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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47화 (148/270)

147화

우적. 우적.

정신없이 음식을 먹고 있는 도철용에게 백유화는 화가 난 표정을 지을 법도 했지만,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을 뿐이었다.

대신 백유화는 천량도사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천일영이 음식을 건네준 이유쯤 눈치 빠른 백유화가 모를 리 없었으니까.

“딱 음식값 정도면 된다. 나도 우리 주인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니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 주면 안 되겠는가.”

“응?”

천량도사가 백유화의 말에 눈을 끔벅였다.

거칠 것 없이 물어보는 여인의 패기도 대단했지만, 그 눈에 주인을 걱정하는 마음이 한눈에 보일 정도.

천량도사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피식 지었다.

“사혈련이지만 지금은 호위 일을 하는 중이니 주인을 지키는 충정을 생각해서 몇 가지만 말해 주마. 녹림의 두목이 벼랑 위에 산채를 짓고 세를 넓히고 있다.”

“어찌 산적 두목이 공동산에 산채를 지는 동안 공동파가 가만히 있었는가.”

백유화는 살기를 거두고 천량도사의 진심을 듣기 위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천량도사도 떠보는 짓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생각에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무림의 도리가 어찌 이리 땅에 떨어졌는지. 다름 아닌 산적의 두목이 공동파의 고수라네.”

“새삼 뭘 그러는가. 이러한 일은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지 항상 있어 온 일인데.”

백유화의 이죽거림에 천량도사는 가슴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의외로 백유화는 비웃음까지는 짓지않았다.

“뭐 공동파의 경우 과거 수많은 도인(道人)이 공동산에 머물다가 나중에 하나로 합쳐져서 만들어진 문파다. 비록 구 대 문파라고는 하지만, 서로 다른 유파가 섞여 만들어져서 정사(正邪)의 구별이 모호하긴 했지. 그 때문에 정파로서는 사악한 부분들이 많기도 하고.”

“자네 말이 맞네. 현황우라는 자가 산적의 두목이 되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공동파의 계보 중에서도 사파 비슷한 쪽의 인간일세. 원래 현황우는 무공은 뛰어나나 그 존재감은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일 년 전쯤 녹림의 두목을 죽이는 전과를 올렸다네. 그런데 이놈이 돈이 벌리는 녹림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이 두목의 자리에 올라간 게야. 그리고 그 힘의 위세를 등에 업고 공동파의 장문인을 죽였다네.”

“뭐라고? 공동파의 장문인을 죽여? 그런데 어째서 알려지지 않고 조용한 것이지?”

“끄으으으으윽!”

그때 도철용이 내는 끔찍한 소리에 백유화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포자와 어향육사까지 전부 다 먹은 도철용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거하게 트림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무림에서 닳고 닳은 백유화가 그의 행동의 진의를 모를까. 도철용은 이번에도 천량도사의 말을 자르기 위해 주접을 떨어 댄 것임에 백유화는 잠시의 살의를 느꼈다.

“잘 먹었다. 그런데 천량도사님이 사람이 좋아 포자와 어향육사에 이 정도나 되는 이야기를 해 준 것이니, 더는 알려 들지 말아라. 이것은 정파의 일이네. 너희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다.”

“누가 포자와 어향육사를 주었다는 것이냐.”

“뭐라고?”

도철용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일영은 그간 지어 온 해탈의 표정을 지우고 비릿한 웃음을 드러냈다.

이제 도철용과 천량도사에게 볼일은 다 봤으니까.

도철용은 기묘한 광경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이내 웃음을 짓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 돈 없는데?”

“걱정하지 말아라. 돈은 내가 낼 테니.”

천일영은 철전 쉰 개를 탁자 위에 올렸다. 도철용의 얼굴이 구겨졌다.

느닷없는 반말과 표정의 변화.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드디어 본성을 드러냈다는 말이다. 도철용은 몸에 기운을 모으고, 이내 신형을 날릴 준비를 하며 천일영을 노려보았다.

