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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5화 (6/270)

5화

고생과 끔찍한 기억만이 가득한 이곳에 무슨 미련이 남았을까.

천이영은 비록 거동이 불편하여 오라버니의 품에 안겨 있지만, 보이지 않는 눈은 평생 살아온 집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이곳을 떠나는 날이 올 줄 몰랐어요.”

“벌써 오래전에 떠나야 했을 곳이다.”

천일영은 떠나기 직전, 아버지라는 인간의 혈도를 약하게 풀어 놓았다.

이틀이 지나면 정신을 차리고 삼 일이 지나면 거동을 하게 될 것이었다.

아버지는 모두가 떠나고 아무도 남지 않은 이 집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알 수는 없었지만, 천일영은 그것으로 아버지와 작별을 고했다.

증오와 원망을 말하든 후회와 반성으로 뉘우치든 그것조차 천일영과 가족들은 상관이 없을 터다.

“가자.”

“네, 오라버니…….”

혜령이 떠나는 발길에 뒤질세라 옷깃을 꼭 잡고, 종종걸음의 속도를 더했다.

마르고 부족한 영양 때문인지 혜령의 얼굴에 벌써부터 땀이 차 흐른다.

객잔으로 돌아가자마자 천일영은 배가 터지도록 밥부터 먹여야겠다는 생각부터 했다.

그러나 낙원촌을 나서서 항주 번화가로 들어설 무렵.

“세상에…… 무슨 넝마를 입고…… 아니…… 거지들이 입는 거적이 저 옷보다 깨끗하네요.”

“이게 무슨 냄새야. 비린내에 썩은 내에 코가 삐뚤어져 버리겠구만. 카악, 퉤.”

“거지들도 씻는다는데, 저 여자는 평생 씻지도 않은 모양이구만.”

“옷만큼이나 냄새도 엄청나구먼. 똥통에 빠져도 이보다는 낫겠네그려.”

사람들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큰소리를 내며 천일영과 가족들을 향해 독설을 내뿜는다.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자들도 간혹 있기는 했지만, 골목 어귀에서 눈을 부라리며 독기를 내뿜는 자들이 훨씬 많았다.

‘이 망할 새끼들이 감히 내 동생에게……!’

천일영의 기도가 조용히 열렸다.

십만대산에서도 배고픈 자가 나오면 밥을 나눠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마교인이라는 사람들도 그러한데, 이것이 정녕 마교 밖의 세상이란 말인가.

여동생과 조카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분노가 치솟아 올라 혈광이 떠오를 때, 떨리는 손길이 천일영을 막아섰다.

“하지 마세요, 오라버니. 사실…… 이잖아요…….”

천이영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천일영도 마음이 찢어지고 화가 나는데, 여동생의 심정이야 어떠하겠는가.

천일영이 화를 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었다.

그것은 여동생의 아프고 가난에 찌든 모습을 온 마을 사람들에게 다 보여 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천일영은 걱정되어 바라본 혜령의 표정에 다시 한번 마음이 아팠다.

혜령의 표정이 평상시와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혜령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이런 모진 소리를 들어 가며, 구걸을 하며 살아왔던 것이었다.

‘아버지, 당신은 정말로 지옥에 갈 거요.’

천일영은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원망과 증오를 아버지에게 퍼부었다.

* * *

“어서 오십쇼. 어제 안 돌아오셔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요.”

누가 보아도 이제 막 ‘낙원촌’에서 나온 더러운 행색이었지만, 점소이는 웃으며 탁자의 의자를 빼며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식구들이 조금 늘었네.”

“어제 낙원촌으로 가시더니 좋은 일이 있으셨군요.”

웃으며 말하는 점소이의 뒤로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하나가 나타나서 느닷없이 혜령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에 뭉쳐 있는 때와 먼지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노인의 손길이 멈추지 않자 창피한 마음이 든 혜령이 몸을 비틀고 피해도 혜령의 머리를 따라가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어서 오시게. 내가 객잔 주인일세.”

“처음 뵙겠소.”

객잔 주인은 날카로운 눈매로 천일영과 식구들을 잠시 살펴보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혜령을 쓰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는 노주인은 낙원촌의 행색을 한 채 객잔에 들어온 것이 못마땅한 것은 아닐 터였다.

다만 노인의 눈에는 안쓰러움과 분노가 가득했다.

“장 숙수 있느냐.”

“네, 어르신. 부르셨습니까?”

“몸에 좋은 죽을 만들어서 하루 다섯 번 여자 손님에게 드리고 아이에게는 영양이 많은 음식을 내오거라.”

“영양 죽 말입니까?”

“재료를 아끼지 말고 듬뿍 넣거라.”

“네.”

숙수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객잔 주인은 점소이를 노려보았다.

한심하다는 표정이 한눈에 보이자 점소이가 움찔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선다.

“너는 사람을 구해 오거라. 똑똑하고 십 세 후반의 여자아이가 좋겠구나.”

“갑자기 사람을 왜 구해 옵니까?”

“이놈아! 네 눈은 장식품이더냐!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있지 않느냐. 목욕을 돕고 시중을 드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냐.”

“죄송합니다. 얼른 구해 오겠습니다.”

“아직도 이리 눈치가 없느냐. 은자를 두 냥이나 받아 놓고.”

“그건 또 언제 보셨답니까?”

