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133화 (134/270)

133화

금채홍은 눈앞의 신형을 노려보았다.

건청 오라버니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떠난 것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찬 매서운 눈.

그러나 눈앞의 신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금채홍의 입을 벌리려고 했다.

“으읍! 그만 하세요!”

“반항해 봐야 소용없다!”

“절대로 그것이 제 입에 들어가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금채홍의 결의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눈앞의 신형은 표독스러운 눈매를 치켜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기어이 포기하지 않는구나.”

“그야 당연하죠! 백유화 님이 만드는 환단을 먹고 저와 건청 오라버니는 삼 일이나 설사를 했단 말이에요!”

“끄응, 오늘 건 괜찮다니까.”

“거짓말! 전에 먹은 것도 괜찮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그보다도 더 전에 먹은 환단은 무려 일주일이나 설사했단 말이에요!”

“아니……. 뭐 그건 실패는 아니고……. 그 뭐냐. 약재의 양을 조절하기가 워낙에 미묘해서…….”

백유화의 고개가 바닥을 향한다.

그러나 불쌍한 모습을 보이는 백유화를 향해 금채홍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건청 오라버니도 그렇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그게 전부 다 헐어서 의자에 앉지도 못한단 말이에요. 이제 조금 나아가는 무렵인데 또 환단을 먹이려 하시다니 너무합니다.”

“에잇, 시끄럽다. 이번엔 성공이라니까. 빨리 먹지 못해! 소림대환단을 능가하는 걸작이란 말이다.”

“싫어요!”

머리끝까지 화가 난 표정의 백유화가 손을 뻗어 강선으로 금채홍의 입을 강제로 벌리자, 금채홍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그러나 백유화는 웃음을 지으며 환단을 금채홍의 입에 가까이 대기 시작했다.

광기 어린 그 표정이야말로 미친 의원 그 자체.

섬뜩하고 사악한 표정을 짓는 백유화의 손길에 환단이 금채홍의 입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

텁.

거친 손아귀가 백유화의 머리를 잡았다.

그리고 방 안을 울리는 서늘한 목소리. 천일영이었다.

“호오? 내 제자에게 지금 뭘 먹이고 있는 거지?”

“으앗! 그게 아니라…….”

“왜 요즘 건청하고 채홍이가 하루가 다르게 말라 가나 했더니만 이런 걸 먹이고 있었던 것이냐.”

“모…… 몸에 좋은 겁니다. 분명 이걸 먹으면 내공의 증진이…….”

“실험은 하고 먹이는 거겠지?”

“그게…… 저는 괜찮아서…… 에헤헤헤헤.”

휘이이잉. 쿠웅.

천일영의 내공 실린 주먹이 백유화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꽤애애액!”

“오래전부터 환단을 만들어 먹어 온 너하고 저 녀석들이 같냐!”

“끄아아아압. 그래서 약재 조절을 했습니다. 한두 번 실패는 했다 해도 분명 효과가…… 크아압!”

미칠 듯한 통증에 바닥에서 뱀처럼 기는 백유화의 파닥거리는 손발이 마구 떨릴 때였다.

반쯤 뒤집히는 백유화의 눈동자와 똑같이 건청의 눈도 뒤집히고, 순간 건청의 입에서 기묘한 소리가 흐르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환단을 먹었던 건청의 몸에서 기운이 치솟기 시작했다.

“오호? 유화야, 이번에는 효과가 있는 듯하구나. 빨리 건청을 풀어 주거라.”

“끄으윽, 알겠습니다.”

백유화가 몸에 감겨 있는 강선을 풀자 천일영이 건청의 몸을 받아 들었다.

“빨리 운기조식을 하거라.”

“네……? 네.”

순간 엄청난 기운이 건청의 몸을 감쌌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의원으로서의 실력을 발휘하여 환단을 만들어 온 백유화의 비전임과 동시에, 그녀를 중원 십육 대 고수에 들어서게 만든 대환단의 위력 그 자체였다.

백유화는 선천적으로 몸이 작고 약한 데다가 무공에 큰 소질이 없었던 것을 환단으로 해결해 왔던 것이었다.

“엄청나군. 환단 하나에 십 년 치 정도의 내공이 쌓이겠구나.”

“그러니까! 제가 뭐랬어요. 효과가 있을 거랬잖아요. 이건 사혈련에도 알리지 않은 비법입니다. 크아악, 그나저나 공자님에게 맞은 자리가 계속 아파서 미치겠습니다.”

