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이젠 정말 말도 좀 하네?”
“공부 열심히 했어.”
조금 어눌하지만 그래도 확실한 러시아어로 한승우가 대답했다.
타티아나는 기특하다는 듯 웃으며 그쪽으로 과자를 밀어 주었다.
“감회가 새롭다…… 처음 봤을 땐 얘 학교생활 잘 하겠나 싶었는데.”
한승우가 잘 적응할 수 있었던 데엔 리처드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
“고마워요, 리처드가 아니었으면 아마 힘들었을 거예요.”
“별말씀을.”
리처드는 아직도 타티아나가 왜 감사를 표하는 건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학교 내에선 유일하게 한승우와 말을 편하게 놓고 지내는 것 같고, 아마 같은 8학년 편입생끼리 모종의 동지애 같은 것이 있겠거니 쉽게 생각하고 넘겼다.
처음 리처드가 한승우를 돕기로 생각한 것도 타티아나가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게 한승우와 가깝게 지내면서 리처드 또한 자원봉사 한다는 듯한 기분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친구로 지내기에도 한승우는 상당히 괜찮은 녀석이었다.
중앙음악학교에 편입하기에 충분한 재능과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자만하거나 과시하지 않았고 성격도 모난 데 없었다.
게다가 가장 큰 장벽인 언어 문제가 영어 사용자들끼리는 해결이 되어 버리니 리처드는 한승우에게서 별로 답답함을 느끼지도 않았다.
가끔 하는 짓이 답답하긴 했지만 워낙 별난 사람이 많은 이 학교에서 그 정도는 전혀 문제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보다 감사를 표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더 드시고 싶은 건 없나요? 이 에끌레르 프레즈는 어떤가요?
리처드가 떨떠름하게 거절했다.
“아니…… 난 정말 괜찮은데.”
“부담 가지실 것 없어요. 기탄없이 말씀해 주세요.”
“지금 부담이 안 되게 생겼…….”
중얼거리던 리처드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자꾸 주변에서 이쪽을 쳐다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타티아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허브차를 마셨다.
이 세 명은 신아르바트 거리에서도 가장 유명한 디저트 전문점에 들어와 있었다.
리처드는 살면서 이런 공간에 들어와 본 것이 처음이었다.
당장에라도 일어나고 싶었지만 타티아나는 리처드가 말만 하면 이 가게를 통째로 사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자꾸만 메뉴판을 뒤적였다.
“대체 내가 왜…….”
괴로워하는 리처드를 보며 타티아나는 소소한 복수심이 충족되는 것을 느꼈다.
맨 처음 신발가게에 이어 옷가게, 모스크바에서 제일 큰 서적 센터인 돔 끄니기에 이르기까지 리처드의 주도하에 타티아나는 신아르바트 거리를 이곳저곳 끌려다녔다.
물론 그 과정이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리처드는 생각보다 유쾌했고, 한승우는 보고만 있어도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 쯤 돌아다니다 보니 애초에 목적이 뭐였는지도 아리송해졌다.
그냥 이렇게 놀다가 귀가해도 괜찮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영문도 모른 채 리처드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타티아나는 불쑥 장난기가 샘솟는 것을 느꼈고, 너무 오래 걸어 힘들다는 핑계로 찾아 들어간 곳이 바로 이 디저트 전문점이었다.
가게 안에는 온통 여자들뿐이었고, 남자 두 명을 끌고 온 타티아나는 한순간에 주목받았다.
사방에서 귀엽다느니, 잘생겼다느니 웅성거림이 쏟아졌다.
리처드는 태연하게 굴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정신력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30분 정도였다.
“타티아나…….”
“예, 리처드.”
“우리…… 이만 일어날까?”
“음…….”
타티아나는 조금 재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리처드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마음 같아선 조금 더 놀려 주고 싶었지만, 리처드가 남자로서 이 공간에서 얼마나 정신적 데미지를 받고 있을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아직까진 괜찮아 보였지만 정도가 지나친다면 짜증을 낼 것이다.
타티아나는 그렇게 상황을 몰고 갈 생각은 없었다.
“좋아요. 가죠.”
“고마워…….”
타티아나가 이곳에 리처드를 끌고 온 것은 그녀에게 설명도 불충분하게 하고 무작정 끌고 다닌 것에 대해 약간 불만이 있다는 의사표시이리라.
어쨌든 타티아나가 이 정도로 용서해 줄 것 같자 리처드는 작게 중얼거렸다. 살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일어서는데도 한승우는 앙트르메를 한 개 더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리처드는 괜히 그의 어깨를 때렸다.
“그만 먹고 일어나, 인마.”
“가게?”
“너 진짜 케이크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리처드는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리처드가 추천하는 곳이었다.
