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4화 (184/212)

빠르게 추락하던 마룡이 갑자기 날개를 퍼덕여 위로 솟구쳤다.

그러다가도 채 얼마 가지 않아 제자리에서 뱅뱅 돌다가, 다시 추락하고, 또 솟구치기를 반복했다.

그로 인해 죽어 나가는 건 나뿐이었다.

“아악!”

놈의 몸부림으로 인하여 시야가 마구 뒤집히고 흔들렸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아찔함과 함께 멀미와 현기증이 났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아직 멀쩡한 발로 놈의 몸뚱이를 퍽퍽 걷어찼다.

“미친놈아, 작작 해! 독이라도 처먹었어?!”

그게 아니고서야 이 발작 같은 날뜀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크워어어어억!”

완전히 정신을 놓은 것처럼 날뛰는 마룡에게 매달린 채 얼마쯤 허공을 부유했을까.

스르륵.

어깨까지 집어삼켰던 정체 모를 검은 액체가 다시금 팔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검을 박아 넣은 틈으로 스멀스멀 되돌아가는 게 아닌가.

그 탓인지 양손을 꿈쩍도 못 하게 옥죄던 결박이 약간 느슨해졌다.

‘지금이야!’

정신없는 흔들리는 와중에도 그것을 확인한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온 힘을 쏟아부었다.

“온슬럿!”

푸확―!

그리고 마침내, 찐득한 액체를 뿌리치고 놈의 심장에 깊게 박혀 있던 검을 뽑아냈다.

검이 뽑힌 반동 때문에 내 몸은 자연히 뒤로 휙 고꾸라졌다.

후욱!

용의 몸에서 떨어지게 된 나는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다.

하지만 오히려 기꺼운 일이었다.

계속해서 용의 몸에 있었다면 그 알 수 없는 섬뜩한 검은 슬라임에 기어이 집어 삼켜졌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닿았던 피부에 오싹한 한기가 들었다.

나도 모르게 흔들리는 눈으로 멀어지고 있는 마룡을 응시할 무렵.

8자를 그리며 공중에서 미친 듯이 날뛰던 놈이 별안간 우뚝 몸부림을 멈췄다.

펄럭!

중심을 잡듯 두어 번 날갯짓하던 놈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세로로 쭉 찢어져 있던 새빨간 홍채가 크게 확장됐다.

놈은 마치 당황이라도 한 듯한 눈빛으로 추락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네가, 왜 여기…….”

그때였다.

“꾸웨에에에엑!”

익숙한 돼지 멱딴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휙 날아와 떨어지는 나를 낚아챘다.

터억!

“읏.”

나를 태운 천둥이가 재빨리 마룡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그 때문에 나는 끝내 들을 수 없었다.

마룡이 내게 하려던 마지막 말을.

펄럭!

한동안 멀어지는 나를 지켜보던 마룡은, 이윽고 몸을 돌려 어딘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황궁이 있는 곳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그것을 본 나는 곧장 고개를 숙여 지상을 확인했다.

북쪽에서부터 끝도 없이 밀려오던 마물 떼가 썰물처럼 수도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재앙이 끝난 것이다.

“하…….”

그제야 전신에 들어가 있던 힘이 탁 풀렸다.

하지만 나는 끝내 사라지는 거대한 그림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뭐지, 그건…….”

멀어지는 마룡을 보며, 나는 조금 전의 기억을 되새겼다.

아직도 그 차갑고, 축축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던 검은 액체의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에 뒤덮였던 팔과 어깨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루미에카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HP 100]

독이나 저주의 일종인가 싶었으나, 시간이 지나도 HP창은 변함없었다.

“마룡이 그딴 공격을 한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는데…….”

그러나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껏 아무도 고대 마룡의 심장을 봤다는 유저가 없었기에.

결국 그 정체불명의 액체에 대해 답해줄 수 있는 건, 빌어먹을 제작자들뿐이었다.

“꾸웨에에엑!”

그때, 천둥이가 내게 무언가를 알리듯 울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했다.

