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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06화 (207/270)

206화

눈치껏 남궁무애가 자리를 무르고 나가자.

백유화는 이제 빈자리가 된 남궁무애의 의자를 노려봤다.

원래는 금채홍이 앉았어야 할 자리.

처음부터 그 자리에 면식도 없는 저 여자가 앉는 게 싫었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공자님의 옆자리에 앉지 말란 말이다. 이 여우 같은 년아.’

백유화의 몸에서 어둠을 닮은 살기가 흘렀다.

정작 화를 내는 본인은 느끼지 못한 모양이지만.

서늘한 기운이 계속 살갗을 파내는 듯 찌르고 들어오자.

유의선은 백유화의 살기로부터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입을 열었다.

“지천번회가 항주로 탈취한 군함을 보낸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혹 이곳의 방어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 뛰어나기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공격을 받은 강소성은 다른 곳에 비해 평상시 왜구의 침입이 적었던 곳이라 조선소도 없고 작은 군항 하나만 있었습니다. 또한 복건성은 조선소가 있기는 하나 오래된 것이라 대형 선박을 만드는 데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항주에서 만드는 최신의 군함은 대부분 복건성으로 보냈었지요.”

“항주의 군항과 조선소가 근래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방비가 튼튼하여 해적들도 군함을 끌고 왔다는 말이군.”

“그럴 것으로 생각됩니다.”

유의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로 천일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곳에 군항이 생긴 것이 언제인가?”

“대략 삼 년 전쯤으로 생각됩니다.”

그때 군항이 생기고 조선소도 같이 만들어졌다.

황실의 최신 설계에 따른 거대한 군함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

“항주에 군항이 생긴 이유는? 지리적인 이점 때문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몇 년 전부터 항주로 왜구들과 해적들의 침입이 극심할 지경으로 많아졌기 때문에…….”

유의선의 말이 천천히 느려졌다.

이제는 천일영과 같은 생각을 머리에 떠올리자.

창백해진 표정으로 유의선이 말했다.

“설마 군항과 조선소를 만들도록 일부러 공격한 것인가!”

“지금은 해남도의 도지휘사를 하는 표호엽이 일 년 전에 겪었던 일을 기억하는가. 이 항구에서 새로 만든 최신의 군함을 가지고 왜구들과 싸우기 위해서 나갔었지.”

“그랬지요. 저도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제가 공자님께 표호엽 도지휘사와 함께 싸워 달라고 부탁했었으니까요.”

“그때 표호엽이 탄 지휘선이 공격당하고 파괴되었었다. 그리고 해남도까지 흘러내려 갔었지. 이후 표호엽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느냐.”

“해적들과 왜구들은 큰 희생을 감수하고도 오직 지휘선 하나만 노렸고, 이후 정신을 잃었다고 했지요. 그리고 그 최신의 군함들은 단 한 척도 항주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여기까지 말을 이어 온 유의선은 탁자 위에 올린 손이 눈에 보일 정도로 떨었다.

그 당시 돌아오지 못하고 증발하듯 사라진 최신의 군함이 팔십여 척.

그때는 침몰했을 거로 생각했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해적이 쓸 배를 스스로 만들어 바쳤단 말입니까. 일부러 지리적인 이점이 있지도 않은 항주를 끊임없이 공격해서 군항을 짓게 했다니. 그것도 기존의 군함에 비해 두 배나 강력하게 새로 설계한 배를…….”

“정확히는 해적이 아니라 지천번회겠지.”

“하…… 하하. 어찌 이런 일이…….”

허탈한 웃음이 유의선의 입에서 터졌다.

망연자실하게 웃는 웃음의 끝에는 분노와 자신의 무력함이 내비쳤지만.

그는 눈을 감고 평정심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놈들은 단순하지 않다. 항주로 대형 군함을 보낸 것은 군항을 파괴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 터. 분명 조선소가 표적이었을 것이다. 더는 최신의 군함을 만들 수 없도록 하려 했을 테지. 게다가 왜구들이 복건성의 군항을 기습하여 지휘소를 빼앗는 바람에 항주에서 보낸 최신의 군함 중에서 팔 할을 잃었다. 이렇게 되면 바다의 싸움에서 금군이 무조건 이긴다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제는 지천번회에서 가진 최신의 군함이 더 많은 형국이 되었으니.

‘항주의 조선소와 군항이 파괴되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유의선은 식은땀을 훔쳐 냈다.

하지만 천일영은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지금 더욱 머리가 아파졌다.

‘도대체 이 일을 몇 년 동안 계획한 것일까. 왜구와 해적을 수하로 만들고 체계적인 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항주를 공격하고 군항과 조선소가 지어지기를 기다렸다. 게다가 최신의 군함이 만들어지자 남궁천과 함께 사천당문을 끌어들여 해남도를 노리기까지. 놈들은 해남도에도 배치될 신형 군함까지 노렸겠지. 이는 십 년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일. 최소 이십 년 정도는 공을 들였을 터다.’

