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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51화 (52/270)

51화

객잔의 터에서 발걸음을 돌린 천일영이 목을 좌우로 꺾어 가며 몸을 풀었다.

때마침 천지일축공의 여러 가지 단점을 염두에 두어 새로운 개량법을 생각해 두었는데 운남성까지라면 시험을 해 보기에 딱 좋았다.

“날씨가 좋구나. 마침 귀주성에도 볼일이 있으니 오늘은 그곳에서 묶을까.”

스윽. 파방!

천일영의 신형이 천지일축공을 사용하여 쏘아져 나갔다.

전에는 충격이 너무 강해지는 것을 우려하여 기를 얇게 펴고 발로 지면을 디뎠다면, 지금은 기를 조금 두껍게 펴고 대신 넓은 지면을 만들어 발을 내디뎠다.

정확하게 말을 하자면 천일영이 이번에 손본 천지일축공은 땅을 밟을 지면에 미리 기를 다듬은 공간을 펼쳐 놓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소리도 거의 나지 않고, 훨씬 더 빠르게 지면을 흐르듯 타며 경공술을 펼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듯하군. 또한 미리 길을 깔아 놓으니 몸도 편하구나. 이동한 흔적도 깔아 놓은 기를 밟는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일석이조인가.”

극마, 흔히 정파의 무인들이 말하는 화경의 경지에 이르면 몸 안의 기를 밖으로 꺼내어 원하는 대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초절정 고수가 검강을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것으로, 화경에 이르지 못하면 기를 사용할 때 자신의 몸을 통해서 펼쳐야 했다.

탄기와 같이 잠시 기운을 유지하다가 소멸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몸과 기가 떨어지면 기운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극마, 즉 화경부터는 몸 밖으로 꺼낸 기를 따로 운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것을 응용한 것이 바로 이기어검(以氣馭劍)이다.

금채홍의 몸 안에 넣어 준 금빛의 진기로 만든 실도, 몸 밖으로 기를 빼내어 형태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도 탈마의 경지에 오른 천일영에게는 원할 때 언제나 기를 꺼내고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

그러니 길 위에 기를 펼치고 빠른 경공술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헌데 빠른 것도 중요하지만 이 정도의 기가 소모되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세 시진 후에는 조금 지치겠군.”

새로운 천지일축공이 사용하는 기의 양은, 극심한 기의 소모로 이어진다는 이기어검에 비해도 약 일백 배에 달했다.

거의 무한에 가까운 기의 덕분에 무리 없이 사용은 하고 있지만 무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빵점.

오직 천일영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이다.

“일단 나중에 손을 보도록 하지. 지금은 밖에 나온 것만으로도 기분이 많이 좋아지는구나.”

천일영은 월영의 일을 잊고 싶기라도 하듯 더욱 내공을 끌어 올려 바람처럼 신형을 날렸다.

* * *

귀주성에 도착했지만 해는 아직도 천마신교가 세운 거대한 성벽을 비추는 시간이었다.

이곳은 광동성과 광서성, 그리고 일부 귀주성을 연결하는 십만대산의 산자락에 맞춰 외세로부터 천마신교를 지키기 위한 기나긴 성벽이 설치되어 있고, 크나큰 성벽의 가운데에는 높이가 10장에 달하는 높은 출입문이 성채와 함께 웅장한 모습을 자랑했다.

또한 마교라 하여 세상이 무서워하는 것과는 달리 천마신교의 정문 바로 앞에는 커다란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천마신교와 교역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성문을 통해 나오는 천마신교의 사람들이 밥을 먹는 객잔과 일상품을 거래하는 자들로 인해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귀주성의 알려지지 않은 도시, 귀천명(鬼天命). 이름은 무섭지만 이곳은 그 어느 곳보다 활기가 넘쳤다.

천일영은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적어도 자신이 사라진 이후 귀천명에 사는 사람들이 영향을 받지는 않은 것 같았다.

비록 천마신교의 천마로 살았었지만 탈마의 경지에 오른 이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덕에 편한 발걸음을 옮긴 천일영은 제법 큰 장원 앞에 도착했다.

“회주님을 만나러 왔다.”

“약속을 한 것이 아니라면 기다리시오. 회주님은 바쁘시오.”

“기다리지. 천무탁이 찾아왔다고 회주에게 전갈을 넣거라.”

천무탁이라는 이름은 무명암살대부터 사용하던 가명 중의 하나였다.