어느새 지상으로 훌쩍 뛰어내려도 될 만큼, 고도가 낮아진 상태였다.

위험이 지나갔음을 안 천둥이가 내게 착륙을 알리는 신호였다.

‘엉망진창이네…….’

한 시간쯤 걸렸나.

원래 게임 진행보다 훨씬 빠르게 재앙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마물이 휩쓸고 간 자리는 처참했다.

“마물이 물러갔다!”

“우리가 해냈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용사님들!”

그런데도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사람들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을 무렵.

문득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잊고 있었던 누군가를 맞닥뜨렸다.

환호하는 사람들의 중심에, 아담이 있었다.

천둥이 위에 올라타 있는 나를 정확히 올려다보고 있는.

시선이 마주치자, 푸른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너는…….”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꽤 멀리 떨어져 있어 들리지는 않았지만, 곧이어 그의 머리 위로 떠오른 시스템 창 덕분에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담 헤일리]가 당신의 정체에 큰 혼란을 느낍니다.」

“X발.”

나는 그제야 그의 눈에 비치고 있을 내 모습을 알아차렸다.

마물 위에 당당히 올라탄 채, 루미에카르를 쳐들고 있을 내 모습을.

‘들켰다.’

눈앞이 암담해졌다.

아담이 있는 것을 분명 확인했으면서, 왜 더 조심하지 않았을까.

로브만 벗지 않았어도. 아니, 이 망할 검을 꺼내지만 않았어도…….

‘멍청한 나 새끼야.’

뒤늦은 후회와 원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러니까 저 새낀 왜 토너먼트 상품으로 이 칼을 기증해서! 아니, 일레인 그 새끼는 왜 칼을 바쳐서! 아니, 이게 다 망할 남주 새끼 때문이야……!’

애초에 카셀이 내 말대로 아담이 전용 무기로 쓸 수 있도록 제대로 검을 줬더라면, 이런 사태도 없었을 것 아닌가.

하여튼, 시작부터 매번 이 망할 검이 문제였다.

“꾸웨에에에엑!”

그 와중에 천둥이가 뭔가를 발견한 듯 아담의 머리 위를 지나쳐 쏜살같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황급히 천둥이가 내려앉으려는 곳을 확인하자, 역시나.

어느 높다란 건물 꼭대기 위에 올라선 초록 대가리가 보였다.

지난 키메라 사냥에서 동고동락해선지, 두 놈은 꽤 가까워진 상태였다.

때문에 일레인을 알아본 천둥이가 곧장 그리로 날아가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태평하게 재회나 나눌 때가 아니었다.

“아냐, 아냐! 위로! 위로!”

나는 허겁지겁 천둥이의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꾸웨웩?!”

내 갑작스러운 명령에 천둥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사는 나중에. 곧 실컷 하게 해줄게.”

“꾸웨에에엑!”

달래는 듯한 내 말에 곧 수긍한 듯 고도를 훌쩍 높였다.

“뭐야! 어디 가는데에에에에―!”

그사이 천둥이를 알아본 건지, 우렁찬 일레인의 목소리가 밤하늘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하…….”

나는 손을 들어 지끈지끈 아파오는 이마를 짚었다.

눈이 마주쳤음에도 그대로 튀어 버린 꼴이 됐으니, 아담 놈의 의심과 추궁이 향할 곳은 뻔했다.

‘분명 일레인부터 닦달하겠지.’

일레인에겐 미안한 일이었으나, 별수 없었다.

정체가 들통난 이상 내려가서 내 입으로 변명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알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재앙이 끝났으므로, 카셀 또한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그러니 속히 [어둠의 숲]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든 생각에 나는 씁쓸히 웃었다.

‘아니, 어쩌면 다 변명일지도…….’

어쩌면 나는 도망치고 있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내가 했던 모든 거짓말에서 말이다.

왜 정체를 숨겼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처음부터 내가 행한 모든 것을 털어놔야 하는데…….

