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쿨럭! 우웩!”
거칠게 솟구치는 피가 입에서 뿜어졌다.
너무 깊게 베였다.
가로로 길게 내리그어진 굵은 선 사이가 벌어지자 그 안에서 속살과 함께 피가 솟구쳤다.
주르르륵.
불길한 소리와 함께 피가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아무래도 위장까지 상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서하린은 뒤로 손을 내밀어 혜령이 앞으로 나서지 못하도록 막았다.
손이 떨리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서하린은 눈을 부릅뜨고 서무길을 노려봤다.
“아이에게 무슨 짓이냐!”
“저는 아이를 싫어해서요. 그런데 저 아이가 독천마왕님의 이름을 알고 있네요?”
“객잔의 아이라 귀여워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죽여도 상관없겠네요. 아이를 막아선 것은 당신의 실수라고 생각해 드릴게요. 다시 시작해도 되죠?”
서무길이 검을 다시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그의 등 뒤에서 기묘한 기척과 함께 누군가가 쓰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쿠웅!
뒤를 돌아보니 절정 고수 중에서도 실력이 제법 괜찮았던 정이철이 나무 막대기처럼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서무길은 정이철의 쓰러진 몸 밑으로 발을 끼워 넣어 신형을 뒤집었다.
그러자 그의 몸에 박혀 있는 비침 다섯 개가 보였다.
서하린이 몸을 베이면서도 비침을 날린 것이 분명했다.
“저런, 천마신교를 배신하신 모양입니다? 역시 이 객잔에 뭔가가 있는 모양이군요. 자, 그 아이를 이리 내놓으세요. 그러면 고통스럽게 죽지는 않게 해 드리죠.”
“개소리 말아라. 아이는 죽어도 못 건네준다.”
“그럼 전부 죽이는 수밖에는요.”
서늘한 기운이 서무길의 검을 감쌌다.
검강.
서하린은 비침 통을 들어 올리며 혜령의 몸을 밀어냈다.
“빨리 문밖으로 나가!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어.”
“언니야도 같이 가자! 피가 많이 나잖아요. 빨리 가자.”
“안 돼.”
울부짖으며 매달리는 혜령의 손길에 꼼짝도 하지 않는 서하린이 매정한 목소리를 내었다.
“빨리 안 가면 혼낼 거야.”
“언니야!”
그때였다.
객잔의 문이 열리면서 주방을 통해 밖으로 나온 점소이 중 하나가 혜령을 안아 들었다.
“빨리 가자. 여주인님은 우리가 피신시키는 중이다.”
“안 돼요! 언니도 같이 가야 해요.”
순간 서하린이 크게 소리쳤다.
“어서 가!”
“언니!”
점소이가 혜령을 안아 든 채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때를 같이하여 일류 고수 중 하나가 혜령의 뒤를 쫓기 위해서 서하린에게 달려들었다.
피비비빗!
서하린의 손목이 움직이는 것 같은 잔상을 보이는 순간.
“커헉!”
일류 고수의 목으로 비침 열 개가 박혀 들며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또 다른 비침 통을 손가락에 끼우면서 서하린이 큰 목소리로 고함쳤다.
“그 누구도 이 객잔에서 살아 나갈 생각은 말아라!”
찌릿! 찌릿!
서하린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기에 서무길은 온몸이 저리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 기로 몸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신형이 조금 밀리기까지 했다.
‘이거 절정 고수라 하기엔 너무 강한걸? 들은 것과는 너무 다르군. 초절정 고수라고 해도 믿겠어. 감탄이 나오는군.’
신중한 표정으로 서무길은 뒤에서 움찔거리는 일류 고수들을 향해 말했다.
“주방으로 나가는 길이 있는 모양이다. 그 길로 나가서 아이와 여주인이라는 년을 잡아 와라.”
“충!”
일류 고수들이 주방으로 신형을 날리는 순간.
파바바박. 피빗!
서하린의 손에서 다시 한번 비침이 날아갔다.
티디디디딩!
하지만 그 비침은 서무길의 검에 의해서 튕겨 나갔다.
서무길이 혜령을 바로 쫓아서 나가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머리가 좋은 그로서는 부하들이 밖으로 나가서 아이를 쫓게 한 다음 서하린을 상대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방의 길을 통해 수하들이 혜령을 쫓기 시작하자 서무길이 서하린을 향해 말했다.
“도현, 소초련. 어디에 있습니까. 분명 당신이 숨겼을 테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서하린은 이를 악물며 잡아뗐다.
베인 가슴팍이 점점 벌어지며 쏟아지는 피의 양이 심상치 않을 정도로 많아지자, 한 번에 승부를 내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몸에 비침을 박아 넣었다.