천일영은 이름을 대고 장원 대문 앞 벽에 몸을 기댔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들고 뛰어가는 모습과 예쁜 소저들이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문지기가 손짓을 하며 부른다.

“천무탁이라고 했지? 다행히도 회주님께서 바로 보자고 하시는구나.”

“고맙군.”

문지기가 안내하는 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깔끔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거들먹을 피우며 의자에 앉으라는 손짓을 한다.

천일영이 편하게 의자에 기대자 중년 남자는 문지기에게 거만한 말투로 명령을 내렸다.

“문을 닫고 나가되 주변에 있는 자를 모두 물리거라.”

“하지만 그리하시면 회주님께 무슨 일이 생겨도 저희가 늦어집니다. 이자가 누구인지 아시고 그런 위험한 일을 하십니까.”

“잔소리가 많구나. 내가 이런 비실한 공자에게 당하기라도 할 것 같으냐. 당장 시키는 대로 하거라.”

“아…… 알겠습니다.”

문지기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문을 닫고 나갔다.

이후 잠시 동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물러가는 소리가 방 안으로 소란스럽게 들려왔다.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던 남자는 인기척이 사라지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죄송합니다, 천마님. 이번에도 결례가 많았습니다.”

“앉거라. 정체를 숨기고 있으니 어찌할 방도가 없지 않느냐.”

“천마님을 한번 뵐 때마다 수명이 삼 년씩은 깎이는 느낌입니다.”

“하오문 귀주성 지회를 맡고 있는 사람의 간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작구나.”

“십 년이 아니라 삼십 년이 지나도 똑같이 작을 겁니다. 천마님을 상대로라면 말입니다.”

하오문 귀주성 지회 회주 윤의강. 그는 십 년 전 천일영이 목숨을 구해 준 이후로 자처하여 충성을 맹세했다. 그것이 하오문을 배신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천일영의 정체를 하오문에 알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천일영이 천마를 그만두고 지금은 세상에 나와 있다는 것 역시 그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물론 천일영을 배신하면 자신의 목숨도 온전하게 보존되지는 않을 테지만.

“혹 도현에게 편지가 와 있느냐.”

“두 통이 와 있습니다.”

윤의강은 벽에 걸린 족자 뒤에 있는 비밀 문을 열고 편지를 꺼내 건네었다.

비밀 문 안에 무슨 기관 장치가 되어 있는지 종이는 습기 하나 없이 마른 소리를 내며 천일영에게 읽혀졌다.

“이 편지에 적혀 있는 내용 중에 혹 아는 것이 있느냐.”

“읽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천일영이 건넨 편지를 읽으며 윤의강의 눈동자가 조금씩 떨려 왔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 천마에 관련된 것이었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저는 이해가 안 갑니다. 천마님은 폐관 수련에 들어간 것으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미 세상으로 나오신 분. 마땅히 다음의 천마를 뽑아야 하거늘 일절 마왕들이 의논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지금쯤 마왕들이 자신의 세력으로 새로운 천마를 옹립하기 위하여 피 튀는 언쟁을 벌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게다가 편지에는 명천마왕 소초련이 다른 마왕들에 의해서 밀려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왕은 가문에 의하여 대물림이 되는 것. 이것도 이해가 안 가는 일입니다.”

“어찌 된 것인지 정보를 모아라. 네가 천마신교에 넣어 놓은 하오문의 간자들이 일백은 넘을 터다.”

천일영의 말에 윤의강은 뒷머리를 슬쩍 긁었다. 천마가 세상 밖으로 나오자 무려 칠십의 간자를 십만대산에 투입했다.

추후 천마신교가 천마에 관련된 것을 발표하기라도 하면 그동안 모아 놓은 정보를 비싼 값에 팔아넘길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처음부터 있던 간자 삼십을 제외하고도 무리를 해서 더욱 정보를 캐기로 한 것이었다.

“이 편지 이외에 천마신교는 어떻더냐.”

“그것이 조금……. 마왕들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마왕들이 급작스럽게 돈을 긁어 들이고 있습니다. 새로운 상단을 만드는가 하면, 또한 그 돈으로 천마신교의 신도를 늘리기 위한 포교 활동을 늘리고, 무인들의 양성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귀주성 전투의 결과를 보고도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인가.”

“전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인들을 늘리고는 있지만, 식량을 쌓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천일영은 도현이 보낸 편지를 불에 태웠다.

천마신교에서 생기는 일을 생각하면 기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행동에 나서지 않은 듯하니 한걸음 물러서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을 내려도 될 터다.

