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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47화 (248/270)

247화

이 할이라고는 하지만 모용세가를 지지하는 세력이 분명히 있었다.

그들은 모세룡으로부터 돈을 챙겼고, 각종 편의를 지원받았다.

그런데 씻을 수 없는 수모만이 남았다.

손이 떨렸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니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모용세가를 지지하는 사람이 설마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을 줄이야.

모용자환은 모용세가에서 제법 뜯어먹은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돌리기에 급급했다.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을 때.

명선이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태사명진과 당강용께서 같은 표가 나올 줄 생각도 못 한 일이오. 지지 세력이 완전히 같다니, 이것 참.”

“흐음.”

그때였다.

태사명진이 손을 들었다.

명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 태사명진은 사천당문의 당강용을 지지하는 바요. 그가 맹주에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오. 무려 현경에 도달한 무인을 즉살시킬 독을 개발하지 않았겠소. 게다가 탁월한 해독 능력은 꼭 필요한 것이오.”

“으응?”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맹주 후보는 투표하지 않는다.

그런데 소림사가 사천당문을 지지한다면, 그 나름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된다.

벌써 몇 개월째 맹주를 뽑고 있었던가.

‘여기에서 끝낸다!’

명선은 질질 끌어 오던 맹주 선발을 이참에 끝내려고 마음먹고 당강용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당강용이 손을 들었다.

명선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당 문주님, 말씀하시지요.”

“저는 소림사의 방장 태사명진을 지지합니다. 인품으로 보나 연륜으로 보나 태사명진께서 맹주의 자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초고수의 살수를 맨손으로 두 명이나 처리하신 분이니 무림맹에 꼭 필요한 인재가 아니겠습니까.”

“으응?”

정리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혼란으로 빠져들어 갔다.

맹주 후보에서 탈퇴는 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지지한다니?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개소리야!’

명선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그 자리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 * *

이틀 후.

천일영은 당강용과 태사명진으로부터 각각 전서구로 받은 편지를 모두 읽고는 불태웠다.

‘모두 계획대로군. 한때는 어찌 되나 걱정했는데.’

조용한 웃음을 짓는 천일영이다.

그런데 편지를 태우는 와중에도 곁에는 금채홍이 착 달라붙은 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백유화와 남궁무애하고 소림사와 사천당문, 그리고 모용세가를 다녀온 이후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모습에 천일영은 웃음을 지었다.

“다 큰 녀석이 웬 어리광이냐. 오랜만에 같이 다니니 좋기는 하다만.”

“저를 빼놓고 여기저기 다니시니까 공자님과 같이 있을 시간이 줄어들어서요. 그나저나 표정이 좋으신 걸 보니 일이 잘되신 모양입니다.”

“무림맹의 맹주가 선출되지 못하도록 손을 썼다. 모세룡은 아예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만들었고.”

무림맹의 맹주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천일영과 연관 있는 사람들이 제법 힘을 썼다.

화산파의 천량도사는 장문인 천백도사에게 부탁했고, 개방의 방주 도철용은 자신의 대리로 회의에 참석한 사람에게 명령했다.

사천당문의 당강용은 종남파의 장문인 청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해남파의 문주 설의룡은 천일영이 전서구로 부탁했다.

이들은 모두 맹주를 선출하는 자리에서 다른 문파들이 지지하는 사람을 종이에 적는 것을 유심히 보면서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당강용과 태사명진이 똑같은 표가 나오도록 만든 것이었다.

이 방법은 지지 세력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태사명진과 당강용을 상대로 적절히 먹혀들었다.

금채홍이 문득 궁금하다는 듯이 천일영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근데 공자님? 굳이 맹주를 뽑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빨리 맹주를 선출해서 혈천회와 대립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데요.”

“채홍이가 말한 방법은 중책 정도 되는구나. 천지제는 총 열다섯 명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 일곱 명이 죽었다. 헌데 맹주가 선출되면 혈천회는 남은 여덟 명의 천지제 중에서 두 명 정도를 보내겠지.”

“새로 맹주가 된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인가요? 이후에 자신들이 다른 사람을 세워서 새로 맹주를 선출하고요?”

“맞다. 하지만 이미 암살에 실패한 태사명진과 당강용이 버티고 있으면 남은 여덟 명 중에서 두 명씩 총 네 명을 다시 보내야 한다. 그런데 만약에 또 실패한다면 천지제는 네 명밖에 남지 않게 되지.”

