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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67화 (168/270)

167화

이십삼 일 전.

금채홍은 조금 우울하면서도 한편으로 삐친 마음을 애써 숨기고 객잔의 한 귀퉁이에 앉아 있었다.

우울한 마음은 처참하게 다쳐 공자님의 손길에 의해 돌아온 서하린이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고, 삐친 마음이 얼굴에 드러날 정도로 뾰로통한 이유는 백유화와 공자님이 어느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벌써 두 사람이 사라진 지 일주일이나 지나자, 금채홍은 곁을 지나가는 건청에게 지나가는 듯한 말투를 가장하여 진심을 물었다.

“공자님은 왜 저를 두고 백유화 스승님과 길을 떠나신 걸까요. 어디에 가신다는 말씀도 없이요.”

“음……. 잘은 몰라도 죄의 무게를 알지 못하는 너에게 피 값을 짊어지게 하고 싶지는 않으신 것 아닐까?”

“피 값이요?”

“분명 서하린 소저가 다친 일로 인해 많은 피를 보실 생각인 듯하다. 그곳에 너를 데리고 가면 온전히 너도 살인귀가 되어야 할 것인데 데려가실 리가 없겠지.”

“아…….”

금채홍의 가슴이 철렁한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공자님은 적을 상대로 팔다리를 자르거나 단전을 부수는 정도의 명만을 내렸을 뿐, 자신의 목적을 위해 목숨을 거두어 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이래저래 나는 공자님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는 거군요.”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다. 다만 백유화 소저와 함께한다는 것은 그분이 피 값을 나누어 짊어질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겠지. 엄청난 수라장이 벌어진다 해도 그 두 분 앞에서는 별것도 아닌 일 정도일 테니까.”

“저도 피 값을 같이 짊어질 수 있는데…….”

“피 값이라는 것은 죄와 생명의 무게를 짊어진다는 것이다. 네 일도 아닌 다른 사람의 일로 그것을 짊어진다는 것은 채홍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버겁고 무거운 일이다.”

콩.

너는 아직 그대로가 좋다고 말이라도 하는 듯 건청은 금채홍의 머리 위를 가볍게 쥐어박고는 남은 객잔의 일을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금채홍은 아프지도 않은 머리를 문지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피 값 같은 거 아무도 알려 준 사람이 없었는걸. 심지어 아미파에서 수련을 할 때도 무공이란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것에 쓰인다는 말을 한 번도 해 준 적이 없었으니까.’

한숨 섞인 마음이 금채홍의 입에서 토해졌다.

그때.

참매 한 마리가 별유천지 밖에서 일하고 있는 건청의 주위를 돌다, 이내 팔에 내려앉는 것을 본 금채홍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분명 참매가 날아왔다는 것은 공자님의 전서구일 테고, 그것엔 금채홍이 알고 싶어서 몸을 비틀 만한 내용이 적혀 있을 테니까.

“건청 오라버니, 뭐라고 적혀 있나요?”

“하나는 서하린 소저의 치료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나에게 온 것, 그리고 너에게 온 편지도 있구나.”

“정말인가요?”

금채홍이 기쁜 마음에 팔짝 뛰며 편지를 건네받는다.

가슴에 꼭 품은 편지.

마치 공자님의 체온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때 건청이 서하린의 치료법을 읽고는 즉시 백유화의 제자인 애영과 화영을 찾았다.

금채홍은 건청의 모습을 보고는 편지를 꺼내 읽지 않고 품에 곱게 접어 넣었다.

왜인지 여기에서 읽는 것이 아깝게 느껴졌기에 밤에 혼자 방에서 펼쳐 볼 생각이었다.

‘나도 오라고 적혀 있으면 좋겠다. 공자님을 위해서라면 피 값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짊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마음은 지금 접어야 할 때.

금채홍은 급하게 달려가는 애영과 화영의 뒤를 따라 서하린이 누워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툭. 툭. 툭. 툭.

무엇인가 습한 것이 얼굴로 떨어지는 느낌에 서하린은 인상을 찌푸렸다.

왜인지 모르게 느껴지는 불쾌한 느낌.

마치 죽음의 언저리에나 있을 법한 불길한 그림자가 몸을 휘감았었던 것도 같다.

끈적한 피가 온몸에 엉켜 들고 혈향이 아직도 콧가에 맴도는 듯하여 서하린은 궁금해졌다.

이 피 냄새가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것인지.