“이놈이 갑자기 정신 나간 행동을 하는구나. 돈은 내면서 음식은 사지 않았다니!”

“별거 아니다. 그 음식은 네가 먹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일 뿐이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먹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니, 말장난을 하는 게냐!”

“모두 토하게 될 테니 먹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겠지.”

“뭐라고?”

도철용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에 어리둥절하여지자 천일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눈치 못 챘는가. 네가 먹은 포자와 어향육사는 전부 인육(人肉)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하하하.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이런 농담을 할 줄이야. 인육이라니. 내가 말을 잘랐다고 복수라도 하는 것이냐!”

도철용의 호방한 웃음 뒤에 살기 섞인 목소리가 천일영에게 흘러 나갔다.

그러나 그때였다. 귀를 스치는 소리 하나가 도철용의 속을 울렁거리게 만든 것은.

스르르릉.

객잔 안에서 점소이를 비롯하여 손님이라고 생각했던 자들까지 천일영의 말을 듣고 칼을 뽑아 드는 것을 보고는 도철용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어? 이놈들이 지금 무슨? 서…… 설마 진짜 인육?”

“마음을 곱게 쓰고 천량도사의 말을 자르지 않았다면 진작에 가르쳐 주었을 것을.”

“이…… 이런! 우웨애애애애애액!”

도철용의 입에서 방금 먹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야, 이 우라질 개놈의 새끼야. 인육인 걸 알면서도 음식을 나한테 준 것이…… 으에에에에엑!”

“꼴을 보니 거지 왕초답게 꽤 소화를 시킨 모양이구나.”

토악질해 대는 도철용을 뒤로하고, 천일영은 백유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미안한 심정이 묻어나는 얼굴. 그러나 백유화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준비는 전부 다 되어 있습니다.”

“부탁하마.”

피잉. 피잉. 피잉. 피잉.

백유화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공기 중에 서늘한 소리가 퍼져 나간다.

이미 객잔에 들어올 때부터 수백 개의 강선을 펼쳐 두었다.

천량도사와 도철용이 천일영에게만 관심을 쏟는 동안 해 놓은 일이다.

순간 백유화의 오른손과 왼손이 접혀 들었다.

“크아아악!”

“크헉!”

“아아악!”

객잔에 있던 열댓 명의 사람.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량도사와 도철용 곁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검을 뽑았건만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른다.

그때 도철용이 백유화의 행동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너 혹시 중원 십육 대 고수 살인귀 백유화?!”

“이름을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알아보는 것을 보니 인육의 효과인가? 갑자기 머리가 좋아지는 게 신기하네.”

“우웁. 괴상한 강선을 쓰는 놈이 무림에 너 하나밖에 더 있더냐! 잔악하기로 유명하여 사혈련에서조차 이름을 지운 악귀가 왜 이곳에?”

“우리 공자님이 말하지 않았느냐. 여행 왔다고.”

백유화는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는 이내 얼굴이 붉어졌다. 우리 공자님이라고 하니까 왠지 낯이 뜨겁다.

휘이잉. 파앙!

그때 분을 참지 못한 도철용이 백유화를 향해 장권을 날렸다. 그러나!

티이이잉!

믿기지 않는 광경. 장권은 가느다란 강선에 막혀 백유화의 코앞에서 멈췄다.

“네놈이 맛있게 인육을 먹고 있는 동안 강선을 쳐 두었다.”

“이런 망할 년이!”

휘잉! 휘잉! 티잉. 티잉.

길길이 날뛰기 시작하는 도철용의 장권이 몇 번이고 날아갔지만, 끝내 백유화의 강선에 막힌 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천일영이 백유화가 만들어 놓은 완벽에 가까운 안전한 공간에서 도철용에게 약 올리듯 이죽거리는 웃음을 지어 주고는 이내 의자에 앉은 몸을 일으켰다.

