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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41화 (42/270)

41화

천일영은 일부러 빠른 발걸음을 문 앞으로 옮겼다.

당연하게도 천일영은 살수 출신이다.

암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암기를 숨기는 사람들의 심리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문에 어떠한 기관 장치들이 숨겨져 있는지 눈에 뻔히 보일 정도였다.

기관 장치의 위치를 가늠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까지는 알 수 없는 법.

퓨뷰뷰븃! 퓨뷰븃!

문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서 빠르게 쏟아져 나오는 화살.

짧게 대를 만들고 깃털의 수를 적게 했다.

화살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만든 화살이다.

비록 정확도는 떨어지겠지만 이 장치를 만든 사람은 그런 것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 눈앞에 어림잡아도 천 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휘이이이잉!

천일영이 손을 앞으로 내뻗자 거대한 바람이 한가득 몰려들었다.

주변에서 공기가 찢어지는 파생음이 터져 나가자, 천일영의 주변으로 뜨거운 바람이 가속되며 몰아치듯 감싼다.

그리고 천일영이 다시 한번 손을 내뻗자 화살들은 방향을 뒤틀며 허공에서 바람에 집어 삼켜지기 시작했다.

오천여 개의 화살은 갈 길을 잃고, 허공에서 서로 부딪히며 서로가 서로를 꺾어 나갔다.

촤르르르륵! 촤르륵! 따다닥. 따다닥!

“제법이구나. 이 정도라면 초절정 고수 끝자락에 있는 자라도 쉽게 당해 내지는 못하겠군. 그러나 이런 장치를 할 정도라면 얼마나 한심한 천주인가. 지킬 것이 그리도 많은가. 그러나 천주, 너는 사람을 지키고 있지 않구나.”

천일영의 눈에 조금의 혈광이 떠오른다.

화가 제법 난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그러나 이 대단하다는 천주의 얼굴을 보기 위해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법이다.

천일영은 빠르게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일영이 문 앞에 도달하자 머리 위에서 끓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기관 장치가 움직이는 소리다.

화르르륵! 화륵!

거대한 두 개의 장치에서 거대한 불길이 아래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불꽃이 아닌 생김새.

불길의 색이 붉은색이 아니다.

무려 검은색의 불길한 불꽃.

붉은 불이 아닌 검은색의 불을 내는 것은 상당한 비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이 천주라는 작자는 제법 발이 넓은 모양이다.

“흑화(黑火)인가. 천마신교나 사혈련에서 쓸 법한 것을 잘도 구했구나.”

천일영은 무극지검을 꺼내어 검의 면을 앞으로 하고 허공으로 뛰쳐 올랐다.

그러자 천일영의 몸에서 나오는 기운을 타고 서서히 불길을 가르기 시작했다.

검은색의 불꽃이 처음에는 무극지검을 집어삼킬 듯 보였지만, 날카로운 예기가 흘리는 날카로움이 불꽃을 꺾고 밀어내는 듯하다 이내 갈라 버린다.

그리고 천일영은 허공에서 기관 장치에 두 번 무극지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차가운 바람이 불꽃을 내뿜는 기관 장치로 날아들었다.

콰과광. 과콰과광!

남아 있는 기름에 불이 붙을 법도 하지만 천일영이 허공을 가르며 만들어 낸 풍압이 기관 장치를 모조리 때려 부수고, 쉽게 꺼지지 않는 흑화까지 모두 허공으로 지워 냈다.

분명 기관 장치를 보호하는 거대한 철갑이 둘러져 있었으나 그것도 소용없이 모두 박살이 나며 날아가는 모습이다.

마치 처음부터 기관 장치의 약점을 알고 있는 듯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으며, 놀라운 흑화를 만들어 내는 기술을 보고도 천일영의 얼굴에는 여전히 비웃음이 남아 있었다.

“잘 만들기는 했지만 천마신교나 사혈련이 보유하고 있는 기관 장치에 비하면 애들 장난도 안 되는구나.”

과거 수많은 기관 장치들을 상대해 왔던 천일영이다.

그가 상대해 왔던 기관 장치는 이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당연히 흑도 조직의 기관 장치로는 대단한 것일 테지만, 암살대에서 살수로 살아온 세월 동안 돌파한 기관 장치만 해도 족히 백 개는 될 터다.

그리고 모든 기관 장치가 부서진 다음 천일영을 가로막는 거대한 문.

이것도 기관 장치는 아니지만 그에 필적할 만하다.

“그렇군. 이 문도 보통의 문은 아니군. 부수기는 조금 아깝지만 어쩔 수 없구나.”

