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만년한철 중에서도 가장 순도가 높고 질이 좋은 것만을 모아서.
일만 번의 담금질로 만든 최고의 검.
그것이 허망하게 가루가 되어 날아간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남궁천이 어용지천참대검을 천일영에게 향하며.
이를 드러낸 채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크하하하. 네놈의 속도가 나를 능가할 줄 알았느냐. 화경의 경지와 합쳐진 탈제명부음은 겨우 이 정도가 아니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강해질 수 있다.”
“확실히 그 무공은 거슬리는군.”
경세천하(驚世天下) 흡(翕).
검이 없어졌지만.
천일영은 연한 비웃음을 지으며 자세를 취했다.
‘남궁의 모든 무공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화경의 경지. 게다가 내공을 끌어올리는 무공까지. 그렇다면…….’
쿠구구궁.
천일영의 몸에서 어둠이 흘러나왔다.
‘내공이 더 높고 낮음으로 결판이 난다면 무공의 길이 아니요, 다른 이의 기운을 강탈하여 강해진다면 그것 또한 무인으로서 해야 할 짓이 아니니.’
순수하게 무공을 쌓아 온 사람들.
그들의 무공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탈제명부음은 어떠한가.
‘50갑자에 이르는 내공으로 15갑자 정도의 실력밖에 내보일 수 없다면.’
그 무공은 가짜일 터.
파아아앙!
천일영의 신형이 튀어 나가며 남궁천의 갈비뼈 사이로 장권이 박혔다.
“커헉!”
휘이잉! 콰아아앙!
순간 남궁천의 신형이 뒤로 날아가 담벼락을 들이박고 튕겨 나갔다.
투둑둑. 투두두둑. 두두둑!
연이어 다섯 그루의 나무를 부러트리며 처박힌 신형.
기습과도 같은 공격에 당황하면서도.
‘놈! 이, 무슨 속도란 말인가. 내 속도를 또다시 넘어서다니.’
남궁천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스으으윽.
어느새 음기가 가득한 몸으로 변한 천일영이 소수마공으로 뱀이 타고 오르는 듯한 손길로 몸을 타고 들어왔다.
뚜두두둑.
수공은 방금 장권이 처박혀 부러진 갈비뼈 사이를 파고들었다.
순간 남궁천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놈! 이대로 심장을 뭉개 버리려고!’
후우우웅!
남궁천의 몸 안에 있는 영혼이 목숨이 위험해지는 것을 느끼고 검을 들어 올렸다.
파스스스.
검은 천일영이 급히 빼내는 몸을 따라가며 기어이 머리카락을 베어 냈다.
“쿨럭. 쿨럭.”
남궁천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방금 몸 안에 쌓인 영혼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미 목숨을 잃었을 터.
“아직도 힘을 숨겨 둔 것인가.”
“검이 부서질 줄 몰랐으니 남긴 한 수를 꺼낸 것뿐이다.”
천일영이 이번에는 천마의 장법 중 회선무류강(回旋無流剛)의 자세를 취했다.
“조금 전 목숨 오백 명으로 속도를 올렸다고 했었나.”
“그렇다.”
“그 목숨의 수가 내가 죽인 남궁세가의 사람보다 많은 것은 알고 있느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퍼펑!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
천일영의 신형이 엄청난 굉음과 함께 튀어 나갔다.
“아무래도 네놈은 다른 사람의 고통 따위 상관도 하지 않는 듯하구나.”
“당연한 말 아닌가!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놈들의 목숨까지 챙겨야 하는지 모르겠군.”
남궁천의 일갈과도 같은 목소리가 귓가를 때리자.
천일영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휘이잉!
남궁천의 검을 쥐고 있는 오른팔을 따라 천일영의 손길이 거슬러 올라갔다.
하지만 그저 손이 지나가기만 했을 뿐인데.
천일영의 손길이 지나간 팔에서는 피가 튀어 올랐다.
촤아아악!
“크윽! 이놈! 검을 빼앗으려는 것이냐.”
“글쎄, 빼앗기지 않도록 노력은 해 보아라”
어용지천참대검의 검 자루에 천일영의 손이 닿는 순간.
남궁천은 신법 천리호정으로 몸을 빼며 검날을 세웠다.
즉시 천일영의 목을 뚫기 위함이다.
하지만.
슈르르르륵!
분명 떨쳤다고 생각했던 천일영의 손길이 따라 올라왔다.
‘놈! 어느새!’
검을 빼앗길까 하여 남궁천이 어용지천참대검을 뒤로 물릴 때.
씨익.
소름 끼칠 정도로 잔인한 미소가 천일영의 얼굴에 떠올랐다.
남궁천은 침을 삼켰다.
‘검을 빼앗으려고 한 것이 아닌가!’
뒤늦게 잘못을 깨달았다.
