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2화 (182/212)

[Lv.990 고대 마룡]

나는 펄럭이는 거대한 생명체를 말을 잃은 채 망연히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이 망겜에서 고대 마룡의 던전까지 도달한 유저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플레이 영상조차 무척 희귀했다.

물론 ‘불황따’와 같은 헤비유저 두어 명이 올린 게 있긴 했다.

하지만 코앞에서 실제로 보는 마룡은 정말이지, 게임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크고 생생했다.

하늘을 가릴 정도의 거대한 날개와 티타늄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검은색 비늘.

한일자로 쭉 찢어진 시뻘건 눈깔.

놈이 내뿜는 숨결에 섞인 용암 같은 열기가 꼭 실제처럼 후끈했다.

“하……. 미치겠네, 진짜.”

멀리서 날아오는 거대한 형체를 보고 무작정 앞을 가로막긴 했으나, 나는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여기서 마룡이 왜 튀어나온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공략법 따위를 알 리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껏 상대해왔던 중상급 마물들과는 달리, 만렙에 가까운 이름표가 나를 살 떨리게 만들었다.

‘……내가 상대할 수 있을까?’

풀팟도 아닌, 나 혼자서 최종 보스를 상대한다니.

무슨 이런 X 같은 일이 다 있느냔 말이다.

‘안 되겠어.’

지금이라도 제작자 놈들에게 어떻게 좀 하라고 채팅을 키려던 순간.

슈우우우우욱―

별안간 불길한 바람이 몰아쳤다.

굳이 멀리 찾지 않아도 원인은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었다.

빌어먹을 용이, 주둥이를 쩍 벌린 채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기에.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불꽃이 아롱거리는 것이 보였다.

놈이 숨을 들이마시는 이유야 뻔했다.

‘드래곤 브레스!’

카셀을 비롯한 메인 캐들이 모조리 달려들어 상대할 때도 애를 먹었던 공격인데.

저 불 대포가 이곳에 쏘아졌다간, 사람들은 물론 수도 전체가 삽시간에 쑥대밭이 될 것은 자명했다

“뭐 해요, 안 도망가고!”

다급히 주변을 둘러본 나는, 느닷없이 등장한 용의 존재에 넋을 놓고 있는 사람들에게 버럭 외쳤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곳이 마물 떼가 몰려오는 북쪽과 인접해 있는 끄트머리인지라 일반인들은 대부분 대피한 상태란 것.

내 경고에도 용사와 병사들은 우왕좌왕할 뿐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다, 단장님……!”

누군가 상급자를 불렀다.

그와 동시에 나는 굳은 얼굴로 나를 응시하는 누군가와 정통으로 눈이 마주쳤다.

내가 못 박힌 푸른 빛을 띤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아담 헤일리]가 당신의 정체에 깊은 의구심을 품습니다.」

곧장 떠오른 시스템 창에, 나는 조금 흠칫했다.

어이가 없어서 머리를 쓸어 넘기다 후드가 뒤집힌 것이 그나마 행운인 걸까.

약재상의 모습인 채로 마주쳤으면 퍽 곤란할 뻔했을지도…….

하지만 태평하게 아담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후우우우욱―

몰아치는 바람이 한층 더 거세지면서, 용의 주둥이에서 새어 나오는 불길이 시시각각 커졌다.

곧 끔찍한 공격이 쏟아질 것이다. 당장 막아야 했다.

‘아, 몰라! 넋 놓고 있다가 죽든 말든……!’

여전히 우왕좌왕할 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인간들을 뒤로한 채 나는 마구 내달리기 시작했다.

괴수의 시커먼 몸뚱이에 다다랐을 무렵.

타닥!

나는 훌쩍 뛰어올라 놈의 몸을 타고 거꾸로 오르기 시작했다.

뿔처럼 이곳저곳 솟아 있는 갑각과 요철 덕분에 발 디딜 곳은 많았다.

거의 10층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몸뚱이를 빠르게 타고 오르는 사이, 불길하기 짝이 없었던 광풍이 뚝 멎었다.