오른손으로는 머리를 문지르고, 왼손으로는 주먹을 꽉 쥔 채 파닥거리는 백유화의 눈에 억울함이 깃들었다.

“채홍아, 너도 빨리 먹거라. 이것은 정말로 소림대환단에 비견할 만하다.”

“네.”

조금 미안한 표정이 금채홍의 얼굴에 지어졌다.

백유화는 금채홍에게 삐친 표정을 지으면서도 기꺼이 환단을 넘겼다.

꿀꺽.

금채홍이 환단을 먹고 반 각쯤 지나자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휘감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감싸는 기운을 느낀 금채홍은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그때 천일영이 백유화를 보며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너도 먹거라.”

“네엣? 저는 안 먹어도 됩니다. 이미 내공이 많이 있어서 효과가 미비합니다.”

“화경에 들어서려면 여러 가지의 도움을 받아야 조금이라도 빨리 경지를 이룰 것 아니냐.”

“아니……. 저는 화경의 경지에 안 들어서도…….”

“연무장 천 바퀴와 환단을 먹는 것. 둘 중의 하나 선택하거라.”

“즉시 먹겠습니다.”

반 각이 지난 후, 백유화 역시 금채홍이나 건청만큼은 아니지만, 기운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단전의 한계가 찾아와 내공의 증진이 크지는 않겠지만 백유화는 연무장 천 바퀴 대신 가부좌를 하고 앉아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서서히 내공이 백유화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

꾸르르르륵.

“응? 꾸르르륵?”

천일영이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자 건청이 식은땀을 흘리며 배를 움켜쥐고 있다.

그리고 눈 다섯 번 깜박일 시간이 지나자 건청의 얼굴에서 흐르는 땀줄기가 점점 거세지고, 이내 안색도 창백하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건청은 순간 충혈된 눈을 번쩍 떴다.

“아무래도…… 설사하면서 그…… 운기조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 그래, 빨리 가거라.”

천일영이 눈을 끔뻑거리며 건청이 달려가는 것을 보자, 이내 등 뒤에서 울먹거리는 소리와 함께 금채홍의 배를 울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꾸르르르륵.

금채홍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눈물을 흘렸다.

“싫어~~. 설사를 하면서 운기조식이라니! 무슨 무공의 길이 이렇게 더러워!”

“어…… 음……. 너도 빨리 가거라.”

금채홍이 서둘러 화장실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환단에 설사 증세를 보이지 않는 백유화마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유화야, 너는 어찌하여 비 오듯 땀을 흘리는 것이냐.”

“아니……. 그게 이번에는 분명 환단이 성공할 거로 생각해서…….”

“그래서?”

“엄청 많이 만들었거든요. 금화를 수십 냥이나 써서요.”

“하아…….”

깊은 한숨이 토해져 나온다.

수십 금을 들여서 만들었다면 버릴 수도 없는 노릇.

결국은 전부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분명 내공 증진에는 엄청난 효과가 있으니까.

꾸르르르륵.

순간 백유화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는 얼굴에는 경련도 일었다.

“유화야, 너에게 시험했을 때는 괜찮다고 하지 않았더냐.”

“아……. 마지막에 동충하초를 조금 많이 넣었더니만. 원래 체질상 동충하초하고 상극이라서…….”

“일단 가거라. 운기조식도 분명히 하고.”

“끄으윽. 아…… 알겠습니다. 근데 이제 화장실이 없는데요. 건청이랑 채홍이가 들어가서…….”

천일영의 오른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파르르 경련이 인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알아서 처리하거라. 할 말은 그것뿐이다.”

“끄응.”

백유화가 엉거주춤 뛰어나가니 천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리쉬었다.

“아무래도 화장실을 많이 지어야겠구나. 도대체 몇 개나 저 환단을 만든 거지?”

어찌하여 무공의 길이 이렇게나 더럽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일영은 왜인지 월영의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 환단은 월영에게 딱 맞는 물건이군. 내공이 시원치 않은 녀석이니. 그 녀석,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지…….”

조금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절정 고수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무림이란 그렇게 만만치 않은 곳.

천일영은 월영이 설사를 해도 이곳으로 돌아와 환단을 먹었으면 하는 생각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건청과 금채홍이 운기조식하고 있는 화장실은 멀리 피해서.

