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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34화 (135/270)

134화

월영의 검이 태청검(太淸劍), 유운검(流雲劍), 소청검(少淸劍), 대환검(大幻劍)을 하나씩 이으며 여인을 향해 날아갔다. 과거에는 두세 가지의 검법을 섞어 사용하던 것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네 개나 되는 검법의 초식을 떼어 연결하는 경지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연참.

월영의 검법이 바람을 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검을 마주한 여인은 놀란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휘리링. 휘잉! 휘이이이잉!

“이, 무슨!”

“그대로 당할 줄 알았소?”

월영의 검은 바람을 타고 여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직선으로 들어올 것 같으면 갑자기 휘고, 정면으로 날아오는 듯하다가 갑자기 좌우로 흔들리는 검에 여인은 허둥대며 신형을 뒤로 날렸다.

“네놈! 이 정도의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당신이야말로!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로 기운을 숨겼으니!”

채앵! 채챙!

여인은 쏟아지는 검격에 신형이 뒤로 밀리며 몸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태풍과도 같은 속도의 검에 손목은 뒤틀리고, 보법 역시 무너진다.

그리고 그 순간, 월영의 검이 꺾여 버린 손목을 향해 뱀처럼 구불거리는 검로를 그리며 날아갔다.

“무공을 하사해 주고 세상으로 나가라는 가르침을 주신 분을 위해서라도 죽을 수는 없으니 대신 소저가 죽어 주시오.”

“미친놈! 여기에서 무공을 하사해 준 사람이 왜 나와!”

파가각!

월영의 검이 여인의 손목을 긋고 이내 손잡이를 찔렀다.

“아악!”

“여기까지요.”

검을 놓치며 얼굴이 공포로 물들어 가는 순간.

여인은 끝내 포기하지 않고 놓친 검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몸을 빠르게 돌렸다.

“빌어먹을!”

끝내 검을 쥐어 싸우려는 모습. 그러나 마무리를 하기 위해 다시 검격을 몰아치려는 월영의 검날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절망에 빠진 표정의 여인은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속았지?”

“뭐?”

여인은 오른손으로 검을 다시 잡는 척하는 순간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속도가 월영의 검이 쫓아가지 못할 속도.

왼쪽 팔목에서 월영이 난생처음 듣는 소리가 들려왔다.

딸그락. 피비빗. 피빗. 피비비빗! 딸그락!

작은 기관 장치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월영의 가슴을 향해 비침 열 개가 날아왔다.

그것은 눈으로도 보이지 않을 만큼이나 작은 것이었지만, 속도만큼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낼 정도.

월영은 이를 악물고 보이지 않는 비침을 향해 소리만으로 위치를 파악하여 비침을 튕겨 냈다.

채재재재쟁!

열 개의 비침을 모두 튕겨 낸 월영의 얼굴에 공포가 감돌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내 웃음도 지어진다.

여인의 한 수는 막혔다. 여인의 목을 베기 위해 월영은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젠장…….”

“말했잖아. 속았다고.”

월영은 자신의 허벅지에 박힌 두 개의 비침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왼쪽 팔에서 나온 비침도 속임수.

마교의 여인은 비침을 발사시키는 왼손으로 시선을 집중시키고, 검을 다시 집으려는 오른팔을 월영의 의식에서 지웠다.

그리고 동시에 발사된 비침을 눈이 따라가는 순간 오른 손목에서 두 개의 비침을 발사한 것이었다.

“크윽!”

월영은 힘이 빠지며 그 자리에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이미 독의 기운이 온몸에 파고들어 마비 증세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

월영이 몸에 힘을 주지 못하고 땅바닥에 대자로 누워 버리자 여인은 검을 집어 들어 월영의 목에 겨누었다.

“왼팔의 것은 즉사할 만큼의 맹독. 오른팔에서 나간 것은 마비독이다. 네놈이 즉사를 피할 만큼 발버둥을 쳤으니 마지막으로 남길 말 정도는 들어주지.”

“크윽.”

월영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장소가 그려졌다.

꼭 다시 돌아가겠다고 마음속으로 약속한 곳.

월영은 자신의 목에 드리워진 검날을 보며 눈을 감았다.

“몇 년 아니, 수십 년 뒤라도 좋소. 혹시 항주에 갈 일이 있으면 별유천지라는 객잔을 찾아 그곳의 공자에게 월영이 죽었다고 말해 주었으면 하는군.”

“별유천지?”

“혹시 항주에 간다면 말이오. 그분이 나를 기다릴지 어떨지는 모르니.”

순간 마교의 여인은 기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너에게 무공을 하사해 줬다는 사람이 별유천지의 공자인가?”

“그렇소. 무공의 깊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경지를 이끌어 주었지.”

“젠장, 평소 같으면 그냥 죽여 버렸을 텐데 너 운이 좋구나.”

