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3화 (183/212)

「[Lv.999 스턴] 스킬이 발동됩니다.」

‘MP –900’

[MP 1]

많은 양의 마력이 한 번에 훅 빠져나가는 바람에 현기증이 몰려왔다.

좀 과하다 싶었지만, 최종 보스를 상대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크워어어어억―!”

부지불식간에 공격을 받은 마룡이 웃음을 멈추고 괴성을 질렀다.

괴로운 듯 놈이 사지를 마구 꿈틀거렸다.

그러나 최종 보스답게 스턴에도 마룡은 기절하지 않았다.

마룡의 몸부림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아담 또한 부하들을 이끌고 일보 후퇴하는 것이 보였다. 움직이면서도 이쪽을 응시하는 그의 푸른 눈이 마구 흔들렸다.

아무래도 끼어들어 나와 함께 공격을 가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그다음 공격을 실시했다.

“천둥아, 광선빔!”

“꾸웨에에엑!”

천둥이가 곧장 온몸에 힘을 주며 주둥이를 벌렸다.

마치 용이 드래곤 브레스를 뿜어댈 때처럼, 천둥이의 입에서도 새파란 광선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콰아아아아아악―!

“크으으, 크워어어……!”

마룡은 연신 쏟아지는 폭격을 무력하게 맞기만 했다.

‘저 새끼, 사실 X밥 아냐?’

파즛, 파즈즈즉!

푸른 스파크가 온몸에서 튀어 오르고 있는 놈에게 조금씩 의구심이 생길 무렵

10초가 끝나고 천둥이의 광선빔이 멎었다.

그리고 드러난 용의 HP 수치를 본 나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922 / 990]

‘X발.’

이렇게 공격을 퍼부었는데도 쥐꼬리만큼 줄어들어 있었다.

이래서야 언제 저 많은 체력을 다 깎는단 말인가.

‘이래서 풀팟으로 같이 덤벼야 하는 건가?’

메인 캐들의 부재를 체감하고 있을 즈음.

정신을 차린 마룡이 사납게 고개를 털며 소리쳤다.

“이 비겁, 한……!”

마룡의 시뻘건 눈이 나를 찢어 죽일 듯 노려보았다.

좀 전과는 달리 그런 놈에게서 섬뜩한 기류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말을 하는 도중. 그것도 악당답게 웃고 있는 도중 기습 공격을 당해서 잔뜩 화가 난 모양이다.

그러나 게임할 때마다 ‘skip’을 일삼는 나로서는 놈의 말을 귀담아들을 이유가 없었다.

하물며 메인 캐릭터도 아니고, 한낱 마물의 말 따위.

“……어리석구나. 기회를 주는데도, 그것을 제 발로 걷어차다니.”

용이 들끓는 목소리로 엄포하듯 말했다.

“무슨 기회?”

“그나마 죽지 않고, 멸망 직전까지 살아갈 수 있는, 기회 말이야.”

이방인이라 멸망이랑 상관없다면서, 무슨 놈의 기회란 말인가?

‘역시 귀담아듣지 않길 잘했어.’

아무리 정신 나간 제작자라도 마물에게 높은 수준의 인공 지능을 부여했을 리 없다.

앞뒤가 다른 마룡의 말에 홀로 고개를 끄덕인 순간.

놈이 사악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왜냐하면, 네가 원래 살던 땅. 이방인들이 오는, 그곳까지…….”

“…….”

“내가 모조리, 불태울 거거든.”

순간 한줄기 섬뜩함이 뒷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뭐라고?”

무슨 뜻인지 되물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펄럭!

별안간 마룡이 접어둔 날개를 쫙 펼쳐 펄럭이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욱!

그로 인해 또다시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으읏.”

“꾸웨에에엑!”

나는 물론 천둥이 또한 그 강풍에 휩쓸리지 않게 버텨야 했다.

회오리치는 돌풍 사이로 거대하고 묵직한 몸이 가볍게 떠올랐다.

슈우우우우욱―

불길한 소리에 나는 얼굴을 막고 있던 팔을 내리고 가까스로 용을 확인했다.