“사 년을 가르쳤는데도 한참 멀었구나.”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챙겨 주는 객잔 주인의 배려에, 걱정으로 가득했던 천이영과 혜령의 표정이 밝아졌다.

안도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얼굴이었다.

“감사하오.”

“객잔에 오는 손님은 내 가족과 마찬가지일 뿐이외다.”

객잔 주인은 짧은 말만을 남기고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이 마치 곤륜산에 살고 있을 법한 신선의 모습과도 같아서, 피에 절어 있는 자신의 마음과 대조적인 것에 천일영은 낙차(落差)를 느끼고 한숨을 지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도 잠시, 탁자 위로 가득 나오는 음식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혜령의 모습에 천일영의 마음은 다시 한번 쓰라렸다.

혜령은 호화스러운 음식이 풍기는 냄새에 연신 침을 흘리면서도 선뜻 손을 대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혜령아, 다 먹어도 된다.”

“저…… 정말요?”

“모자라면 또 시킬 터이니 전부 다 먹거라.”

“네!”

양 볼 한가득 음식을 넣고 오물거리는 혜령의 눈이 커졌다.

처음으로 먹어 보는 제대로 된 음식이 미각을 찌를 듯 자극하는 것에 혀가 놀란 모양이었다.

돈 때문에 태어난 지 오 년이나 되어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 보았으니 그 맛이 각별했을 터다.

낙원촌의 집을 떠났어도 아버지의 어두운 그림자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었다.

* * *

식사를 마치고 별실로 들어온 혜령이 깨끗한 이불을 보자 구석으로 몸을 옮겨 의자에 앉는다.

자신이 올라서면 아마도 더러워질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천일영은 구석에 앉아 있는 혜령을 안아 들고 침대에 걸터앉아 계속 미뤄 왔던 말을 힘겹게 꺼냈다.

“이영아, 어머니하고 네 남편은 어찌 된 것이냐.”

“어머니와 남편 말인가요…….”

“늦든 빠르든 나도 알아야 할 이야기다.”

“오라버니의 말이 맞네요. 어머니 이야기가 가장 궁금하실 거예요. 어머니는 이상하게도 그냥 사라지셨어요.”

“사라지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오라버니가 팔려 가던 날이었지요. 어머니는 기절해 계셨었어요. 아버지가 오라버니를 팔기 전에 때린 것이었지요. 그리고 나중에 정신이 들고 오라버니가 팔려 버린 것을 알게 되자 정신을 놓으셨다가…… 이후에 갑자기 없어지셨어요.”

“설마…… 아버지가 어머니도?”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아니라고 잡아떼는데…….”

어머니의 행방과는 별개로, 천일영은 마음에 박혀 있는 가시 하나가 빠지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자신을 아끼고 챙겨 주던 어머니가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팔려 나갈 때 어머니는 나와 보지 않았었다.

가난에 못 이겨 변심한 것은 아닌가 하여, 지난 세월 동안 마음 한 켠에 서러움으로 남아 있던 기억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휘두르는 주먹에 기절을 한 것이라니.

“어쩌다 시간이 날 때 어머니를 찾아보았지만 마치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어요. 마을을 떠나는 것을 본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의 생사도 모르게 되었구나. 그리고 이영아, 혜령이 아버지는 어찌 된 것이냐.”

잠시 떠오른 어두운 표정을 애써 지우는 여동생의 모습이, 다시금 천일영의 마음을 불길하게 만들었다.

“오라버니,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 가지만 약조해 주세요.”

“싫다.”

“약조해 주시지 않으면 이야기하지 않을 거예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한테 가지 않겠다고요.”

오라버니가 아버지 때문에 손을 더럽힐 것을 걱정한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가 또 얼마나 천이영에게 못된 짓을 했기에 이런 말을 한단 말인가.

한평생을 괴롭히고 뜯어먹은 것이 분명했지만, 천일영은 알겠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천이영의 표정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저를 어떤 남자한테 팔았었어요. 제가 갓 성인이 되었을 무렵이었죠.”

“너조차 팔았던 것이냐. 그 남자는 어떤 남자였느냐.”

“술을 많이 마시고…… 일을 잘 하지 않는 남자였습니다.”

“그럼 혜령이의…….”

“아니에요. 그 남자는 저와 같이 산 이후 일 년도 안 되어 죽었어요.”

천이영은 말끝에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을 남겼다.

미련조차 남지 않았던 것인지 천이영은 언뜻 매정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슬픔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천일영이 모를 리 없었다.

천일영은 안고 있던 혜령에게 잠시 밖에 나가 있으라며 조용히 웃었다.

“그 남자가…… 그러니까 첫 남편이 죽자 아버지는 굉장히 기뻐했어요. 그 남자의 집을 처분하고 얼마 있지도 않은 재산을 팔아 몇 푼을 손에 쥔 아버지는 하루 종일 웃음을 그치질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혜령이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던 것이냐.”

“아버지는 저를 다시 팔려고 갖은 방법을 다 썼습니다. 그러나 제가 완강하게 버텼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자신의 맘대로 안 되는 제가 미웠는지 때리기 시작했어요. 비가 오는 날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맞다가 결국은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천일영의 옷깃을 잡고 있던 손이 조금씩 떨려 왔다.

비가 오던 그날 생겼던 일이 천이영에게는 행복과 불행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리듯, 마른침이 목을 타고 넘어가고 손의 떨림은 점점 심해졌다.

그리고 결심한 듯 열린 마른 입술에서는,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담담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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