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역마차 ( 4 )
지난 달부터 오늘까지, 마술사는 삼백이 넘는 길손을 죽여 병사로 만들었고 사십이 넘는 마차를 털었다. 그것이 징집을 맡은 그의 일이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 은마차가 그 징집병의 목록에 이름을 더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흡!"
그리고 지금 그 믿음은 깨졌다. 마차에서 뛰어내린 소년이, 너무 간단하게 인골귀 일곱을 무찔렀기 때문이었다. 그에겐 전후가 의미가 없는 듯했다. 인골귀들은 다리의 앞과 뒤를 가득 메우며 소년을 덮쳐들었다. 소년은 앞의 인골귀는 쳐부수고 뒤의 인골귀는 베어냈다.
앞에서 달려드는 놈의 무기를 뺴앗아 휘두르고, 뒤로 돌아 뒤돌려차기로 두개골을 부숴놓고, 이상한 검을 꺼내 두 놈을 한 번에 토막치고, 토막난 상반신을 주워 뒤에 내던져서 세 놈이 다리 바깥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이 모든 게 일 분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스윽, 검에서 뼛조각을 털어내며 그는 또 다른 인골귀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십 분만 지나도 여기의 모든 인골귀가 쓸려나갈 듯 했다.
'어디 명가의 자손이라도 되는 건가?'
어깨 뒤에 두른 망토, 거기에 새겨진 아탕칼리의 계인을 보고 망설이긴 했다. 그것을 아무에게나 내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런 괴물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마술사는 아까 전의 자신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는 손을 들어 중재를 신청했다.
"잠깐! 잠깐! 내가 잘못했다! 아니, 공, 내가 잘못했소! 댁 마차에 한해 통행을 허가해드리리다!"
그러자 맹수는 검을 멈추었다. 살기가 가득 담긴 눈으로 이곳을 노려본다. 마술사는 오금이 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가까이에서 저 눈빛을 받았다면, 아랫도리를 축축히 적셨으리라. 적절한 제물을 바쳐야만 저 살기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 여기 특별 통행증이오. 이게 있으면 더 이상 이 도시에선 공을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오."
그는 동전을 내밀었다. 뿔 달린 해골이 음각된 구리 동전이었다. 아이는 한 손에 레바테인을 움켜쥔 채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병장기를 움켜쥔 인골귀가 좌우로 갈라서며 길을 열어주었다. 흰 해골과 검푸른 칼날이 빛나는 사이를 한 치 망설임 없이 걷는 아이는 위풍당당했다. 마차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비제는 그 담력에 놀라 탄성을 흘렸다.
아이는 말 없이 마술사의 손에서 동전을 받아챘다. 동전의 감촉은 서늘했다. 두 사람은 악수를 한 것과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이, 이걸 가지고 중앙청에 들린 후 바로 떠나시오. 제국 바깥까지 아무도 공들을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오."
지척에서 아이의 눈을 보자 바짝 오그라들어서 황급히 말한다. 이내 그의 몸도 오그라들었다. 마술사가 앞으로 푹 고꾸라진 것이다. 아이는 동전을 받자마자 그 가슴에 레바테인을 쑤셔넣었다. 울컥! 심장이 부서지고, 피가 튀고, 화르륵 솟아오른 불길이 온 몸을 휘감았다. 처음부터 이런 놈과 협상할 생각 따윈 없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주인 잃은 인골귀들이, 통제력을 잃고 달려들어왔다. 세 놈이 달려들며 검과 창을 허우적거린다. 아이는 레바테인을 붙잡고 비스듬히 휘둘렀다. 레바테인의 구불구불한 칼날은 흉곽을, 요요추를, 허리뼈를 쳐부수고 뼛가루를 흩날리며 빠져나왔다. 난투가 계속된다. 순식간에, 삼십에 달하던 인골귀는 모두 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가죠."
모든 일을 끝마치고 마부석에 다가간 아이. 그 음성은 산책이라도 하고 온 듯 평안했다. 마부는 벌벌 떨다가, 곧 말채찍을 말 등에 내려찍었다. 아이는 훌쩍 객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비제와 에어비스가 놀랍다는 눈으로 아이를 맞이했다.
"이게 진짜구나... 진짜야. 앞으로 오빠한테 천재라거나 수재라거나, 그런 말 하는 녀석이 있으면 머리를 후려쳐야겠어."
"네 머리부터 후려치지 그래."
비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 역시 동감하는 눈치였다. 협상을 하려 한 마술사를 왜 죽였느냐는 의문은 두 사람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마차는 텅 빈 성문을 뚫고, 국경 도시의 안으로 미끄러지듯 파고들어갔다.