나와 천둥이가 있는 높이만큼 떠오른 놈은 쉴 새 없이 날갯짓을 하며 또다시 숨을 들이켜고 있었다.

‘쿨타임이 끝났어.’

드래곤 브레스를 내뿜으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대상은 정확히 나였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다급히 체력 포션과 마력 증폭 포션을 꺼내 마셨다.

당연히 방어 아티팩트도 발동시켰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드래곤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았던 유저가 채 1초도 안 돼 순삭되는 영상이 떠올랐다.

강제 소환 버프가 있는 나야 죽지는 않겠지만, 그럼 천둥이와 있는 인간들은.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분노한 용의 숨결이 어디로 튈지 뻔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외쳤다.

“천둥아! 힘들겠지만 최대한 저놈 대가리 쪽으로 붙어!”

“꾸웨에에엑!”

분명 두려울 텐데, 천둥이는 기특하게도 내 명령에 불복하지 않았다.

강풍에 밀리지 않도록 버티고 있던 천둥이는 곧장 수직으로 치솟아 올랐다.

아무래도 용의 날갯짓으로 인하여 가까이 가기 어려우니, 위에서 떨어지는 방법으로 접근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적중했다.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마룡보다 훨씬 높이 날아오른 천둥이는 다시금 수직으로 활강했다.

후우우욱!

세찬 바람에 머릿결이 마구 흩날렸다.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막을 수 있을까?’

천둥이의 목덜미에 바짝 매달린 채 가까워지는 마룡을 보며 나는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까처럼 드래곤 브레스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위에서는 놈의 주둥이를 강타하더라도 한 번에 다물릴 수 있는 각도가 나오지 않거니와.

지상에 못 박혀 있던 좀 전과는 달리, 놈이 끊임없이 날개를 퍼덕이며 움직이고 있어서 주먹이 적중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으로선, 아무래도 불이 뿜어져 나오는 놈의 목구멍을 내 몸으로 직접 틀어막는 수밖에 없었다.

……비록 내가 죽게 되더라도.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죽어. 난 안 죽어!’

섬뜩한 생각에 나는 번뜩 고개를 내저었다.

불길한 생각을 정정한 나는 긴장으로 굳어진 손으로 칼을 고쳐잡았다.

강제 소환당하더라도, 놈에게 최대한 타격을 주고 싶었다.

다음에 만날 때 조금이라도 수고를 덜 수 있도록.

그런데 그때였다.

놈의 쩍 벌린 아가리가 한 치 앞으로 다가온 것을 확인하려던 순간,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눈에 띄었다.

용암으로 인해 갈라진 땅처럼, 불길을 끌어 올리느라 벌겋게 달아오른 채 한껏 벌어져 있는 비늘과 갑각 사이사이로 큼지막한 덩어리 하나가 보였다.

축구공보다 약간 커다란 그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 휩싸여 규칙적으로 요동쳤다.

두근, 두근.

‘보여.’

나는 눈을 부릅떴다.

‘……심장이야.’

평소에는 틈 하나 없이 단단하고 두꺼운 비늘과 겉껍질에 가려져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던, 드래곤 하트.

나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저게 바로, 고대 마룡의 약점이란 것을.

놈의 심장은 몸뚱이가 아닌, 기다란 목으로 이어진 경계 부근에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저것이 드래곤 브레스를 내뿜는 동력원일 것이다.

이러니까 여태껏 아무도 놈을 처치하지 못한 것이다.

놈이 드래곤 브레스를 내뿜을 때나 보이므로 알아보기도 쉽지 않고, 그 전에 모두 순삭당했을 테니.

‘기가 지네와 같아.’

그러나 기가 지네와는 비교 불가였다.

기가 지네의 화염은 맨몸으로도 충분히 버틸 만한 데다가, 피하더라도 다음 기회가 존재하니까.

하지만 최종 보스는 버틸 만하지도 않고, 다음 기회도 없다.

슈우욱.

마침내 용이 숨을 들이마시는 것을 멈췄다.

머리통 위에 있는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듯 놈이 나를 정확히 직시했다.