천일영의 장권이 거대한 검은색의 문으로 날아갔다.

* * *

노병천의 천주에 대한 설득은 계속되었다.

상대가 적지 않게 강하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흑천암살대와 지회를 죽이고 부순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확하게는 이미 노병천의 마음속에서는 저 곱상하게 생긴 공자가 이번 일의 주범이라고 확정을 지어 놓고 있었다.

“천주님, 이 노부가 다시 한번 간청드립니다. 부디 다음을 기약하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노병천, 아무리 너라고 할지라도 그 말을 다시 입에 담지 말거라. 네놈이 그동안 해 온 일이 있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까지다. 이 강일택, 천주라는 이름에 부끄러운 실력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그리 말씀하시니 더 이상의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노병천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천주는 분명 대단한 무인이다.

천주의 자리에 오른 지금도 수련을 멈추지 않을 정도로 호승심도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때도 있는 법이다.

‘여기까지인가.’

노병천은 눈앞의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분노에 모든 것을 맡긴 강일택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특히 귀문살의 일이 그의 눈을 어둡게 하고 있다.

노병천은 이제 곧 미흑천이 세상에서 지워지고 사라질 것일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 노부는 그저 제 일을 하러 가겠습니다.”

노병천은 정성을 다해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으로 천주에게 올리는 인사였다. 피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을 숨기고 인사를 마친 노병천은 밖으로 나섰다.

“하아…… 날씨가 정말로 좋구나.”

눈물이 날 만큼이나 따스한 햇빛과 푸르고 청명한 날씨.

아니, 정말로 눈물이 난다.

노병천은 남은 무인들을 모아 진을 짜고 적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천주의 앞을 지키고 있는 장원에는 일류 고수 몇 명과 거의 대부분이 이류 무인, 그리고 한 명의 절정의 고수가 있을 뿐이다.

물론 살수대 삼십 명이 따로 대기를 하고 있기는 하나 그들은 오직 천주의 명령만 듣는 자들.

쿠웅.

첫 번째 전각이 뚫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두 번째 전각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첫 번째 전각은 초절정의 고수가 다섯에 절정의 무인이 열 명.

그리고 따로 선발한 실력 좋은 일류 고수가 일백이었다.

실질적인 미흑천의 모든 고수가 있었는데 벌써 무너졌다.

채 일각의 시간 사이에 벌어진 일.

노병천은 자세를 가다듬고 전각 이 층에서 무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 조와 이 조는 각각 좌우 오장 거리를 두고 삼 조는 앞에서 방패를 들어라.”

“네.”

콰광.

전각을 반으로 나누던 거대한 문이 단 한 번으로 날아간다.

저 문은 천주가 특별히 오목(烏木-흑단 나무)으로 만든 것으로, 일백의 무인이 두 시진 동안 부숴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문이다.

그런 문이 일격에 날아가는 것이 앞으로의 미흑천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순간 충격으로 일어난 먼지가 사라지기도 전 급작스럽게 방패를 든 삼 조의 무인 반이 날아가는 것을 본 노병천은 이를 악물었다.

분명 우려가 현실이 되어 간다.

방패가 소용없을 것은 알았지만 단 일격에 반이 날아갈 줄은 몰랐던 노병천은 눈을 감으며 천주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제 모두 끝입니다. 천주…….’

상대가 사현풍을 일격에 죽이는 실력자라는 것을 알고 미흑천의 고수를 가장 앞에 두었고, 무공이 약하여 죽을 것이 뻔한 자들을 뒤로 빼낸 것이 바로 노병천이었다.

그리고 지금 노병천은 남은 무공이 약한 자들로 조를 짜고 마지막 싸움을 시작한 것이었다.

최소한 천주가 정신을 차리고 도망가길 바라는 마음.

시간 벌이밖에 안 되지만 노병천은 자신의 특기인 병법(兵法)으로 천일영을 상대했다.

“삼 조 빠지고 이 조가 옆으로 공격. 창을 사용하라.”

노병천은 쉴 새 없이 명령을 내렸다.

“일 조는 적을 둥글게 감싸고 뒤에서 남은 삼 조가 방패로 길을 차단하라.”

그리고 노병천이 내리는 적절한 명령은 오히려 천일영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일 조의 다친 자는 뒤로 빠져라. 그 자리를 삼 조의 남은 자로 채우고 삼 조의 이름은 버린다.”

