아탕칼리의 성기사를 지칭하는 다른 명칭이기도 했다. 하필 광휘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광휘가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순수한 인간이 아닌 자들을 정화하는 힘을.

"변신 인간의 후예라고 했던가, 그럼 죽일 이유가 두 배로 늘어난 셈이군."

변신 인간. 겉보기에는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그들은, 인간 사회 곳곳에 숨어 때를 기다리다 결정적일 때 마각을 드러내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곤 했다. 데스티노 라디오소, 줄여서 라디오소. 그 기사들의 임무는, 에바와 같은 인간 아닌 자들을 색출해 근절하는 것이었다.

아셀라이는 십자검을 허공에 휙 휘둘렀다. 그러자 그것을 신호로, 그녀의 목에 감겨 있던 금색의 망토가 수천 개로 갈라지더니 하늘에 먼지처럼 떠올랐다. 에바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그리고 놀라서 입을 벌렸다. 그 먼지처럼 떠오른 자그마한 것들은, 하나하나가 정교한 단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마리포사... 나비검이라는 검이다. 이렇게 작아도 하나하나가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한 살상력을 담고 있지."

그런 그녀의 하나뿐인 손에서는, 묵직한 청동빛의 반지 다섯 개가 빛나고 있었다. 그 반지가 저 나비검을 조종하는 힘을 주는 듯했다. 거기까지 알아챈 에바는 소리 질렀다.

"외팔이! 너 그 인마궁이구나!"

아셀라이는 놀랐다는 듯 금빛 눈썹을 들어 올렸다가, 파안대소한다.

"뭐야, 당연히 눈치챈 줄 알았더니, 머리 회전이 좀 느린 모양이군?"

"내가 무슨 멍청이야! 멍청이 아니거든!"

"그렇게까지는 말한 적이 없는데.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나?"

말문이 막혔다. 에바는 이빨을 드러내며 빠드득 간다. 기형검을 빼 들고, 자세를 낮춘다. 아까 아이의 유혼과 맞부딪혔을 때처럼, 몸의 가장자리가 검붉게 물들며 눈에서 광기가 넘실대기 시작한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자가 정말로 성도 8궁, 마술사가 아닌 자들 중 가장 강한 여덟 명 중 하나라면, 힘을 아낄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상대해야만 한다.

"ㅡㅡㅡㅡㅡ!!!"

공기를 떨쳐 울리는 기합. 그것을 외치고, 에바는 한 마리의 들개처럼 아셀라이에게 달려들었다.

예상했다는 듯, 아셀라이는 십자검을 옆으로 휘두른다. 마치 지휘봉을 휘두르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러자 공중에 체공하던 수천 개의 나비검이 에바에게로 날아든다. 빗방울을 무시하듯 무시하고 달려들려는 에바. 그러나, 무시할 수 없었다.

"ㅡㅡㅡㅡ!"

수천 개의 나비검이 순간적으로 대열을 갖추더니, 하나의 거대한 새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까짓 것! 에바는 속으로 소리 지르고 머리를 들이받았다. 그리고 뒤로 쓰러져야만 했다. 새장이 그녀를 가로막고 단단히 붙들어 맸기 때문이었다.

에바는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벌떡 일어나 새장을 붙잡고 붉은 침을 흘리며 신음을 뱉었다.

"그륵...그르륵..."

"기세는 좋지만 어리군. 어린 나이에 강해 봐야 결국 5위계 수준이야. 그 소년에게도 지는 걸 보면 뻔하지. 그럼 내 케이론을 이길 수 없다."

반지를 빛내며 저벅저벅 걸어오는 아셀라이. 그 다섯 개의 반지 형상의 성유물이, 사수자리의 이름을 받게 된 이유. 그건 인마궁 케이론에 담긴 힘이 검을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힘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이 반지는 활이고 나비검들은 화살인 셈이었다.

아셀라이는 그것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개량했다. 이렇게 나비검들이 뭉쳐 취한 새장의 형상도 그 개량의 결과물 중 하나였다. 단순히 새장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웅혼한 신기를 그 내부의 공간에 방사해 대상을 포박할 수 있도록 마술식이 짜여 있었다. 아탕칼리의 최고위 마술사들이 협조한 결과였다.

"이 재수 없는 외팔이, 당장 풀어!"