선장이 죽은 배가 표류하는 것과 같이 지금의 천마신교는 방황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 보였으니까.

“하나 더. 혹 지천번회(地天飜會)라는 것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느냐.”

“지천번회? 그런 발칙한 이름을 사용하는 놈들도 있습니까? 죽고 싶어서 발악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신이 나간 거 아닙니까.”

“모든 정보를 모아라. 하오문의 회주인 너조차 모를 정도면 지나치게 은밀하다. 그것이 오히려 마음에 걸리는구나.”

탁.

천일영이 금화 열 냥을 탁자 위에 올렸다. 그것을 본 윤의강의 목울대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금화 열 냥이라면 정보 중에서도 최고가에 거래되는 극비의 것.

또한 이것은 하오문에 정보를 돌리지 말고 윤의강 혼자만 알고 있으라는 입막음비까지 포함된 것이다.

윤의강은 돈을 슬그머니 옆으로 밀쳐 놓고 평정을 가장했다.

“천마님, 오늘은 여기에서 묶고 가시겠습니까?”

“그럴 생각이다.”

“그렇다면 좋은 곳으로 모시지요.”

윤의강이 앞장서 문을 열고 나섰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기루.

천일영은 마땅치 않았지만, 거절하면 윤의강이 제대로 대접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한동안 마음을 졸일 테니 그대로 따라 들어갔다.

귀주성 제일의 기루 천혜향루(泉憓饗樓).

오 층에 이르는 높은 전각에, 화려한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아 귀주성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제법 손님이 찾아든다는 곳이다.

기녀(妓女) 역시 명 최고의 진회팔염(秦淮八艶)에 뒤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천마로 있을 때 몇 번 이야기를 듣기는 하였지만 딱히 관심을 두지 않은 곳이었다.

“가장 높은 층의 가장 좋은 방으로 준비하거라. 또한 기녀 민가희와 송체란을 오늘 하루 통째로 살 터이니 불러오도록 하고.”

“저기…… 민가희와 송체란은 천혜향루에서도 최고의 기녀. 하루를 사려면 한 사람당 은자 오십 냥씩 들어갑니다.”

“상관없다. 불러오기나 하거라.”

기루의 여주인이 고개를 숙이고 나간 이후, 이 각이 지나자 술상과 화려한 기녀가 방으로 들어섰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윤의강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술잔을 내밀었다. 최고의 기녀라는 이름답게 술을 마시기도 전부터 미모에 취하는 기분이다.

“듣던 대로 귀주성 제일의 미인이구나. 안 그렇습니까?”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다.”

천일영이 기묘하다는 표정과 무심해 보이는 얼굴을 보이자 곁에 앉은 기녀 민가희가 조용한 웃음을 지었다.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 온 탓에 그녀는 술을 따르며 몸을 살짝 밀착시켰다.

“공자님은 농담이 능하십니다. 기녀를 옆에 두시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으시니 소녀 공자님의 진심이 궁금해집니다.”

“농담 아니다. 평범한 얼굴인데 왜 미녀라고 불리는 것이냐.”

“네에?”

매일같이 여동생 천이영과 금채홍의 미모를 보아 왔으니 최고의 기녀라고 해도 그저 그런 얼굴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일.

귀주성 최고의 미인이라고 한들 천일영에게는 들풀같이 흔한 얼굴로 보였다.

민가희는 자존심이 상하여 몸을 좀 더 밀착시키려 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끄응! 끄응!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다가가려 하는데 오히려 밀려나다니?’

얼굴이 붉어지며 자존심이 있는 대로 상한 민가희가 주먹을 꽉 쥐고 공자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오랫동안 기녀로 살아왔지만, 난생처음 보는 귀공자 같은 얼굴. 단정하고 깨끗한 얼굴에 잠시 숨을 쉬는 것도 잊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제법 시끄럽구나.”

“소녀가 알아보겠습니다.”

윤의강의 말에 송체란이 몸을 일으키고 밖으로 나섰다가 반각이 지난 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돌아왔다.

기녀 생활을 하던 중에서도 가장 크게 놀란 듯 가슴을 움켜쥐고 심하게 떠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닌 듯했다.

식은땀을 흘리던 송체란은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체란아? 왜 그러니?”

“밖에 손님이 오셨는데 천마신교의 천마님이 오셨대. 그런데 우리를 찾으신다고…….”

“처…… 천마?”

천일영과 윤의강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얼굴을 마주 보았다. 천마라는 것이 이렇게 흔한 것인가 하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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