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난 묵묵히 구세프 선생님의 뒤를 따라갔다.
널찍한 등을 보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조금 저자세로 나갔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나도 머리에 열이 오르긴 했지만 구세프 선생님도 만만찮게 열이 오른 것 같아 보이지 않아?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지만, 곰한테 물려 가면 어떻게 해야 하지? 죽은 척해야 했던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후회는 늦고 감수해야 할 상황은 닥쳐왔다.
“…….”
레슨실 문을 여는 구세프 선생님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혼쭐이 날 것이 분명했다.
살살거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오늘 내가 들려드릴 수 있는 건 죄다 들려드리고 제대로 된 답을 듣기 전까진 절대 물러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각오는 되어 있다. 설마 날 죽이시기야 하겠는가?
그렇게 필사의 각오를 하고 레슨실로 들어섰다.
레슨실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미하일 선생님의 레슨실에 와서 담배를 뻑뻑 피워 대기에 구세프 선생님의 레슨실은 방음재 구석구석 담배 냄새가 배어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그리 냄새가 나거나 하진 않았다.
레슨실 구석으로 간 구세프 선생님은 악보가 인쇄된 A4 용지를 한 장 빼내더니 그걸 이면지로 활용해서 뒷면에 매직으로 뭐라 휘갈겨 썼다.
그러곤 그 A4 용지와 테이프를 들고 성큼성큼 레슨실 문 쪽으로 가서, 문 바깥에 붙였다. 순간 스쳐 지나가면서 그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출입금지. 금일 레슨자들은 미하일의 레슨실로 갈 것.』
음…….
갑자기 목이 말라 온다.
그렇게 레슨실 문밖에 출입금지 공지를 붙인 구세프 선생님은 그대로 문을 쾅 닫고 잠가 버리더니 내 쪽을 돌아봤다.
“넌 나랑 오늘 여기서 죽든지, 답을 찾든지 해야 나갈 수 있다.”
“…….”
미하일 선생님. 살려 주세요.
당장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착 가라앉은 눈빛에서 언뜻 살기마저 느껴졌다. 등줄기에 소름이 쫙 내달렸다.
바짝 얼어서 벽 쪽에 붙어 있자 구세프 선생님이 피식 웃더니 겉옷을 벗어 던지고 선생용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아까 그 건방지던 꼬맹이는 어디로 갔지?”
“…….”
“와서 앉아라.”
살짝 비꼬는 투였지만 구세프 선생님은 자신 없다면 지금이라도 나가라, 둥의 소리를 하진 않았다.
말과 태도는 험악하고 일부러 겁을 주려는 듯했으나, 구세프 선생님은 확실히 내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뭐라도 더 듣고 싶은 모습이었다.
날 기다리는 사람을 두고 도망쳐 버릴 순 없었다. 난 비틀거리지 않으려 애쓰며 어깨를 폈다.
어쨌거나 레슨을 해 주시겠다는 분이었다.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피아노 앞에 앉자 조금 긴장이 풀렸다.
그냥 서 있을 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열네 살에 불과했다.
하지만 건반을 앞에 두고 있다면 해야 할 일은 자명했다. 감각이 점점 되돌아왔다.
구세프 선생님이 말했다.
“순서대로 해 보자. 우선 바흐를 쳐 봐라.”
“……무슨 곡을 치면 될까요?”
“무슨 곡을 칠 수 있나?”
“인벤션, 신포니아, 평균율, 토카타, 파르티타 2번, 프랑스 모음곡 5번, 6번, 이탈리아 협주곡 정도를 레퍼토리에 넣고 있습니다.”
“그걸 다?”
“바흐니까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음악을 공부하지 않고 클래식을 전공하는 사람이 있을까? 괜히 평균율이 피아노의 구약성서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난 대위법을 공부하면서 조금 더 폭넓게 바흐를 연구했다.
그래서 기억나는 대로 읊었더니 구세프 선생님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하지만 조금 이상하다는 듯 날 봤을 뿐, 그뿐이었다.
“이탈리아 협주곡을 쳐 봐라.”
구세프 선생님은 내가 피아노를 언제부터 배웠는지, 바흐를 얼마나 쳤는지 따위는 묻지도 않았다.
곡을 듣고 판단하겠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 역시 곡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바흐의 이탈리아 협주곡.
협주곡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엄연한 독주곡이다.
언뜻 이해가 안 가는 작명이지만 이 곡이 당시 유명했던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의 협주곡 형식을 건반으로 옮겨 쓴 곡이라는 사실을 알면 왜 협주곡인지 이해할 수 있다.
두 개의 손과 한 대의 피아노로 연주되는 곡이지만, 뚜렷하게 합주와 독주를 나누어서 표현해 나갔다.
