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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6화 (7/270)

6화

“그저 밖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맞는 것도, 매일 끼니를 걱정하는 것도, 팔려 가는 것도, 사라진 어머니도, 그리고 제 자신도 싫었습니다. 아마 그날 저는 죽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에게 맞아서 얼굴이 온통 피범벅이었는데 그게 빗줄기에 씻겨 나가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바다로 뛰어가는데 누군가가 뛰어와서 제 손을 잡았습니다.”

“그럼…… 그 사람이…….”

“네, 그 사람이 혜령이의 아버지였습니다. 혜령이의 아버지는 팔이 잘린 몰락한 검사였는데 보기 드물게 반듯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성품과는 달리 무공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표국에서 일을 하다 산적에게 한쪽 팔을 잃은 것이었지요. 표사의 급여가 많지는 않았던 터라 조용히 낙원촌으로 들어온 사람이었답니다.”

천이영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

가끔 손가락의 떨림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여전히 남의 일을 이야기하는 듯한 말투였다.

“혼자 피를 흘리며 한밤중에 바닷가로 뛰어가는 제가 걱정이 되어 잡으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데리고 간 집에서 한동안 저를 치료해 주고 돌봐 주었었지요. 그러다가 그와 그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여전히 저를 노리고 기웃거렸지만 혜령이의 아버지가 저를 지켜 주었습니다. 아무리 팔이 잘려 몰락한 삼류 검사였어도 무공을 익혔던 사람이라 아버지도 어쩌지 못했어요. 그곳에서 저는 그 사람과 제법 행복하게 살았었습니다. 제가 한번 돈에 팔려 나갔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웃으며 저와 같이 있어 주었습니다.”

“그럼 그 사람은 지금…….”

하늘을 향하려 했는지 천이영의 시선이 천장 끝에 닿았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하늘을 향한 눈길의 끝에는 자신에게 유일하게 잘 대해 주었던 남편의 얼굴을 생각해 내려고 애타게 마음속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을 것이었다.

“혜령이 태어나고 난 후에 그 사람은 딸을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돈을 더욱 벌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왼손으로 다시 칼을 잡았습니다.”

“…….”

삼재검법(三財劍法) 정도만 겨우 익힌 삼류 무사들의 말로는 대부분 비참했다.

시신조차 건지지 못하고 들짐승의 밥이 되는 인생 또한 많았다.

천이영의 남편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가족에 대한 절박함이 컸으리라.

잘린 오른팔 대신 왼쪽 팔로 칼을 다시 잡아야만 했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구나.”

“네, 좋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사람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답니다. 혜령이와 같이 있을 때의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저하고 있을 때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어째서 그런 것이냐. 지아비가 아니냐.”

“잘 모르겠어요. 다만…….”

“이야기해 보거라.”

“그 사람이 한쪽 팔로 힘겹게 일해서 번 돈으로 아내의 증표라며 작은 가락지 하나를 저에게 사 주었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죽고 난 후에 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시 빼앗고 그 작은 가락지마저 제 손가락에서 강제로 빼어 내던 것을 잊을 수 없어요.”

지난 일을 이야기하던 도중 천이영이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지아비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애써 기억을 지우지 못하면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혜령과 같이 있을 때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모습만을 기억에 남겼을 터였다.

“몸이 아팠던 건…….”

“그건…… 아버지는 남편과 같이 살았던 것을, 그리고 혜령이를 낳은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아이가 있으면 저를 팔기 힘들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죽은 이후로는 매일같이 아버지가 저를 때렸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맞던 어느 날…… 어디를 잘못 맞은 것인지…… 무슨 병에 걸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이 조금씩 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몸도 조금씩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요.”

“아버지가 그리도 너를 때렸단 말이냐.”

“…….”

병의 원인은 알고 있다.

천이영의 몸을 치료할 때 머리에 핏덩이가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뇌를 눌러 눈이 안 보이게 만들었을 것이고, 신경을 못 쓰게 만들어 몸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것이었다.

핏덩이는 천일영에 의해서 모두 제거되었지만, 머릿속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얼마나 모진 고생을 했겠는가.

천이영의 몸이 이리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몹쓸 짓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먹을 것조차 주지 않고 천이영이 죽도록 방치한 것이었다.

“약조는 못 지키겠구나. 지금 아버지 좀 보고 오마!”

벌떡 일어선 천일영을 꼭 잡고 천이영이 급히 말렸다.

절박한 표정이다.

그러나 애타게 말리는 여동생의 얼굴도 소용없었다.

자신의 친자식이다.

예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다.

그런데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저는 괜찮아요, 오라버니.”

“내가 안 괜찮다. 딸을! 하나뿐인 딸을 그렇게 때리고, 그것도 모자라 죽도록 방치하다니! 이놈을 지금 당장 죽여 버릴 것이다!”