“대업을 앞두고 천지제를 잃으면 부담이 심해지니까 오히려 가만히 내버려 둔다는 것이군요.”

“이게 상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당강용과 태사명진에게 부탁해서 서로를 지지하게 만드는 수를 둔 것도 당분간은 이 상태가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천량도사나 도철용이 화경에 들면 그들을 맹주로 만들려고 했는데.

‘유화가 빠르게 화경이 된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긴 하지. 화경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닌 것을.’

천일영이 객잔으로 가는 발걸음을 떼기 시작하자, 금채홍이 천일영의 팔에 매미처럼 달라붙었다.

조금 붉어진 얼굴에는 땀방울도 송골송골 맺혔다.

천일영이 죽을 뻔한 이후.

금채홍은 마음의 울렁거림이 멈추지 않는 상태였다.

‘왜지? 공자님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느꼈을 때부터 곁에서 떨어지기 싫어.’

마음이 애달파지고, 공자님을 생각하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뛴다.

안 보면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고, 곁에 없으면 자꾸만 찾게 된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한 번 잃을 뻔한 공자님이 더 소중하게 느껴져서일까.’

아직은 이름 모를 이 감정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언제고 공자님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마음 한구석에 있던 감정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져 버렸다는 것이다.

꼭 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어 바짝 몸이 밀착되었다.

행복하다는 느낌이 가슴속을 메웠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덥석!

누군가가 뒷덜미를 잡아 들어 올린 것이었다.

“채홍아? 요즘 너무 풀어진 것 같지 않아? 빨리 수련을 해서 강해져야지.”

“엑? 가은 언니? 언니가 왜 수련의 이야기를…….”

“공자와 모용세가에 다녀오는 길에 이야기했어. 내가 정파의 무공을 수련했으니, 지금 하는 수련을 내가 맡아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언니가 직접 가르친다고요?”

“왜? 현경의 실력으로는 불만이니?”

“아니요!”

남궁무애가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들어 올리자, 금채홍의 고개가 붕붕 가로저어졌다.

“나는 공자처럼 수련시키지 않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

“공자님이 무섭게 수련을 시키시기는 하죠.”

“그런 의미는 아니고, 공자는 죽지 않을 만큼만 굴리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수련을 시키거든. 살고 싶으면 두 달 안에 초절정 고수가 되자꾸나. 걱정하지 말라는 건 경지가 오르는 것에 대한 거야. 빠르게 현경까지 만들어 줄게.”

“헉!”

남궁무애가 금채홍을 질질 끌고 갔다.

천일영을 향해 내뻗은 금채홍의 손이 펼쳐지며 간절한 마음을 전달하고 있었지만.

“내일쯤 살아 있는지 가 보도록 하마.”

“으아아아앙, 공자님!”

울먹거리는 목소리만을 남기고 끌려갔다.

천일영은 금채홍이 사라지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하, 채홍이 녀석. 그렇게 딱 달라붙다니. 깜짝 놀라서 가슴이 아직도 뛰는구나.’

몸을 밀착할 때 가슴도 팔에 닿아서 얼마나 놀랐던가.

천일영은 벌게진 얼굴로 연달아 숨을 몰아쉬었다.

예전보다 더 대담하게 매달리는 금채홍이 전혀 싫지 않다는 게 정작 더 큰 문제다.

‘내가 왜 이러지.’

무명암살대 시절에는 임무 때문에 여인들을 꾀기도 했고, 술자리를 자주 가져야 했기에 미인들에게는 익숙했다.

몸이 밀착되고 가슴이 닿는 정도는 일상다반사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지금처럼 심장이 뛰어 본 적은 없었다.

남궁무애가 금채홍을 데리고 가길 천만다행이다.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하자 현재 천일영이 마주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무공의 상승이다.

스스로 몸에 번개를 내리치면서 상단전을 강제로 열었었다.

그때 겪었던 것을 몸이 기억하는 대로 번개 없이 재현해 보려고 했는데.

‘전혀 안 되었지. 음과 양의 기운도 섞이지 않고.’

무엇인가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허무하게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느끼지 못한 것과 몸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았다.

하은월과 언제 다시 만나 혈투를 벌이게 될지 모르는 지금이다.

‘종남파로 가자. 그곳에는 신선이자 생사경의 경지인 무진이 있다. 그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일 금채홍이 살아 있는지 확인한 이후 바로 떠나기로 마음먹은 천일영은 오늘이야말로 혜령과 예랑과 함께 놀아 주기로 마음먹고 별유천지로 들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예랑은 천일영을 보자마자.

