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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90화 (191/270)

190화

스르르릉.

검집에서 빠져나오는 어용지천참대검의 검날이 서늘한 소리를 내며 남궁세가의 본문 안에 울렸다.

“자객인가? 아니면 살수인가. 혹은 황실의 개일지도 모르겠군. 누구의 명으로 움직이는 것이냐.”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고, 또한 듣지도 않는다. 오롯이 내 뜻 하나만으로 검을 사용한 것. 그러나 나에게 검을 들게 만든 것은 바로 남궁천 너임을 잊지 말거라.”

“네 뜻 하나로 남궁세가의 사람들을 이렇게나 죽인 것이라 했느냐. 내가 너에게 원수를 진 일이 있지는 않을 터인데.”

“종남파, 해남도, 사천당문, 영약, 그리고 그 많은 사람을 몰살하려고 불러낸 살수대 천살천(天殺千)과 비천운. 네가 무림에서 사라져야 할 이유는 많다. 또 너를 대신해서 죽게 된 전 무림맹 총관 사마정도. 혹 너는 그의 얼굴을 기억하느냐.”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남궁천의 눈에 살기보다 더한 광기가 서렸다.

그동안 하나같이 일을 방해한 원흉.

그리고 비천운을 사라지게 만들고 남궁세가를 멸살한 놈.

그토록 찾았는데.

“네놈의 이름은?”

“천일영.”

푸훗.

실소가 나왔다.

그리고 이해도 갔다.

극마의 경지에 오른 놈이니 그동안의 신출귀몰한 행적과.

사천당문의 독을 뒤바꾸는 그 신위.

또한 왜 그토록 뒤지고 알아보아도 찾지 못했는지 알 것 같다.

남궁천은 찢어질 정도로 입가를 들어 올리며 웃었다.

“크하하하하. 왜 처음부터 네놈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폐관 수련을 한다고 했을 때부터, 무림에서 모습을 감춘 그 순간부터 의심해야 했거늘.”

“네놈만 조용히 있었다면 내가 다시 검을 쥘 일도 없었을 터다. 나 역시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온 자. 그러나 나와 같은 살인귀가 다시 검을 들도록 더한 악행을 쌓아 온 것은 남궁천 너임을 잊지 말아라.”

천일영의 말이 끝나자.

쿠우우웅.

남궁천의 기운이 치솟아 올랐다.

언뜻 느끼기에도 50갑자에 이르는 내공이 뿜어져 나오며 사방을 덮쳤다.

“극마의 경지이니 이길 것으로 생각하여 어슬렁거리며 이곳에 찾아온 것이냐. 비천운을, 내 아들 남궁세강을 상대하고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말이냐. 겨우 극마의 경지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렇군.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참이다. 네놈, 초절정 고수가 아니었군.”

“화경의 경지. 네놈이 오른 경지인 극마와 같은 경지다. 거기에 내공을 높이는 무공을 사용하니 네 몸은 사지가 잘린 채 바닥을 기어 다닐 것이고, 네 목소리는 살려 달라고 애절한 비명을 지르게 될 것이다.”

콰콰콰쾅!

터지듯 흩어져 나가는 내공에 남궁세가 장원의 기와가 날아가고.

이내 물건들이 산산조각이 나며 깨져 나갔다.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는 힘 하나만으로 사방을 도륙하듯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니.

남궁천은 대연검법(大衍劍法)의 자세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어용지천참대검. 세상의 모든 것을 잘라 버리는 검이다. 이것에 내 힘을 더해서 평생을 연마한 남궁의 무공과 합쳐지면 네가 살아남을 길은 없다. 이제부터 어찌할 것이냐.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 할 것이냐.”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네가 화경의 경지를 숨기고 초절정 고수로 위장하고 있었던 것처럼, 나 역시 탈마의 경지를 속이고 극마를 자칭하고 있었다.”

쿠우우웅.

천일영의 몸에서도 기운이 터져 나왔다.

쿠콰콰콰쾅!

남궁세가의 한가운데에서 서로의 기운이 부딪히며 굉음이 터졌다.

천일영과 남궁천의 기운이 엉켜 들고.

각각의 내공이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베고 자르며 무너트렸다.

쩌저적!

콰아아아앙!

그 순간 남궁세가의 장원 절반이 날아갔다.

장원을 이루던 나무가 파편이 되어 허공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가운데.

휘몰아치던 기운의 한가운데 서 있던 남궁천이 씹어 뱉어 내듯 말했다.

“탈마라고? 그것이 어쨌다는 말이냐. 겨우 그 정도로 나를 이길 수 있겠느냐!”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네놈에게 질 것 같지는 않구나.”

“놈!”

어용지천참대검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남궁천의 신형이 천일영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휘잉! 콰지지지직!

검을 든 천일영의 오른쪽 팔에서 피가 튀었다.

깊게 베인 상처.

팔의 절판이 잘려 나가 뼈가 붉은 피 사이로 드러났다.

남궁천이 어용지천참대검을 다시 들어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보이지도 않은 모양이군.”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상처로 눈을 돌리려 할 때.

