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114화 (114/279)

21. 귀향 ( 3 )

죽은 자들이 귀향했다.

레테의 말은 그런 말로 시작했다. 좋은 울림을 담은 말은 아니었다. 나무 포크로 치즈를 한 조각 잘라 베어문 그녀의 입은 조소에 가까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이어 나온 말은 아이의 표정을 경직하게 만들었다.

"올해 초, 대량의 생환 보고서가 중앙에 제출되었어. 에페 바체의 2년차 시험을 치르고 전장에서 죽은 자, 실종된 자, 그런 자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보고서들이었지. 물론 그런 생환이 없는 일은 아니야. 어쩌면 당신도 그런 생환자일지 모르지, 안 그래?"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테의 말은 이어 그 생환의 진실을 일러주었다.

"그리고 그 생환자들의 면면을 살펴본 우리는 경악했지. 그들이 생환자라고 데려온 자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던 거야."

"그게 무슨...?"

"전혀 다른 낯선 놈들을 대신 데리고 온 거지. 에페 바체라고 거짓말쳐서 시험을 치르게 만들려 했던 거야."

아연실색한 아이에게 레테는 조금 더 자세한 사정을 들려주었다. 에페 바체는 기나센의 제도이지만 제도일 뿐인 것은 아니었다. 설화, 문화, 전통, 그런 모든 관습들을 제도라는 이름으로 보존하고 보완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 제도가 대상자에게 주는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중앙에서의 관리 감독은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다.

머리 색, 눈 색, 대강의 신상명세가 비슷하다면, 서류상으로는 닮은 사람을 데려와 우겨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에페 바체의 대상자들은 어쩄거나 외인이었으므로, 기나센 국적조차 없었기 떄문이었다.

"이것도 없는 일은 아니야. 전란을 맞아서 후사를 잃은 용병단이나, 대가 끊긴 용병단에서 이런 눈 가리고 아웅을 시도하는 경우가 가끔 있기는 있다구. 하지만 이렇게 많은 가짜 생환자가, 이렇게 조직적으로 동시에 보고된다는 것은..."

"누군가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거군요."

아이가 딱딱하게 말을 받았다. 레테는 나무 포크로 또 치즈 한 조각을 잘라서 먹었다.

"그래, 음모. 우리 셋은 통령 직속 특무국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특무국이 그 음모를 조사했지.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놈들이 누구인지 알아냈어."

"누구입니까?"

"대산맥파."

대산맥파. 그건 기나센의 커다란 두 파벌 중 하나를 뜻했다. 삭센과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통합해서, 아발랑센 산맥 전체를 기나센의 영토로 병탄해야 한다고 믿는 매파였다. 레테는 설명을 더했다.

"현 통령은 이미 재선을 마쳐서, 3선에 출마할 자격을 상실한 상태야. 그리고 딱히 두드러지는 후보도 없는 상황이지. 에페 바체는 기나센의 고급 인력이라서 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투표권을 가진다. 그리고 내년에는 선거가 예정되어 있어."

"그 말뜻은, 설마, 투표권을 얻기 위해서..."

"그래. 이 가짜 생환자 소동은 그게 목적이라고 특무국은 판단했다."

아이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실망한 표정 같기도 했고, 수심에 찬 표정 같기도 했다. 잠시 후 그 표정은 입술에 모여서 사라졌고, 얼굴 가득 결연한 분노가 떠올랐다.

"이런 일도 자주 있는 일인가요? 그 사람들에게는 그저 투표권, 그런 것을 얻기 위한 허술한 술책일 수도 있겠고, 어떤 놈에게는 다른 사람을 괴롭힐 권력을 얻기 위한 도구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에게는 조금 다릅니다. 저에게는, 이건, 그러니까... 그러니까!"

"진정해. 역시 우리가 사람을 잘 찾아온 듯하군."

레테 옆에 있던 또 다른 시험관이 아이의 어깨를 툭 쳐서 진정시켰다. 레테는 그 의문에 답을 더해주었다.

"한 번도 없었다. 이건 기나센에 에페 바체라는 제도가 생긴 이후로, 또 통령을 배출하기 시작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야. 이상하지?"