콰아아아악!
천일영의 수공이 남궁천의 오른쪽 눈을 파고 들어갔다.
“크아아아아악!”
“시끄럽다. 겨우 이 정도 고통을 가지고 꽥꽥거리지 마라!”
“으아아아아악!”
천일영의 손가락이 남궁천의 눈알 안에서 휘어지며 통째로 신경까지 안구를 뜯어냈다.
“크아아아악. 네놈, 무슨 짓을!”
슈우우우우욱.
흰색의 연기가 남궁천의 오른쪽 눈에서 피어올랐다.
천일영은 잠시 그것을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상처를 치료할 수는 있으나, 없는 것을 새로 만들지는 못하는군.”
“크으으윽! 개 같은 놈 같으니. 이런 치졸한 방법을 쓰다니!”
남궁천의 오른쪽 눈에서 피어난 연기는 상처를 치료하기는 했다.
하지만 사라진 안구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뽑힌 눈이 있는 자리를 새로운 살로 가득 메웠을 뿐.
툭.
천일영은 남궁천의 눈을 바닥에 떨구고.
퍼석.
발로 밟아 터트렸다.
“네가 몸속에 가둔 영혼의 수만큼 고통을 주려 했는데 이래서는 너무 빨리 나아 버리는구나.”
“닥쳐라. 사지를 억만 겹으로 잘라 죽이겠다.”
콰아아아아!
남궁천의 검날에서 공기를 찢는 소리가 굉음처럼 들렸다.
눈앞으로 날아드는 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천일영은 고개를 슬쩍 까딱거리는 것만으로 어용지천참대검을 피했다.
“한쪽 눈이 사라지니 거리감이 없어진 것인가.”
“이 망할 새끼야, 입 닥쳐라.”
휘리리릭.
천일영의 몸이 어용지천참대검이 그린 검로를 따라 돌아갔다.
그리고.
콰아아앙!
천일영의 수공이 남궁천의 왼쪽 귀로 파고들었다.
귓구멍을 일직선 방향으로 뚫어 버릴 때 난 굉음.
그것만으로도 남궁천은 균형을 잃으며 비틀거렸다.
콰지지지직.
남궁천이 어지러움에 검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천일영은 귓속에 있는 균형을 잡아 주는 기관을 통째로 잡아 뜯었다.
“끄아아아아악!”
“아까도 말했지만 꽥꽥거리지 마라. 네가 죽인 사람들의 고통은 이 정도가 아니었을 터.”
“이 개X끼야, 도대체 무슨 짓을!”
휘이잉. 휘잉. 휘이이이잉.
남궁천이 비틀거리며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보법은 어지러움으로 뒤엉키고.
신법은 사용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또한 한쪽 눈이 없어져 거리조차 재지 못하고 있으니.
콰아아앙!
천일영은 여유 있게 남궁천의 검을 피하고 장권을 심장 위로 내리꽂았다.
“커헉!”
심장 일부가 터져 나갔다.
쿨럭.
입에서 피가 토해지고.
지이이이익.
남궁천의 신형이 밀려나는 것과 동시에.
타다다다닥.
천일영은 남궁천과 속도를 맞춰 달리며 어용지천참대검을 든 오른쪽 팔을 꺾어 부러트렸다.
휘리리릭.
남궁천이 부러진 오른팔 대신 급히 검을 왼손으로 넘기는 것이 눈에 보였다.
천일영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고.
카아앙!
온 힘을 다해 어용지천참대검을 때렸다.
휘이이잉.
어용지천참대검이 허공으로 멀리 떠 날아가 땅바닥으로 떨어지며 수십 번을 튕겨 나갔다.
카라라라랑!
검이 떨어지는 소리가 남궁천의 오른쪽 귀에 울렸다.
왼쪽 귀가 안 들리니 어디쯤 떨어진 것인지.
거리도.
방향도.
그 어떤 것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꿀꺽.
남궁천은 침을 삼켰다.
어지러워서 천일영이 두 명, 세 명으로 보였지만 그것이 문제인가.
손에 검이 없는 것을.
덜덜덜덜.
온몸이 떨려 왔다.
무기가 손에 없는 두려움이 이 정도로 큰 것이었다니.
천일영은 떨고 있는 남궁천을 한 번 훑어보고는.
온몸에 가득한 음기의 힘을 더욱 강하게 끌어올렸다.
“검 하나 손에 들려 있지 않다고 벌벌 떠는 것이냐. 당왕귀도 그렇고 너도 마찬가지다. 어째서 수공의 연마를 게을리하는 것인지.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은 검이 아니라 다름 아닌 자신의 몸이어야 하는 것을.”
“네…… 네놈은 도대체 뭐냐. 어째서 화경의 경지에 오르고 탈제명부음의 무공으로 내공을 키운 내가 네놈에게 공격을 허용하는 것이냐. 이것은 인정하지 못한다!”
