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240화 (241/270)

240화

늦은 밤이지만 귀천명의 경계는 삼엄했다.

며칠 전에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된 두 사람이 연임우와 자소필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후.

천마신교는 자신들의 세력권인 귀천명에서 두 명의 초절정 고수가 죽었다는 것을 깨닫고 범인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멈춰라. 이 밤중에 관을 가지고 어디를 가는 것이냐!”

“흑흑. 아이고, 어르신. 제 딸년과 사위 놈인데 며칠 전에 비명횡사했습니다. 사위가 호남성 회화(懷化) 출신인지라 금실이 좋았던 딸년과 함께 묻어 주러 가는 길입니다요.”

하오문에 소속되어 있는 노인 이판석이 눈물을 쥐어짜며 원통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신교 무인 백윤승이 검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옮기며 경계의 눈빛을 띠었다.

도망자는 도현과 소초련 두 사람.

때마침 관도 두 개다.

게다가 무림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아이와 노인.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것이 수상하기만 했다.

“딸과 사위는 어떤 연유로 죽었지?”

“아이고오오오! 우리 딸과 사위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귀천명에 소란이 일었을 때 칼에 맞아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우리 딸! 불쌍해서 어쩌나!”

“언제 어디에서 어찌 죽었나. 범인은 누구지?”

백윤승이 캐묻고 들자 이판석의 눈물이 폭포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어으으으으헝헝.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사 일 전에 귀주성 동쪽 주단 가게 근처에서 밤길을 걷다 온몸을 난자당했습니다요. 저희는 채소 가게를 도우며 착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냥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현청에서는 범인도 못 찾는다고 그냥 손을 놓아 버렸지 뭡니까! 이런 우라질 씨부럴 놈들의 새끼들이! 아이고 억울해서 우리 딸하고 사위는 어쩌나!”

“주단 가게 근처?”

때마침 그곳은 연임우와 자소필이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된 근처다.

생각해 보면 그 일대가 온통 죽어 버린 무인들 천지였다.

노인의 말대로 두 사람이 범인을 목격했다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기는 했다.

하지만 백윤승은 끝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았다.

“관 뚜껑을 열거라.”

“아이고!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억울하게 죽은 자식입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여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반쯤 뽑힌 서늘한 검날에 이판석의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는 얼른 관 뚜껑을 열었다.

끼익. 드르르륵.

두 개의 관이 모두 열리자 시신에서 나오는 시큼한 냄새가 풍겼다.

나이 서른이 채 되지 않아 보이는 남자와 여자의 시신.

백윤승은 검으로 옷고름을 잘라 상처를 살폈다.

깊이 베인 상처가 온몸에 가득했다.

“노인장의 말은 모두 사실인 듯하군. 가도 좋다.”

붉은색 종이에 위조할 수 없는 도장이 찍힌 종이를 관에 붙인 백윤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종이가 붙어 있으면 더는 검문을 받지 않고 귀천명에서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이판석은 여인의 옷을 다시 입히고 사위라는 남자의 옷을 여몄다.

그는 죽은 딸의 옷을 벗겨 나신이 드러나게 만든 것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관 뚜껑까지 다시 덮은 노인이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다시 우차를 끄는데 백윤승이 불러 세웠다.

“잠깐!”

“왜 또 그러십니까!”

순간 이판석의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다 넘어간 듯했는데, 뭔가를 눈치챈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식은땀이 흘렀다.

백윤승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가…… 감사합니다.”

백윤승도 미안했던 마음이 컸는지, 그 말만을 남기고 등을 돌렸다.

이판석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우차를 몰았다.

밤새 몬 우차는 귀천명을 빠져나갔고, 이내 해가 뜰 무렵에는 삼도(三都)로 가는 관도에 들어설 수 있었다.

길을 가던 차에 이판석은 관 속에 든 두 시신이 연고도 없이 화전을 일구다가, 도적에게 당한 부부라는 것이 생각났다.

