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우리집 (3)
* * *
원래는 그냥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 보이고 쉽게 포기하지 않아 보이면 인정을 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번개로 둘러싸인 부적이 순간적으로 길게 늘어져 내 피부에 상처를 입힐 뻔하자 사라졌다.
다행히 스스로 억제한 마나를 순간적으로 일부 풀어 날아온 모든 부적을 베어내어 피부를 지킬 수 있었다.
'피부를 건드리려 하다니, 아무리 능력자라 자가 치료가 된다고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다정하게 충고를 해주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에르문에게 말하였다.
"여자의 피부는 소중하단다?"
그 말을 하자 에르문은 어딘가 겁을 먹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겁을 먹은 것 같다고 해서 멈추진 않을 것이다.
'피부를 건드리려 한 것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아들 실력의 최대치가 궁금하단 말이지.'
자신의 남편인 에이즈 또한 궁금해할 것이 뻔했기에 한번 알아보기로 했다.
우선 그전에..
"에르문, 너 지금 몇 급이니?"
"음.. 4급 후반 정도요."
"알겠단다."
4급 후반이라..
'1학년인걸 감안하면 높은 수준이긴 하네.'
엘리아는 그리 생각하며 검집을 들지 않은 손을 슬쩍 한번 까딱였다.
그러자 에르문과 시울이 자신에게로 끌려오고 있었다.
본인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게 허공에 뜬 채 말이다.
그리고 아까와는 조금 달리, 마나를 검집에 예리하게 두른 뒤 날아오고 있는 에르문을 향해 가로로 정확하게 휘둘렀다.
내가 검을 휘두르는 걸 보자마자 에르문은 마나를 두른 검을 세로로 세워 내 검을 막아내려고 하였지만.
'검에 소질이 없네.'
자신의 마나로 인해 날카로워진 검집에 의해 에르문의 검은 깨졌다.
그리고 내 검집은 에르문에게 닿았고, 아까처럼 검을 튕겨낼 수 있는 걸 생각하여 팔에도 마나를 둘러 고정시킨 후 에르문을 베었다.
에르문을 벤 후 검집을 휘둘러 검집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얇아.'
이번에는 제대로 벨 줄 알았지만 조그마하던 시울이 사람만 한 크기로 변하며 에르문의 옷을 물어 뒤로 빼주었기에 깊게 베이지 않았다.
자신의 공격을 2번이나 상쇄시킨 시울이 슬슬 거슬리기 시작할 때 에르문이 내게 말했다.
"중력."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에르문을 바라보았다.
내가 바라보자 에르문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엄마의 능력, 중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이죠?"
정확한 추측에 나는 에르문에게 물었다.
"그 증거는 뭐니?"
그러자 에르문은 내가 서있는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풀에 남겨진 번개의 잔해."
그 말에 나는 바닥을 보았고 내 바로 옆에 있는 풀은 번개로 인해 일부가 타버린 흔적이 있었다.
"방금 전 제가 느끼기에는 그냥 엄마가 빨리 다가오는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바람이 느껴지더라고요."
"바람 말이니?"
"네, 분명 제가 처음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에는 그저 아름다운 공간이었을 뿐, 살랑거리는 바람조차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방금 전에는 바람이 느껴져, 맨 처음에는 엄마가 바람을 다루는 줄 알았는데.."
에르문은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로 시울에 의해서 날아갈 때 보니까 엄마가 다가오기 전, 발로 자세를 고정하면서 생긴 땅이 밀린 자국이 뒤에 있더라고요."
"그 점이 이상해서 엄마보다 주위를 우선시하면서 살피니까 그런 번개의 탄 자국도 발견할 수 있었고요."
나는 에르문에 말을 들으며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관찰력이 뛰어나네.'
보통 사람들은 뒤로 내던지는 그 짧은 순간 안에 방금 전 에르문이 말한 것들을 전부 살피고 이해하지 못한다.
부모로서 자식의 이런 점은 기쁠 수밖에 없었지만, 우선 계속해서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거 아니?"
내 갑작스러운 질문에 에르문은 고개를 갸웃했다.
"내 능력은 중력을 다루는 [중력 조작]이 맞지만, 그건 서브일 뿐."
나는 검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내 전투 스타일의 주가 되는 것은 검이란다."
그와 동시에 나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내 전투 스타일의 주가 되는 것은 검이란다."