그리고 놈이 찢어질 듯한 괴성을 지르며 그대로 화염을 토해내려던 찰나.

나는 이를 악물고 놈의 주둥이 쪽을 향해 몸을 던졌다.

“크워어어……!”

“온슬럿!”

「[Lv.999 맹공] 스킬이 발동됩니다.」

좀 더 생각해 보면 다른 좋은 방법도 많았을 텐데…….

그 순간엔 당장 불 대포를 내뿜으려는 용의 주둥이를 다물게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슈퍼맨 같은 자세로 허공을 날아오른 나는, 그대로 놈의 아래턱에 주먹을 꽂았다.

뻐억―!

그 순간,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크게 벌어져 있던 놈의 주둥이가 강제로 텁 다물렸다.

“……커헉!”

용이 단말마와 함께 뱀처럼 기다란 목을 휘청였다.

꽤 큰 타격이었는지, 놈의 주둥이에서 뿜어져 나오던 후끈한 불꽃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

후욱!

한껏 솟아올랐던 내 몸은 무섭게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어…….”

용이 휘청이며 뒷걸음질 친 바람에 잡을 것도 없었다. 별다른 계획 없이 돌진한 자의 말로였다.

‘이동 스크롤이라도 미리 꺼내둘걸.’

지금이라도 꺼내 보려 했지만, 바람결에 옷자락이 미친 듯이 펄럭여서 쉽지 않았다.

‘망할 펑퍼짐한 로브 같으니.’

하지만 큰 걱정은 들지 않았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져 본 것이 처음도 아니고, 어차피 추락해봤자 강제 소환당할 뿐이니…….

거기까지 생각했을 즘, 문득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번쩍 떠올랐다.

“휘익―!”

나는 지체 없이 휘파람을 불었다.

만일 이번에도 늦을 시, 도버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요절을 내주겠단 생각을 하며…….

“꾸웨에에에엑!”

그러나 놀랍게도, 휘파람을 부는 것과 동시에 어디선가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턱!

그리고 바닥에 맞닿기 바로 직전, 큼지막한 그림자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나를 채갔다.

“으읏!”

약간의 충격에 신음하며 눈을 떴을 때, 나는 푹신한 갈색빛 깃털 위에 엎어진 채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제야 밥값을 좀 하네. 잘했어.”

“꾸웨에에엑!”

주섬주섬 일어나 바로 앉으며 칭찬하자,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천둥이가 또 한 번 울었다.

내 돈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 돼지 새, 아니, 천둥 코끼리 새는 제법 훌륭한 펫 마물로 거듭나 있었다.

그때였다.

“크워어어어어어―!”

괴수의 찢어지는 울부짖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정신을 차린 용이 잔뜩 독이 오른 채 거칠게 포효하고 있었다.

컴컴한 밤하늘임에도 불구하고, 놈의 시뻘건 눈이 정확히 나를 직시했다.

“가자, 천둥아.”

나는 천둥이의 목 부근을 두드렸다.

“꾸웩!”

고삐가 없어도 내 말을 알아들은 천둥이가 곧장 방향을 선회하여 용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놈에게 다다르기 전, 나는 재빠르게 로브를 벗었다.

NPC 전용 로브는 방어력이 우수한 편이지만 펑퍼짐해서 전투에 용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벤토리에 쑤셔 놓고 까맣게 잊고 있던, 유일한 무기를 꺼내 들었다.

[Lv.999 루미에카르]

다시 내 손에 돌아오게 된 검을 응시하자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내가 이걸 다 쓰는 날이 올 줄이야…….’

여기서 최종 보스만 튀어나오지 않았더라면, 영영 꺼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착잡함을 뒤로한 채, 나는 검의 손잡이를 단단히 고쳐잡았다.

지금은 신세 한탄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300렙의 천둥이와 신화급 검까지.

이 정도면 비록 혼자라지만 할 만한 싸움일지도.

“꾸웨에에엑!”

