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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82화 (83/270)

82화

추자룡과 서후량은 서로 눈짓을 하며 웃음을 지었다. 이미 추자룡이 와 있는 것을 알고 서후량은 안과 혜가 몸을 일으켜 도망가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

“젠장…….”

그 사실을 이제야 눈치챈 금태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목숨을 걸고 아이들을 구하려 했지만 이래서는 개죽음을 맞이하게 될 뿐이라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스릉. 스르릉.

하지만 떨리는 손으로 안과 혜가 비룡맹검과 별학맹검을 뽑는 것을 보고 금태석은 웃음을 지었다. 도망조차 가지 못했던 아이들이 검을 뽑을 정도까지는 각오를 굳힌 것이다. 금태석은 기운을 끌어 올렸다.

“이래 봬도 단주님께 직접 무공을 사사받은 몸이다.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군. 네놈, 절정 고수 중에서도 제법 대단하다는 게 느껴지는구나. 이래서 천일영이 문제라는 거다. 살수 단체가 이렇게 강하다는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지. 게다가 본인 스스로는 극마의 경지에까지 오르다니.”

“뭐라고? 네놈, 그것을 어찌?”

순간 금태석은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뭔가 이상했다. 추자룡이 배신했으니 단주가 극마의 경지에 오른 것이 탄로 난 것이야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아까 잠시 서후량과 추자룡이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 그것을 알기에는 무리가 있다. 천마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란 시간이었기에.

“설마 네놈들이 찾고 있던 정보라는 것이!”

“이런, 말을 너무 많이 했군. 뭐 어차피 죽을 놈들이니까 상관은 없지만.”

그러나 서후량의 눈빛은 말실수했다고 한 것과는 반대. 금태석은 일부러 말을 흘린 서후량의 잔인함에 검을 꽉 쥐었다. 이것은 살아남아 말을 전달하고 싶다면 이겨 보라는 도발이다.

‘망할 놈, 살수의 기질이 강하다고 하더니.’

서후량은 적의 심리를 자극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허나 금태석은 서후량에게 휘둘리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서후량을 상대로 이길 생각조차 없었다. 자신도 절정 고수의 끝자락이지만 서후량은 초절정 고수의 끝자락이다. 서후량은 그야말로 무공의 천재.

금태석은 자신의 등 뒤에 매여 있는 또 하나의 검을 들었다. 단주에게 사사받은 쌍검술. 딱히 이름이 지어지지 않은 검술이지만 이것으로 방어 위주의 검술을 펼칠 수 있었다.

‘젠장, 안과 혜만 아까 도망갔더라면 단주와 술 한잔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시간을 끌어 보려는 금태석이었지만 불가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도 검을 또 하나 꺼낸 것은 하다못해 잠시의 빈틈만이라도 만들 수만 있다면, 그래서 안과 혜에게 틈을 만들어 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카앙. 카앙!

순간 금태석이 뒤를 돌아보았다. 난데없이 울린 검의 소리.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한데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 것이었다.

“꺄악!”

“크흑!”

순간 금태석은 안과 혜만큼이나 절망에 사로잡혔다. 추자룡의 검이 소리도 내지 않고 안과 혜가 들고 있는 비룡맹검과 별학맹검을 날린 후 목에 검을 들이밀고 있는 것이었다.

안과 혜는 추자룡의 검을 단 한 번도 막아 내지 못했다. 아니, 하다못해 막지는 못한다 한들 검만이라도 손에 쥐고 있었다면 저리 쉽사리 목을 내어 주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어디, 네놈의 충성심이 어떠한지 보고 싶구나. 아까 무명암살대의 단주에게 목숨을 맡겼다고 했겠다?”

“남자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

“그런가? 그렇다면 내가 네놈을 죽일 때까지 꼼짝도 하지 말거라. 견뎌 낸다면 음양쌍녀의 목숨 줄을 늘려 주지. 만약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저 계집년들의 목부터 떨어질 것이다.”

챙그랑. 챙강.

금태석은 말 대신 양손에 들고 있는 검을 놓았다. 유독 조용한 주변에 검이 떨어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서후량은 자신이 들고 있는 검에서 검강을 지우고 높이 들어 금태석의 뒷목에 세로로 대었다.

“흐흡!”

서후량이 힘을 주자 검의 끝이 목뼈를 긁으며 잘라 내고 이내 서서히 척추를 타고 들어갔다. 일부러 검강을 거두어 살과 뼈를 헤집는 악랄한 짓거리.

고정된 듯 움직이지 않는 금태석의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끄으으윽! 크윽!”

“조장님!”

“조장님. 흑흑흑.”

안과 혜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자신들을 위해서 죽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차마 똑바로 응시하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윽고 서후량이 들고 있는 한 자루의 검이 금태석의 목을 통해서 전부 등으로 사라져 들어갔다.