그러나 천이영은 손을 놓지 않았다.

모두 과거의 일일 뿐이었다.

그저 예전에 있었던 일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아버지를 죽인다 한들 아픈 마음이 달래지지도 않는다.

“전부 제가 나빴기 때문이에요. 제가 다시 팔려 나가기만 했어도. 맞다가 집 밖으로 뛰쳐나가지만 않았어도. 제가 비를 맞으며 바닷가로 가지만 않았어도 그 사람을 만날 일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를 만나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갔을 거예요. 제가 그 사람을 죽인 거예요. 전부 다 제 잘못입니다.”

“그렇지 않다. 이영아, 그 사람은 너와 만나서 행복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다시 칼을 잡았을 일은 없었을 거다.”

“그 사람…… 시신도 돌아오지 못해 무덤도 없답니다. 혜령이에게 아버지의 흔적이라도 보여 주고 싶은데 찾아갈 무덤조차 없어요. 흑…….”

처음으로 소리 내어 천이영이 울음을 터뜨렸다.

자기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는 자책의 마음.

무덤 하나 남기지 못한 남편에 대한 원망.

부부가 같이 혜령이가 커 가는 것을 보는 미래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모든 것은 자신이 그 사람 앞에 나타나서 신기루 같은 꿈을 꾸게 한 죄였다.

“너무 미워요. 제가…… 그리고 그 사람이……. 둘 다 미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흑…….”

천일영은 아버지에게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보다 여동생의 곁에 있지 못했던 자신의 죄가 더 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빨리 돌아오지 못한 것의 대가가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앞으로는 내가 지키마.”

천이영의 눈물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동안 응어리가 진 속마음이 터져 나왔기 때문일까.

해가 땅속으로 어스름한 빛만을 남긴 채, 땅거미가 세상을 덮을 때쯤에야 천이영은 겨우 눈물을 멈추었다.

* * *

마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천이영의 눈물이 끝을 보였을 때, 점소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여인 하나를 데리고 별채로 들어왔다.

아마도 천이영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린 듯했다.

“공자님, 도와드릴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데리고 왔군.”

“환자가 아닙니까. 빨리 데려오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 것뿐입니다.”

점소이가 데려온 사람은 이제서야 어른의 티가 나기 시작하는 20대 초반의 아가씨였다.

특출나게 예쁘지는 않아도 야무진 얼굴에 총기가 가득한 눈을 한 여인은, 혹시라도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얼굴로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점소이가 데려온 사람이니 더 이상 볼 것도 없겠지. 그래, 보수는 얼마가 좋겠는가?”

“공자님, 착하고 효심 깊기로 유명한 아이입니다. 한 달에 동전 30냥 정도가 어떨까요.”

“한 달에 은자 한 냥씩 주마.”

“네에?”

점소이가 데려온 아가씨가 비명에 가까운 대답을 하고는 새빨개진 얼굴로 재빨리 고개를 숙인다.

일고여덟이나 되는 가족들이 한 달에 동전 30냥으로 살아가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무려 은자가 한 냥이었다.

여인이 놀라서 비명을 지를 법도 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다…… 단옥이라 하옵니다.”

“너를 믿기에 내 여동생과 조카를 맡기는 것임을 잊지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공자님.”

“일단은 목욕부터 부탁하지.”

단옥은 젊은 미공자가 말을 할 때마다 귓가를 때리듯,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자신의 가슴에 깊숙이 박히는 것이 신기했다.

내공을 가지고 있는 무인이 하는 말이라는 것을 모르는 단옥은, 처음 느끼는 생소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공자를 자세히 보는 순간 기절할 만큼 놀랐다.

‘어머나 세상에……! 어쩜 이리 잘생겼지?’

단옥은 화끈 달아오르는 얼굴을 급히 숨기고 천이영을 부축하기 시작했다.

* * *

“어쩌면 좋아요. 이렇게 말라서는…… 얼마나 아프셨길래…….”

천이영의 마르고 아픈 몸을 씻기며 눈물 콧물을 한가득 쏟아 내고, 가슴을 치며 한탄을 하던 단옥이 나간 후에 천이영은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보이지 않는 눈이었지만, 그렇게 천장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자니 숨겼던 마음이 조금씩 떠올랐다.

“차마 오라버니에게는 말하지 못했네요. 사실은 제가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는 것을. 비가 오던 그날 밤, 너무도 증오스러워서, 너무도 미워서 하마터면 이 손으로 아버지를 죽일 뻔했어요.”

손가락 사이로 따스한 물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천이영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래서 오라버니가 아버지한테 달려가려고 했을 때 말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죽이지 못한 사람을 오라버니의 손으로 죽게 만들 수는 없었어요. 저는 참으로 치사한 여자네요…….”