천일영의 눈에 기괴한 것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남궁천이 들고 있는 어용지천참대검에 묻은 자신의 피가 서서히 검날 속으로 사라져 들어가는 것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든 잘라 내지만, 또한 절대 부러지지 않는 검이기도 하다. 사람의 생명을 먹고 살아가는 검. 그것이 어용지천참대검이다.”

“그렇군. 그건 조금 곤란하군.”

남궁천이 검을 들어 올리며 천풍검법(天風劍法)의 자세를 취했다.

휘잉!

그때를 같이하여.

파방!

이번에는 남궁천의 시선에서 천일영이 사라졌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잠시 당황하는 사이.

남궁천은 귓가로 검날이 날아드는 소리가 들려오자 천일영의 수가 훤히 보이는 듯했다.

‘오른쪽인가!’

소심하게도 자신이 벤 상처 그대로를 재연하듯 같은 경로로 움직이는 천일영의 행동에 남궁천은 싸늘하게 그늘진 비웃음을 지었다.

휘이잉.

귓가에 들리는 그대로 남궁천이 어용지천참대검을 들어 올려 검로를 막는 순간.

콰지지지직!

남궁천은 당황하여 눈을 끔뻑였다.

분명 오른쪽으로 검날이 날아드는 소리를 들었는데.

촤아아악!

피가 왼쪽 팔에서 튀었다.

그리고.

휘이이잉!

이제야 뒤를 이어 왼쪽에서 검날이 날아드는 소리가 들렸다.

남궁천은 식은땀을 흘리며 천일영을 바라봤다.

‘베이고 난 후에 소리가 들린다고? 그렇다면 일부러 오른쪽으로 검날이 들어가는 소리를 들려줬단 말이냐!’

아니.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놈의 속도가 나보다 훨씬 빠르다?’

쿵 하고 심장이 떨어지는 느낌과 함께.

어용지천참대검을 든 오른팔이 조금 떨렸다.

지지지직.

지금에 와서.

왼쪽 팔에 피가 튄 지 한참이 지났는데, 오른쪽 팔의 살이 벌어지며 한 움큼의 피가 쏟아져 내렸다.

촤아아악!

있을 수 없는 일.

살이 도려져 나가는 것도 몰랐다.

남궁천의 눈에 혈색이 강해졌다.

당황함에 이어진 분노가 눈의 혈관을 터트리는 것.

양팔에서 흐르는 피를 바라본 남궁천이 혈도에서 기운을 옮기자.

슈우우욱.

흰 연기와 함께 상처가 아물었다.

천일영은 그것까지 보고 무극지검을 어깨에 걸쳤다.

“이제 알겠구나. 내공이 50갑자에 이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절반도 안 되는 것이었군.”

“그것이 무슨 개소리이냐. 지금 내 몸에서 뿜어지는 이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냐!”

“정말로 내공을 몸에 50갑자나 쌓았다면 방금 내가 날린 검로를 전부 막고도 남았을 것이다. 강제로 기운을 끌어 올리는 것은 가능했을지언정 반응이나 검속은 실제 내공과 거리가 멀구나. 따지고 보면 아마 내공이 15갑자쯤일까 싶은 정도군.”

“그런 거짓말로 나를 흔든다고 하여 내 검날이 무뎌지지 않을 것이다.”

천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부터 느꼈던 이질감.

그것의 정체를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채기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채기법은 아니군. 만약 내공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다면 몸도 똑같을 정도로 빨라져야 한다. 그런데 힘만 낼 뿐, 나머지는 원래의 네 능력에 가깝구나. 이것은 채기법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에 기운을 감싸서 억지로 혈도에 묶은 것인가.”

수십.

혹은 수백이나 수천 명의 사람을 죽이고 그 기운을 모조리 몸 안에 가둔다면.

단전을 비우고 기운을 담는 채기법을 쓰지 않아도 된다.

부작용 또한 없다.

그리고.

“죽을 위기에 처하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도 알 것 같다. 영혼이 죽음을 감지하면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것이었군. 죽음이 자신을 해방하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었나.”

“놈, 이 무공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다!”

“딱 그 정도다. 영혼을 묶는 방법까지는 모르겠다만, 분명 현황우에게는 잘못된 방법을 가르쳐서 선천진기를 소모하게 하여 억지로 몸 안에 기운을 가둔 것이겠지.”

천일영이 어깨에 걸친 무극지검을 내렸다.

남궁천이 땅 아래 방향을 향해 늘어진 무극지검을 보며 비명과도 같은 고함을 질렀다.

자존심이 상했기에.

“분명 네놈은 내 검을 보지 못하고 오른쪽 팔에 상처를 입었을 터! 그런 거짓말을 한다고 하여 내가 흔들릴 것으로 생각하는가!”

“물론 거짓말이다. 다만 너에게 한 거짓말은 검이 안 보였다고 말한 것이지만.”

파아앙!

천일영의 신형이 튀어 나가는 것과 동시에.

촤아악.

남궁천의 가슴에 길게 혈선이 생겼다.

하지만 남궁천은 상처는 상관없다는 듯.