하나 더 굳이 생각하자면.

그들은 어찌 항주에서 새로 만드는 배가 최신의 군함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황실에 줄이 있는 모양이군. 그것도 군사의 기밀까지 알 정도로 높은 사람을.’

이 정도까지 크게 움직이면서도 지천번회는 꼬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알고.

누가 했는지도 아는데.

따질 곳이 없다는 말이다.

유의선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이번에 해적이 쳐들어온 것을 틈타 천인공노할 짓을 한 자가 있습니다. 이놈을 잡기 위해서 지금 금군부터 현청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지요.”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그러는 것이냐.”

모두의 시선이 유의선에게 쏠렸다.

생각조차 하는 것도 싫다는 듯.

유의선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해적들이 공격한 때를 틈타 변태가 설치고 있었습니다.”

“변태?”

“그놈은 속옷 한 장만 입은 채 항주를 돌아다니면서 해적들을 죽이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도 흉측하여 아녀자들이 해적보다 그 변태를 더 무서워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심지어 어떤 여인은 그때의 충격으로 잠도 못 자고 울기만 합니다.”

“그건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구별이 안 되지만 옷을 벗고 다닌 것만큼은 벌을 받아야겠구나. 인상착의 같은 것은 없느냐. 나라도 보게 되면 잡으마.”

유의선은 대답 대신 용모파기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천일영과 모두는 그것을 유심히 바라봤다.

“응?”

설마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너무도 선명한 그림에 모두는 자리에 있는 한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너였냐, 범인이.”

“아…… 아니다!”

천일영이 목줄을 움켜쥐고 싸늘한 표정으로 말하자.

기겁한 표정으로 천량도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온몸으로 부정한다.

“데리고 가라. 변태라면 감옥에 가둬야지.”

“그게 아니란 말이다. 어찌하여 내 말은 듣지 않는 것이냐.”

“온갖 인격자인 척하더니만 이런 것을 좋아하는 놈이었군. 내일 안과 혜, 그리고 하오문의 세하월을 통해서 정보를 팔라고 해야겠다. 천량도사는 변태였다고.”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팔지 마!”

천량도사가 놀란 표정으로 가슴을 쿵쿵 치며 억울해하자.

도철용이 눈물을 흘리며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물론 도철용의 눈물은 웃다가 흘린 것이었고.

설명이 끝난 이후에도 반 각은 더 울었다.

“후우, 그런 사정이라면 잘 알겠습니다.”

유의선이 사정을 듣고는 용모파기를 없애겠다고 약조했다.

다만 객잔에서 유일하게 천일영만이 울퉁불퉁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쳇, 이번 기회에 저놈을 객잔에서 치워 버리려고 했는데. 상어 녀석, 물어뜯을 거라면 엉덩이도 물어뜯을 것이지. 엉덩이까지 보였으면 끝까지 변태로 밀어붙일 수 있었는데 아깝군.”

청해성에서 봤을 때부터 이 망할 천량도사가 유난히 금채홍과 사이가 좋아 보여서 짜증이 나던 참에 잘되었다 싶었는데.

‘뭐, 이렇게 되면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이미 어쩔 수 없는 일.

천일영은 미련을 털고 혹시 금채홍이 자는 동안 땀이라도 흘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차게 식힌 물에 담근 천을 가지고 금채홍의 방으로 들어갔다.

* * *

다음 날.

해가 벌써 조금 기울기 시작하는 것이 벌써 늦은 시간인 것 같았다.

금채홍은 잠에서 깨어 눈을 끔뻑였다.

오래도록 잠든 탓이었는지 머리가 조금 무겁기는 했지만.

오히려 나쁜 것은 몸이 아니라 기분.

눈을 뜨자 공자님이 곁에 있는 것을 보았을 때만 해도 괜찮았다.

솔직히 밤사이에 곁을 지켜 주었다는 게 기뻤다.

다만 공자님의 곁에 있는 여자를 보는 순간 불쾌해졌다.

‘뭔가 아주 예쁘고 참한 소저네. 공자님이랑 친해 보이고…… 아니, 스스럼없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

둘이 같이 잠든 자신을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창피하기도 하고.

왜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들지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설마 밤새 여기에 계셨던 건가요?”

“걱정돼서 여기에 있었구나.”

“저 여자분도요?”

금채홍이 눈을 흘기며 바라보자.

남궁무애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방금 방에 들어왔어. 이제 슬슬 일어날 때가 되었으니 물을 가져다 달라고 공자가 부탁했거든.”

“아……. 방금 들어오신 거군요.”

조금 안도한 금채홍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궁무애는 그 모습을 보고는 한순간에 감이 왔다.

‘이 아이는 공자를 좋아하는구나. 그런데 아직 깨닫지는 못한 건가?’

그런데 한 가지 더 이상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천일영의 표정이었다.