상처 입어도 계속 나비검으로 이루어진 새장에 머리를 들이박는 에바. 그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온다. 아셀라이는 피식 웃었다. 아셀라이는 새장 외에도, 이런 형상을 열한 개나 더 만들 줄 알았다. 그런 아셀라이에게 에바는 귀엽게 보일 뿐이었다.

"응? 상처가 재생되고 있구나."

눈살을 찌푸리는 아셀라이. 새장 안에 갇힌 에바의 온몸에 나 있던 상처가 감쪽같이 아물어 있었다. 날카로운 검으로 이루어진 새장을 붙들고 있는 그 손도, 베인 상처가 계속해서 아물고 있다. 평소 보았던 두냐의 5위계, 불사조의 힘을 받은 그들보다도 더 강력한 재생력이었다.

"설마."

이 비정상적인 재생력. 그리고 썩은 살점을 연상시키는 검붉은 빛의 변이. 아셀라이의 머리에 한 가지 가설이 스치고 지나갔다. 불길한 가설이.

그녀는 손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새장을 이루는 나비검의 일부가 그 손으로 모여들더니, 날이 굽은 단검의 형상으로 변한다. 어쩐 이유에서인지, 먼 옛날 림이 잠들어있던 신전에 숨겨져 있던 단검과 굉장히 비슷한 형상이었다.

"참아라."

"끄윽!"

비명을 내지르는 에바. 그 단검이, 에바의 손등을 가르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 상처는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쉽게 재생되지 않았다. 더욱 더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 나비검으로 만든 단검의 끝, 거기에 묻은 에바의 피를 할짝 핥는 아셀라이. 그것을 마쳤을 때, 그녀의 표정은 경악과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

"이 단검은 삿된 것의 숨통을 끊을 때 사용하는 단검이야. 네놈의 피 맛도 정상이 아니군. 그렇다는 소리는 설마."

이번 대의 베들렘에 대해 널리 퍼져 있던 사실. 여덟 살에 카나기의 무반을 죽였다는 것, 그 사실 또한 아셀라이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추궁하듯 소리 지른다.

"설마 너, 인조 베들렘인 거냐? 외신의 힘을 빌린?"

무슨 말이냐는 듯 이빨을 짐승처럼 내보인 채 으르릉거리는 에바. 하지만 그 뺨 끝에 아롱진 검붉은 기운이, 아셀라이에게 확신을 주었다. 그녀는 혹여라도 에바에게 닿지 않도록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그래, 그렇군. 왜 고작 내기 하나를 위해 베들렘의 존재를 세상에 공표했나 했더니, 공표가 목적이 아니었어. 그건 실험이었군? 암살단의 일원은 서로 죽일 수 없으니까, 정말로 강하게 완성된 것인지 그 강도를 확인하기 위해서, 실험을 하려던 거였어."

"ㅡㅡㅡㅡㅡㅡㅡㅡ!!!"

다시 광포한 괴성을 내지르며 새장에 머리를 마구 들이받는 에바. 그 모습은 이미 인간이라기엔 너무나 저돌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부딪음으로도, 아셀라이의 새장을 부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십자검을 휘두른다.

"너처럼 끈질기게 재생하는 놈들을 위한 형상이 따로 있지."

그 말을 마치자, 나비검은 마치 잘 훈련된 군대처럼 헤쳐모이기를 반복하더니, 하나의 천칭을 만들어냈다. 거대한 천칭. 그 오른쪽 접시에, 에바는 포박되듯 묶여서 온 몸으로 피를 흘리고 있다.

"이건 케이론의 진짜 모습, 네 죄의 무게를 재는 천칭이다. 이 깃털보다 네가 지금까지 지은 죄가 무겁다면, 그 즉시 처형이 집행되지."

왼쪽 머리에 장식처럼 꽂은 깃털, 그 끝 검은 깃털을 뽑아드는 아셀라이. 그리고 접근한다. 이제 왼쪽 접시에 이 깃털을 올려놓으면, 천칭 위로 검이 떨어져 그 심장을 부숴놓을 것이었다. 재생될 수 없을 만큼 무자비하게.

지금까지 아셀라이가 라디오소로서 붙잡은 자들 중, 이 천칭의 심판을 받고서 무죄로 살아난 사람은 없었다. 당연한 얘기였다. 죄 없이 사는 사람 따위는 없으므로.

