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125화 (125/279)

22. 산맥 ( 7 )

륜 우르드는 전쟁터에서 태어났다.

스물하고도 다섯 해 전의 일이었다. 자애의 갈란퀸, 그런 이름의 외신이 남부의 강줄기를 전부 피로 물들이며 전진해올 때에, 또 해골 세 개가 떨어졌었다. 당시 늙은 통령은 그 징집령에 자원해서 나섰다. 그는 현역에서 은퇴를 앞두고 있었고 전쟁터에서 죽기를 소망했다. 해골 세 개는 언제나 피할 수 없는 희생을 요구했고, 자신의 늙은 목이 수천의 희생을 대신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은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란페이의 부모님, 레이븐사이드의 전 단장이었던 부부도 거기에 동참했다. 자원이었다. 아직 일곱 살 나이로 마당에서 장난감 칼을 가지고 놀던 란페이를 내버려두고, 두 사람은 남쪽으로 향하는 마차에 올랐다. 통령이 거느린 사람은 그 두 사람 뿐이었다. 마지막 전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지프가 전쟁에 앞서 용병단을 소모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 시체가 양쪽에 충분히 쌓여야만, 그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용병들은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시체를 쌓기 위해서 전투했다. 야만인들을 베어넘기고, 야만인의 창에 찔려 그 베어넘긴 시체 위에 몸을 포개는 것이 아지프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전략적 소임이었다.

통령, 당시에는 얀 하세팔로스라고 불렸던 그는 그 무의미한 희생을 감당할 수 없었다. 자신은 제 일진에 나가서 죽을 셈이었다. 먼저 죽고, 란페이의 부모님이 시신을 수습한 뒤 영웅의 사망을 이유로 군사를 물리도록 하는 것. 그것이 해골 세 개에 대항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그것은 실패했다. 자애의 갈란퀸, 그 외신은 그런 얄궂은 수가 통하는 괴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깃덩이로 만든 거대한 배 같기도 했고, 곤충의 고치 같기도 했다. 강 위에 동동 떠서 흘러오는 그것의 뒤안길을 따라서 강물은 강심부터 새빨갛게 물들었다. 야만인들은 그 고치를 호위하듯 전진해왔다. 마치 산도를 타고 세계로 머리를 내미는 태아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저것을 제국에 닿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명령이 하달되었다. 명령이 아니더라도 전쟁에 나선 모두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것은 태아다. 추형의, 태어나지 않은, 그런 상태이다. 저것이 제국에 도착하는 순간 멸망이 시작된다. 그런 예감이 모두의 정신을 전쟁터로 잡아끌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 모든 용병들은 야만인과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결국 제국은 승리했다. 시체가 쌓인 후, 뒤늦게 도착한 아지프의 마술사들은 망자의 군대를 일으켜 야만인을 쳐부쉈고 굉혈포 무리가 갈란퀸을 후려쳤다. 그러자 그것은, 몸을 뒤틀며 근섬유로 이루어진 팔을 내뻗었다. 무수히 내뻗어진 팔 중 하나가 륜의 어머니를 붙잡아서 집어삼켰다. 얀도 집어삼켰다. 두 사람 뿐만 아니라, 대지에 멍하니 서 있던 모든 생명을 향해서 팔은 내뻗어졌다. 무언가를 먹어서 상처를 수복하려는 행위였다.

때마침 굉혈포가 두 사람이 빨려들어간 부분을 후려쳐서, 또 란페이의 아버지의 영웅적인 구출로 두 사람은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순간 자애의 갈란퀸은 괴성을 내지르며 녹아내렸고, 핏물로 변한 강줄기는 순식간에 증발해 강바닥이 쩍 드러났다. 바닥에 쓰러진 륜의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며 끅끅 헛구역질을 했다. 갈란퀸이 죽으며 흩뿌린 시체와 장기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입덧이었다. 그녀는 회임을 했던 것이다.