“퉤.”

침을 뱉었고.

“삼촌, 흥!”

삐친 혜령을 반 시진이나 달래 줘야만 했다.

결국 천일영이 무릎을 꿇고서야 혜령은 화를 풀었다.

천마이자 탈마를 무릎 꿇게 만들다니 혜령이야말로 진정한 중원의 최강자였다.

* * *

콰아아아앙!

회의할 때 쓰는 거대한 탁자가 반으로 쪼개져 날아갔다.

살기가 방 안을 가득 메우는 가운데, 탁자를 내리친 주먹을 떨며 혈천회의 총관 방태륜에게 노송하가 소리쳤다.

“누구 마음대로 모용세가에 천지제를 보낸 것입니까! 태사명진과 당강용의 암살에 실패했다 해도 모세룡이 멀쩡했으면 뒤집을 기회는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나도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다. 일을 더 수월하게 만들려고 한 것인데.”

“도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것입니까! 천자님의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데, 이렇게나 많은 천지제를 잃은 것도 모자라 다른 맹주 후보를 세우지도 못할 지경으로 일이 틀어졌습니다.”

미칠 것만 같은 심정이 노송하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범인이 누구일까 잠시 생각하기도 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오직 한 명이었다.

‘천일영!’

그를 제외하고 중원 전체에서 그 어떤 사람이 이런 일을 벌일까.

천자를 쓰러트렸을 때의 모습이 생각나자 노송하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도대체 천일영 그놈은 모용세가에 가짜 살수를 보낸 것을 어찌 알았답니까. 총관께서 몰래 처리한 일이니만큼 저도 모르고 있던 일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도 그것이 궁금했던 참이다. 허나 지금 생각해 보니, 놈은 우리가 어찌 행동할지 예측한 것 같다. 적어도 다섯 수 앞을 내다본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말은 천일영이 우리의 머리 꼭대기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말씀이잖습니까!”

“그것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구나.”

“젠장!”

풀리지 않는 분노를 가슴에 품고 노송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온몸을 떨었다.

천자가 천일영을 경계하는 이유를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던 노송하가 입을 열었다.

“이후로는 어찌할 계획이십니까.”

“딱히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태사명진과 당강용을 제거하려고 해도 천일영 그놈이 붙어 있으면 천지제로도 감당하지 못한다. 이 이상 천지제를 잃을 수도 없으니 어찌 종남파의 방비를 풀게 할 것인지.”

충성심만큼은 노송하보다 뒤떨어지지 않는 총관 방태륜의 한탄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노송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심장을 찾기 위해서 종남파를 친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방비를 풀게 하는 방법을 달리하면 된다.

“총관께서는 원래 계획했던 것을 조금 당기셔야겠습니다.”

“어떤 계획을 말하는 것이냐.”

“황실을 치십시오. 그곳을 우리가 감히 공격할 것이라고 천일영이 상상도 못 하고 있을 테니 천지제 다섯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황실을 공격하는 것은 원래대로라면 꽤 나중의 일인데?”

“답답하십니다. 왕부의 무인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자객이 날뛴다면 황실이 할 행동이 무엇이겠습니까?”

“아! 그렇군. 무림맹에 지원을 요청하여 방비를 굳건히 하겠구나.”

“당연히 종남파에 파견된 황실의 무인들도 불러들이거나, 실력이 낮은 자로 교체할 것입니다. 종남파의 무인들도 고수 중에서 상당수는 황실로 파견을 나가겠지요.”

총관 방태륜의 눈에 살기가 맺혔다.

“그 정도로 많은 무인을 황실로 보내게 한다? 그렇다면 황실의 무인들을 상당수 제거해 둬야겠군. 절반 정도는 없애는 것이 좋겠다.”

“이제야 이해하신 모양입니다.”

“이번 일만큼은 전과 같이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방태륜이 황실로 보낼 천지제를 부르기 위해서 방을 나섰다.

노송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황실이 뒤집히면 무림맹에서 적어도 백 명 정도의 고수들이 파견될 것이다. 그리고…….’

총관 방태륜에게는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천자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사실.

‘이번 기회에 천자님과 계획했던 것을 실행한다. 천일영도 이 계획만큼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될 테지.’

오랜만에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 노송하의 얼굴에 섬뜩한 살기가 감돌았다.

원래 지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

또한 혈천회는 언제나 이겨야만 했다.

이번 기회에 천일영을 짓눌러 버릴 생각을 하니 노송하의 끓어오르는 분노도 조금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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