파파파팍!
순식간에 수십 개의 비침이 서하린의 혈도에 꽂혀 들어갔다.
‘통각을 마비시켰다. 이걸로 잠시는 버틸 수 있겠지.’
서하린은 한 손에 검을.
그리고 또 한 손에는 비침 통을 끼워서 들어 올렸다.
“빠르게 승부를 보지.”
“그거 좋죠.”
서하린의 신형이 튀어 나갔다.
카앙!
검이 부딪히며 불꽃을 튀겼다.
힘에서는 밀리는 서하린이지만 그녀의 가장 큰 무기는 독.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서무길은 필요 이상으로 서하린의 품을 파고들지 않았다.
파팟!
한번 공격이 막히자 바로 몸을 떼면서 서무길이 말했다.
“독천마왕께서는 이상할 정도로 강하군요. 정말로 절정 고수가 맞습니까?”
“시간 끌지 마라. 그따위 수에 넘어갈 것 같으냐.”
“무공뿐만이 아니라 머리도 좋은 건가.”
서하린의 신형이 다시 한번 튀어 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검으로 공격하는 검로에 비침을 섞어서 날렸다.
이것이야말로 서하린이 가장 잘하는 공격.
티디디디딩.
급하게 비침을 쳐 내는 서무길의 손길을 유심히 보던 서하린은 두 번째로 비침을 날렸다.
‘검을 들고 있는 한, 상대는 파고들지 못한다. 거리가 떨어져 있으면 비침을 사용하는 내가 이길 수 있어!’
아버지 서가흔이 가르쳐 준 방법대로 서하린의 공격이 연이어졌다.
피비비비빗!
티디디디딩!
연거푸 서하린과 서무길이 마주 보는 공간 안에서 비침이 날아들고 그것을 튕겨 내는 공방전이 벌어졌다.
비침과 함께 날아오는 검은 번번이 급소를 노리기까지 했다.
서무길은 이를 악물었다.
‘쳇. 이년, 절정 고수지만 만만히 보면 안 되겠군. 마왕이라는 이름값에 충분할 정도의 실력이다.’
하지만 서무길은 긴장하면서도 입가에는 야비한 웃음을 띠었다.
이제 슬슬 때가 되었다.
“컹컹.”
예랑이 짓는 소리가 서하린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것도 다급함이 가득한 소리였다.
‘젠장! 혜령이!’
일류 고수가 여럿 쫓아갔으니 혜령은 물론이고 천이영도 따라잡혔을 터다.
예랑이 혜령을 보호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서서 그들과 대치를 하는 것일 테고.
서하린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빠르게 서무길을 죽이고 따라가야 하나? 아니면 서무길로부터 등을 돌리고 바로 혜령에게 가야 하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서하린은 비침을 뿌리며 등을 돌렸다.
혜령이 중요하지, 자신의 목숨 따위야.
피비비빗!
가진 비침의 거의 전부를 서무길에게 뿌리는 동시에 객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서늘한 목소리가 들린 것은.
“이때를 기다렸습니다.”
여태 서무길은 일부러 탁자 옆에서 서하린의 비침을 튕겨 내고 있었다.
그리고 서하린이 대량의 비침을 뿌리고 등을 돌리는 순간 탁자를 들어 비침을 한꺼번에 막아 냈다.
쐐애애애액!
때를 같이하여 검강을 두른 검이 비침 통을 들고 있는 서하린의 팔을 향해 날아갔다.
촤아아아악!
팔꿈치부터 손가락이 있는 곳까지 통째로 잘려 나갔다.
살이 벌어져 두 갈래가 되어 버린 팔.
하지만 서하린은 이를 악물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젠장! 이 팔은 이제 다시는 비침 통을 끼우지 못하게 되었군.’
팔 하나를 완전히 못 쓰게 되었지만, 통증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통각을 마비시킨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흐릿.
순간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낀 서하린은 잠시 휘청거렸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벌어진 가슴팍과 갈라진 팔에서 뿜어지는 피는 이미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그래도 서하린은 정신을 가다듬고 뛰었다.
예랑이 소리로 알려 준 방향으로 한창 뛰고 있는데.
촤아아악!
뒤따라 나온 서무길이 서하린의 등 뒤로 검을 난도질하듯 휘둘렀다.
주르르륵! 투두두둑!
등에서도 피가 쏟아져 내렸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비명을 지를 필요도 없었다.
서하린은 검을 검집에 꽂고 바로 작은 독단을 서무길이 서 있는 땅으로 던졌다.