여인은 월영의 혈도를 짚고, 이내 비침 몇 개를 몸에 꽂았다.

순간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마비가 풀리자 월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요?”

“중원이 넓으면서도 좁다는 말을 실감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별유천지의 공자는 나도 잘 아는 분이니.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하면 바로 죽여 버릴 것이다.”

“희한한 인연이군요. 이런 인연도 드물 텐데 부디 이름이라도 알려 주시겠소?”

“서하린. 그리고 그 입 빨리 다물어라.”

“왜 그러시오?”

“장원에서 눈치챘다. 이렇게나 격하게 싸웠으니 모를 리가 없지. 오십 명 정도 오고 있구나.”

“그렇다면 일단 물러섭시다.”

월영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않고 혈도에 자리 잡은 독의 기운이 다리를 휘청거리게 만든다.

월영의 얼굴에 난감함이 깃들었다.

“마비가 풀리지 않아 도망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소. 내가 막아 볼 테니 소저라도 빨리 도망가시오!”

“이게 어디서 멋있는 척하고 지랄이야. 야, 여기가 어디?”

“여기? 산속이잖소.”

“잘 아네.”

퍼억!

서하린은 월영의 등을 있는 힘을 다해 걷어찼다. 월영은 오 장 거리를 허공으로 날아가다, 이내 가파른 비탈길로 떨어져 미친 듯이 구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으악. 으아아악!”

“오오! 경공보다 빠르네?”

“내 팔! 내 다리! 우푸푸풉, 내 얼굴!”

“하아, 이 상황이라면 입은 다물고 굴러야지, 망할 놈아. 도망간다고 온 동네에 소문이라도 낼 참이냐, 쯧.”

서하린은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 혀를 한 번 찬 다음, 월영이 구르고 있는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 * *

한 달 후.

의외로 같은 목표를 추적하던 서하린과 월영은 뜻이 맞아 천마신교부터 사혈련까지 상당수의 영약 채집 창고를 돌았다.

그동안 월영이 모은 정보와 서하린이 알아낸 것을 합쳐 더 많은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했지만, 근래에 들어 또 다른 움직임이 보여 둘은 머리를 맞대고 여러 가지 고민에 싸여 있었다.

“사혈련과 천마신교도 영약의 채취에 미쳐 있는데 오히려 가장 시끄러웠던 정파가 근래에 조용하군.”

“소저, 정파가 정신을 차린 것은 아닐 테고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내 생각도 비슷하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사천성이니 무림맹의 강력한 세력권인 호남성을 거처 강서성으로 이동하자. 가는 길에 놈들의 움직임을 보고 증거를 찾도록 하지.”

“좋은 생각인 듯합니다.”

월영이 몸을 일으키며 서하린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같은 것을 쫓고 있었으니 우연치고도 늦게 만난 것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로 월영은 신기한 눈빛을 띠었다.

“근데 서하린 소저는 봇짐을 왜 안 들고 다니는 겁니까?”

“척 보면 볼라? 내가 연약해서 아니냐! 그리고 월양아?”

“제 이름은 월영입니다.”

“네 이름 따위 알 게 뭐냐. 분명히 경고하는데 내 이름을 부르지 마라. 한 번만 더 내 이름을 입에 담으면 죽여 버린다.”

자신이 독천마왕이라는 이름을 안고 있는 이상 숨겨야 할 이름.

서하린은 매섭게 등을 돌리고는 싸늘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객잔에서 하루 정도 쉬어야겠으니 떠나자, 월용아.”

“월영이라니까요.”

월영의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서하린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한 번 후비고는 빠르게 움직였다.

보름째 씻지를 못했으니 이제 슬슬 몸에서 나는 냄새가 신경 쓰인다.

오직 천마님 일편단심이라 월영을 남자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월영이 천마님에게 냄새나는 여자라고 고자질할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신발도 사야 한다.

천이영 여주인에게 한 소리를 들은 이후 발 냄새가 유독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서하린은 바람이 부는 산을 타고 호남성으로 향했다.

* * *

호북성 초입에 있는 객잔.

서하린은 오랜만에 깨끗하게 씻고 개운한 느낌에 취하며 2층 창밖을 바라보았다.

웅성웅성.

그때 마을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술렁거림에 서하린은 객잔의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무려 오십에 달하는 금군들의 행렬이 있었다.

사천성에서 호북성을 잇는 초입에 있는 이 작은 마을에 금군이 나타난 것은 수십 년만의 일일 터.

서하린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똑똑.

“월연이면 들어와라.”

끼익.

“월영입니다.”

“무슨 일이냐?”

“아무래도 금군이 마을에 들어선 모양입니다.”

“나도 지금 봤다.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지만 굳이 관여할 이유도 없어 고민하던 참이다.”