륜 우르드는 그렇게 태어났다. 뜻밖에 목숨을 구함 받은 얀은 그것이 어떤 운명처럼 느껴졌다. 세상은 아직 자신의 은퇴를 바라지 않는 모양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몸을 정양할 필요가 있었던 세 사람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정확히는 륜이 태어날 때까지 제국 남부에 머물렀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륜은 죽은 듯 고요했다. 계류 유산이 아닌가, 주치의가 그런 걱정을 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러면 그녀는 사람을 수없이 베어넘긴 자신의 업이 대물림되는 것은 아닌가, 밤늦도록 서성이며 눈물겨워했다. 얀은 그럴 때면 태어난 아이를 자신의 손녀처럼 돌보겠노라고, 두 사람에게 맹세하며 그 불안을 달랬다.

열 달이 지나고 륜이 태어났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가냘펐다. 한 움큼이었다. 통령은 거기서 말을 멈추고 재떨이를 집어서 두 손으로 받쳐들었다. 막 태어난 그녀는 그 정도의 크기였다고 했다. 통령 특유의 먼 화법인가, 아이는 아주 먼 과거로부터 핵심으로 찔러들어오는 그의 화법을 생각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륜의 어머니가 걱정하는 대로, 그녀의 업 때문인지. 아니면 평탄하지 않았던 그녀의 출생 때문인지는 몰라도, 륜은 몸이 매우 약했다. 바람이 불면 쓰러질 듯했고 세 살이 되기 전에 생명의 위기를 열 번은 넘겼다. 언니, 란페이는 그런 동생을 아껴서, 늘 침대 곁에 머물며 밤새 간호했다고 한다.

천형도 뒤따랐다. 기면증이었다. 정확히 기면증이라는 진단이 나오지는 않았으나, 그녀는 이유 없이 며칠씩 잠에 빠지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륜의 어머니는 밤새도록 괴로워했다. 갈란퀸과의 전쟁터에서, 염치없이 살아돌아온 업이 틀림없다고 했다. 그떄 함께 파견되었던 용병들은 모두가 배경 없는 자들이었다. 명망 높은 얀과 레이븐사이드를 믿고,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자원한 자들이었고, 그 원혼이 여기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게 틀림 없다고 술 취해서 하소연했다. 세상은 여전히 그들을 영웅이라고 여겼으나 이 세 사람은 스스로를 그렇게 칭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륜의 부모님은 죽었다. 전쟁터가 아니라, 황실의 행사에서였다. 원래는 통령과 란페이도 갔어야 하는 곳이었다. 호위를 부탁한다는, 초청에 가까운 의뢰가 왔을 때, 그들은 별 생각 없이 초청을 받아들였고 암살에 휘말려서 죽었다. 얀과 란페이가 살아남은 것은 륜 덕분이었다.

어떤 예감이었을까? 긴 잠을 자다 깨어난 륜은 갑자기 1층으로 내려와 어머니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가지 말라고 뗴를 썼고, 아프다며 크게 울어댔다.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륜을 달래기 위해 란페이는 떠나지 않았고, 부모님은 꾸짖고 떠났다. 그 모습을 본 얀의 등골 어딘가에서 께름칙한 느낌이 솟아올라서, 얀도 떠나지 않았다. 그 판단이 목숨을 구했다.

"왜 이 작은 것에게 그렇게 모진 운명만이 기다리고 있는지."

얀은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침묵하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모진 운명. 그 모진 운명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듯했다.

그 날 이후로 륜 우르드는 늘 침실에만 박혀 있었다. 아침이면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잠겨서, 저녁이면 희미한 등갓불에 잠겨서 늘 책만 읽었다고 했다. 그것이 그녀가 모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법인 듯했다. 어린 나이에 갑자기 단장 직위를 물려받게 된 란페이는 예전처럼 동생을 돌보지 못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없는 사람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얼굴을 본 사람이 거의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란페이의 부모님과의 옛정이 있는 얀만이 가끔씩 얼굴을 비추러 나타났다. 그녀는 통령을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책에만 골몰해서 그런지, 그 아이는 놀랍도록 영명했지."