"잘 가거라."

성호를 긋고 왼쪽 접시에 깃털을 내려놓는 아셀라이. 그리고 뒤돌아선다. 검이 살점을 꿰뚫는 섬뜩한 소리를 기대하면서, 그 잔혹한 모습은 또 보기 싫어서.

"ㅡㅡㅡㅡㅡㅡ!!!!"

그러나, 귀에 들려오는 건 전혀 다른 소리였다. 기운찬, 그리고 광포한 몸부림의 소리였다.

"뭐야?"

당혹한 얼굴로 뒤돌아서는 아셀라이. 그리고 놀랐다. 천칭은 기울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죄가 없다고? 마, 마음에 거리낌 가는 게 단 하나도 없단 말이냐?"

턱이 빠져라 입을 크게 벌리는 아셀라이. 에바는 그 말을 듣지 못한 듯, 미친 듯 날뛰고 있을 뿐이었다. 천칭의 형상으로 바뀌면서 새장이었을 때보다는 그 포박의 힘이 약해졌다. 그 때문에, 에바를 감싼 나비검의 포박이 그 난동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헐거워지고 있었다.

"이런!"

황급히 다시 새장의 형상으로 나비검을 바꾸려는 아셀라이. 그러나 늦었다. 온몸이 거무튀튀하게 물든 에바는 결국 피투성이로 포박을 풀어버렸다. 그리고 새장이 다시 자기를 묶지 못하도록, 재빨리 튀어나가 나무의 높은 가지에 올라섰다. 짐승처럼.

휘영청 뜬 흰 달을 배경으로, 나무에 올라선 그녀의 그림자가 음산하게 아셀라이의 위로 드리운다.

"그륵...그르르륵..."

이래서 검은 개인가. 아셀라이는 속으로 한탄했다. 이제 더 이상 에바는 검을 손에 들지 않았다. 그 기형검을, 그녀는 입에 물었다. 애초에 그런 방식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그렇게 기괴한 모습이었던 듯하다.

외신의 힘에 사로잡혀, 온몸을 검게 물들이고 기형검을 입에 문 그녀는 정말로 한 마리의 사냥개처럼 보였다.

"ㅡㅡㅡㅡㅡ!!!"

그녀는 검을 입에 쥔 채로, 보랏빛 하늘, 그 하늘의 중앙에 창백히 떠 있는 달을 보고 소리지른다. 한 마리의 늑대처럼.

그와 동시에, 에바의 전신에 검은 기운이 피어올라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그 윤곽선이 너울대는 사냥개의 형상이었다.

"강신인가?"

강신. 두냐의 암살자들이, 큰 후유증을 각오하고 정령의 힘을 빌려 잠력을 끌어내는 행위. 이 방법을 통해 그들은 짧은 순간이지만 한 위계 위의 적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에바는 지금 강신을 통해 건곤일척의 승부를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방심할 수 없겠군. 아셀라이는 십자검을 휘둘러, 나비검을 한 데 긁어모았다. 그 지휘에 따라, 그것은 네 개의 방패로 변한다. 성전 방패였다. 가운데 십자가가 새겨진, 연 형태의 방패. 그것들이 아셀라이를 엄호하는 근위병처럼 사방을 감싼다.

그 방패의 한 가운데에서, 아셀라이는 십자검을 곧추세워 에바를 가리켰다. 도발. 명백한 도발이었다. 에바는 그 도발에 응하듯 굵은 가지 위에서 네 발로 서더니, 정말로 하나의 검은 우레처럼 아셀라이에게 달려들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비명, 그리고 굉음. 이것이 정말로 사람과 사람이 부딪혀서 일어난 소리란 말인가? 손에 잡힐 듯한 거대한 파동마저 일으키는 굉음이 숲 전체로 둥글게 퍼져나가고, 날개를 쉬던 새들은 깜짝 놀라 밤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제기랄, 쿨럭, 소녀. 제법이었다."

그 승자는 아셀라이였다. 온 힘을 다해 아셀라이에게 달려들었던 에바는, 나비검의 방패 두 장은 뚫었으나 세 장째를 뚫지 못하고 가로막혔고, 그 상태에서 온 몸을 난도질당했다. 그러고도 어떻게 정신을 잃지 않고 입에 문 기형검을 아셀라이의 목에 박아넣으려 달려들었으나, 그것은 아셀라이가 손에 든 십자검에 가로막혔다.