비교적 천마신교의 세력권에서 벗어난 귀주성 흥인(興仁) 인근에서 발견된 시신.

비록 지금은 도현과 소초련을 탈출시키기 위해서 이용당하는 육신이기는 하지만.

‘내 임무는 이들의 무덤을 만들어 주는 것이지. 그것까지 해야 내 일이 끝나는구나.’

윤의강이 불쌍한 사람들이라며 은자 오십 냥이라는 거금을 주어 부탁한 일이다.

이들은 수녕(綏寧)에 있는 절 낙안사에 무덤을 만들어 줄 것이니.

‘다음 세상에서는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이판석은 이들의 시신이 완전히 썩는 것은 너무 비참하다고 생각하여 우차를 빠르게 몰기 시작했다.

* * *

그날 저녁이 되기 직전.

아직은 저물어 가는 해가 서서히 붉은 노을을 하늘에 흩뿌릴 때쯤 남궁무애의 눈에 항주의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능공허도로 빠르게 날아오는 동안 공자의 체온이 식을까 싶어 꼭 안은 덕분일까.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얼굴에 조금이나마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남궁무애는 허공에서 별유천지를 찾고, 그 옆에 있는 백유화의 집 안에 내려앉았다.

타닥!

들려오는 발소리에 백유화가 튀어나왔다.

“공자님은 어떠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어. 편지로 이야기했던 것들은?”

“전부 준비시켰다. 그런데 그런 거로 공자님을 치료할 수 있어?”

“응.”

남궁무애가 백유화와 함께 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백유화의 제자 애영과 화영이 기다리고 있었고, 한쪽 편에는 눈물을 펑펑 흘리는 금채홍도 있었다.

“가은 언니! 공자님께서 왜 이렇게 다치신 거예요!”

“생사경 중에서도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과 붙었어. 살아서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흐흑.”

창백한 안색의 천일영을 보자 금채홍이 주저앉았다.

사실은 백유화도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자신마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다.

여주인인 천이영이 이 사실을 알면 기절할 테니 알리지 말라고 했었기에 천일영이 다친 것은 의실에 있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었다.

남궁무애는 천일영을 눕히고 백유화에게 말했다.

“나는 의술은 몰라. 그러니 네가 진맥을 해서 어디의 어떤 혈도가 타들어 갔는지 알아내. 그리고 망가진 기도 역시 상세히 그림으로 그리고.”

“젠장, 알았다.”

백유화는 천일영의 몸을 하나씩 짚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이게 뭐지?

‘말도 안 돼. 삼백육십오 개의 혈도 중에서 남아난 것이 겨우 열일곱 개? 나머지는 전부…….’

기도도 마찬가지였다.

멀쩡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백유화는 심장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는 했지만, 이래서는 정신을 차리는 데 십 년이 걸릴지 이십 년이 넘어설지도 모르는 상태다.

말 그대로 죽지만 않고 숨만 쉴 뿐.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몸이었다.

‘젠장, 이건 나도 치료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하는 몸이다. 남가은,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실패하면 죽여 버릴 거다.’

두 시진에 걸쳐 천일영의 몸 상태를 그림으로 정리한 백유화가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하나도 빼먹지 않고 그린 것이다.”

“응, 이 정도면 충분해. 그럼 내가 준비하라고 했던 것을 가져와.”

“알았다.”

의실 밖으로 나간 백유화가 잠시 후 낑낑거리며 뭔가를 가지고 왔다.

너무 커서 문에 끼인 것을 발로 꾹꾹 밀어 강제로 쑤셔 넣으려고 안간힘을 써도 여간해서는 가지고 들어올 수 없자, 백유화가 홧김에 강선으로 감아 무 뽑듯 방 안으로 끌어냈다.

“급해 죽겠는데 왜 문틈에 끼고 X랄이야!”

“아이고! 아파서 죽겠습니다. 좀 살살 다뤄 주시면 안 됩니까!”

“시끄러워! 주둥이 다물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물체.