그 순간 천둥이가 적과의 격돌 직전임을 알렸다.

나는 망설임 따윈 집어치운 채 루미에카르를 높게 치켜들었다.

빠르게 달려드는 나를 본 용이 또다시 아가리를 쩍 벌린 채 끔찍한 괴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좀 전과 달리 나는 주춤하지 않았다.

[고대 마룡]의 드래곤 브레스는 살상력이 높은 공격인 만큼 쿨타임이 꽤 있는 편이었다.

정확한 공략법은 모르지만, 어쨌든 쿨타임 사이에 최대한 공격을 퍼부어 피를 깎아놔야 했다.

“필격!”

그 생각으로 검 끝에 신경을 집중하는 순간이었다.

“크르르…… 이방인…….”

나를 향해 위협적으로 이를 드러내고 있던 용에게서, 별안간 들끓는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이방인, 주제에…….”

“…….”

“왜, 나를 막는 거야?”

잘못 들었나 했는데. 이어지는 꽤 정확한 발음에 나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잠깐, 천둥아! 멈춰!”

푸더덕!

천둥이는 용의 대가리를 코앞에 둔 채 가까스로 급정거했다.

“꾸워어어어억!”

왜 멈추게 한 거냐며 천둥이가 불만스럽게 울었다.

그러나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용을 바라보기 바빴다.

“너 지금…… 말한 거냐?”

“그, 래.”

“허.”

당당하게 돌아온 대꾸에,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와. 용도 말을 하네.”

어이가 없었다.

마물에게 인간 캐릭터들과 같은 인공 지능을 부여했다는 얘기는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황따’와 같은 고대 마룡 던전에 진입한 유저가 올린 몇 안 되는 영상에서도 고대 마룡이 말을 하는 건 본 적 없었다.

망할 제작자 놈들은 대체 어디까지 변수를 둬야 속이 시원한 걸까.

‘아니면 설마, 이거 버그?’

기가 막혀서 연신 실소를 흘리는데, 용이 철판을 쇠로 긁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 물음에 대답해.”

“물음?”

“어차피 너는, 결국 이곳을 떠나게 될, 이방인……. 이 세계가 멸망, 하는 것은 너와는, 상관없잖아.”

“…….”

“그런데 왜, 나를 막으려는 거야.”

용은 이제 막 말문이 트인 아이처럼 느리고 천진하게 말했다.

덕분에 한참동안 마룡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나는, 이윽고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걸 말이라고 해?”

대체 무슨 콘셉트를 부여했길래 저딴 말을 지껄이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진부한 악당처럼 세상을 멸망시키겠단 포부나,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면 조금이라도 납득 했을 텐데.

저 용 대가리가 하는 말은, 이 게임의 주 스토리와 완전히 대척하는 소리였다.

마물들을 막고 주인공을 도와 이 세상을 멸망으로부터 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게임을 플레이 하는 유저, 용이 표현한 ‘이방인’의 목표이건만, 왜 자신을 막냐니?

웃기는 AI라고 생각하며, 나는 가감 없이 말을 내뱉었다.

“널 빨리 죽여야 엔딩을 볼 거 아니야.”

최종 보스건 뭐건, 마물은 신경 써야할 등장인물이 아니었다.

게다가 어차피 남주나 메인 캐들이 듣든 말든, 게임에 관한 얘기를 가감 없이 하는 유저들도 많았다.

때문에 마물에게 이깟 말 좀 했다고 오류가 생기거나, 큰일이 벌어지진 않으리라.

그런데.

“엔딩? 끝, 을 말하는 건가?”

“…….”

“나를, 아니…… 이 마물을 죽이면, 모든 게 끝날 거라, 생각하나 보지?”

“…….”

“하하! 역시, 멍청한 삶의 후예다워! 재밌다, 재밌어! 하하, 하하하……!”

내 말을 들은 용이 미친놈처럼 웃음을 터뜨리는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동요하지 않고 고요히 읊조렸다.

“스턴.”

미친놈에겐 매가 약이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