“천하의 남궁천이 이 정도로 어리석었음인가. 네놈이 무림맹에서 편하게 앉아 일만 명의 기운을 몸속에 꾸역꾸역 넣는 동안, 나는 같은 일만 명이라 해도 검과 비침, 독약과 수공으로 그들의 목숨을 직접 거뒀다. 겪어 온 수라장의 숫자가 애초에 틀린단 말이다. 이 차이를 아직도 모른단 말이냐.”
“그런…….”
슈우우욱.
천일영이 말하는 동안 남궁천의 부러진 오른팔이 나았다.
순간 천일영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지금에 와서도 영혼을 소멸하며 몸을 낫게 만들다니.
“함부로 남의 목숨을 사용하지 말아라!”
내공을 뿜어내며 천일영의 말이 남궁천에게 터져 나갔다.
울화가.
그리고 오갈 데 없는 분노가.
말만으로도 남궁천의 신형을 밀려나게 했다.
“크아아악! 네놈, 가만히 두지 않겠다!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아느냐!”
“알 게 뭐냐! 인제 그만 네 몸 안에 있는 사람들을 해방하거라!”
“무슨 개 같은 말을!”
“닥쳐! 남궁천!”
그 순간.
콰아아아악!
천일영의 수공이 세로로 남궁천의 몸을 갈랐다.
스르르륵.
쩌저저적!
남궁천의 몸이 반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둘로 나누어진 남궁천의 혀가 꿈틀거리며 마지막 말을 하려던 찰나.
콰아아앙!
천마 장법 혈세천하(血世天下) 무(無)를 남궁천의 심장에 처박았다.
털퍼덕.
남궁천의 신형이 반으로 갈라진 채 쓰러졌다.
꿈틀. 꿈틀.
아직도 심장이 살아 있는지 남궁천의 몸이 움직이며 연기를 피워 냈다.
천일영은 발을 들어.
콰직!
남궁천의 심장을 밟아 터트렸다.
슈우우우…….
몸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잦아들고.
이내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멈췄다.
침묵.
더는 심장은 뛰지 않고, 남궁천은 무너진 남궁세가와 함께 무(無)로 돌아갔다.
그때.
남궁천이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몸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천일영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다름 아닌.
‘혈도에서 영혼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구나.’
몸 밖으로 영혼이 빠져나오는 것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남궁천의 죽음으로 인해 영혼을 묶었던 속박이 풀리는 것 같았다.
천일영은 남궁천의 시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천천히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이로써 저들은 삼도천을 건너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을까.
소멸하지 않고 마땅히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알 수는 없었지만.
‘만일 그렇다면 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지도.’
천일영은 툭 떨어지는 고개와 함께 웃음을 지었다.
잿더미처럼 모든 것이 파괴되고 사라진 남궁세가 안.
이곳에서 위안을 받게 될 줄이야.
‘이제 남은 것도 없애 버려야지.’
시선을 돌려 어용지천참대검이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온 힘을 다해 때렸는데도 부서지지 않은 검.
사람의 힘을 빨아들이고.
피를 양식으로 삼아 살아가는 검.
그것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기에.
저벅. 저벅.
땅바닥을 수십 번이나 튕기며 날아간 검의 흔적을 따라 천일영은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흔적이 끊어진 곳에 도착했을 때.
“……!”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로 간 것이지?’
누군가가 가져간 것이라면 기감으로 알 수 있었을 것이었다.
또한 지금 이곳에 발자국이라도 남아 있어야 했을 터다.
‘흔적조차 없는 것인가.’
후우우웅.
천일영은 기감을 최대한 넓게 펼쳤다.
안휘성 안경에 있는 수많은 사람의 기운이 빠짐없이 느껴진다.
‘어디냐. 누가 가져간 것이냐.’
이마 위로 땀방울이 흐르도록.
천일영은 온 힘을 기울여 느끼고 느꼈다.
마을을 돌아다니는 개부터.
집 안에서 곡식을 갉아 먹는 쥐새끼 한 마리까지도.
하지만.
‘마치 귀신이 사라진 것처럼 존재 자체가 지워졌다.’
있을 수 없는 일.
천일영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검이 세상에 다시 나타난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상대할 것인가. 무극지검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늘.’
그것은 언젠가 다시 자신의 앞에 나타나 목을 겨눌 검에 대항할 수단이 없다는 것.
항주가 있는 방향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는 못하겠구나.’
천일영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이제는 세상에서 사라진 세가의 상처 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폐허가 된 곳에 우뚝 솟아 있는 마지막 문이 남궁세가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쿠웅.
거대한 공터가 되어 버린 곳에 쓸쓸히 남겨진 문은 천일영의 손에 의해서 이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