“나는 무공을 못 하는 관계로 피신해야겠구나. 저렇게 주먹을 날려대니 무서워서 오줌을 지릴 것 같다.”

“뭐…… 뭐라고? 네놈, 거기 안 서?”

“내가 중요한 것이냐. 객잔에서 인육을 파는 쓰레기 산적 놈들은 아직도 네 안중에 없는 모양이구나. 무엇이 더 중요한지 구별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

“네놈! 알고서도 이런 발칙한 짓을 한 것이냐! 인육인 것을 알면서도 내가 먹도록 한 것이냐!”

“무공을 못 해서 산적들에게 죽임을 당할까 봐 말을 못 했다. 아! 무서워.”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천일영의 말에 붉으락푸르락 얼굴색이 변하는 도철용이 강선으로 만든 막을 해체하기 위하여 손을 헤집는다.

그때 백유화가 웃음을 지으며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피잉!

순간 도철용의 얼굴이 굳었다.

“네년! 지금 무슨 짓을!”

“별건 아니다. 다만 나가는 길까지 막아 놓은 것뿐이지. 객잔에서 인육을 파는 도적놈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너희들도 같이 갇히겠지만 정파로서 해야 할 일일 테니 뒤를 부탁하마.”

조금 전 천일영이 객잔을 안내한 아이에게 은자를 주며 도망치라고 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겠는가.

백유화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지어졌다.

“먼저 가 보마.”

“네놈! 거기 안 서느냐!”

그때 백유화의 손끝에서 ‘피잉’ 하는 파공음이 들렸다.

그것은 객잔에 있는 놈들에게 연결한 강선을 해제하는 소리였다.

휘이이잉!

백유화는 강선을 끊기 직전에 객잔 안에 있는 사람들의 근육을 팽팽하게 당겨 놓았다.

그로 인해 강선이 풀리자마자 들고 있던 검이 천량도사와 도철용에게 날아간다.

천일영과 백유화는 그 모습까지 보고 밖으로 나섰다.

“이 죽일 놈들이!”

“전부 다 죽여라. 이놈들을 죽이지 못하면 우리가 두목에게 죽는다.”

객잔 안에서 검과 권이 오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천일영은 평온한 얼굴로 공동파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쩌실 것입니까. 현황우의 목을 베러 가실 것입니까?”

“아니, 그 전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구나. 공동파로 가자.”

“네? 공자님, 정파에 아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하하, 아는 사람이야 많지. 적도 아는 사람 아니냐. 하지만 술잔을 함께 기울이는 사람은 설의룡과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뿐이다. 지금 내 사정이 천마신교를 나온 입장이다 보니 만나지 않으려 했다만, 공동파의 장문인이 죽었다는 천량도사의 말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그 친구가 잘 있는지 먼저 확인부터 해 봐야겠다.”

천일영은 아직도 안색이 안 좋은 백유화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느닷없이 안아 들었다.

“조금 빨리 가자. 안에서 날뛰는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이제 눈 한 번 깜박일 시간이면 밖으로 나올 테니. 게다가 네 안색이 점점 안 좋아지는구나.”

“흐…… 흐에. 이런 불의의 습격을…….”

“응? 뭔가 말했느냐?”

“아…… 아니요.”

한번 안을 때마다 백유화의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을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천일영은, 백유화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천지일축공으로 땅을 박찼다.

* * *

천일영은 공동산의 중턱까지 빠르게 오른 이후, 백유화와 나란히 걸어서 공동파의 본문으로 향했다.

공동파까지 가는 길은 낮은 산길로 시작되어 끝에서 가파른 곳에 본문이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부는 산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백유화의 얼굴은 서서히 열이 내렸다.

천일영은 백유화의 보폭을 맞추며, 제법 많은 발자국과 우차가 지난 흔적이 있는 땅을 바라보았다.

“공동파로 물자를 나르는 우차의 자국이 최근 것은 하나뿐이구나.”