덜덜덜덜덜.

“끄으으윽. 크윽. 끄아악.”

눈동자가 허옇게 뒤집히고 금태석은 몸을 미친 듯이 떨었다. 생검이 목뼈와 척수를 타고 조각내며 들어오는 것을 어찌 견디랴.

주륵.

그러나 금태석은 피를 흘리면서도 꼿꼿이 서 있었다. 입가를 흥건하게 뒤덮은 피가 떨리는 입술을 따라 주변으로 튀었다. 안과 혜는 절망했다.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이미 두 명의 목숨이 사라지고 있었다.

스으으윽.

서후량이 금태석의 척수를 쪼개며 들어간 검을 들어 올렸다. 서늘한 소리를 내며 뼈를 긁고 나온 검에 척수와 피가 흥건하다. 안과 혜는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크흑. 끄으으윽!”

“무명암살대라는 놈들은 정말로 지독한 놈들이군. 단주에게 목숨을 맡겼다고 하지만 이 정도까지 견딜 줄 몰랐다.”

털썩.

“야…… 약속을…… 지켜…… 쿨럭.”

“아, 물론이다.”

금태석은 쓰러지고 난 이후 남은 힘을 짜내 입을 열었다. 아직 정신이 조금 남아 있지만 이제 눈 몇 번 깜박일 사이면 죽을 것이었다.

그러나 서후량은 얼마 남지 않은 금태석의 목숨을 장난이라도 치듯 무참히 꺾어 내었다.

“본인이 죽는 동안 음양쌍녀를 죽이지는 않았으니 약속은 지켰다. 추자룡, 지금 당장 음양쌍녀를 죽이고 목을 챙겨라. 맹주님께 보일 것이다.”

“덕분에 재미있는 것을 보았군. 무명암살대라는 것들은 정말로 소름 끼치는 것들이다. 이년들을 위해 그 고통을 견디다니, 꿈에라도 나올까 토악질이 나오려는구만.”

추자룡이 안과 혜의 목에 댄 검을 거두고 이내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안과 혜는 눈을 감고 후회라는 감정을 눈물에 흘려 내보냈다. 단주님이 했던 말. 무공을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가슴속을 후벼 팠다.

안과 혜는 목을 파고드는 살기보다 마지막으로 단주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이 더욱 사무쳤다.

그때였다.

카아앙!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자모환(子母丸)이 추자룡의 검줄기를 때리며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그 뒤를 연이어 작은 자모환이 날아와 추자룡의 팔목을 파고들며 관통했다.

“크으흑! 이건?”

“도현인가 하는 놈이 온 모양이군. 놈도 살생부(殺生簿)에 이름이 올라 있으니 기다리던 참이다.”

순간 허공을 떠오르며 신형을 보이는 악귀 같은 존재. 그는 손에 든 물건을 추자룡과 서후량의 앞에 던졌다.

툭. 투두둑.

사람의 머리 열 개. 서후량이 데려온 사천당문의 무인의 머리다. 도현은 피 칠갑한 얼굴로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씹어 뱉듯 입을 열었다.

“만천화우와 폭뢰이화침으로 귀천명에 사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죽이는 것도 모자라 이곳에서 무명암살대의 조장들을 가지고 놀았나?”

“크윽, 젠장. 네놈, 절정 고수인 주제에 목숨 아까운지 모르고 감히 자모환을 날려?”

“그렇군. 내가 절정 고수이니 죽이고 가려 한 것인가? 분명 시간을 끌면서까지 나를 유인한 것이지? 단주님의 말씀이 맞았군.”

“뭐라?”

순간 도현의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서슬 퍼런 기운이 주위를 잠식하고, 거대하지만 흉악한 기세가 마치 해를 가리는 달처럼 사방으로 뻗었다.

“단주님이 실력을 숨기라고 한 이유가 이것이었나. 하여간에 망할 단주는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으니.”

“네…… 네놈! 절정 고수가 아니었던가? 마왕들에게조차 사실을 숨기고 있었단 말이냐!”

도현은 대답 대신 신형을 날려 정면으로 추자룡에게 검을 부딪쳤다. 그 속도가 실로 전광석화(電光石火). 도현은 기와 외공으로 추자룡을 뒤로 밀어 버리고 즉시 몸을 돌려 서후량이 날리는 검을 막았다.

카앙!

그러나 이내 도현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왼쪽 팔을 쓰지 못하는 탓이었다.

사천당문 무인들의 목을 자르는 동안 놈들이 날린 마비침 하나가 왼쪽 팔을 꿰뚫는 바람에 도현은 오른쪽 팔만으로 싸우고 있었다.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은 자명한 사실. 도현은 안과 혜를 바라보았다.

“안, 혜. 빨리 도망가라!”

“네……?! 네!”

도현의 살기 가득한 목소리에 안이 등을 돌리려는 순간, 혜가 부르짖었다.

