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역마차 ( 5 )
이 국경의 도시가 특히 심한 가렴주구에 시달리는 이유. 그건 이 도시의 마탑주가 특혜로 부임한 낙하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능력이 부실했다. 간신히 5위계에 올라섰을 뿐 어떤 주목할만한 연구 성과를 만들어낸 적도, 공을 세운 적도 없었다. 그가 가진 재능은 하나뿐이었다. 처신의 재능.
그 처신의 재능이 모든 것의 원인이었다. 그는 원래, 지금 수세에 몰린 아지프의 중앙 마탑 파벌 소속이었다. 현 아지프 학장의 파벌, 서부 마탑이 그를 재판에 회부했다. 몰아내고 자신의 파벌을 꽂아 지방의 병권을 쥐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놀라운 처신의 재능이 그 와중에 빛을 발했다. 그 송사를 진행하는 짧은 기간동안 파벌을 바꾸었던 것이다.
그는 새로운 파벌에 바칠 제물을 필요로 했다. 온갖 실정법을 위반하면서, 군사와 재화를 긁어모아 서부 마탑에 바쳤다. 텅 빈 역마차와 인골귀 무리는 그 공물이었다. 정치적 계산도 있었다. 그 모든 범죄의 결과, 그는 파벌이 재판으로부터 보호해주지 않으면 내일 당장 반란으로 목이 잘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의도적인 것이었다. 이럴 때에는 스스로를 종속적으로 만드는 것이 오히려 자유로워지는 방법이라는 걸 그는 알았다.
"그리고, 그 여파는 새롭게 맞이한 제 스승님에게도 미쳤어요."
다나는 눈물을 훔치며 그렇게 말했다. 이 국경도시의 마탑이 호노레를 정치적 궁지에 몰아넣은 그 재판의 장소였고 그 노회한 마탑주가 피고인이었다. 마탑주가 이렇게 가렴주구를 하지 않았더라면 호노레가 궁지에 몰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나는 호노레가 지금 함정에 빠졌음을, 그 마탑주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음을 길게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에바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분개했다.
"그런 놈들은 다 때려 죽여야 돼요!"
씩씩대는 에바를 달래며, 다나는 말을 이어갔다.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제 스승님이 궁지에 빠진 걸 확인한 저는, 몰래 그 분의 인주와 도장을 훔쳐서 여기로 찾아왔어요. 아이 씨, 여길 지나고 있을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어떻게 알았어요?"
"운명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다나. 기둥 뒤에서 이 장면을 바라보던 호노레는 조금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라달라리아의 정보망을 부정이용하면서까지 일거수 일투족을 파악해놓고 저런 말을 꺼낸단 말이야? 정말로 어린 시절의 자신이 떠오르게 만드는 제자였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이 도시의 안위를 위해서, 또 가엾은 사람들을 위해서. 그 마탑주를 무찔러주실 수 없겠습니까?"
피고인의 사망, 그로 인한 재판의 종결. 그게 다나가 찾아낸 탈출구였다. 말을 끝내며 그녀는 은방울꽃을 내밀었다. 라달라리아의 성녀만이 가질 수 있는 꽃이었다.
팔짱을 끼고 상황을 지켜보던 비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꽃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절대적인 재판 청탁권이었다. 이 꽃을 사용하면, 상대는 반드시 재판에 나서야만 했고, 라달라리아의 율사들은 모든 힘을 기울여 그 재판에 성실히 임해야만 했다. 재판에 해당되는 법안이 없다, 그럼 만들어야만 했다. 그 정도로 절대적인 청탁권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 꽃을 사용한 재판은 라달라리아가 직접 금빛의 환상을 드리워 참관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라달라리아의 성녀 직위를 받은 사람만이 일 년에 단 한 번만 저 꽃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일 년이 지나면 그건 시들어 없어졌다. 궁중의 암투에서, 또 더러운 정치적 싸움에서 저것은 거의 전가의 보도와 같은 힘을 가졌다. 저것 때문에 비리를 무마하지 못해 죽은 사람도 수두룩했고 정적을 사형대에 매단 사람도 수두룩했다. 아마 억금을 준다 해도 살 사람이 널렸을 것이었다.
그것이 지금 이 먼 변방의 도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나는 그 금빛의 꽃줄기를 두 손으로 붙잡고, 아이에게 더 가까이 내밀었다.
