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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67화 (68/270)

67화

“이미 팔 할인가.”

“팔 할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해남도가 적에게 팔 할이 넘어갔다는 것이다.”

설려온과 매호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상한 일이 연거푸 생겼지만 그것이 해남도를 장악하기 위한 계략이었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한 일이다.

사귀진도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젓고 설려온에게 봇짐을 건넸다.

“거의 도착한 듯하다. 어서 변장을 하거라. 특히 설려온과 매호란은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알겠습니다.”

유향설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 눈치였다.

적이 가진 패를 읽어 보려는데, 잘 안 되는 것이었다. 사귀진과 수많은 경험을 했던 유향설은 적의 정체를 모를 때 해야 할 행동을 잘 알고 있었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이 정도의 일을 도모하려면 가능한 자가 누구겠습니까?”

“사혈련과 천마신교가 가능하겠구나. 구파일방은 불가능할 터이고, 오대 세가라면 남궁세가나 사천당문 정도일 것이다. 허나 그들이 이런 일을 꾸밀 이유가 없다.”

“목적과 세력 모두 가늠할 수 없습니다. 저 훈련받은 맹금류를 보건대 한 마리에 금화로 거래가 될 것입니다. 이것만 해도 금화가 수백 냥이 들 터인데 해남도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니…….”

적을 알지 못하면 행동에 제한이 걸린다. 무림의 원칙 중 하나다. 때문에 정보를 파는 개방과 하오문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조차 해남도의 일을 몰랐다. 그만큼 은밀하게 진행되는 일 앞에서 유향설은 조금의 공포까지 느끼고 있었다.

“다 왔습니다. 이곳에 배를 대면 됩니다.”

배를 모는 선원이 매호란의 손짓에 따라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여섯의 사람은 모두 해남도의 후끈한 기온을 느끼며 땅에 발을 디뎠다.

“이것까지는 생각을 못 했네.”

“그러게 말이에요.”

사귀진은 금채홍과 설려온, 그리고 매호란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속에 솜뭉치를 하나 가득 물어 형태를 변화시키고, 체형을 바꾸려고 몸 안에 솜을 집어넣었다.

해남도의 더위는 찜통이라 할 만했다. 덕분에 세 사람은 죽을상을 하며 땀을 흘렸다.

“조금만 참거라. 그리고 귀진아.”

“네,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기감에 걸린 다섯의 사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해안선을 따라 빈틈없이 동선을 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반각이 지나기도 전, 다섯의 남자가 각기 그물과 낚싯대를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은 느닷없이 나타난 신형에 기겁을 하며 괴성을 질렀다.

“어이쿠! 깜짝이야. 이런 곳에 사람이 있을 줄을 생각도 못 했구먼. 아이고 놀래라.”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습니다. 혹 고기가 잘 잡힙니까? 저희도 내일쯤에는 낚시를 해 보려고 합니다만.”

“해남도의 사람이 아닌 모양이구먼. 여기에서 저 아래로 일 리쯤 걸어가면 야트막한 절벽이 하나 나오는데, 그곳에서 낚시를 해 보시구려. 고기가 제법 잡힐 거요. 명당자리거든.”

“초면에 명당자리를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그럼 내일 고기 많이 잡으시오.”

다섯의 어부들이 등을 돌리고 가던 길을 향해 방향을 돌렸다. 천일영은 어부들에게서 등을 돌리며 살기를 품은 눈을 번득였다.

“처리하거라.”

“네.”

대답은 사귀진이 했는데 순간 유향설의 신형이 튀어 나갔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검이 하얗게 빛을 발하는 순간, 빛무리가 일제히 다섯으로 나뉘며, 다섯의 어부들이 목에서 핏줄기를 뿜어내며 쓰러졌다.

콰직! 촤아아악!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극에 설려온과 매호란은 그 자리에서 온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도 놀란 탓이다. 분명 물고기를 잡아 하루를 연명하는 어부들일 뿐인데 어째서 죽이는지 이유도 알지 못했다.

“어째서 그들을 죽이시는 것입니까? 그들은 그냥 어부일 뿐입니다.”