‘소저가 눈에 보일 정도로 표 나게 안심하는데, 공자도 그걸 눈치 못 채? 게다가 아직도 이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듯하네? 아니! 그것보다 공자도 이 아이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공자도 자신의 마음을 모르고 있어?’

아무리 둔감하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모를 수가 있나?’

남궁무애는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에도 놀랐지만.

자신보다 애정 관계에 둔감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이 분야에서 지금까지 중원 제일은 자신이라 자부하고 있었거늘.

“마셔요. 방금 떠 온 물이라 시원할 거예요.”

“가…… 감사해요.”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고 있을 때였기에.

금채홍은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꿀꺽.

오랜만에 마시는 물이라서 그런지 첫 모금은 시원한 듯했다.

꿀꺽.

그러나 두 번째 모금에서 금채홍은 인상을 썼다.

역한 피 냄새.

비릿하고 절대로 잊히지 않는 향.

순간 울컥하며 첫 모금으로 마신 물까지 위에서 역류하여 쏟아져 나왔다.

“쿨럭. 우웨에에엑!”

급히 입을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금채홍은 토한 물이 천일영의 옷에까지 튄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다급히 입을 벌렸다.

“공자님! 죄송해요!”

“괜찮다. 물을 마시다 토한 정도로 뭘 그리 요란스럽게 구느냐. 죄송한 것도 없고 네가 잘못한 것도 없다.”

“공자님…….”

금채홍의 얼굴이 파리한 빛과 함께 떨리자.

천일영은 물잔을 다시 내밀었다.

“토해도 괜찮다. 딱 한 모금만 더 마시거라. 오랜 시간 물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인지 입술이 갈라졌구나.”

“네…….”

다시 한번 억지로 물을 삼키던 금채홍은.

이번에는 첫 모금에서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피 냄새에 토했다.

“우웨에에엑!”

후두두둑.

입에서 튀어 나간 물은 천일영에게 고스란히 떨어져 내렸다.

“어떡해요. 빨리 닦을 것을!”

“괜찮다. 가만히 있거라.”

억지로 자리에 앉힌 천일영은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했다.

“반 모금 정도는 토하지 않고 위 속에 남은 모양이구나. 아쉽지만 당장은 이 정도로 괜찮겠지.”

“겨우 물 반 모금을 마시게 하려고 그 물을 다 뒤집어쓰신 것입니까.”

“푸석한 얼굴이나 어찌하고 그런 말을 하여라.”

부드럽게 웃는 천일영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금채홍은 눈물이 날 것도 같고.

자신이 죽인 자들의 모습이 조금은 지워지는 듯도 했다.

남궁무애가 자신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기 전까지는.

“꺄악!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어서 깜짝 놀랐어요.”

“흐음. 뭐, 입술이 갈라지고 오랜 시간 못 먹어서 뺨이 홀쭉한 것만 빼면 괜찮아 보이네.”

“네에?”

“나 항주는 처음이거든. 안내해 주지 않을래?”

큰 눈을 끔뻑이던 금채홍이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데.

남궁무애가 금채홍의 양손을 잡으며 천일영을 바라봤다.

“같이 나가도 되지?”

“괜찮겠지. 바람을 쐬면 조금은 나아지기도 하니까.”

“그럼 잠시 데리고 있을게.”

강제로 끌어낸 금채홍의 신형은 남궁무애가 느끼기에 너무도 가벼웠다.

불과 며칠 사이에 그만큼 많은 살이 빠진 것처럼.

이렇게 가벼운데도 가슴이 저리도 큰 게 짜증이 났지만.

남궁무애는 금채홍의 손을 놓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은 정리가 안 되어 어수선한 항주의 시내로 들어오자.

이미 먹고살기 위해 슬퍼할 겨를도 없이 상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철전 몇 개를 내고 남궁무애가 당과 두 개를 사서 하나를 금채홍에게 건넸다.

금채홍은 당과를 받아 들고도 먹지 못하고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했다.

어차피 먹었다가는 토할 테니까.

그때 남궁무애가 손바닥을 활짝 펴서 금채홍의 코에 들이밀었다.

“냄새 맡아 봐. 내 손에서 무슨 냄새 나?”

“네에? 아니…… 그렇게 냄새를 맡아 보라고 하셔도…….”

“그러지 말고. 냄새나는지 맡아 봐.”

떼를 쓰듯 말하자 금채홍은 마지못해 냄새를 맡았다.

‘좋은 향기. 뭔가 특별한 것을 사용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살냄새가 좋은 건가?’

금채홍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말했다.

“좋은 향기밖에 안 나요.”

“그래? 그런데 내가 냄새를 맡으면…….”

킁. 킁.

장난스럽게 소리까지 내며 냄새를 맡은 남궁무애가 말했다.

“피 냄새가 나.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냄새가 안 난다고 하는데, 나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나거든.”

“네에?”

“생피 냄새. 손뿐만 아니라 온몸에서 나는걸.”

남궁무애는 자신의 손에서 나는 냄새가 지겹다는 듯 손을 한 번 털고는 당과를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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