여기엔 피아노뿐만이 아니라 관현악의 첼로와 바이올린도 등장했다.
완전하게 독립된 음으로 나누어 연주하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손목에 힘을 빼고, 손끝에 집중했다.
내 스스로의 해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탈리아식 스타일의 협주곡을 재현하는 데에 신경을 썼다.
“…….”
그렇게 2악장을 마무리하고 다시 3악장의 합주로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그만.”
구세프 선생님이 연주를 중지시켰다.
손을 떼고, 평가를 기다렸다.
최선을 다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 수준이었다. 열네 살치고는 괜찮게 친 것 같지만 사실 혹평하자면 얼마든지 할 수도 있는…….
“음악지능이 굉장히 높군. 대단해.”
“!”
좋은 소리 들을 생각은 아예 접고 있었는데, 구세프 선생님의 평가는 굉장히 깔끔했다. 이 정도면 쾌거였다.
그런데 칭찬에서 비롯된 기쁨과는 별개로 가슴 한편이 싸하게 쓰라렸다.
“…….”
지금 난 황량한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야 느끼는, 정말 웃기는 소리지만, 난 어쩌면 구세프 선생님이 고함이라도 치면서 그따위 것을 연주라고 하고 자빠졌냐고 폭언을 퍼부어 주시길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최악이다, 정말.
하지만, 다른 모두가 훌륭하다고 하는 가운데에 나 홀로 고독하게 침잠해 가는 기분은 이제 싫었다.
“선생님…….”
“그런데 그냥 지능이 좀 모자라는 것 같아.”
“……?”
예?
순간 내가 무언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말도 안 되는 폭언에 놀라서 황망하게 구세프 선생님을 쳐다보니 선생님이 냉소를 흘리더니 심히 거슬린다는 듯 말했다.
“이탈리아 협주곡은 독주곡이지만, 협주곡이다. 그런데 아주 잘난 듯이 독주만 선명하게 골라내더군?”
“…….”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기본적으로 협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 자체를 까먹은 것 아니냐? □□□□□. 대체 어디서 배워 먹은 해석이냐?”
난 조금 약이 올랐다.
이탈리아 협주곡은 합주 부분과 독주 부분이 구별되어 있었다.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분명하게 살려서 연주했다.
“선생님. 전 1악장 전체에서 협주 부분이 어디어디인지 정확하게 골라낼 수도 있어요.”
“뭔가 착각하나 본데, 같은 시간에 다른 악기가 연주된다고 그게 협주냐?”
“?”
“이것 봐. 못 알아듣지.”
이젠 거의 놀리는 투였다.
다시 이를 갈며 반론하려는 찰나였다.
“이 곡은 이렇게 쳐야지.”
구세프 선생님이 건반을 짚었다.
순간 나 따위와는 상대도 안 되는 웅장한 음량이 연습실을 뒤흔들었다.
오케스트라를 피아노만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많았다.
수십 대의 악기를 피아노 한 대에 욱여넣는 일은 보통 화려하고 기교적인 화성을 몇 성부건 뭉쳐서 엮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바흐의 오케스트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직관적이었다.
여러 악기들이 한데 얽혀서 내는 소리의 부피, 그 자체를 폭발시켰다.
“…….”
크게 특이할 것 없이 악보대로였다. 합주 부분은 포르테로 강하게, 독주 부분은 피아노로 여리게. 나 역시 그대로 했다.
그런데 이 차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악장을 전부 치지도 않았다. 중요한 프레이즈만 순식간에 치고 넘어간 구세프 선생님은 날 보고 손짓했다.
“다시 쳐 봐라.”
“…….”
진짜 전문가 앞에서 지금 내 수준이 얼마나 초라한지 여실히 드러나 버리자 숨이 턱 막혔다.
손가락이 뻣뻣해져서 바로 자신 있게 건반 위에 올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후흐흐.”
“하, 웃어?”
나도 모르는 사이 입가로 환희의 웃음이 새어 나왔다.
* * *
“왜 그따위로 치는 거냐? 정말 못 들어 주겠군.”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안다면 더더욱 멍청하군. 내가 네 음악지능이 높다고 했던가? 취소다. 내가 늙어서 귀가 맛이 간 모양이다, 타티아나. 너처럼 모자란 학생은 처음이다.
“…….”
“혹시 네 나이가 어리니 앞으로 나아질 거라 막연히 기대하고 있나? 헛소리, 이딴 식이라면 네가 제대로 라흐마니노프를 치기까지 이백 살 가까이 살아야 할 거다!”
구세프는 더더욱 가열차게 타티아나를 매도했다.