“마…… 맞습니다. 정체가 탄로 날 것을 우려해도 이것은 너무한 처사입니다.”

설려온과 매호란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천일영과 유향설의 표정은 반대로 심상치 않았다.

잔혹한 표정이었다. 유향설은 즉시 죽은 자들의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고운 유향설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역시 이놈들, 간자(間者)입니다. 검을 숨기고 있고, 또한 이런 것도 가지고 있네요.”

“비침?”

천일영은 유향설이 건네주는 비침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몸에 숨기고 있던 검은 어부로 정체를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지만 이상하게 짧았다.

이것은 무인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인 검이 아니고,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비침은 그 사용 흔적이 제법 되는 걸로 보아 간자들이 살수처럼 암기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살수인가. 아니면…….”

“살수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허나 독을 다루는 놈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언뜻 보면 그렇지만 반대로 이상하구나. 비침에 독을 발라야 상대편을 신속하게 처리하거늘, 이 크기의 비침을 던져 봐야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할 터인데.”

2치 길이의 비침이다. 작은 비침은 원래 독을 발라서 사용한다.

몸 안에 있는 혈도까지 비침을 날려 맞출 수 있는 초고수라면 응당 이것도 위협적인 무기가 되는 것은 맞지만, 지금 죽은 다섯의 무인은 유향설이 검을 빼어 들고 휘두를 때까지 눈치도 채지 못한 자들이다. 모두 삼류 무인이니까.

‘뭔가 작위적인 냄새가 나는군. 일부러 독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것인가?’

숨기는 것이 있지 않는다면 이런 조합의 무기를 들고 다닐 리는 없다.

천일영은 비침을 품 안에 집어넣고 유향설을 바라보았다. 유향설은 천일영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즉시 무인들의 옷을 벗기고 남아 있는 흔적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각이 지나는 시간 동안 몸의 흔적을 찾았지만 아무것도 발견이 되지 않았다.

“공자님, 아무래도 이놈들 이상할 정도로 흔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놈들 어쩐지…….”

“그래, 아마도 천마신교나 사혈련 쪽 관련은 아닌 듯한 놈들이다. 아마 혈교나 아니면…….”

천일영은 정파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잠시 그리면서도 망설였다. 정파가 같은 정파인 해남파를 멸문시키면서까지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해남도는 정파가 아니라 지리적으로 오히려 천마신교에서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천일영은 하나의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설마?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내가 너무 앞서 생각한 것 같군. 천마신교일 리가.’

천일영은 아직도 시신을 뒤지고 있는 유향설의 팔을 부드럽게 잡았다. 분명 바닥에는 같은 자리를 밟고 다녔기 때문에 풀 한 포기 없이 길이 생겨 있다.

이 말은 많은 간자들이 이곳을 지나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유향설이 느닷없이 잡힌 팔목에 얼굴이 조금 붉어지며 시신을 땅에 내려놓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시신을 처리하고 이곳에서 다음 간자들이 올 때까지 숨어 있다가 그들의 거처를 알아 오거라.”

“알겠습니다.”

“미안하구나. 원래는 너 정도의 고수가 할 일이 아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제가 놈들의 거처에 대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알아 오겠습니다.”

천일영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유향설을 자리에 남겨 둔 채 해남파의 본문으로 신형을 날렸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방금 전 만난 어부를 가장한 놈들이 이미 해남도의 전체를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천일영은 여러 가지의 수를 생각하다 문득 자신을 뜨겁게 바라보는 설려온의 눈빛을 느꼈다.

“죽은 다섯의 어부가 어찌 간자인 것을 알았는지 궁금한 것이냐.”

“정말로 궁금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놈들은 내가 낚시를 할 만한 곳을 물었을 때 자기들이 지나온 방향에 고기가 잘 잡히는 곳이 있다고 했다. 원래 물고기를 잡는 사람은 입질이 오는 장소가 날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입질이 없으면 장소를 옮기지. 그러나 그자들이 명당자리를 지나오면서도 물속에 낚싯줄을 담근 흔적이 없었다.”

“아…… 과연!”