"이건 제가 제자가 된 기념으로, 스승님이 주신 성녀의 꽃이에요. 저희를 구해 주신다면 이걸 답례로 드리겠습니다."
아이는 복잡한 얼굴로 그 꽃을, 그리고 다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들었던 예언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곧 그대는 그리운 얼굴을 만날 것이고, 그것이 십칠야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그리운 얼굴이 다나를 뜻하는 것이었나? 장갑을 낀 손을 움직여 그것을 잡으려는 듯 내뻗는다.
됐어. 호노레는 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일은 거지반 된 셈이었다. 저 남자가 아지프의 마탑을 박살내고 반역죄 따위를 뒤집어쓰게 생겼을 때, 자신은 제자를 뒤쫓아왔다고 말하며 모습을 드러낼 셈이었다. 그리고 특권으로 죄를 사해주면 연극의 끝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그 꽃을 잡기 직전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기둥 너머를 바라보더니 말한다.
"아무래도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들어야겠습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제자를 내세우지 말고, 직접 나오세요. 성녀님."
호노레가 숨어 있는 기둥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호노레가 있는 곳을 알고 있었던 듯했다.
'뭐야? 어떻게 알아챈 거지?'
은폐는 완벽했다. 그녀는 지금 기척을 숨기는 마법을 6위계급의 마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학장 급이라도 속일 자신이 있는 마술이었는데, 대체 어떻게? 그녀는 눈썹을 떨었다. 림이 꿰뚫어보고 알려준 것이지만 그녀가 그걸 알 도리는 없었다. 곧 그녀는 쭈뼛쭈뼛 기둥 뒤에서 나와서, 치맛자락을 붙잡고 인사를 했다.
*
역마차 안. 아이는 안절부절 못하는 다나를 옆에 앉히고, 호노레를 똑바로 쳐다보며 추궁했다.
"왜 이런 연극을 하신 건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다나, 호노레, 아이 외의 다른 사람들은 전부 장소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어쩌면 에바는 몰래 기척을 숨긴 채 엿듣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호노레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관련되어 있다는 걸 숨기고, 철저하게 다나 양이 혼자 움직인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야만 혹시 나중에 재판에 휘말렸을 때 활로가 생기니까요."
"또 하나는? 왜 예언이니 뭐니 이상한 만남을 꾸민 거죠?"
"두 번째는, 미담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미담. 그 말을 들은 아이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호노레는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무리 겉으로 제가 사건과 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피고인이 갑자기 성녀의 제자의 연인에게 죽어 재판이 종결된다. 그런 사건이 일어나면 바보가 아니고서야 전말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겠지요."
"연, 연인이라니요."
"어머, 아닌가요? 그렇게 당당하게 몸을 배배꼬길래 연인을 넘어서 무슨 약혼자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때에 안 맞게 몸을 배배꼬는 다나에게 쏘아붙이고 호노레는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미담으로 이야기를 덮어씌워 버릴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우리의 방식이지요. 제가 다나 양을 특별히 관례도 건너뛰고 제자로 받은 이유는 알고 계시겠지요."
"북서 자치령에서의... 미담. 그것 때문인가요."
"예. 자랑스러워해도 좋습니다. 이미 그 이야기는 제도의 여염에서 꽤 인기를 끌고 있어요.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이토록 인물이 뚜렷하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당신은 모르지만, 제도에선 이미 당신을 주제로 한 자그마한 인형극도 있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이는 눈을 크게 떴다. 호노레는 입을 가리고 자그마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꾼들은 이야기를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이니까요. 정도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일축하고 말을 이어갔다.
"꽤 인기도 있어서, 대본이며 소설책도 여러 권 출간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미 제도의 민중들은 당신과 제 제자에 대한 호감이 어느 정도 있는 상황이지요. 거기에 미담의 속편을 만들어 배포하면, 여론의 향배야 뻔하지 않습니까. 그러기 위해선 조금 몽환적인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당신이 쓰는 책의 주연이 되어줬으면 했던 거군요. 아무것도 모른 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굳세게 입술을 다물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호노레는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다나에게 전해들은 아이의 인상은 이렇지 않았다. 분명 선하고, 강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뒤덮은 모략이나 악의를 이해하지 못해 힘겨워하는 소년의 인상이었다. 그런데 눈 앞의 소년에게선 어떤 현실적인 강인함도 느껴졌다. 그 사이에 자라난 걸까요? 호노레는 속으로 되뇌었다. 원래 저 무렵의 소년은 하룻밤 사이에 다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법이었다. 이상할 건 없었다.