마흔도 넘은 선생이 열네 살밖에 안 되는 학생을 가르치는 방식으로는 굉장히 잔인했지만, 이건 단순한 레슨이 아니었다.
“……다시 쳐 봐라.”
“예.”
타티아나가 건반을 채 두어 번 누르기도 전에, 구세프가 왼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쾅 쳐서 연주를 끊어 버리고 고함을 쳤다.
“더 천천히 시작하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나!”
“죄송합니다.”
“기본이 안 되어 있잖아, 기본이!”
“…….”
“중간 단계는 모조리 다 건너뛰어 버린 거냐? 대체 피아노를 어떻게 배운 거냐?”
구세프는 일부러 더 악을 쓰고 위협적으로 악담을 퍼부었다.
하지만 모두 근거 없는 비난은 아니었다. 구세프는 어디까지나 음악가였다. 있지도 않은 문제를 트집 잡을 생각은 없었다.
그가 듣기에 타티아나는 자신의 테크닉과 피지컬에 맞지 않는 음악을 하려 들고 있었다.
멀쩡히 잘 치다가도 갑자기 어깨를 들어 힘을 주곤 했다.
마치 이 한 곡을 치고 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 필사적으로 모든 것을 쏟아붓는 듯한 태도였다.
누가 봐도 그건 무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차라리 무리를 해서 제대로 연주를 해내면 또 모른다.
무리를 하면 할수록 곡은 이상해질 뿐이었다.
“빌어먹을, 라흐마니노프는 집어치워라!”
“…….”
“방향성이 틀리진 않았지만 전혀 못 따라가고 있다. 되도 않는 연주를 하면서 스스로 답답하지도 않더냐? 그 와중에 그걸 외우기는 또 어떻게 죄다 외웠는지 모르겠군. 난 지금 정말 네 머릿속을 뜯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무시무시한 소리를 퍼부었지만, 타티아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선생님.”
구세프는 잔뜩 힘을 주고 있던 목에서 스르르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면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거나, 울면서 뛰쳐나가 버린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흐트러짐 없이, 오히려 거의 감사하다는 표정으로 구세프의 폭언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리 겁을 주고, 막말을 하고, 비판해도 타티아나는 꺾이지 않고 더욱 집중했다. 되레 수긍할 부분은 얌전히 수긍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구세프의 지도에만 따르는 것도 아니었다.
“선생님.”
갑자기 타티아나의 손이 건반 위를 달렸다. 난데없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카덴챠 부분을 연주하고 있었다.
구세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열네 살이 연습할 곡이 아니지 않은가?
빠르게 카덴챠를 쳐 내린 타티아나가 이번엔 거꾸로 물었다.
“이 부분은 어떤가요?”
“또 이상한 짓거리. 너 도대체 뭐 하는 거냐? 나랑 놀고 있는 건가?”
“아뇨.”
“어떻냐고? 소음이다, 그건.”
“…….”
하지만 타티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구세프의 혹평에 공감한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구세프는 조금 소름이 돋았다.
타티아나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칼날은 타티아나 역시 품고 있었다.
구세프는 거꾸로 무언가 평가당한다는 느낌조차 받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선생으로서의 책임감과 음악가로서의 호기심이 동시에 구세프를 더욱 부추겼다.
처음 타티아나를 본 것은 실기시험장에서였다. 그때 들은 하이든과 쇼팽은 어디 나무랄 곳 없이 깔끔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다 내숭이었다. 철저하게 자신을 죽이고 악보 그대로만 점수를 얻기 위해 펼쳤던 내숭.
본색을 드러낸 타티아나는 어울리지 않다 못해 이상하게까지 들리는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고 있었다.
미하일이 데려오기 전까지 도대체 어디서 피아노를 배웠는진 모르겠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균형함이 위태롭게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구세프는 그것을 낱낱이 파헤치고 싶어졌다.
구세프는 다시 타티아나에게 다른 작곡가의 곡을 주문했고, 타티아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연주에 임했다.
“…….”
그렇게 레슨 아닌 무언가가 시작된 지 3시간이 흘렀다.
구세프도 이렇게 학생 하나를 두고 막무가내식으로 다뤄 보긴 처음이었다.
그사이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쇼팽, 멘델스존, 슈만,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에프 등등 시대를 막론하고 수많은 작곡가들의 곡들이 스쳐 지나갔다.
3시간 동안 타티아나는 쉴 새 없이 연주하고, 비난당하면서 지쳐 갔다.
하지만 그사이 한 번도 힘들다 소리 없이, 형형한 눈으로 피아노를 놓지 않았다.