“또 하나는 그물이다. 굉장히 오래 쓴 그물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모래사장에 그물을 비벼서 낡아 보이게 만든 것이다.”

“그것을 어찌하십니까? 그물에 모래라도 있었습니까?”

“그물에 해초 조각이 단 하나도 없었다. 바다에 던지는 그물은 아무리 깨끗하게 씻는다고 해도 작은 해초 조각 몇 개는 달려 있는 법이다. 그런데 너무도 깨끗했지.”

설려온과 매호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놀라운 관찰안이다. 사실 천일영은 살수 출신이기 때문에 신중한 것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설려온과 매호란은 한 수 배웠다는 의미로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많이 배웠습니다, 공자님.”

“초절정 고수라고 해도 죽는다. 함정이나 계략에 빠지면 말이다. 잊지 말거라.”

“네, 가르침 감사합니다.”

천일영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해남도에서 벌어지는 일이 불길하다. 그것은 단순히 해남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무림에 크나큰 소용돌이를 몰고 올 것만 같은 예감이었다.

* * *

허억, 허억.

매호란은 땀을 줄줄 흘리며 길을 안내했다. 그리고 이 각의 시간이 흐르자 해남파의 본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쪽입니다. 뒤로 돌아서 들어가는 길이 있습니다.”

“안내하거라.”

천일영은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기감으로 살펴보고, 매호란이 안내하는 숲속 오솔길로 들어섰다.

매호란은 좁은 길의 끝에 덩굴이 잔뜩 얽혀 있는 작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매호란과 설려온은 분장을 지우고 해남파 문주의 집무실로 안내를 시작했다.

드르르륵.

문이 열리자 머리가 하얗게 변해 백발에 가까워진 설의룡이 쌓여 있던 종이 틈바구니에서 머리를 들었다. 아무리 문파가 기울어 가도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오랜만이군, 설의룡.”

“너…… 너……! 진짜 밖으로 나와 있었구나!”

설의룡은 벌떡 일어서 천일영의 손을 꼭 잡았다. 설의룡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무려 이십 년 만에 만나는 사람이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견디기 힘들 때도 있었지만,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 연락 한번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동안 폭삭 늙었네.”

“네놈은 예나 지금이나 반말이구나. 게다가 모습도 바뀌고 전보다 더 젊어졌구먼. 빌어먹을.”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천일영은 즉시 고개를 돌려 사귀진을 바라보았다. 사귀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눈을 두 번 깜박이는 사이, 사귀진이 오른손에 남자 하나의 목줄을 쥐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커…… 커헉.”

“조용히 해라. 신음 소리를 내면 죽인다. 네놈, 왜 우리들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자 발걸음을 돌려서 문 앞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냐. 또한 빠르던 발걸음이 문 앞에 와서는 늦어지고 있었겠다?”

“커헉! 그…… 그것이 아니라…….”

순간 설의룡은 당황했다.

사귀진의 손아귀에 잡혀 온 남자는 다름 아닌 자신이 아끼는 수하 진협교다. 어릴 때부터 무재를 인정받아 도지휘사의 소개로 해남파에 들어온 지 벌써 십오 년.

그동안 진협교는 해남파의 갖은 일을 도맡아서 해 오며 설의룡의 신임을 가득 받고 있었다.

“저기……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그 사람은 내가 아끼는 수하라네. 내 방문 앞을 지나고 있던 것은 언제나 있는 일이니 그만 놓아주는 것이 어떤가.”

“마…… 맞습니다. 저는 이 앞에 볼일이 생각나서…… 크헉.”

그러나 사귀진의 손아귀에 내공이 들어가자 조이는 힘이 점점 더 강해졌다.

천일영도 사귀진이 진협교의 목줄을 조이는 것을 딱히 말리지 않았다. 천일영과 사귀진은 이미 해남도에 들어서면서부터 기감을 통해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동선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해남파의 본문에 들어서면서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다니는 해남파의 본문 안에서도 완전하게 모습을 숨길 수는 없는 법.

아니, 정확히는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없는지 보기 위해서 일부러 모습을 조금 흘렸다. 그것에 딱 진협교가 반응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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