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239화 (240/270)

239화

천일영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하은월 역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의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었다.

노송하는 정신을 잃고 있는 천자의 몸을 의원들이 살피는 동안 피가 날 정도로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천일영, 그놈의 무공이 그 정도일 줄이야.’

내리치는 번개가 반경 수백 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광경에는 혈천회의 이인자로 불리는 노송한 역시 몸을 드러내지 못했었다.

나서는 즉시 죽는다는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일영의 무공은 겨우 그 정도일 뿐이기도 했다.

천자가 심장만 있었다면.

‘탈마의 천일영 정도는 일 초식에 죽일 수 있었거늘.’

과거 금제가 걸리지 않은 신선을 상대로 여유 있게 목을 날릴 정도의 천자다.

물어뜯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피가 흥건하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채로 노송하가 의원에게 물었다.

“천자님의 상태는 어떠하냐. 정신은 언제쯤 돌아오시는 것이냐.”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무리는 없으나, 정신을 차리는 시기는 장담하기 힘듭니다. 탈제명부음으로 대신하던 심장이 사라진 것뿐만이 아닙니다. 천일영 그놈은 심장이 있던 자리를 도려내는 순간 수없이 많은 번개를 천자님의 몸 안에서 뿌렸습니다.”

“번개를? 그것이 사실이더냐. 천일영, 이 개 같은 놈이!”

“흔적이 수백 개나 몸 안에 있습니다. 그것이 혈도를 태우고 영혼을 해방했습니다. 또한 뇌(雷)의 힘이 기도를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뿌득.

노송하의 이가 갈려 나갔다.

천자가 가슴에 구멍이 뚫린 정도로 이렇게 무너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몸 안에 번개를 뿌릴 줄이야. 놈은 탈제명부음의 회복력을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몸속을 공격한 것인가. 영악한 새끼! 천자님께서 한참이나 무공이 떨어지는 천일영을 견제하는 이유를 알겠구나.’

한숨이 입가를 채우는 동안 노송하가 의실을 둘러보았다.

의실 안에는 백여 명의 사람이 벽에 걸린 채 하은월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의식이 없는 채로 가슴이 개복되어 있었고, 수천 개의 혈관이 하은월의 몸과 연결되어 생명을 연장하는 중이다.

심장이 있던 자리로 흘러 들어가는 백여 명의 피는 이내 곧 말라붙을 테고, 몇 시진 후에는 또 다른 백여 명이 끌려들어 올 터.

노송하가 진땀을 흘리는 의원에게 낮은 목소리를 내었다.

“천자님을 살릴 방도를 찾아라. 필요하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 천자님을 위해서라면 수만 명쯤 가져다 바쳐도 상관없으니까.”

“그리하겠습니다.”

열 명의 의원이 고개를 숙이자 노송하는 의실에서 나왔다.

지금 당장 심장을 찾으러 종남파로 가고 싶었지만, 천자는 심복인 자신에게조차 심장의 위치를 알려 주지 않았다.

게다가 간자에 의하면, 요즘의 종남파는 방비가 굳건하여 천자의 힘 없이 심장을 찾아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상태다.

‘만일 종남파를 치는 동안 누군가가 심장을 가지고 도망가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상황은 악화한다.’

생각에 잠기던 노송하가 이내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모세룡이 무림 맹주가 되어서 종남파에 압력을 가하는 것.

온갖 이유를 만들어서 종남파의 방비를 풀게 하고 기습을 한다면 심장을 찾는 데 어려움이 없을 터다.

노송하는 소림의 방장 태사명진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빠르게 진행하게 하기로 마음먹고 천지제의 소집 명령을 내렸다.

그녀는 발걸음을 옮기며 이를 악문 채 중얼거렸다.

“천일영, 죽여 버리겠다. 천자님을 저렇게 만든 죄, 절대 가볍지 않다. 네 가족과 친한 사람, 그리고 주변에 네 얼굴을 아는 사람까지 모조리 죽여 버리마.”

먼저 천자부터 살리고 난 이후.

노송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천일영부터 찢어 죽이겠다고 마음속 깊숙이 다짐했다.

* * *

만년한철로 둘러싸인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는 윤의강의 발걸음에는 초조함이 배어 있었다.

며칠 동안 사방을 수소문하여 혈도와 기도를 되돌릴 방법을 찾았는데.