* * *

천일영이 월영을 걱정하고 있을 무렵.

월영은 산 중턱을 관통하는 길을 걷고 있었다.

어느새 뒤늦은 강호초출 같은 생활을 한 지도 일 년이 되어 간다.

꽤나 많은 곳을 빠르게 둘러보며 떠돌이 생활을 했던 월영은 공자가 왜 자신에게 세상으로 나가 보라고 했는지 어느 때인가부터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무림인의 본질은 다들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시야가 넓어졌구나.’

월영이 과거에 생각하기를, 정파는 정의와 협을 지키는 사람들이고, 사혈련과 천마신교는 사악한 무리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겪어 보니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본질은 비슷하나,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었다.

‘내가 필요하기도 하고 뺏고 싶어서 빼앗는다는 아무래도 사혈련이겠지. 그리고 내가 더 힘이 세니까 가지고 싶은 건 빼앗는다는 천마신교고.’

월영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하물며 정파라고 해서 다를까.

‘내가 가지고는 싶은데 빼앗으려면 명분이 필요하군. 그러니 명분을 만들어서 상대를 나쁜 놈으로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나쁜 놈을 처치했으니 나는 정의다. 그 나쁜 놈으로부터 세상을 지켰으니 그놈의 것은 당연히 내가 고생한 대가로 가져야겠지. 이게 정파다.’

시야가 어느새 트이고 세상이 다르게 보이니, 또한 월영의 눈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그 한 가지로 월영이 지금 들어선 이 산도 마찬가지였다.

월영은 눈앞에 있는 산속의 장원으로부터 몸을 숨기고 시선을 떨어트리지 않았다.

‘저들은 분명 정파의 무인들. 아마도 무림맹에 명령을 받는 자들일 터다. 그런데 어째서 저들은 인삼을 수입하는 상단을 공격하고 물건을 다 빼앗은 것인가.’

아마도 금화 수십 냥에 달할 만큼의 인삼.

워낙에 인기가 좋아 들여오는 대로 다 팔려 버리니 그 양이 모자라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고 했다.

‘사혈련과 천마신교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백 년간 현경이나 탈마의 경지에 든 무인이 나오지 않으면서 큰 사고 없이 평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그것이 이제 깨지려 하는 것인지도…….’

월영은 죽어 가는 상단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여인들은 묶여서 장원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남자들은 몸 안에 있는 돈과 귀중품을 빼앗기는 대로 목이 잘려 죽어 나갔다.

일 리하고 절반이 넘게 떨어진 이곳까지 피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어찌 이것이 정파의 모습이란 말인가. 그때였다.

스윽.

월영의 뒤에서 검 하나가 목덜미에 닿았다.

월영은 자신이 절정 고수임에도 불구하고 기감에 느껴지지 않는 상대에 대한 긴장이 치솟아 식은땀이 흘렀다.

“여기에서 뭘 하고 있지?”

그러나 들리는 목소리는 다름 아닌 여인의 것.

그러나 여인이 곁에 서자 미약하게나마 풍기는 기운이 긴장을 더 하게 만들었다.

바로 마교의 기운 때문. 월영은 침을 삼켰다.

“나는 무당의 도사 월영이라고 하오. 당신은?”

“내가 누군지는 알 필요 없다. 네놈은 저 장원에 있는 놈들과 한패인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소.”

“뭘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대답은?”

대답을 강요하는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검날이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월영은 몰래 검 손잡이를 잡으려던 손을 멈췄다.

“감시하고 있었소. 살아 있는 여자들이 있으니 밤에 구출할 생각이었다고 하면 믿겠소?”

“아니, 믿지 않는다. 그럼 잘 가거라.”

휘이익!

순간 목으로 파고들어 오는 검날에, 월영은 급히 몸을 비틀었다.

검에 손을 대지 못한 대신 여인의 공격에 대비하여 몸을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던 터다.

월영은 검날을 피하여 최대한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콰직.

월영의 목이 1치 정도 베어져 나갔다.

순간 피했음에도 여인은 검날을 돌려서 집요하게 살을 베어 낸 것이었다.

투투툭.

살점이 떨어져 나간 목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그리고 이내 피는 뭉텅이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릉.

월영은 이제야 검을 뽑을 수 있었다.

눈앞의 여인. 이제 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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