살포시 감은 천이영의 눈꺼풀이 떨리고, 작은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 * *

천이영과 혜령이 잠든 늦은 밤.

흔한 안주 하나 없이 술을 마시던 술잔에 비친 달이 가득 찰 무렵, 천일영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많은 사람들을 죽이며 살아온 것을 이영이에게 말을 하지 못하였구나. 말을 하면 네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무서워서 도저히 입을 뗄 수 없었다.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일어설 때 망설임이 하나도 없던 오라버니를 보며 이영이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계속 숨겨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미안했다.

“나는 참으로 치사한 오라버니로구나…….”

답답한 마음에 술병을 들고 바닷가로 걸어 나가던 천일영의 눈에 눈처럼 흰 신형이 들어왔다.

객잔의 주인이었다.

천일영과 마찬가지로 술병 하나만을 놓은 채 바닷가에 앉아 있던 객잔 주인은, 천일영을 보고 손짓을 하며 옆에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이 노인네가 술친구가 없던 참일세. 옆에 앉게나.”

“늦은 밤입니다. 어찌 혼자 계십니까?”

“같이 술을 마시던 말코 같은 놈들이 다 도망을 가지 않았나. 망할 놈들이지. 허허…….”

어지럽게 놓여 있는 술병들 사이로 다 식은 동파육이 놓여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같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천일영은 잘 알고 있었다.

젓가락이 하나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술친구가 일곱이 있었다네. 어느 날부터 하나씩 사라지더니 이제는 한 놈 빼고 나만 남았지. 예전에는 살아 있던 놈들이 이제는 그렇지 못한 게야. 이제는 나도 정리를 하고 은퇴를 해야 할 때가 된 모양일세.”

“아직 정정하시지 않으십니까?”

“바닷가에서 술 한잔하는 게 매일의 낙인데……. 일곱 놈 중에서 하나만 남으니 술맛이 나지를 않는구만. 죽어 버린 놈들은 어쩌겠나. 천명을 다한 것을. 그러나 남은 한 놈은 각별했던 놈이라서 얼굴이라도 보러 가려고 한다네.”

“그래서 은퇴를 하시려는 겁니까.”

“마지막 남은 놈도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 테니…….”

객잔 주인의 손에 편지 한 장이 들려 있다.

예전부터 일곱의 친구들이 보낸 편지를 가지고 바닷가에서 읽던 기억을 애틋한 눈길로 좇는 노인의 눈은, 이마에 주름이 하나 가득 펼쳐질 만큼 걱정이 가득했다.

그동안 여섯의 친구를 먼저 보내는 동안 만큼 무정하게 지나간 세월의 아쉬움도, 살아 있는 마지막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달려가지 못하는 것도 모두 회한으로 남아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가 되었을 터다.

그 때문인지 가만히 가슴을 쓸어내리는 노인의 모습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노인네가 젊은 사람을 붙잡고 쓸데없는 소리를 했구먼.”

마지막 술을 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선 노인의 자리가 마치 앉지도 않은 듯 그대로인 것이 천일영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뿐인가.

객잔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허공에 떠 있는 듯, 은은하게 퍼지는 내공을 사용하는 노인의 발걸음은 모래사장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그야말로 선계(仙界)에서 사는 신선과 같은 모습이다.

“아무래도 이곳이 저분에게는 선경(仙境)인 모양이군.”

천일영이 이른 경지와는 다른 길이었지만, 탈마의 경지에서 보아도 노인의 무공은 대단했다.

초절정 고수의 끝자락.

천일영의 눈을 통해 알아본 객잔 주인의 자질은, 일찍 은퇴만 하지 않았어도 화경의 경지에 어렵지 않게 들어섰을 것이었다.

“빌어먹을 놈의 세상이군.”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무공을 연마해서 경지에 오른 천일영의 절박함이 노인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

경지에 들어설 수 있는데도 그것을 마다해 버리다니.

환경이 너무도 달랐다.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과, 매일같이 목숨을 내걸고 사는 사람.

어째서 같은 사람인데 이리도 길이 다르단 말인가.

“술이 쓰다. 술이 써…….”

살육으로 경지에 도달하고, 마교를 떠난 지금까지도 죄책감과 후회의 마음에 시달리는 천일영으로서는, 경지를 버려도 될 만큼이나 절실함이 없는 객잔의 주인에게 이유 없이 화가 나서 마음속에 어둠처럼 스며드는 격한 감정을 부인하지 못했다.

더더욱 여동생에게 말하지 못한 과거의 이야기가 짐덩이처럼 무거운 마음에 그 입술은 굳게 닫히고, 피가 나올 정도로 주먹을 쥐어 터질 것만 같은 마음을 숨겨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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