이 말을 듣자마자 엘리아가 사라졌고 내 등에서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 충격으로 인해 나는 앞으로 날아가며 바닥을 굴렀다.
겨우 중심을 잡은 뒤 충격이 온 곳을 바라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와 동시에 옆에서 아까와 같은 충격이 일어났고 나는 또다시 바닥을 굴렀다.
나는 바닥을 구르며 부적 한 장을 슬쩍 꺼냈다.
그리고 자세를 잡으며 일어나면서 아까와 같은 충격을 느끼기 전에 능력을 발동시켰다.
'[막을 방]'
그렇게 내 주위에는 방어막이 생겨났지만 생겨나자마자 방어막이 일자로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나는 순간적으로 방어막이 베이기 시작한 곳을 살폈고 그곳을 향해 두 팔을 엑스 자로 모았다.
그러자 두 팔에 충격이 느껴졌고 다행히 두 팔로 충격을 어느 정도 막아냈기에 바닥을 구르진 않고 멀리 날아갔다.
대충 어느 원리인지 파악한 나는 날아가며 부적들을 꺼내 그냥 허공에 흩뿌렸다.
"[안개 무]"
곧바로 허공에 흩뿌려진 부적들에서 안개가 생겨났고 그 안개가 초원을 뒤덮었다.
안갯속에서 나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엄마는 중력을 자신에게 사용해서 속도를 올린 거겠지.'
중력을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속도와 중력에 의한 끌림을 이용한 엄마만의 응용기술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가속을 받은 검집으로 나를 친 거고.'
내가 만들어낸 방어막을 그렇게 정확하게 벨만 한 것은 엄마가 들고 있던 [연정]이란 검밖에 생각이 안 나기에 그렇게 생각하였다.
"시울, 내 위로 올라와."
그 말에 시울은 몸의 크기를 줄이며 내 머리 위에 올라탔다.
"시울, 넌 소리에만 집중해."
"..."
이미 시울은 소리에 집중하고 있는듯했다.
'그럼.. 어디 한번 시작해 볼까?'
상대 쪽에서 스피도로 나온다면, 나 또한 스피드로 승부해주는 게 예의겠지.
그리고 가만히 있으면 나는 소리에만 의존해야 해서 약간 불리하기에 똑같이 이동하는 게 좋다.
'[달릴 분] & [빠를 속]'
그동안은 그냥 [빠를 속]만 사용하여 빨리 달렸지만 이제부터는 달리기 또한 최대치로 하여 더욱 빨리 이동할 것이다.
'뭐.. 지금 상태로는 3분이 한계인가.'
그래도 어차피 지금 하는 싸움은 금방 끝날 것이기에 큰 상관은 없었다.
'그럼 달려볼까?'
나는 안갯속에서 땅을 힘껏 박차며 앞으로 달렸다.
한번 달려보니 확실히 체감이 느껴졌다.
비록, 엘리아의 스피드는 따라잡지 못했지만 그래도 약간은 따라잡을 수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안갯속을 달리고 있을 때, 시울이 생각을 전했다.
"11시."
나는 곧바로 11시 방향을 향해 [쏠 사]를 이용한 공격을 하였고 그 순간 시울의 급한 외침이 들렸다.
"4시!"
나는 시울이 말을 정정할 때 이미 11시 방향을 향해 능력을 시전하고 있었기에 오른발을 급격하게 꺾어 10시 방향으로 몸을 날리려 하였지만 엘리아는 노련했다.
내가 오른발로 땅을 차기 전에 엘리아는 내 오른발을 발로 밟으며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고 이미 상체를 던진 나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내가 바닥에 쓰러지고 위를 바라보자 내 위에는 엘리아가 검집을 나에게 내리찍으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 공격을 보자마자 부적을 꺼내려 하였지만.
끄윽!
오른발이 꺾이며 생긴 고통으로 인해 부적을 제대로 꺼내지 못하였다.
그렇게 곧 느껴질 고통을 받아들이기 위해 눈을 감았지만.. 폐를 누르는듯한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슬쩍 눈을 뜨니 어느새 몸을 키운 시울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시울은 바닥을 몇 번 구른 뒤 쓰러졌고 움직이지 않았다.
"야! 괜찮아? 야!!"