“안, 아버지가 주신 검!”

“아…… 아버지의 선물!”

추자룡의 일격에 날아가 바닥을 구른 검. 아버지가 준 소중한 선물을 두고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안과 혜는 검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그러나 이미 도현이 추자룡과 서후량을 상대하고 있는 곳에 끼어들 틈은 없었다.

“빨리 도망가지 않고 무엇을 하는 것이냐!”

“아……!”

필사적으로 두 명의 초절정 고수를 상대하는 도현에게서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안과 혜는 검을 향해 달리던 발걸음을 억지로 멈추었다.

“안 돼, 혜. 일단은 여기를 떠나야 해.”

“하지만!”

안은 혜를 끌어안고 달렸다. 눈물을 흘리며 손을 내뻗고, 검에서 멀어지는 혜의 눈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안은 달렸다. 안 자신도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으로는 비명을 지르면서.

‘아버지, 저와 혜는…….’

안은 이를 악물었다.

한편.

도현은 안과 혜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자 식은땀을 흘렸다. 추자룡이나 서후량 한 명만을 상대한다면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둘의 공격을 오직 오른팔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나마 자모환으로 추자룡의 팔목을 관통시켰기에 이만큼 견디고 있는 것이다.

“망할, 이놈을 빨리 처리하고 음양쌍녀를 찾으러 가야 한다.”

“젠장! 이제 슬슬 지원도 올 시간이다.”

순간 도현이 웃음을 지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이미 지원하기 위해 무명암살대의 무인들이 오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안과 혜가 상황이 이상한 것을 직감하고 미리 부른 그것일 터다.

사천당문의 무인들을 처리하는 동안 천마신교의 성문이 열리고 이미 다섯 대대의 무명암살대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이미 무명암살대는 성채 밖으로 나왔다. 또한 단주님도 아까의 신호로 오고 계실 것이다. 너희는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적의 성채 앞에 있는 마을에서 일을 너무 크게 벌였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일을 크게 벌였든 쥐새끼처럼 조용히 움직였든 너희들은 죽은 목숨이라는 말이다.”

“망할 새끼!”

순간 추자룡의 검이 도현의 허벅지를 베고 나갔다. 그리고 도현의 신형이 무너지는 사이, 서후량의 검이 도현의 오른쪽 폐를 관통했다.

콰직!

“크아아악!”

서후량은 빠르게 검을 도현의 폐에서 빼내고 다시 한번 복부를 찔렀다.

콰지지직!

야비하고 광기 섞인 표정. 서후량은 광소를 지으며 도현의 복부에 박힌 검을 이리저리 돌리고 속을 헤집었다.

콰지직! 콰지지직!

“크아아아아악!”

“음양쌍녀를 죽일 기회를 빼앗았으니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베어져 나간 오장육부 때문에 내출혈로 고통을 받을 것이고, 뚫린 폐는 숨을 쉴 때마다 타는 듯한 고통을 주겠지. 앞으로 삼 일. 그동안 너는 지옥의 업화 같은 고통을 견디다 죽을 것이다.”

“끄아아악!”

털썩.

도현이 무너지듯 쓰러졌다. 폐를 통해 입에서는 피가 뿜어지고, 내장 일부는 이미 몸 밖으로 흘러나왔다. 게다가 내장은 칼로 휘저어져 끊기고 베여 있다.

“퉤. 개새끼. 일을 방해하다니.”

서후량은 몸을 돌리고 급히 기감을 펼쳤다. 음양쌍녀의 실력이라면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후량의 이마가 심하게 일그러졌다.

“젠장,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음양쌍녀의 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니.”

“아마 무명암살대에서 만든 굴이나 몸을 숨기는 곳이 있을 거다.”

“그곳의 위치가 어찌 되느냐.”

“그것은 오직 무명암살대만 알고 있다. 마왕들조차 모르는 것이지.”

“망할, 다 된 밥의 마지막 한술을 뜨지 못했군.”

그러나 서후량은 모든 것을 깨끗하게 잊었다는 듯 상쾌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음양쌍녀는 의뢰가 아닌 선물. 딱히 잡지 못해도 상관은 없었다. 서후량의 임무는 그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추자룡을 데려오는 것이다.

“빨리 가지. 무림맹에서 새로운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지. 이 지겨운 곳에서 마왕의 비위나 맞추는 것도 끝이군.”

서후량과 추자룡의 신형이 귀천명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반 각이 지난 후.

천일영은 도현이 쓰러진 곳에서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거꾸로 솟아오르는 피를 억누르는 듯 깨문 입술 사이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조용히 주변을 잠식하며 풍기는 예기 어린 살기는 심정을 대신하듯 공간을 비틀었다.

“도현, 안, 혜, 금태석, 창희문.”

천일영은 피가 배어 나오는 입을 열고 망연히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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