서하린은 피 냄새의 주인을 찾기 위해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순간.

“꺄아아아아아아악!”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겁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비명이 터져 나온다.

다름 아닌 무서울 정도로 큰 눈알 여섯 개와 보통의 눈알 네 개가 5치 떨어진 코앞에서 끔뻑거리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그중에 눈알 두 개는 눈물까지 떨어트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습한 것이 얼굴에 떨어지는 것은 바로 천이영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었다.

서하린은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누…… 누가 그렇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으래요. 그리고 울기는 왜 울어요!”

“그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눈물이 나오지요. 게다가 처음에 왔을 때는 온통 피투성이에 다 죽어 가고 있었단 말이에요.”

“아…….”

서하린은 문득 자신의 몸을 더듬어 보았다.

이제야 월영과 함께 고수를 상대로 싸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 살아 있구나.’

그리고 그 순간 서하린은 자신이 살아 있는 이유를 왜인지 알 것만 같았다.

‘월영, 고생 많이 했겠네.’

안도감이 몰려들었다.

서하린은 자신이 누워 있는 방 안을 돌아보다, 문득 눈알 열 개가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끼고는 다시 한번 한숨을 몰아쉬었다.

“알았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드릴게요.”

대략적인 이야기는 월영에게 들었겠지만, 실제로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

서하린은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소상하게 이야기했다.

듣는 사람들은 가끔 비명을 지르기도 했고, 싸움이 벌어지는 이야기에서는 손에 땀이 나는지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물기도 한다.

또한 마을 사람들의 죽음과 만옥이, 순옥이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그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여기까지예요.”

제법 오랜 시간 이야기를 진행했던 서하린은 제법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다섯 명의 사람들에게 풀려났다.

‘하암, 어쩐지 피곤하네.’

어째서인지 며칠이나 누워 있었다 하는데도 또다시 졸음이 몰려온다.

‘향설 언니와 금채홍, 그리고 천이영 여주인의 눈은 하여간에 엄청나게 커서 진짜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네. 애영과 화영이랬나? 그 둘도 눈이 큰 편인데 평범한 눈처럼 보이니.’

몰려드는 안도감에 서하린은 피식 웃음을 짓고 이내 눈을 감았다.

누워만 있었는데도 피곤이 전혀 풀리지 않은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서하린은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이제야 진정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 * *

‘하아.’

금채홍은 방으로 돌아와 침상에 걸터앉으며 숨겼던 한숨이 터져 나오는 것을 주체하지 못했다.

‘청해성이라니. 목화야!’

심장이 터져 나갈 듯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하린 언니가 말하기를 청해성으로 가는 금군을 잡았다고 했었지? 그런데 움직이는 금군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어.’

금군이 찾는 마을은 바로 친구 문목화가 지키고 있을 곳이다.

그곳을 금군이 찾는다고 하면 분명 문목화는 제대로 된 반항 한번 해 보지도 못하고 죽을 터.

순간 문목화가 비참하게 죽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가야 해. 내가 지켜야 해.’

금채홍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청해성으로 향하는 금군이 몇이나 될지는 모르지만 전부 죽이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마을을 지킬 거야.’

금채홍의 가슴에서 살의가 피어오른다.

비록 악귀가 된다고 하더라도 해야만 할 일이다.

그 순간.

금채홍의 가슴이 저리며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공자님이 자신을 데리고 가지 않았던 이유.

‘그렇구나. 사람의 생명을 거두는 일에 나를 데려가지 않은 이유가 이것이구나. 악귀가 되는 일에 다른 사람을 데려갈 수는 없어. 하물며 이미 악귀가 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부탁할 수 없는 거였구나. 나 역시도 그 누구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혼자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 짐인 것을.’

이 얼마나 깊은 배려였단 말인가.

주륵.

금채홍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철없는 어리석은 마음에 삐쳐 있던 자신이 너무도 한심했다.

부스럭.

금채홍은 품에 곱게 접어 넣은 편지를 꺼냈다.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을 용서해라. 다녀오는 길이 험난하여 너를 데려가지는 못한다. 내가 없는 동안 이영이와 혜령이를 부탁하마.]

금채홍은 편지를 접어 얼굴에 대었다.

험난한 길이라는 것이 이제는 무슨 뜻인지 안다.

바로 살육의 길이다.

‘죄송해요, 공자님. 죄송해요.’

투두두둑. 투두둑.

편지 사이로 눈물이 미친 듯 떨어진다.