‘정말로 아무런 방법이 없구나. 게다가 천마님은 아직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계시고.’

거대한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윤의강은 다른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며 도현과 소초련을 바라봤다.

하지만 둘은 기감으로 잡힐까 봐 의실에서 나가지도 못하는 신세.

딱히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멍한 눈길로 의자에 앉아 아이처럼 발을 흔들고 있는 여인을 보자니 속이 터졌다.

윤의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저! 소저는 공자님의 친구라 하시면서 어찌 그리 태평하십니까!”

“응? 나?”

“여기에 소저라고 부를 사람이 또 누가 있습니까. 소저는 공자님이 걱정되지도 않으십니까?”

“조금 기다려 봐. 전서구가 올 때가 되었으니까.”

“그놈의 전서구를 어디로 날린 것이길래 그것만 주야장천 기다리시는 겁니까. 아오, 답답해.”

윤의강이 가슴을 탕탕 치며 한숨을 내뿜었다.

하오문에서는 급히 연락할 때 사용하는 참매가 따로 있었다.

참매 중에서도 가장 빠르고 튼튼한 것들로만 구성된 특별 전서구는 편지통을 가지고 목적지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가는 길에 있는 지회를 향해 쉬지 않고 전속력으로 날아간다.

지회에 도착한 참매는 지치지 않은 다른 참매에 편지통을 옮겨 매달아 그다음의 지회까지 날아가고, 다음 지회에서 또 다른 참매가 떠오른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귀주성에서 항주까지 하루 만에 전서구가 도착할 만큼 빠르게 편지가 전달되는데, 흑룡강성에 있던 천일영에게 전서구를 보낸 것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하루 만에 편지를 전달한 것이었다.

오직 특별할 때만 사용하는 전서구를 천마님의 친구라고 자칭하는 이 여자가 어찌 알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어딘가에 편지 한 장 보내고 멍하게 있는 이 소저가 못마땅해서 윤의강은 미칠 것만 같았기에 다시 한번 소리를 지르려는데.

“회주님! 남가은이라는 분에게 전서구가 왔습니다. 급하다고 봉투에 적혀 있는데요.”

“답장이 왔으니 저 멍한 얼굴 좀 이제 안 봐도 되겠군.”

편지를 낚아챈 윤의강이 거친 손길로 봉투째 건네자, 남궁무애가 급히 편지를 펼쳤다.

떨리는 손길로 편지를 읽어 내려가기를 잠시.

남궁무애의 얼굴에 조금씩 웃음이 지어졌다.

‘다행히도 가지고 있었구나. 이것만 있으면 공자를 치료할 수 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남궁무애가 천일영을 바라보았다.

백의 장삼으로 갈아입힌 천일영의 모습은 깊은 잠에 빠진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남궁무애는 천일영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아직은 몸이 온전치 않고 체력도 회복되지 않아 식은땀이 흥건하게 손을 적셨지만, 남궁무애는 개의치 않았다.

‘공자를 치료하려면 내 정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래도 공자를 치료할게. 긴 잠에서 깨어 사정을 알게 되면 공자가 나를 죽이려 할지도 모르지.’

상관없었다.

치료하는 길이 보인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남궁무애는 윤의강이 뚫어지게 노려보는 것을 느끼면서도 이마를 쓰다듬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공자에게 죽임을 당한다 해도 그것은 슬픈 일이 아니었다.

그저 이 지긋지긋한 인생이 끝나는 것일 뿐.

남궁무애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 * *

해가 지고 술시(戌時)가 되었을 때 남궁무애는 천일영의 곁에서 떨어졌다.

그동안 노려보고, 째려보고, 훑어보던 윤의강의 눈빛으로 인해서 온몸에 수백 개의 구멍이 뚫릴 것 같았지만 천일영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던 남궁무애가 마른 입술을 떼었다.

“공자를 치료할 방도가 있어. 다만 여기에서는 안 되고 항주로 가야 해.”

“정말로 공자님을 치료할 수 있습니까? 아니! 꼭 항주로 가야만 하는 연유가 있습니까?”

“응, 여기에는 없고 항주에만 있는 게 있어. 그러니 공자는 내가 데려갈 거야.”

“잠깐!”

윤의강과 도현이 동시에 외쳤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천마님을 저 여인에게 맡긴단 말인가.