퍼엉!
공기 중으로 퍼지는 독.
서무길이 코를 막으며 몸을 뒤로 물렀다.
이것으로 잠시 시간을 벌 수 있을 터.
“혜령아! 기다려!”
서하린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내 눈 두 번 깜박일 시간이 지나자 일류 고수들에게 둘러싸인 혜령과 천이영, 그리고 점소이들이 보였다.
서하린은 비침 통을 꺼냈다.
혜령과 천이영이 있기에 단 한 번에 적들에게만 비침을 꽂아야 했다.
눈에 힘을 주고 흐릿한 적의 모습을 한눈에 담았다.
‘실패하면 안 돼!’
이를 악물고 비침을 날렸다.
피비비비빗! 쐐애애액!
“컥!”
일곱 명의 일류 고수들이 일제히 무너지듯 쓰러져 내렸다.
다행히도 비침은 전부 급소에 박혀 들어갔다.
살문도를 비롯하여 죽도록 수련하면서 쌓아 온 실력이다.
실패할 리가 없었다.
서하린은 혜령과 천이영을 향해 미친 듯이 소리쳤다.
“도망가! 빨리!”
천이영이 혜령을 안아 들었다.
자꾸만 혜령이 서하린에게 가려는 탓이다.
울고 불며 바둥거리는 혜령을 안아 든 천이영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고마워요!”
“꼭 살아남아.”
“하린 소저도 제발 꼭 살아 주세요!”
천이영은 서하린이 죽도록 걱정되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어머니이기에 눈을 질끈 감고 달렸다.
울음을 터트리며 손짓하는 혜령이 멀어지자 서하린은 비침 통을 손가락에 끼웠다.
마지막 비침 통이었다.
“서무길, 등 뒤에 있는 거 알아.”
“이런, 저 일류 고수 놈들은 미끼로 쓴 것인데 제 역할을 못 했군요. 설마 한 방에 전부 당할 줄이야.”
피비비빗!
서하린이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손가락만 뻗어 비침을 날렸다.
‘제발 눈치채지 못하고 서무길의 몸에 비침이 박혀야 하는데!’
티디디딩!
하지만 비침은 모두 서무길의 검에 튕겨 나갔다.
중원에서 열 번째로 강한 고수.
그의 검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그럼에도 방도가 없는 서하린은 결국 검을 뽑아 들었다.
서무길은 출혈로 무너져 가는 서하린을 향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도현, 소초련은?”
“모른다.”
“그래? 그럼 고통스럽게 죽어.”
뭉개진 발음이 들리는 순간.
콰직!
서하린의 검을 든 팔이 날아갔다.
손목째 잘린 손에는 검이 여전히 쥐어진 채.
땡그랑!
서하린의 검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콰지지지지직!
서무길의 검이 서하린의 몸통을 꿰뚫었다.
하지만 서하린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사실은 마비를 시킨 통각이 방금의 일검으로 풀려 버렸다.
미칠 듯이 아파도 절대 입을 벌리지 않았다.
서하린 그 자신은 바로 천마신교의 독천마왕이니까.
스으으윽.
비명을 지르는 대신 서하린은 발을 들어 올렸다.
신발 속에 숨겨 둔 비침.
파각.
서무길의 정강이를 걷어차자 비침은 정확하게 살 속으로 박혀 들어갔다.
“크악! 이 미친년이!”
“해독제는 없어. 쿨럭, 쿨럭. 아이를 쫓는 추접스러운 짓은 이제 그만하고 죽도록 해.”
“설마 신발에 비침을 숨길 줄이야!”
서무길의 검이 몸통에서 뽑혀 나와 서하린의 목을 꿰뚫었다.
콰직!
촤아아아악!
그것을 마지막으로 서하린은 눈을 감고 쓰러졌다.
분노에 눈이 먼 서무길이 쓰러진 자신의 몸에 계속 칼질을 해 대는 것이 느껴졌다.
콰직. 콰직.
몸이 베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통각이 풀렸는데도 더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혜령과 천이영을 살려 냈기 때문일까.
이제는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죽어 가는 서무길의 칼질이 다리에 닿을 때 신발도 벗겨져 땅바닥을 뒹굴었다.
발 냄새가 난다고 혼이 났어도 계속 신고 다녔던 이유.
신발 안의 비침은 서하린의 마지막 비장의 수였다.
“쿨럭, 쿨럭.”
몸이 점점 차갑게 식어 갔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고, 죽음이 가까이 찾아오고 있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오직 드는 생각은 하나뿐.
‘공자님이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아.’
그 생각만을 남긴 채 서하린의 의식은 점점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