그것은 바로 고자 송여악이었다.

백유화가 의실 안으로 몸이 동그랗게 변한 송여악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 뒤로 다섯의 사람이 더 따라 들어왔다.

“양기를 가지게 된 자 셋. 음기를 품은 사람 두 명. 그리고 양과 음이 뒤섞인 고자가 하나다.”

“충분할 것 같아.”

“그런데!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런 것을 준비시킨 거야? 이들은 지천번회인가 혈천회인가의 놈들이 이상한 무공 책을 뿌려서 몸이 이 지경이 된 놈들인데.”

“나중에 설명할게. 지금은 공자의 치료가 먼저이니.”

항상 멍한 표정만 짓고 있던 남궁무애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스르르릉.

화극여월을 뽑아 든 남궁무애가 송여악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이 너무도 무서워서 송여악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끼야야야악! 무슨 짓을 하시려고요!”

“그냥 몸에 구멍 몇 개 뚫으려는 거야.”

“네에? 저기요? 그만둬 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지. 남의 몸에 함부로 구멍을 뚫으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죽여 버리고 기운을 뽑아내는 것보다는 낫잖아?”

“히익!”

정말이다.

이 여인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죽이는 사람이다.

본능적으로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챈 송여악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서늘한 검날이 몸으로 다가오고.

이내.

푸욱.

약 십 치 정도의 깊이로 깊숙이 찔러 들어왔다.

“끄아아아악!”

미칠 정도로 아팠다.

특히나 음기와 양기가 뒤섞인 이후에는 통증에 유독 민감해진 몸이 되었다.

송여악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으나 남궁무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싸늘한 말을 내뱉었다.

“아, 여기가 아니네.”

“네에? 아으으윽!”

쑤욱.

검날이 뽑히고 다시 한번.

푸욱!

이번에는 이십 치 깊이로 다른 곳을 찔렀다.

“꺄아아아아아악!”

아까보다 배는 더 아팠다.

걷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남궁무애는 무심한 얼굴로 이십 치 깊이로 박힌 검을 뽑아냈다.

“끄아아아악.”

“미안, 처음 찌른 거기가 맞나 보네.”

“네? 그게 무슨 말씀…….”

“찌른 데 다시 찌른다는 말이지.”

푸욱!

“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으허허허헝!”

이번에는 삼십 치 길이로 들어간 검날에 송여악은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눈물은 기본이고 콧물에 침까지 흐르는 지경이 되었는데도 남궁무애는 계속 몸의 여기저기를 검으로 쑤시듯 찔러 댔다.

온몸에 구멍이 스무 개쯤 뚫렸을 때 송여악은 애원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허억, 허억. 제발 살려 주세요.”

“이제 다 됐어. 기문혈만 뚫으면 돼.”

“히익! 거기 엄청 아픈 곳…… 끄아아아아악.”

푸욱.

이번에도 삼십 치 길이로 검을 쑤셔 박은 남궁무애가 송여악의 몸에 손을 올렸다.

“이제 시작한다.”

“알았다.”

백유화가 대답하자 남궁무애의 손으로 송여악의 기운이 빨려 들어갔다.

이미 뒤섞여 있는 양과 음의 기운은 남궁무애의 몸 안에서 소용돌이쳐지며 불순물을 거르고 이내 깨끗하게 정화되어 갔다.

혈도와 기도를 거치고 그 안에서 점점 강해진 음양의 기운이 천일영의 몸 위에 올린 손을 통해서 스며들어 갔다.

탈제명부음의 응용.

하은월이 심장을 잃었을 때 순간적으로 떠올리고 주변에 있던 사람의 기운을 빨아들여 살아남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유화는 그것을 바로 눈치챘다.

이게 무슨 무공?

‘온몸에 영혼을 묶는 것은 아니지만, 원리는 같은 것이 아닌가. 혈도에 기운을 담아 살리다니. 남가은! 네 정체는 도대체?!’

백유화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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