“그 말씀은 현재 공동파의 상황이 물자조차 조달하기 힘들다는 것입니까?”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새로 자국을 만든 우차도 짐보다는 사람 한둘 정도만 태운 것 같구나.”

과거 독천마왕 서가흔에게 배운 추적술로 지금의 공동파를 가늠해 보자니 물자는커녕 오가는 사람조차 거의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천일영은 하필이면 이럴 때 우차를 타고 산을 오를 정도로 정신 나간 사람이 누굴지 생각해 보았다.

‘정파에서는 이미 도철용과 천량도사가 왔으니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일까. 아니면…….’

그때 천일영의 기감에 기묘한 기운이 잡혔다.

지금에 와서는 산 하나 정도 느낄 만큼만 기감을 펼쳐 놓고 있지만, 바로 근방에 있는 기묘한 기운의 의미는 천일영의 마음을 술렁이게 했다.

백유화는 천일영의 얼굴을 보고 그 기묘한 표정에 걱정이 되었는지 옷깃을 잡고는 이내 양미간을 찡그렸다.

“공자님?”

“괜찮다. 다만 이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뭐라 말하기가 애매하구나.”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만, 뭐라고 해야 할지…….”

천일영과 백유화는 빠른 발걸음으로 산 중턱의 기운이 풍겨 나오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제법 이상하고도 기괴한 것이었다.

“공자님? 공동파가 산적이 된 것입니까? 아니면 산적들이 공동파의 무공을 익힌 것입니까?”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구나.”

천일영이 조금 전에 추적술로 알아보았던 우차의 주인인 듯 보이는 여인 하나가 남자 여섯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것도 공동파로 가는 산길에서 공동파의 기운을 풍기는 사람들이 산적질을 하는 듯 보이니, 천일영과 백유화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이 지경까지……. 현황우라는 자가 그리도 대단한 자인가.’

천일영이 양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때.

우차의 주인인 듯한 여인의 절박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살려 주세요! 공자님!”

산적들과 검을 들고 대치하고 있으나, 아무래도 밀리는 듯하여 절망에 빠진 듯한 얼굴.

또한 산적들도 그녀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천일영과 백유화에게 신경을 쓸 겨를은 없는지 곁눈질로만 흘끔거린다.

서로가 눈치만 보는 상황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터져 나왔다.

“살려 주세요!”

“음, 아무래도 옷을 보니 공동파의 무인들이 산적이 된 것 같구나.”

“공자님! 살려 주세요!”

“그런 것 같습니다. 공동파의 도복을 입고 있지 않은 것을 보니 변심한 놈들이겠지요.”

“공자! 살려 달라는 말을 못 들었나요?”

“이제 슬슬 올라가자.”

“살려 달라고!”

“네, 공자님.”

“야! 살려 달라고, 이 망할 놈아!”

“날씨가 좋구나.”

“야! 야, 인마! 거기 안 서!”

천일영과 백유화는 애타는 여인의 목소리를 들은 척도 않고 공동파를 향했다.

두 사람이 산길의 경사가 급격히 기우는 곳까지 오자,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들어와 젖은 땅에서 흙 향을 피워 올린다. 그때.

타다다다다닷!

굉음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오며 평화롭게 흔들리던 나뭇가지가 빠르게 떨리기 시작했다.

천일영은 그 경박한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천일영과 백유화가 굉음이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옷에 피를 잔뜩 묻힌 여인이 흉신악살 같은 얼굴을 하며 쫓아오고 있다.

천일영과 백유화의 얼굴이 구겨졌다.

‘옷에 묻은 혈흔보다 입가를 적신 피가 훨씬 더 많군.’

중년의 여인이 입을 벌리며 피에 젖은 이를 드러냈다.

“거기 안 서!”

천일영은 여인의 모습에 한숨을 내리쉬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재수가 없는 날인 듯싶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만 연속으로 만나게 되자 천일영은 짜증이 슬슬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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