드르륵, 원형 의자를 밀어내고 서성이기 시작한다. 그녀의 말 역시 분노를 품고 있었다. 아이가 내비친 분노와 같은 종류의 분노였다.

"우습고 멍청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기나센의 제도들은 대부분이 허술해. 제국을 흉내내서 얼기설기 관료제를 따라하고 있긴 하지만 그 요체는 달라. 기나센은 그런 서류조각과 정치가 아니라, 전통과 명예의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다."

에페 바체라는 제도 역시 엄격한 눈으로 보면 이렇게 악용될 소지가 큰 제도였다. 생면부지의 외국인에게 특별한 권리를 자의적으로 부여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수백 년 동안이나,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고 순결하게 운영되어 왔다. 그것은, 전적으로 기나센 사람들의 품성과 명예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전통을 이렇게 짓밟는다고? 아니, 기나센은 그렇게 정치에 목을 매는 나라가 아니야. 검을 쥐고 죽기로 맹세한 자가 싸움을 피하다 이불 속에서 죽으면, 그것을 수치로 여기는 나라다. 대산맥파가 기나센의 통합을 원한다 하더라도 이런 짓을 할 것 같지는 않았어."

서성이던 그녀는 우뚝 멈춰섰다. 그리고 더 깊은 진실을 들려주었다.

"특무국은 대산맥파의 배후를 한 번 더 파고들었다. 그리고 진짜 배후, 배후 뒤에 숨은 배후를 찾아냈지."

"그게, 누군가요."

아이는 어쩐지 그 대답을 이미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황달 환자처럼 부옇게 뜬 노란빛, 그 황금으로 채색된 도박장의 그늘 아래서 말라죽어가던 사과꽃의 잔영이 눈 앞을 스쳐지나갔다. 레테의 대답은 아이의 예상을 배신하지 않았다.

"조디악."

나라를 세우겠다는 일념. 오직 그 일족 안에서만 정당할 일념으로 북서 자치령을 파먹은 그 콘체른이, 이번엔 기나센의 흰 눈밭에 마수를 내뻗은 것이었다. 아이의 얼굴은 더없이 딱딱하게 굳었다.

*

시험 둘째 날. 시험자의 수는 부쩍 줄어 있었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자들이 이전 낙오자들을 뚫지 못하고 탈락했다. 집합 장소는 어제와 같이 공회당 앞 광장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공기는 수정처럼 맑았다. 하늘 높이 날아올라갔던 림이 오늘 모인 자들의 숫자를 확인해주었다.

'150명 정도 되더구나, 어린 순례자야.'

"고마워. 그 사람들의 말대로구나."

어제 특무국의 사람들에게 그 숫자가 남았다는 것을 들었지만, 아이는 확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2차 시험자들의 숫자는 어제 특무국에서 알려준 숫자와 같았다. 그들의 말을 믿어도 될 근거가 조금 더 생긴 셈이었다.

"그럼... 이번 시험은, 그거라고 했지."

그렇게 가짜 에페 바체들이 많이 나타났으므로 주최측은 시험의 내용을 바꾸었다고 한다. 최대한 많은 에페 바체들을 탈락시킬 수 있는 내용으로, 또 그러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는 방식으로.

'나를 비롯해서 우리 세 명은, 어제 낙오자로 위장해서 시험자 측에 숨어들 생각이었다.'

어젯밤 레테는 그렇게 말했다. 4번, 7번, 10번 결투장에 이들이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 검사관은 아이가 시험장을 잘못 찾아들어가 떨어지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에 귀띔해준 것일 테고. 그 말을 들었던 아이는 레테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직감했다.

'그리고 제가 당신을 이겨버려서, 지금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군요?'

'맞아. 우리가 택한 방식은, 시험자로 잠입해서 확실하게 가짜 생환자인 놈들을 탈락시키는 것이었다. 굳이 이런 귀찮은 방식을 택한 건 꼬투리 잡힐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고. 그런데 백 년에 한 번 나올 괴물 자식이, 상황도 모르고 멋대로 나를 떨어뜨려버렸다 이거지. 안 미안하나?'