메인 캐들 몰래 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엔딩을 앞둔 지금 와서 굳이 설명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어차피 난 처음부터 그들과의 친밀도 따윈 포기했으니까.

이로 인해 아담의 호감도가 깎여도 별수 없었다. 애초에 더 깎일 호감도가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하,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골치 아픈 생각을 미뤄둔 나는, 곧 해야 할 변명부터 준비하기로 했다.

“꾸웨에에엑!”

그러나 채 변명을 쥐어짜기도 전에, 천둥이가 울부짖으며 착륙하기 시작했다.

생각에 잠긴 사이, 눈 깜짝할 새 [어둠의 숲]에 당도한 것이다.

“왜 이렇게 빨리 온 건데…….”

천둥이의 등에서 주섬주섬 내려서며 나는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빨리 도착해서 다행이면서도 슬프고 짜증 나는 마음이 드는 건 왤까.

“……돌아가 있어. 곧 다시 부를게.”

마룡과 전투 중에 입은 부상은 없는지, 한 번 확인을 끝낸 나는 곧장 천둥이를 돌려보냈다.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하여 카셀이 있는 곳까지는 걸어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끼애액!”

주인이 우울해하건 말건 천둥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날아가 버렸다.

“매정한 돼지 새 자식…….”

아쉬움에 괜히 중얼거려본 나는 루미에카르를 집어넣고 주섬주섬 로브를 꺼내 입었다.

이제 다시 평범하고 하찮은 약재상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이윽고 변장을 마친 후 곧장 [어둠의 숲]으로 뛰어 들어갔다.

카셀이 잠든 곳에 좌표 표식을 남기고 왔기에 길을 헤맬 일은 없었다.

[속력 100배 포션]을 들이킨 채 달리자, 사흘에 걸쳐 헤맨 숲을 단 10분 만에 가로지르는 기염을 토해낼 수 있었다.

멀찍이서 희미한 모닥불이 보일 때쯤, 나는 전력 질주를 멈췄다.

그리고 가팔라진 숨을 가다듬으며 그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막 나무 사이를 지나, 야영장에 발을 들이밀려던 순간이었다.

휘익―!

별안간 날카로운 기운이 급소를 찌를 듯 다가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피하려던 몸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이런 짓을 할 인간이야 한 명뿐이기에.

“누구냐.”

예상대로 벌써 깨어나 있었던 듯, 음산한 목소리가 신원 확인을 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답했다.

“접니다. 전하의 전담 약제사요.”

“어디 갔다 왔지?”

“잠깐 주변에 약초 좀 둘러보고 왔습니다. 제가 살던 곳에선 못 보던 것들이 있어서…….”

그 증거로 달려오는 동안 아무렇게나 쥐어뜯은 풀 쪼가리들을 내밀었다.

카셀은 여전히 살기를 거두지 않은 채 내가 내민 풀떼기를 샅샅이 살폈다.

‘이 망할 놈아. 죽이려면 벌써 죽였지.’

잘 자다 일어나 놓고 왜 또 지X인지.

“그런데…… 검 좀 치워주시면 안 됩니까?”

나는 혀 밑에서 아롱거리는 욕설을 힘겹게 참고 말했다.

“매번 이러시니까 제가 전하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 어려운 겁니다.”

“……무슨 편견.”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살인귀라는 편견이요.”

지금껏 놈이 내게 했던 ‘누굴~’ 시리즈를 고스란히 돌려주자, 그제야 턱 밑에 바짝 들이밀어졌던 검이 빠르게 멀어졌다.

“제길.”

짤막한 욕설을 뇌까린 카셀이 검을 든 손으로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내가 놈의 옆구리 옆에 꽂아두고 온 단검이었다.

‘언제 발견했지?’

악몽에서 깬 직후엔 정신이 없어서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 여겼다.

그러면 칼을 꽂고, 힐링 포션을 부었다고 우길 심산이었는데…….

심각한 눈으로 놈이 든 단검을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미안하다.”

환청 같은 소리가 들려온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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