이내 어용지천참대검을 수백 방향으로 검로를 달리하여 날렸다.

채앵. 채채챙. 채채채챙. 채애앵.

서로 마주 보며 수백 번.

수천 번의 검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촤악. 촤아악. 촤아아아악.

피가 튀어 올랐다.

그러나 그 피는 온전히 남궁천의 몸에서 튀었다.

슈우우욱.

상처가 날 때마다 빠르게 치료가 되었다.

영혼을 사용하면 그 생명을 태우며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게 된다.

‘물론 영혼은 삼도천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하고 소멸하여 버리지만.’

알 게 무엇인가.

이기기만 하면 되는 것을.

힘만 가지면 되는 것을.

남궁천의 얼굴에 온통 사악한 기운이 뒤덮였다.

“내가 삼킨 영혼이 일만 명이다!”

어용지천참대검이 무극지검을 튕겨 내자.

카아앙!

천일영의 신형도 밀려났다.

지이이익!

기다랗게 땅 위로 밀린 자국이 생긴 것이 남궁천의 눈에 보였다.

순간.

쿠우우우웅.

남궁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흰색의 연기가.

스르르륵.

다시 한번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 결판을 내자, 천일영.”

“내공이 더 오르지는 않았지만, 무엇인가 바뀌었군.”

“네놈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알려 주지. 이 무공의 이름은 탈제명부음(敓躋命扶淫). 영원한 생(生)을 약속하는 무공이자, 내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 없는 무공이다.”

파방! 휘이이잉!

남궁천의 신형이 튀어 나가며 휘두르는 검의 속도가 빨라졌다.

“목숨 오백 명과 바꾼 검속이다! 막아 보아라!”

“쓸데없는 짓을.”

카앙!

어용지천참대검과 무극지검이 부딪히는 순간.

번쩍!

콰르르르릉.

천하가 뒤집히는 소리와 함께 마른하늘에 벼락이 내리꽂혔다.

그리고.

퍼엉. 콰아아앙! 콰르르르륵.

남궁세가 안에서 터지는 내공과 속도로 인해 지축이 뒤흔들리고, 이내 담벼락만을 겨우 남긴 채 남궁세가의 장원이 통째로 날아갔다.

번개가 할퀸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기듯 검을 마주 대고 노려보는 남궁천과 천일영.

서로의 목을 노리는 검날에서 또 한 번의 번개가 튀었다.

번쩍.

서로의 내공이 부딪히며 응축된 힘이 터지는 동시에, 내리꽂히는 번개가 사방으로 흩어지듯 땅에 상처를 내고 타들어 간다.

그때.

스르르륵

천일영은 어용지천참대검으로 자신의 기운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터지는 기운의 상당수가 사라지는 이질감이 있었는데!’

기괴하게도 기운을 빨아들이고.

검날에서 오묘한 빛이 수십 개가 일렁거리더니.

싸악.

이내 검게 변한 날에 서늘하기 짝이 없는 예기가 스며들었다.

가가가각.

천일영은 어용지천참대검의 검날이 무극지검으로 파고들어 오는 것을 보았다.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무극지검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젠장.’

천일영은 무극지검을 빼며 남궁천의 가슴으로 장법 파천혈옥지(破天血玉指)를 처박듯 때려 넣었다.

콰가가각!

“커헉!”

남궁천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남궁천은 그 와중에서도 검날을 날려 천일영에게 날렸다.

아무리 맞고 베여도.

방어도 하지 않고.

혹은 죽을지라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듯.

목숨을 내건 일검이었다.

휘이이잉.

콰직!

장권을 내지른 천일영의 오른팔을 타고 남궁천의 검날이 어깨를 도려냈다.

촤아아악.

휙.

천일영은 어깨뼈가 보일 정도로 깊숙하게 베이자 즉시 무극지검을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그때.

남궁천은 천일영의 왼손으로 검이 옮겨지는 사이.

온 힘을 다한 일검을 천일영의 머리로 날렸다.

카아앙!

남궁천의 검날이 머리로 날아오는 것을 막은 천일영은 떨리는 팔 위에 들린 무극지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지직.

금이 가고 있었다.

‘게다가 손잡이까지 벌어져서 검날에 힘이 안 들어간다. 검이 부러지기 전에 빨리 남궁천의 목숨을 끊어 내야 하는가.’

순간.

번쩍!

또다시 내공이 부딪히며 번개가 내리치는 사이.

천일영은 신속을 넘어서는 속도로 신형을 뒤로 물리며 검을 떨어트리는 것과 동시에.

‘이 일격으로 남궁천을 죽인다.’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디며 천마삼검 제일식 천마현신 섬으로 남궁천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날렸다.

카아앙!

어용지천참대검의 검게 변한 날이 무극지검과 다시 맞부딪혔다.

남궁천의 속도는 천일영과 거의 비슷한 경지까지 올라와 있었다.

목숨 오백 명의 값.

그것이 다시 번개가 되어 터져 나가며.

번쩍!

검 사이로 번개가 내리치는 순간.

카아아앙. 파사사사삭!

무극지검이 산산조각이 난 채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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