*
국경의 도시는 음침했다. 원래도 뜨내기와 무법자와 방랑자 따위가 뒤섞여 빈말로라도 평온하다고 할 수는 없는 도시였지만, 지금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내뿜는 후줄근한 생동감조차 품고 있지 않았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나다니지 않았다. 마차는 유령의 도시 같은 이 곳을 주눅든 채 달려나갔다. 이따금씩, 마술사와 거대한 해골 괴물이 함께 걸어다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 도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건 틀림없었다. 아이가 지금까지 지나쳐온 모든 도시가 그랬듯이. 아이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아까 그 가짜 점쟁이가 들려줬던 말, 십칠야의 끝에 다다랐다는 말이 아이의 뇌리를 가득 점했다.
"아까, 그, 그 분 말씀대로 중앙청으로 가려면, 이 쪽입니다만."
네 갈래길에 도달했다. 마부는 행선지를 묻기 위해 뒤에 고함쳤다. 에바는 자연스럽게 아이를 쳐다보았다.
"어쩔까?"
에어비스와 비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무리의 리더가 아이로 정해진 모양이었다. 아이는 고민했다. 네 갈래길에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그 마술사의 말대로 중앙청에 들러 허가를 받고 나가는 것, 나머지 하나는 시체가 나가는 동문으로 그냥 빠져나가는 것. 아이는 림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선택해도 위험은 똑같겠지.'
림은 어깨를 으쓱하며 그런 말을 들려주었다. 아이가 정하라는 뜻이었다. 마차는 네 갈래길에 멈춰선 채로 고민했다. 그리고, 그 정지는 다른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뽀득, 뽀드득.
헝겊과 행주를 들고 달려든 어린아이들이었다. 마차가 많이 오가는 국경도시에선 흔한 풍경이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는 법이라, 은마차처럼 화려하게 생긴 마차를 둘러싸고 바퀴를 닦거나 창문을 닦으면 승객들이 몇 루덴씩 팁을 던져주곤 했다. 그 팁이 고아와 가난한 아이들의 생계 수단이었다. 태반의 마차가 끊겼기에 지금 그들은 절박했다. 한 대의 은마차에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달라붙어 윤이 나게 닦아대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마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훠이, 훠이!"
마부가 몰아내려고 해도 소용 없었다. 비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피오 동전 몇 개와 루덴 하나를 흩뿌렸다. 루덴 동전을 뿌리면서는, 멀리 가로수가 있는 쪽으로 집어던졌다. 그러자 아이들이 우르르 그 쪽으로 몰려갔다. 이런 일을 많이 경험해본 듯한 솜씨였다.
아이도 얼른 그것을 따라 했다. 얼른 동전을 흩뿌리고, 루덴 동전을 내던졌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양 쪽에서 아이들을 떨궈 내고, 벗어나려는 순간. 아이의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다.
자그마한 꼬마였다. 꼬마가 무릎이 까져서 훌쩍이고 있었다. 동전을 받기 위한 몸싸움을 이기지 못해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아이의 눈썹이 흔들렸다.
"어, 잠시만요."
아이는 마차를 멈춰세우고 훌쩍 뛰어내렸다. 그 꼬마에게 다가가 먼지를 털어주고, 피오 동전 몇 개를 쥐어주었다. 꼬마는 연신 허리를 꾸벅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루덴 동전을 주으려 멀어졌던 아이들이 다시 달라붙게 되어버렸다.
마차에 올라타서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를 보고 에어비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가 쩔쩔매는 것이 우스웠던 모양이었다. 네가 어리숙한 건지, 능숙한 건지 모르겠다. 그런 말이 뒤따랐다. 그렇게 한참이나 네 갈랫길에서, 행선지를 정하지 못하고 붙잡혀 있을 때.
통,통.
유리창을 두드리는 손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큰 사람. 어른이었다. 검은 클록으로 몸을 빈틈없이 가린 어른이 유리창을 두드리며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유리창에 하얀 입김이 서려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뽀득, 뽀드득. 하얀 손가락이 그 입김을 지워 글자를 새겨갔다.
'오랜만이에요.'
글자가 새겨짐과 동시에 얼굴이 보였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이는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누, 아니, 다나 씨?"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는 다나가 있었다. 그녀는 검지를 세워 쉿, 하고 아이를 단속시키더니, 다시 유리창에 후후 입김을 불어 글씨를 새겼다.
'중앙청은 함정. 동문에는 병사. 서쪽의 마차역으로.'