금채홍은 한동안의 시간이 지난 후, 금룡참월하검을 탁자 위에 올리고 편지를 써 내려갔다.

아직도 눈물이 그치지 않지만 애써 편지가 젖지 않도록 했다.

공자님에게 남긴 편지가 다 쓰이자, 금채홍는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미파를 나와서 스승님께 연락 한번을 못 했네.’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길을 떠나는 금채홍은 아미파로 보내는 편지 한 장을 더 썼다.

이 편지는 사천성(四川省) 아미산(峨嵋山) 금정봉(金頂峰)에 있는 복호사(伏虎寺)로 가는 표국에 일임하면 될 터.

금채홍은 편지가 다 쓰이자 곱게 접어 놓고는 이내 봇짐을 챙겼다.

제법 먼 길이 될 테니 많은 것을 챙길 법도 했지만, 금채홍은 아주 간단한 짐만을 챙겼을 뿐이었다.

‘내가 가진 것은 모두 공자님께서 주신 것들이지. 그러니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가지고 가고 싶지는 않아.’

금채홍은 몸을 일으켜 봇짐을 밀어 놓고 금룡참월하검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너는 안 데리고 갈 거야. 지금의 내 힘으로는 너를 지킬 수 없을 테니까.”

금룡참월하검의 손때를 벗기고 닦아 내어 탁자 위에 올린 금채홍은 침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돌아올 수 있을까. 돌아온다 해도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피를 묻힌 손이 돼 버릴지도 몰라. 그런 나를 보며 공자님은 뭐라 하실까.’

잠이 올 리는 없지만, 금채홍은 눈을 감았다.

온통 떠오르는 것은 공자님에 관한 생각뿐. 하지만 그것을 애써 외면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그 누구보다 소중한 분이니까.

금채홍은 그렇게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공자님의 기억을 떠올리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 * *

금채홍은 아침 일찍 일어나 객잔의 개점 준비를 하는 건청을 향해 다가갔다.

“오라버니, 저 공자님에게 다녀올게요.”

“공자님에게 다녀온다니, 어제 보낸 편지에 그런 말이 쓰여 있었단 말이냐.”

“네. 직접 앞으로 나서는 일은 아니지만, 도와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으시대요.”

“흠……. 너라면 공자님을 도울 길이 제법 있기는 할 테지. 그런데 왜 금룡참월하검을 천에 꽁꽁 싸서 봇짐 사이에 끼웠어?”

“남들이 검의 가치를 알아보고 덤벼들면 피곤할까 해서요.”

“좋은 생각이구나. 그럼 잘 다녀와라. 먹을 것도 챙겼지?”

“그럼요.”

금채홍은 건청에게 애써 손을 흔들고, 밝은 웃음을 지은 후 밖으로 나섰다.

언제나 금룡참월하검을 지니고 있었으니 건청이 의심을 할까 하여 막대기에 천을 여러 번 둘러싸서 모습을 숨겼다.

‘미안해요, 건청 오라버니.’

금채홍이 눈을 질끈 감으며 건청의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는 사이.

“어머, 일찍 어딘가 가시는 모양이에요.”

“아……. 잠시 볼일이 있어서요.”

마침 산에 갔다가 오는 애영과 화영이 금채홍에게 인사를 건넨다.

천일영이 소유한 산에서 약초를 재배하고 있는 터라 아침마다 다녀오는 길.

애영과 화영은 낯을 가리기는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금채홍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목 인사를 했다.

“그럼 잘 다녀오세요.”

“네, 감사해요.”

금채홍도 애영과 화영을 향해 웃음을 짓고는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그때.

화영이 지나가는 금채홍을 향해 등을 돌려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상한 기분.

기묘한 느낌이 들어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곁에 있던 애영이 화영의 손을 잡았다.

“왜 그래?”

“아니…….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는 저 사람을 보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러지 마. 화영의 느낌은 잘 맞아서 무섭단 말이야.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많이 본 탓인가.”

아련한 눈빛으로 금채홍의 뒷모습을 보던 화영은 툭 떨어지듯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약초.

하다못해 이것이라도 챙겨 줄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든 탓이다.

‘지금은 건네주기 늦었겠지.’

백유화 스승에게 들었던 대로 무공의 고수이기 때문인지, 벌써 등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걸어간다.

그 모습이 슬프고 왜인지 애절하여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기에, 화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뒷모습에 합장하고는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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