그리고 그 충격파를 이기지 못해, 나무 넷을 부러뜨리고 저렇게 튕겨 나간 것이었다. 의식을 잃은 채, 옷도 만신창이로 찢어져 군데군데 맨살을 드러내며 쓰러져 있다

"쿨럭, 쿨럭."

하지만 아셀라이도 성하지는 못했다. 굳게 다물고 있던 그 입에서, 피가 한 줄기 흘러나온다. 강한 현기증을 느끼고 있는 듯, 그 발걸음이 남기는 발자국은 어지럽고 가지런하지 못하다.

"지금, 숨을, 끊어둬야."

이 녀석은 아직 어리다. 어린데 이 정도다. 놔두면 이 녀석은 센디엘을 먹어치울 재앙이 되겠다. 그런 판단이 아셀라이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현기증을 느끼는 가운데에서도, 온 힘을 다해 단검을 다시 불러냈다. 삿된 것의 숨통을 끊기 위한 단검이었다.

그렇게 에바의 앞에 다다라, 그 목을 향해 단검을 높게 쳐드는 순간.

"윽!"

그녀는 재빨리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화살 한 대가 날아와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 꽂혔기 때문이었다. 홱 고개를 돌리는 아셀라이. 그리고 침음성을 흘렸다.

검은 달을 새겨넣은 흰 가면. 그걸 쓰고 새까만 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나무의 높은 가지에 올라탄 채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바를 지원하기 위해 급히 도착한 듯 하다. 그들은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댔다. 아셀라이를 에바에게서 쫓아내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너희들은 뭐지? 신을 겁낼 정신머리도 팔아넘긴 유령인가! 무슨 이유로 광휘를 가로막는 건가?"

제법 연극적인 어조로 소리지르는 아셀라이. 그리고 나비검을 촥 펼쳐 수십 개의 화살 형상으로 바꾼다. 그 각각의 화살은 나무에 올라탄 가면의 인간들을 노리는 각도로 팽팽하게 체공해 있다.

허세였다. 아셀라이에게는 이걸 전부 재빠르게 발사할 수 있을 만큼의 신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효과적인 허세였다. 상대는 대화를 선택했다.

"짐작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서서 대답한다, 저놈이 그러면 책임자겠군. 아셀라이는 판단을 마치고, 나비검을 모아 예리한 화살을 만들었다. 대답한 자, 길고 탐스러운 은발이 가면 밖으로 삐져나온 자 하나만을 노린 화살이었다.

"쥐새끼처럼 우리의 아가씨를 뒤따르며 그분이 나눈 대화를 전부 엿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아, 너희들이 그 루나틱 어쩌구 하는 놈들인가? 미안하군. 똥개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는 취미는 없어서."

너희는 그렇게 중요하지조차 않다, 그런 도발이었다. 그 말에 은발의 사내는 여기까지 들릴 만큼 메마른 웃음을 토해냈다.

"그렇습니까. 뭐 저희는 확실히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 없는 집단입니다만, 당신이 뒤쫓는 그 소년은 어떨까요."

"뭐?"

"그 소년의 뒷조사를 저희도 좀 했습니다. 눈에 확 띄는 용모라 금세 정보가 모이더군요. 수천의 군대를 혼자 막아섰고, 용을 죽였다는 소문도 있던데 말입니다. 그 몸 상태로 그 소년과 대적하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무슨 소리냐!"

"이해했으면서 모른 척 하지 마십시오, 동족이여."

동족이라는 말에 아셀라이의 얼굴이 더없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녀는 말없이 손을 당겨, 그 남자를 노린 나비검의 화살을 발사시켰다. 그러나 그 화살은 남자를 꿰뚫지 못했다. 그가 안개로 몸을 바꾸어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너! 흡혈귀로군? 그것도 상당히 많은 피를 빨아 처먹은 모기 새끼겠어."

"예. 당신과는 달리 말입니다."

안개가 다시 뭉쳐 사람의 형상으로 변한다. 그 통에, 그 은발의 남자의 가면이 사라져 맨얼굴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는 청년이었다. 겉모습으로는 분명 그러했다. 싸늘한 인상의 얼굴, 왼쪽 눈 아래 찍힌 눈물점이 그 인상을 강화시킨다.