행선지에 대한 조언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 자그마하게 한 마디를 또 새겼다. 보고 싶었어요. 그런 글자였다. 아이는 얼굴이 갑자기 확 달아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른 그 글자를 지우려고 하는데, 밖에서 입김으로 새긴 글자를 안에서 지울 수는 없는 법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아무 것도 아니에요!"
비제가 낌새를 눈치채고 다가왔을 때, 다나는 훌쩍 사라져버렸다. 아이는 손바닥을 펴 필사적으로 그 글자를 가리려 애쓰고 고함쳤다. 곧 마차는 서쪽 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리고, 생각보다는 일찍 재회했네요. 이것도 운명일까요?"
마차역의 지하에서는 다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와락 안기듯이 아이에게 매달리고는, 얼굴 가득 홍조를 일으키고 그런 말을 꺼냈다. 난처한 것은 아이였다. 이 뜻밖의 재회가 반가우면서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몰라 쩔쩔매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 마차역의 지하는, 지금 무슨 피난처 비슷한 것으로 기능하고 있는 듯싶었다. 강제 징집을 피하기 위한 피난처였다. 숙박 시설이 구비된 마차들이 집처럼 쓰이며, 후줄근한 행색의 사람들을 품고 있었다.
"있잖아, 이 여자는 누구야? 알고 있는 사람이야?"
다나가 마구 회포를 풀고 있는데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바였다. 정말로 순수하게 다나가 누군지 몰라서 꺼낸 말이었지만, 다나에게는 다르게 들렸다. 다나의 녹색 눈이 잠시 날카롭게 빛났다. 그녀는 아이의 품에서 얼굴을 떼고, 갑자기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다.
"어머, 못 보던 사이에 동생한테도 동생 같은 사람이 생겼군요? 이 귀엽고 건강하게 생긴 동생은 누군가요?"
동생이라는 말을 힘주어 강조하는 다나. 아이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저 소개했다.
"여기 오던 중에 만나서, 같이 일 하나를 처리한 친구입니다. 행선지가 같아서 동행하게 됐어요."
그리고 나사렘의 일을 아주 간략하게 일러주었다. 에바는 어쩐지 인사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을 들은 다나는 여전히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에바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니까 제 집행관님께서 잠시 신세를 진 은인이군요! 감사합니다. 아무런 관계도 없고 곧 헤어질 사이인데도 순수한 우정 때문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니, 제가 대신해서 감사를 표하고 싶어요."
"아? 네... 그런데 집행관이라니요?"
에바는 얼떨떨하게 웃으며 감사를 받았다. 다나는 그 말을 듣자 클록을 벗고 율사복을 드러냈다. 아이 일행을 자신이 묵고 있는 마차로 이끌면서, 기다렸다는 듯 말을 늘어놓는다. 자신과 아이가 북서 자치령에서 겪었던 일을, 아주 낭만적으로 윤색한 것이었다. 그 이야기는 아지프 앞에서 도망쳤다가 합류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모닥불 앞에 둘러앉은 에바는 훌쩍이고 있었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저는 에바 씨처럼 사내답지 못해서, 짐만 되고 폐를 정말 많이 끼쳤어요. 에바 씨라면 그렇게 달아나는 일도 없었을 텐데, 그렇죠?"
"아니, 뭐 그런... 헤헤."
"그게 아니더라도 에바 씨처럼 건강하고 예뻤더라면 일이 더 잘 해결됐을 수도 있겠죠. 그렇죠?"
"아니에요, 다나 언니가 저보다 훨씬 예뻐요!"
"정말요?"
"네!"
짐짓 눈물을 닦는 척 다나는 이렇게 말했다. 에바는 칭찬인 줄 알고 겸양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 모든 모습을 바라본 에어비스는, 조금 질렸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끝없는 견제의 현장을 중재한 것은 비제였다.
"그래서, 풋내기 율사 나으리. 우리를 여기로 인도한 이유는 뭡니까?"
그 중재가 없었더라면 다나는 언제까지고 에바를 붙잡고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을 기세였다. 그 말 덕분에 멈출 수 있었다. 다나는 물러나 심호흡을 하고,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모든 건 이 도시의 마탑주가 억지로 바뀌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다나의 이야기는 그런 말로 시작했다.
한편,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기둥 뒤에서는, 흰 머리의 여자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의 제자가 계획대로 일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성녀, 호노레였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이 도시의 안위를 위해서, 또 가엾은 사람들을 위해서. 그 마탑주를 무찔러주실 수 없겠습니까?"
다나의 말은 그렇게 끝이 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