그 순간 나는 천둥이의 몸에서 박차고 뛰어내렸다.

심장에 꽂아 넣을 때까지만 버티면 돼.

여러 번 되뇌며 나는 루미에카르를 높이 치켜들었다.

“필격!”

콰아아아아악―!

그리고 동시에, 놈의 아가리에서 불길이 터져 나왔다.

‘HP –899’

“윽!”

게임인데도 견디기 힘든 뜨거움이 전신을 덮치고.

드래곤 브레스를 맞은 첫 1초에 방어 아티팩트가 깨졌다.

‘HP –999’

[HP 100]

그리고 마셔뒀던 체력 증폭 포션이 무용지물이 되던 찰나.

푸욱―.

불꽃을 가르고 떨어진 검 끝이 기어이 용의 모가지에 쑤셔 박혔다.

‘됐다.’

화끈함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나는 환희했다.

정확히 심장에 검을 박아 넣었다.

눈으로도, 손에 느껴지는 감각으로도 그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크워억……!”

내 확신을 방증하듯, 위를 향해 뿜어져 나오던 불길이 뚝 끊겼다.

더불어 끊임없이 움직이던 놈의 날갯짓 또한.

“후…… X 될 뻔했네.”

반사적으로 HP창을 확인한 나는 일순 아찔해졌다.

1만 더 깎였어도, 아무런 소득 없이 포션과 아티팩트를 낭비하고 도버 마을만 들렀다 온 사람이 될 뻔했다.

쿠우우우웅―

날갯짓을 멈춘 탓인지, 육중한 마룡의 몸이 아래로 천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제…… 끝인 건가?’

이렇게 용을 잡았으니, 엔딩을 보게 된 셈 아닌가.

나는 얼떨떨한 심정으로 우선 용의 몸에 박아 넣었던 검을 뽑으려 했다.

같이 추락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힘을 줘도 놈의 심장에 박혀 있는 검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이게 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있을 무렵.

“크르르…… 멍청한 놈…….”

용이 여전히 시뻘건 눈을 뜬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아직 안 죽었어……?”

“고작, 이딴 공격으로, 나를 죽일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래도, 제법이야. 이 몸뚱이의, 심장을 다 찾고, 헤헤.”

놈이 내 중얼거림에 조롱하듯 대꾸했다.

파앗!

그 순간, 검이 박힌 자리에서 무언가 터지는 듯한 질척한 소리가 들렸다.

“읏!”

깜짝 놀라 고개를 내리자, 찐득하고 새까만 정체 모를 액체가 검이 박힌 틈에서 마구 뿜어져 나와 손을 뒤덮고 있었다.

“뭐, 뭐야, 이거?”

나는 흠칫 검 손잡이를 놓으려 했다.

그러나, 본드에 휘감기기라도 한 것처럼 놓을 수 없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새어 나오는 검은 액체의 양이 더욱더 많아졌다.

미끌미끌하고 질척한 그것은, 꼭 슬라임처럼 나를 집어삼키려는 듯 팔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으윽!”

“어리석은 이방인이여…… 세계의 근원을, 진실을, 모두 알고도, 치기와 아집으로 스스로의 눈을 가리는구나.”

“뭔 개소리야! 이거 놔!”

“너는, 실패했어. 너희들 말로, 퀘스트 조건 충족을 말이야.”

떨어지지 않는 손과 뽑히지 않는 검에 고군분투하는 사이, 용이 킬킬 웃었다.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

후욱!

놈의 몸뚱이가 추락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설상가상 놈의 몸에 박힌 루미에카르가 점점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 무슨……!

검을 놓지 못한 내 몸 또한 점점 확산되는 검은 액체로 뒤덮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나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듯 유동적으로 움직여서 어느덧 내 양어깨까지 집어삼킨 상태였다.

“필격! 온슬럿!”

아무리 스킬을 외쳐도 통하지 않았다.

‘뭐야? 이거 왜 이래?’

덜컥 겁이 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점점 검은색 슬라임에 집어 삼켜지고 있을 때.

“크, 크어어어억!”

별안간 음산한 비소와 함께 추락하던 마룡이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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