병법을 다루는 사람은 중원에 많지만 무공이 약한 자들을 모아 이 정도로 시기 적절하게 운용을 하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특히나 평야와 같이 공간이 많은 곳보다 이렇게 협소한 공간에서 운용하는 병법은 특히나 어렵다.

그런데 그것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저 노인이 운용하는 병법은 마치 일백오십의 무인이 한 몸인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가.

‘이놈 제법이구나. 이 정도면 반 수에서 두 수 더 높은 자들까지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음이다.’

그러나 노병천은 몰랐을 것이다.

눈앞의 상대가 중원 제일의 무인이라는 것을.

천일영조차 그 실력을 인정할 정도지만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전열은 노병천을 절망에 빠트린다.

그러나 노병천은 포기하지 않았다.

빠르게 무너지는 전열을 다듬고 남은 무인들로 새로운 진을 만들어 낸다.

‘이 정도라면 나 역시 전장에서 본 적이 없을 정도다. 이런 자가 왜 미흑천에 있는 것인가.’

마치 그림자 같다. 천일영이 오른쪽으로 신형을 날리면 절묘하게 방향을 가로막고, 왼쪽으로 움직이면 길을 틀어 그곳에 아무도 없게 만든다.

마치 움직이는 뱀처럼.

그리고 하늘을 나는 용과 같이.

실력이 한참 모자란 자들조차 예리한 검을 날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그 능력은 신묘함이라는 말을 붙여도 모자라지 않을 터.

‘상대가 내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이곳에서 결판이 났을지도 모르겠군.’

천일영의 얼굴에 살며시 웃음이 머문다.

실력은 감탄을 자아내게 하지만, 그것이 더 이상 지체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기에.

천일영은 빠르게 남은 무인들의 단전을 부숴 나갔다.

“상대가 나빴다, 노인.”

파바박! 빠악! 퍼버벅!

“크악.”

“쿠엑.”

“으아악.”

잔인할 수도 있다.

일류 고수와 이류 무인을 이토록 짓밟는 것은. 그러나 싹을 잘라 내는 것도 모자라 그 뿌리까지 전부 뽑아 버린다고 했지 않은가.

자신의 터전에 있어서는 안 되는 놈들이거늘, 사정을 봐주는 짓 따위 할 리 없다.

파바바방!

털썩.

마지막 남은 무인 하나가 기어이 쓰러지고 노병천은 고개를 숙였다.

채 반각이 안 되는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총 일백오십 명의 일류 고수들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심지어 조장들은 절정의 고수.

그러나 노병천의 눈매가 떨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단 말이냐. 이 무슨…….”

일백오십의 무인 중에서 목숨을 잃은 자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단전이 부서져 쓰러졌을 뿐이었다. 마음먹고 죽인다 해도 반각이라는 시간이 모자랄 텐데 죽이지 않고 반각이었다.

노병천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시간 벌이도 되지 못한 것이었다.

심지어 고운 비단옷을 입은 여인은 검을 안은 채 싱긋 웃고 있었고, 점소이 옷을 입은 자는 입구 쪽의 정리가 끝났는지 나중에 모습을 드러내고는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다.

“혼자서 이 모든 사람을…….”

저벅. 저벅. 저벅.

마치 저승사자의 발걸음처럼 천천히 계단을 올라온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는 살수대.

그들은 그림자에 숨어서 침입자의 목을 후벼 파고 피를 바닥에 뿌리는 사람들. 그러나.

휘이이잉! 파바바방! 빠아아앙!

눈앞의 남자가 휘두르는 검에서 대기가 터지는 소리가 난다.

도대체 어느 정도로 빠른 속도의 검이길래 공기가 갈라지고 공간이 터져 나간다는 말인가.

“크흑…….”

“놈…… 어느새…….”

순식간에 계단과 복도 사이에 숨어 있던 살수대가 피를 뿜어내며 바닥으로 쓰러진다.

그들은 단전까지 파괴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온몸의 뼈와 근육이 갈가리 찢겨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이다.

그리고 그들이 뿜어내는 피가 온통 바닥과 계단을 흥건히 적시며 미흑천의 터전을 피로 물들였다.

그토록 미흑천이 자랑하던 살수. 그들이 고작 검 몇 번에 모두 비참하게 쓰러졌다.

저벅. 저벅. 저벅.

젊은 공자의 모습이 드디어 신형을 드러내며 노병천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노병천은 자신의 주저앉은 몸을 애써 일으켰다.

이곳에 이제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더 이상 이 앞으로는 못 간다.”

굳은 결의로 심지가 굳은 눈.

노병천이 천일영의 앞을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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