월영은 자신과 같은 생각이었던 서하린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행색을 보니 저들은 흙먼지와 나뭇가지에 긁힌 흔적이 많습니다. 북경에서 오는 관도를 따라왔다면 저 정도로 몰골이 엉망이지는 않을 테지요.”

“산적들과 싸움이라도 있었다는 말인가?”

“싸움이 있었던 것치고는 옷에 베인 흔적이 없습니다.”

월영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서하린도 조금씩 감이 잡혀 갔다.

“저들은 관도를 따라 움직이지 않고 산길을 골라 움직였다? 산적도 피해 가며?”

“그것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과연…….”

“또한 여기는 호북성과 사천성의 경계인 마을입니다. 북경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사천성으로 가는 빠른 길이 있습니다. 굳이 이 마을을 올 일이 없는 것입니다.”

“산길을 이용해서 빙 돌았다? 저들이 호북성에 있었던 거라면? 혹은 몰래 움직이는 거라면?”

“몰래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습니다. 또한 호북성에 있었던 것치고는 오십 명의 신발이 너무 많이 닳았습니다. 분명 북경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뭔가 이상한 것은 알겠다. 헌데 관심을 두는 이유가?”

“무림 삼 대 세력이 영약에 미쳐 있습니다. 그런데 금군도 왠지 비슷한 짓을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황실에서도 영약을 찾는다는 말이냐? 아니면 정파가 조용해진 이때 저들이 나타난 게 절묘하기도 하고?”

“황실에서 같은 목적으로 정파에게 압력을 넣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나선 것은 아닐까 합니다.”

“너 보기보다 머리가 좋네?”

서하린은 잠시 창밖으로 금군의 움직임을 살피고는 월영을 향해 돌아섰다.

“배고프다. 밥 먹자.”

“혹시 사람들한테 뜬금없다는 말을 자주 듣지 않습니까? 갑자기 밥이라니요.”

“저 금군 놈들이 요 앞에 있는 객잔으로 들어가는구나. 저기 음식이 맛있는 모양이다.”

“아? 그러고 보니 저도 배가 고프군요. 소저가 사는 거겠죠?”

“시끄럽다. 네가 사라. 월융 주제에.”

“월영입니다.”

서하린과 월영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방을 나섰다.

* * *

작은 마을이라 금군 오십이 들어설 정도의 객잔은 한 곳뿐이었다.

제법 오는 길이 험했던지 흙먼지를 뒤집어쓴 금군들이 씻기도 전부터 음식을 정신없이 먹는 것을 보고, 서하린도 자연스럽게 섞여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탕초리척(糖醋里脊) 하나, 경장육사(京醬肉絲) 하나, 그리고 춘권아(春卷兒) 하나.”

“보다시피 지금 손님들이 많아서 시간이 걸립니다.”

“괜찮다. 천천히 가져와도.”

“알겠습니다요.”

점소이가 물러서자 서하린은 촉각을 세우면서도 월영을 은근히 바라보았다.

괜한 의심을 사지 않으려 하는 행동치고는 자연스러웠기에 월영의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나는 저쪽 높아 보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테니 너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집중해라.”

“그러지요.”

작게 속삭이는 서하린의 목소리가 말투와는 다르게 맑고 청아한 탓에 월영의 얼굴이 한 번 더 빨개졌다.

잘 씻고 다니는 소저였으면 정말로 반할 뻔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월영은 고개를 힘껏 가로젓고 수십 개의 목소리에서 중요한 단서만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각이 지난 후.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작은 목소리 중에서 하남성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하남성이라. 사천성으로 들어서는데 왜 하남성에서 온 것이지? 섬서성을 통하면 사천성으로 바로 갈 수 있을 터인데.’

예상대로 이들은 북경에서 산서성을 거쳐 서안성을 지나면 바로 갈 수 있는 사천성을 빙 돌아가는 중인 듯했다.

입단속을 했는지 자세한 말이 나오지는 않지만, 거쳐 온 길이 험했기에 다리가 아프다는 말도 나왔다.

“음식 나왔습니다요.”

“고맙네.”

점소이가 이 각하고도 반 각이 좀 더 지나 음식을 가져오자, 서로를 바라보던 월영과 서하린의 긴장 어린 눈빛이 풀렸다.

서하린은 음식을 집어 들며 월영에게 전음을 날렸다.

[들을 만큼 들었다. 내일 우리는 강서성으로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하남성을 향하는 게 좋겠다.]

[놈들의 목적을 알아낸 것입니까?]

[바보가 아닌 이상 여기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거다. 그냥 잡담하면서 튀어나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놈들이 온 길을 확인하면 대략적인 목적도 알게 되겠지. 다만 한 가지가 유독 마음에 걸린다.]

[그게 무엇입니까?]

[놈들에게서 탄내가 난다.]

순간 월영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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