“볼링요……?”
“그래.”
타티아나는 볼링장은 난생처음이었다. 리처드는 자신만만하게 그녀와 한승우를 이끌고 볼링장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타티아나는 볼링장 벽에 걸려 있는 시계로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4시가 조금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곧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는데 지금 볼링장까지 와 버렸으면 구세프 선생님이고 뭐고 아예 놀아 버리겠단 뜻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타티아나는 이제 와서 대체 내기 이행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쯤 할 거냐고 따질 생각도 없었다.
오늘 하루는 재미있었고, 기분도 많이 괜찮아졌으니 이만하면 빅토르도 크게 뭐라고 하지 않겠거니 하는 가벼운 생각뿐이었다.
타티아나는 리처드의 설명에 따라 볼링화를 빌리고, 안으로 들어가서 먼저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리처드는 몇 번이고 볼링을 쳐 본 적이 있는지 주저 없이 어프로치로 향한 다음 꽤 능숙한 자세로 공을 잡고는, 레일을 향해 굴렸다.
탕 소리와 함께 모든 핀이 한 번에 다 넘어갔다. 타티아나는 볼링 룰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저게 스트라이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음은 한승우의 차례였다. 한승우가 취하는 자세 역시 그냥 마구잡이로 하는 모양이 아니었다.
리처드보다 더 큰 덩치와 팔 힘으로 인해 볼링공이 거의 무슨 포탄처럼 핀들을 향해 날아갔다.
콰르릉 하는 소리에 타티아나는 깜짝 놀랐다. 핀은 박살이라도 나 버린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살살 좀 하라니까.”
“살살 하면 잘 안 넘어가니까 어쩔 수 없어.”
“무식한 자식.”
리처드가 혀를 찼다.
세 번째로 타티아나의 차례였다.
타티아나는 어색하게 서서는 자신의 체중에 맞는 볼링공을 들었다.
8파운드짜리를 들어 봤다가 그것도 무거워서 한 단계 더 가벼운 7파운드짜리 볼링공으로 골랐다.
타티아나는 볼링공에 있는 구멍을 보며 손을 어떻게 넣어야 하나 대충 재 보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리처드가 옆에 와서 말했다.
“그냥 양손으로 던져도 돼.”
“……여기에 손가락 넣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손가락 다칠 수도 있어. 그리고 양손으로 하는 프로 볼링 선수도 있고.”
“그래요……?”
다칠 수도 있다는 말에 타티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리처드가 가르쳐 주는 대로 공을 잡고는 레일을 향해 굴렸다.
체력도 운동신경도 별로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꽤 집중해서 던진 볼링공은 레일 한가운데로 굴러가더니 핀을 두 개 남기고 모두 쓰러뜨렸다.
“…….”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바로 기뻐하기보단, 처음 굴려 본 볼링공의 묵직함과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를 보며 바로 다음 계산에 들어갔다.
종전에 얼핏 들은 규칙에 의하면 한 프레임에선 남아 있는 핀들을 처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으니 다음번에 다시 잘 겨누어서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남은 핀들을 노려보는데, 리처드가 그런 타티아나의 곁에 다가왔다.
“잘했어, 타티아나.”
“……예?”
타티아나는 뭘 잘했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가 살풋 웃었다.
“남은 걸 다 처리하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하죠?”
“직선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대각선에서 한번 노려 봐. 조금 나을걸.”
리처드가 초보에게 걸맞은 조언을 했고, 타티아나는 그의 말대로 다시 볼을 굴렸다.
조금 더 조준에 신경을 썼는지 약간 힘없게 굴러간 볼은, 정확하게 남은 핀 두 개를 맞춰서 넘어뜨렸다.
타티아나가 탄성을 터뜨렸다.
“와! 맞았어요!”
기뻐하는 타티아나를 보며 리처드가 오른손을 들었고, 타티아나는 잠시 그걸 보다가 오른손을 들어 마주쳤다.
둘 사이엔 키 차이가 있었지만 리처드가 조금 낮춰 준다면 충분히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었다.
리처드는 픽 웃으며 말했다.
“잘한다니까.”
처음 해 본 볼링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타티아나가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할 만하네요? 양손으로 해서 그런 걸까요? 리처드처럼 한 손으로 하면 분명 더 어려울…….”
“타티아나.”
리처드가 조용히 말했다. 타티아나는 리처드를 올려다보았다. 리처드는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툭 던지듯 말했다.
“혹시 많이 놀랄까 해서 미리 말하는데.”
리처드가 작게 소곤거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말고 따라와 줘.”
“……?”
이번에도 리처드는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타티아나는 약간 불안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것, 그를 믿고 따라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세 사람의 볼링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볼이 경쾌하게 핀을 때리는 소리와 환호성, 또는 아쉬운 탄성이 이어졌다.