“명천마왕님이나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상관은 없는데 따라올 수 있겠어? 천마신교에 잡혀도 나는 도와주지 않을 건데.”

“그러는 소저야말로 어찌 천마님과 귀천명을 빠져나가실 것입니까. 지금 저희를 잡으려고 전보다 다섯 배는 많은 무인이 돌아다닙니다.”

“나는 괜찮아. 공자를 안고서 날아서 갈 거니까. 그리고 내일 저녁 전에는 항주에 도착할 거고.”

“네에? 날아서 간다고요? 소저! 적어도 화경 정도는 되어야 허공에 발을 내딛는 법입니다. 그런데 날아서 간다니요.”

도현의 말에 남궁무애는 싸늘한 표정과 함께 화극여월을 들어 올렸다.

“나를 말린다면 모두 베어 버릴 수밖에.”

“소저!”

쿠웅.

남궁무애가 흘리는 살기가 만년한철로 만든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진심이라는 의미다.

순간 윤의강이 도현과 소초련의 앞을 막았다.

“가십시오. 그리고 천마님을 살려 주십시오.”

“회주! 무슨 말을!”

“소저, 화극여월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그것은 천마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던 검입니다. 그 검을 가지고 계시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소저를 믿어 보겠습니다.”

“고마워. 그리고 도현과 소초련이라고 했지? 걱정되면 항주의 별유천지로 와. 내가 가는 곳은 그곳이니까.”

“젠장,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따라가겠습니다. 금세 따라갈 테니 거기에서 기다리십시오.”

남궁무애가 천일영을 안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갈게.”

의실의 문이 열리고 남궁무애의 신형이 떠올랐다.

후웅!

땅을 박찬 것도 아닌데 몸이 삽시간에 떠올라 빛을 밝히는 달과 모습을 겹친 남궁무애의 신형이 항주가 있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후욱!

도현과 소초련은 그 모습에 침을 삼켰다.

“연임우와 자소필을 일격에 죽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능공허도라니요. 그것도 극성으로 수련한 실력이니.”

“그런데 저렇게 젊은 나이에 능공허도를 펼치는 게 가능한 것일까? 공자님처럼 무공의 경지가 극에 달해서 젊어 보이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나보다 나이가 많다던가?”

올해로 나이 육십이 세가 된 소초련이 고개를 기울이자 도현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설마요. 명천마왕님보다 나이가 많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만약에 저 얼굴과 몸에 나보다 나이가 많다면 충격이 클 것 같다.”

다소 안도하는 표정의 소초련이 도현과 함께 만년한철로 만든 방으로 들어섰다.

이제부터 항주로 가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그때 윤의강이 수하들에게 뭔가를 속삭이다 도현과 소초련을 보면서 씨익 웃음을 지었다.

“두 분은 죽다가 살아나셨으니까, 이제부터 진짜로 죽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나더러 죽으라고?”

윤의강의 수하들이 관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이중으로 만들어진 관입니다. 아랫부분은 특별히 제작된 우차 밑으로 들어가서 보통의 작은 관처럼 보입니다. 또한 실제 시신을 위에 넣을 것입니다.”

“설마 썩어 가는 시신 밑에 깔려서 항주까지 가라고? 우차에 관을 싣고 가면 두 달은 걸릴 텐데!”

“설마 항주까지 가라고 하겠습니까. 호남성의 동정호까지만 가면 됩니다. 이후로는 동정호의 주인 요소령이 물길로 항주까지 안내할 것입니다.”

잘 짜인 계획이었다.

귀주성과 호남성은 붙어 있다.

관에 들어간 채로 귀주성만 벗어나면 호남성부터는 경공으로 달려가도 된다.

또한 호남성부터는 무림맹이 관리하는 지역이니만큼 천마신교의 추적은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길을 통해 빠른 배로 항주까지 간다면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에 갈 수 있을 터.

“만년한철로 관 안을 메웠습니다. 시신 썩는 냄새만 참으시면 들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그것참 좋은 생각이기는 한데…….”

냄새에 대한 방지책은 없는 거냐?

시신에서 흐르는 진물은 어쩌고?

‘이놈이 자기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네.’

소초련과 도현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러나 딱히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고 오직 한숨만이 입 밖으로 흐를 뿐.

우차의 흔들거림과 시신의 냄새를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몸이 성치 않은 지금.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둘은 관 속으로 엉금엉금 들어가서 누웠다.

딱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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