내가 애타게 불러보았지만 시울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나는 시울이 저렇게 된 원인인 엘리아를 바라보았고 엘리아는 나를 내려다보며 방금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방금 전 너를 내리찍으려 할 때 시울이 몸을 키운 채로 나를 덮치려 했거든, 그래서 검 집으로 다리를 전부 쳐낸 후 명치에 공격을 한번 했더니 저렇게 된 거고."
그리 말하는 엘리아의 눈은 매우 가라앉아있었다.
"에르문, 솔직하게 말할게."
"실망이 크네."
나는 엘리아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겉으로는 재능이 높아 보였는데.. 막상 싸워보니까 수준 이하야."
"심지어 나는 현재 너와 같은 4급 후반 정도의 마나만 사용하고 있단다."
"동 실력인 상대로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못하면.. 그냥 지금부터라도 능력자의 길을 포기하는 게 좋을 거 같다."
그 말을 끝으로 엘리아는 [연정]을 높게 올려들었다.
아마도 마지막 공격이라는 소리겠지.
나는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엄마."
"..?"
"엄마 말대로 솔직히 저는 제 능력을 잘 이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 잘 알고 있구나."
엘리아는 나를 한심하듯 쳐다보았다.
"그러면 그것도 알고 있겠지? 이 정도에 실력으로는 정점에 오르는 것은 헛된 꿈이란걸."
"포기해."
엘리아는 이 말을 끝으로 [연정]을 내 심장을 향해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그리고 나에게 기회가 생겼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안 할 정도로 포기하진 않아요!"
[연정]이 나에게 닿는 순간 나는 능력을 발동시켰다.
내가 오직 엘리아의 무기가 나에게 닿는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히든카드.
[푸를 청]
내 가슴 주머니에 고이 접어 넣어둔 [푸를 청]이 발동되었다.
그리고 [푸를 청]의 범위는 내 몸 전체.
순식간에 푸른 불이 나를 덮었고 내 몸에 닿은 [연정] 또한 푸른 불이 붙었다.
푸른 불은 빠르게 [연정]을 덮어가기 시작했고 엘리아는 [연정]에서 푸른 불을 걷어내기 위해 자신의 마나를 끌어올려 불꽃을 밀어내고 있었다.
"[쏠 사]"
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능력을 발동시키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얼굴에 피가 튀겼다.
하지만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 피가 아니니까.'
피가 튀기지 않은 눈으로 엘리아를 바라보니 어느새인가 [연정]의 붙은 푸른 불을 다 걷어내었고 한 손으로는 자신의 뺨에 난 상처를 만지고 있었다.
'역시 걷어냈나.'
애초에 [푸를 청]을 쓰기 전에 사용한 능력의 개수가 적어서 쉽게 걷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푸를 청]은 그저 아까 쓰러질 때 내던져진 [쏠 사]를 위한 눈가림일 뿐이었다.
그렇게 내 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웃고 싶었지만, 발목 쪽에서 올라오는 고통과 함께 졸음이 밀려왔다.
****
뺨에 난 상처를 살살 만지는 나에게 에이즈가 다가왔다.
"괜찮아?"
"당연하지."
나는 곧바로 마나의 흐름을 이용해 피부에 난 상처를 치료했다.
애초에 그렇게 심한 상처도 아니었기에 쉽게 치료할 수 있었다.
자신의 상처가 온전히 회복되자 에이즈는 자고 있는 에르문을 한번 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땠어?"
나는 그 말을 듣고는 헛웃음을 하며 말했다.
"역시 피는 못 속이나 봐요."
나는 자고 있는 에르문을 안아들고선 에이즈에게 넘겼다.
"내가 옮겨??"
"원래 누가 싸워야 할 거 제가 대신 싸우느라 피곤하네요~"
에이즈는 자신의 말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겠어, 내가 옮겨놓으면 되잖아."
에이즈는 에르문문을 안아든 채로 발을 한번 굴렀다.
그랬더니 우리가 서있던 공간이 거실로 바뀌었다.
에이즈는 에르문의 방으로 들어가면서 나에게 물었다.
"당신도 바로 잘 거지?"
나는 그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좀 있다 잘게요."
"그래?"
"네, 이제 곧 에르문 수련회잖아요."
"그래서 신청서를 작성해야 되거든요."
자신의 말을 다 들은 에이즈는 에르문의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내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후 기지개를 쭉 펴며 몸을 풀었다.
수련회 신청서도 작성할 겸 간단하게 에르문의 아카데미 생활을 알아보려면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다.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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