암보가 되어 있는 곡들은 그대로 쳤고, 잊어버린 곡들은 태블릿 컴퓨터를 꺼내 악보를 띄운 다음 한 번 훑고는 그대로 쳐 나갔다.
구세프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혀를 내둘렀다. 타티아나는 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시킨 거의 모든 곡들을 연주해 냈다.
개중엔 완성도가 꽤 있는 곡도 있었고, 어설픈 곡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한 번씩은 다 읽어 본 것 같았다.
이해가 안 가는 공부량이었다.
그간 봐 온 그 어떤 학생도 타티아나에 비하면 상대가 되지 않았다.
“…….”
그렇게 내심 인정하고 있는 학생을 3시간 동안 몰아세우면서 구세프 역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말마따나 딸보다 어린 아이에게 이렇게까지 굴고 싶진 않았다.
거기다가 근래 힘들다고까지 하지 않았는가. 구세프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순 없었다.
제아무리 뛰어나도 열네 살. 미하일은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았지만 구세프가 보기엔 심각했다. 고쳐 나가야 할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특히 이상한 고집에 대해선 정말 끝장을 봐야만 했다.
저 고집을 꺾지 못하는 이상 이대로라면 앞으로 나이를 먹어도 성숙한 음악을 만드는 데에 엄청난 장애물이 될 것이다.
“됐다, 타티아나. 베토벤 소나타 17번. 칠 줄 알겠지.”
“예. 선생님.”
“3악장.”
타티아나는 곧바로 연주에 들어갔다.
베토벤 소나타 17번. 부제는 ‘폭풍tempest’. 타티아나는 말 그대로 폭풍과도 같이 피아노를 연주해 나갔다.
첫 주제가 끝나기도 전에 구세프가 타티아나의 연주를 중지시켰다.
“역시 베토벤은 조금 낫군. 그럼 쇼팽 스케르초 1번. 할 줄 아나?”
“예.”
“레퍼토리 하난 정말 괴물 같군. 좋다. 코다 부분만 쳐 봐라.”
“예.”
타티아나는 지쳐 있었고 이젠 머리도 제대로 돌지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기억을 헤집어 곡들을 끌어냈다.
바로 몇 초 전에 친 베토벤의 선율이 흘러가기도 전에, 타티아나는 거의 기계적으로 쇼팽의 스케르초를 피아노 위에 올렸다.
그 음색은 평소 타티아나가 치는 쇼팽과는 조금 달랐다.
“……!”
그리고 그것을 구세프도, 타티아나 본인도 알아차렸다.
타티아나가 손을 멈추고 망연히 건반을 내려다보았다.
구세프는 지금 타티아나가 왜 연주를 멈췄는지 알 수 있었다. 쇼팽 소나타 1번에서 잠깐 느꼈던, 그 소리와 똑같았다.
타티아나는 또 한 가지 무언가를,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얻어 낸 것 같았다.
물론, 그와 동시에 타티아나의 쇼팽 스케르초 1번은 엉망으로 얼룩덜룩해졌다.
그나마 모양을 갖춰 가던 구조가 무너지고, 일관성 없이 불쾌해져 버렸다.
구세프는 어째서 타티아나가 거꾸로 불완전함을 찾아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구세프가 역정을 냈다.
“도대체 그 해석은 어디서 가지고 온 게냐?”
“그렇게 듣기 안 좋나요……?”
“듣기 좋고 안 좋고가 아니라 애초에 너한테 안 맞아.”
“…….”
그 어떤 비난에도 침착하던 타티아나가 크게 동요했다.
무표정으로 침묵하고 있었지만 쿡 찌르기만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보였다. 구세프는 그 변화를 똑똑히 지켜봤다.
타티아나는 그 특유의 이상한 해석을 덧붙이길 좋아했고, 그 결과로 찾아낸 것을 공격당하면 가장 크게 상처받았다.
구세프는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더욱 비아냥거렸다.
“엉망이다, 엉망. 이따위로 할 거면 피아노는 때려치우거라. 차라리 작곡가를 하면 대성하겠군.”
“…….”
“넌 기본이 안 되어 있다. 네겐 예술에 대한 존경이 결여되어 있어. 오로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한 도구로 쓰고 있을 뿐이지.”
“…….”
타티아나는 대꾸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이 고집불통 꼬맹이 같으니.
이를 악물고 피아노만 바라보고 있는 타티아나를 보며 구세프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타티아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러면 안 되나요……?”
“뭐?”
“제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쓰면 안 되는 거예요?”
참담한 울음소리가 처음으로 타티아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딘가 어그러진, 본래 순수한 음악가였으나 지금은 변질되어 버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어 버린 영혼을 마주한 구세프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