그는 느릿느릿 말한다. 선언하듯.

"그 소년은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뒤늦게 아가씨의 진심 어린 설득에 감화되어서 말이지요. 그리고 아가씨가 위험에 처했다는 말을 듣고, 우리를 도와 당신을 죽이기 위해 여기로 달려오는 중입니다."

"무슨, 거짓말하지 마라."

"거짓말일까요?"

새파란 눈을 부릅뜨고 아셀라이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는 남자. 그 모습은 너무나도 여유로워 보였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제 이름은 칼라일, 이백이십 년을 살아온 밤의 자식입니다. 당신을 이긴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지만, 당신의 발목을 붙잡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죠. 아가씨도 곧 정신을 차리실 텐데, 우리 셋과 우리 동포 모두를 당신 혼자 이길 수 있겠습니까?

밤의 자식. 이 자가 흡혈귀라는 뜻이었다. 흡혈귀는 보통 살아온 세월과 그 힘이 비례한다. 이백 년을 넘게 묵었으면, 라디오소에서는 5위계에 준하는 것으로 분류한다. 이 몸 상태로,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아셀라이. 그녀는 묵묵히 그를 쳐다보다, 고개를 홱 돌렸다. 여기서 물러서겠다는 선언이었다. 칼라일은 피식 웃으며, 바닥에 쓰러진 에바를 업고 나무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멀리 달아나며 소리친다.

"우리의 결속은 단단합니다! 한 가지 더 충고해 드리죠. 목숨이 아깝다면, 나사렘에는 당분간 다가오지 마십시오. 그럼!"

아이가 루나틱 커넥션에 합류했다는 선언. 그건 물론 허세였다. 이들은 애초에 아이에게 접근하지도 않았다. 아셀라이도 8할쯤은 그것이 허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2할 정도의 확률 때문에, 여기서 자신이 죽게 된다면. 인마궁의 성유물이 두냐와 근본도 알 수 없는 족속들에게 넘어가게 된다. 그 리스크가 아셀라이를 돌아서게 만든 것이었다.

"하, 제기랄!"

칼라일이 남긴 말을 듣고서야, 그것이 허세임을 확신하고 소리를 내지르는 아셀라이. 홧김에 돌을 크게 걷어찬다.

"나도 늙었어, 소년다웠다면 그냥 닥치고 덮쳐봤을 텐데, 제기랄!"

나무둥치에 신경질적으로 엉덩이를 털썩 들이미는 아셀라이. 둥치에 핀 버섯이 엉덩이에 짓밟혔지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칼라일은 실수를 저질렀다. 아셀라이에게 허세가 먹힌 것을 확인하고서,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언가 더 이득을 얻으려 들었던 것이다. 나사렘, 그 반역과 화형의 도시에 아셀라이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이득을. 그건 큰 실수였다.

정말로 자신이 있다면 저런 행동은 전혀 필요 없는 행동이었다. 나사렘에 아셀라이가 찾아오면, 죽여버리면 될 테니까. 고로 그 행동은 지금의 말이 허세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증명하는 게 또 하나 더 있지."

루나틱 커넥션. 그들이 나사렘에서 어떤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것. 거기에 아탕칼리의 고위 인사인 아셀라이가 접근하면, 계획이 어그러진다는 것.

"어쩐다, 아직 성인께 받은 소년을 시험하라는 임무도 다 처리하지 못했는데."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쥐어뜯는 아셀라이. 이백 년을 묵은 흡혈귀, 거기에 두냐의 인조 베들렘까지. 거물들이 얽혀 있는 일이었다. 이런 일을 보고도 못 본 척 눈감는 것은 그녀의 신조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문득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천재적인 생각을 떠올리고 손뼉을 짝 쳤다.

"아!"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하는 방안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찾아서.

*

+메이지 슬레이어 나무위키 항목이 생겼고 또 갱신되었다는 모양입니다!!

제 글이 완전 독자세계관+ 고유명사 투성이다보니

읽기 힘드시다는 분이 조금 계셨는데

나무위키에서 까먹은 명사가 있다면 찾아보실 수 있으실 듯 합니다!!!

정말 충실하게 정리되어 있더군요!!!

아마도 독자분들 중 한 명이시겠죠!!! 정말 감사드립니다!!!

https://namu.wiki/w/메이지 슬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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