레테는 장난스럽게 주먹으로 아이의 손등을 툭 쳤다. 아이는 웃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서 하고 싶으신 말은?'

'도와 다오. 네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네 말과 품성, 그리고 검기에서 네가 진짜 기나센 사람이라는 사실은 명확하게 알았다.'

그녀의 말은 거부할 수 없는 진지함을 담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다음과 같은 제안으로 끝맺었다.

'너에게 내 임무를 인계하고 싶다. 그 돈귀신들이 만년빙을 더럽히는 것을, 막아 주었으면 한다.'

대가는 치르겠다. 네가 에페 바체 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통령이 직접 너를 주목할 것이고 높은 훈장과 지위를 내리겠다... 그런 말이 뒤따랐지만, 그런 보상이 아이를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아이는 이미 조디악이 지나간 마을의 말로를 보았다. 조디악이 지나간 땅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았다.

란페이가, 그리고 레이븐사이드의 사람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눈의 나라. 아이는 힘껏 그 나라를 지키고 싶었다. 아이는 꽉 주먹을 쥐었다. 잰슨이 건네준 에페 바체 시험의 증표, 메달이 손뼘 가득 와닿았다. 회상을 마친 아이는 어제 들었던 시험의 내용을 떠올렸다. 공회단 연단 앞에서는 흑복을 입은 시험관이 나타나 외치고 있었다.

"자, 그럼 두 번째 시험의 내용을 발표한다! 우선 모두 북쪽으로 이동! 5열 종대로 이동한다!"

북쪽. 기나센의 금지인 잊혀진 숲이 있는 곳이었다. 신기가 집중되기 쉬운 영맥이라, 하늘 높이 솟은 전나무 아래로 괴물들이 가득 들어찬 험지였다.

'두 번째 시험은 그 잊혀진 숲에서 치뤄질 거다. 오십 개의 증표가 거기에 숨겨져 있어. 그걸 찾은 사람은 통과, 못 찾은 사람은 탈락이라는 간단한 룰이야.'

'오십 명만 통과시킬 생각으로 만든 거군요?'

'아니. 최대 오십명이지. 한 사람당 한 개만 찾아야 한다는 말은 한 적이 없는걸?'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명백하게 가짜 생환자인 사람들의 명부를 넘겨주었다. 그 금지된 숲을 돌아다니다가, 가짜 생환자가 증표를 찾으면 쳐부수고 증표를 빼앗아 달라는 것이 그녀의 의뢰였다. 시험의 내용은 그녀의 말대로였다. 시험관은 시험자들을 금지된 숲으로 내몰았다. 시험관이 들려준 시험의 내용도 그대로였다.

"기한은 내일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그때까지 이 장소에 돌아와서 증표를 제출해야만 통과다!"

증표는 별이 새겨진 동전이었다. 시험관은 동전의 모양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시험자들에게 동전을 한 바퀴 돌렸다. 이 넓은 숲에서 이 자그마한 동전을 찾으라니, 경쟁이 없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물며 그냥 숲도 아니고 괴물이 나다니는 숲인데. 몇 명이 그 난이도에 질린 표정을 짓자, 시험관은 더욱 험상궂게 소리질렀다.

"그럼 시작!"

그 말이 끝나자마자 시험자들은 달려나갔다. 전나무 꼭대기에 가득 쌓인 눈이 부서져 무지갯빛을 뿌렸다. 아이는 가만히 서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떠나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가볍게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숲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시험자들은 모두 동전을 찾고 있었지만, 아이만은 다른 것을 찾고 있었다. 레테가 건네준 가짜 귀향자의 명단이었다. 삼십여 분도 지나지 않아서, 아이는 그 명단 중 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었다. 특등 수색자의 솜씨였다.

"찾았다."

그리고 나무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 가짜는 가짜답게 품성도 비열했다. 이 넓은 숲에서 동전을 정직하게 찾는 것보다는, 다른 자들의 동전을 빼앗는 것이 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그들은 열여섯 살 정도 되어보이는 소년소녀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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