"당신들의 방식은 항상 그렇죠. 무슨 이야기든, 윤색하고 바꾸어서 억지로 미담으로 만들어서, 교묘하게 세상의 인식을 뒤틀어요. 그것도 거짓말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까?"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아이는 성난 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놀란 다나가 옆에서 팔꿈치를 붙잡아 말리려 했지만 소용 없었다.
"당신은 북서 자치령의 전쟁을 끝마친 대가로 성녀라는 이름을 얻었죠. 사실 당신의 선언은 전쟁을 끝내기는 커녕, 그 땅에서 일어나던 비극을 끝마치지도 못했어요. 그러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직위를 얻은 거나 다름 없습니다. 당신은, 그, 당신들이 만든 법 때문에, 그 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는 있습니까?"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아이는 마레를 떠올리며 떠듬떠듬 그런 말을 했다. 마레를 떠올리자, 시의적절하지 않은 분노가 터져나오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정말로 그 땅을 위하고자 했던 의지를 가진 사람은 힘없음과 위악 속을 번민하다 불명예 속으로 떨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허명을 얻는, 그런 모순. 호노레 본인보다 그런 모순이 화를 돋구는 듯했다.
"그러니 저는 당신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당신은 미담을 만들어 위기를 넘어갈 생각이라고 하지만, 미담 중에는 죽음과 희생으로 끝나는 미담도 많지 않습니까. 당신이 누... 다나 씨를 희생시키고 미담을 완결짓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요?"
그 말에 다나는 깜짝 놀라 아이를 쳐다보았다. 모든 일이 끝난 후에, 다나를 희생양 삼아 정치적 책임을 떠넘기고 도망칠 지 모른다. 그런 의심을 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격렬하게 반응한 것이었다. 다나 본인조차 하지 않았던 생각이었다. 호노레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의심은 타당했다.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제가 조금 더 좋은 방법을 알려드리죠. 그냥 돌아가서, 그 재판이라는 것에서 유죄를 선언하세요. 당신은 위에서 압력을 넣어서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은근슬쩍 전제로 깔고 얘기하는데, 그냥 유죄를 선고하고 양심을 지키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게 아이의 마지막 선언이었다. 호노레는 조용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가 꺼낸 말은 하나하나가 전부 진심이었다. 율사가 되고 나서 이렇게 진심 어린 말을 들은 것이 얼마만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연극의 인물을 기대하고 왔건만, 오랜만에 한 명의 사람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 목숨은, 그리고 제가 쥐고 있는 직위는 저 하나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는 진정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말하는 라달라리아의 병폐는, 저 역시, 아니 제가 오히려 더 절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병폐를 치유하고자 노력하는, 한 줌의 집단이 만들어낸 작은 성과물입니다. 제 목숨이 오롯이 저 하나의 것이라면, 한 번 양심을 지키고 스러져도 문제가 없겠죠. 하지만 이미 제 삶은 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저 자신을 지키고 간수해서, 더 큰 뜻과 큰 기회까지 지켜내야 합니다. 저는 물론 댓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사건의 댓돌로 끝나기엔, 저를 만들어내기 위해 있었던 수 많은 노력이 너무 눈물겹습니다."
"작은 사건이요? 여기서, 아지프의 미친 놈한테 죽은 사람들의 삶이 작은 사건인가요?"
"예. 저에겐 그렇습니다."
호노레는 마지막까지 변명하지 않고 그렇게 선언했다. 그리고 다소곳이 손을 포개고 처분을 기다렸다. 아이는 물끄러미 그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티 없이 맑았다. 오만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 입술은 방금 위선자들이 흔히 하는 말을 읊조렸다. 일어나지도 않을 혁명의 대의로 자신의 부덕을 정당화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그리고 변명 없음은 그녀를 위선자로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아이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당신의 부탁은 받아들이겠습니다."
호노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성녀의 꽃을 주면서도 이렇게 힘들게 허락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런 말이 농담조로 뒤따랐다. 그 말대로, 아이는 돈이나 보상으로 움직이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뭐야? 다 때려부수는 거지?"
마차 밖에 나오니, 예상대로 에바가 문에 귀를 바짝 가까이 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엿들었으나 무슨 말이 오갔는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결론은 정답이었다.
"가자."
두 사람은 마탑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