통령은 또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의 핵심을 찔러가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느닷없으면서도 자연스러웠다. 그의 외알 안경이 등불을 반사해 주홍빛으로 빛났다.

"9년 전, 아니 곧 10년 전이 되려나? 그 때에, 나는 통령 후보로 떠밀어져서 고민을 하고 있었지."

아지프는 정기적으로 희생을 요구했다. 정치적으로 정돈되어 있던 나라, 야경 국가에 가까웠던 연맹체인 기나센이었지만, 그 희생은 정쟁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얀은 스스로를 어떤 파벌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투명함과 중립성이 그의 인기를 드높였고, 그는 곧 소산맥파의 후보로 출마를 강권받는 상황에 처했다.

어찌 할 것인가, 이 정쟁에 몸을 던질 것인가, 아니면 고요히 침묵할 것인가. 어떤 쪽이 나라는 인간의 쓸모에 부합할 것인가...

쉬이 결정할 수 없었다. 헤매이던 얀은 문득 옛 친구가 떠올랐다. 얀은 륜의 집에 들렀다.

"알세이든의 병기창을 확인하세요."

그녀를 방문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늘어놓던 통령에게 륜은 그렇게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반문하기도 전에 그녀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예의 기면증인 모양이었다. 알세이든은 병기를 보급하고 제작하는 24가문이었다. 대산맥파에 속하는 곳이었고, 느닷없이 소산맥파의 거두로 솟아올랐던 당시의 얀에게는 꺼림칙한 곳이었다.

륜의 말뜻은 병기창을 확인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병기창은 텅 비어 있었다. 그 때 대산맥파는 격렬하게 전쟁을 주장하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 자들은, 실제로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을 전달하고 싶어서, 이들은 병기창을 이렇게 텅 빈 채로 남겨두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 텅 빈 무기고를 보는 순간 통령의 머릿속에 하나의 청사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다시 륜을 방문했을때, 그녀는 한 문장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잠에 빠져 있었다.

'정의 없는 힘은 압제하며, 힘 없는 정의는 무력하다.'

"그건..."

아이는 아연실색했다. 블로어의 검면에 새겨져 있을 그 글귀였다. 그 글귀가, 통령에게는 조금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보고 통령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네. 결국 내가 살면서 보아 왔던 모든 정의는 무력했고, 모든 힘은 압제했어. 존재하려는 것은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런 말을 속삭이고 있었어."

통령의 눈은 빛났다. 그것으로부터, 지금의 균형이 탄생했다. 소산맥파는 비겁한 압제자를 연기하며, 대산맥파는 힘 없는 정의를 연기한다. 얀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존주의자로서의 명성은 그 압제에 정의의 옷을 입혀주었고, 대산맥파는 제국과의 협상을 위한 힘으로 사용되는 데에 은근히 협조된다.

"결국 그녀가 십여 년 간 이어진 작금의 균형을 만든 거나 다름없다, 이 말일세."

통령은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서 서성이고 있었다. 아이의 생각보다도, 륜은 대단한 인물인 듯했다. 하지만 그녀의 모진 운명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레이븐사이드의 세 번째 에페 바체. 자네가 나보다 더 명확히 알고 있을, 그 일이 벌어졌지."

아이는 침묵했다. 그렇게 영민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선 살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왜, 왜 도와주시지 않으셨어요."

아이는 떨면서 그렇게 말했다. 얀은 침묵했다. 깊은 한숨이 뒤따랐다.

"움직일 수 없었다네. 이 8년 간, 나라는 인물은 이미 끝까지 소모되었어. 덮어두지 말아야 할 부정을, 대승적 차원에서 덮어주고 비호한 일도 많고, 나를 소모해서 인기 없는 결정과 비겁하지만 해야만 하는 결정을 밀어붙인 일도 셀 수 없지. 그 비극이 벌어지자마자, 조디악은 예지라도 한 듯이 잊혀져 있던 그녀를 갑자기 성녀쯤으로 추켜세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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