“……금방이네요.”
타티아나가 점수판을 보며 중얼거렸다.
한 게임 중반인 5프레임이 될 때까지 리처드는 모든 프레임을 스트라이크 혹은 스페어로 끝냈고 한승우는 두 프레임에서 핀을 몇 개 못 쓰러뜨렸다.
타티아나는 20점의 핸디캡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 서서히 점수가 뒤떨어졌다.
누가 봐도 리처드는 볼링장에 자주 와 본 실력자였고 타티아나는 초보자였다.
그로 인해 벌어지는 점수 차는 당연한 결과였음에도 불구하고 타티아나는 약간 불만족스러웠다.
그녀는 다음 자기 차례만을 기다리며 핀들이 서 있는 곳을 노려보았다.
타티아나는 이전 프레임들을 떠올리며 곰곰이 궁리했다.
어쩔 수 없이 힘은 떨어지지만 조금 더 집중해서 섬세하게 한다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타티아나의 앞 순번인 한승우가 스페어 처리에 실패했다. 타티아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가 깜짝 놀라서 풀었다.
이기는 것도 좋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학교 친구들과 하는 가벼운 게임에 불과했다.
타티아나는 조금 흥분해 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리에서 일어나 어프로치로 향했다.
그때 교차해서 스쳐 지나가던 한승우가 비틀거렸고, 그것을 피하지 못한 타티아나와 부딪히며 두 사람은 바닥에 쓰러졌다.
리처드가 미처 그쪽으로 움직이기도 전이었다.
“아가씨!”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빅토르가 벼락처럼 타티아나의 옆에 날아들었다. 리처드는 기가 막힐 정도로 빠른 그 반응에 멈칫했다.
빅토르가 타티아나를 부축하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예, 괜찮…….”
타티아나가 대답하기 전에 리처드가 그 옆으로 끼어들었다.
“타티아나. 너 손목 괜찮아? 볼을 쥔 채로 넘어졌잖아!”
“예?”
쓰러질 때 함께 넘어진 한승우가 받아 준 덕분에 타티아나는 어디 한 곳도 다치지 않았다. 볼 역시 바로 놓쳤기 때문에 문제없었다.
하지만 리처드는 계속해서 이번엔 빅토르에게 말했다.
“타티아나의 경호원 되시죠. 지금 타티아나가 손목을 다쳤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빅토르가 심각하게 얼굴을 굳히며 타티아나를 살폈다. 타티아나는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보기엔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빅토르는 의사가 아니었고 이런 상황에 무턱대고 쉽게 조치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았다.
더더군다나 타티아나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항상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빅토르는 이 볼링장이 있는 건물에 들어오기 전에 2층에 병원이 있는 것을 떠올렸다.
“아가씨. 2층에 병원이 있습니다. 바로 가시죠.”
“전 괜…….”
“가자, 타티아나. 어서.”
“어……?”
그렇게 타티아나는 시끌시끌한 남자 세 명에게 둘러싸여서 건물 2층으로 향했다.
타티아나는 약간 황당했다. 손목은 정말 괜찮았는데 자꾸 옆에서 큰일 났을지도 모른다고 떠들자 진짜 아픈 것 같기도 했다.
워낙에 약해 빠진 몸이니 일단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보이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 같았다.
그렇게 소란스럽게 2층의 병원으로 들어갔고, 다행히 밀려 있는 환자 없이 타티아나는 곧바로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의사가 안경을 슥 고쳐 올리며 물었다.
“볼링장에서요?”
“예…….”
“음.”
잠시 타티아나의 손목을 보던 의사는 바로 냉찜질 팩을 가지고 와서 잠시 누르고 있으라 하고는 초음파 사진을 찍어 봐야 겠다며 준비에 들어갔다.
조용한 진료실 안에서 아프지도 않은 손목에 냉찜질 팩을 누르며 타티아나는 이게 대체 어찌 된 상황인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리처드가 뭔가 수작을 부린 것 같긴 했다. 리처드가 놀라지 말라고 했던 말과 모든 정황이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타티아나를 다치게 하려 했다면 이렇게 어설프게 했을 것 같진 않았다. 실제로 타티아나는 괜찮았다.
잠시 후, 진료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다시 들어왔다.
타티아나는 의사와 함께 촬영실로 가서 진짜 양 손목을 초음파 촬영했다.
정말 멀쩡해도 몸이 재산인 연주자라면 검사를 받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타티아나는 손목을 늘어뜨렸다.
촬영이 끝나고도 의사는 약간 고민하더니 이어서 MRI도 찍어 봐야겠다고 말했다.
타티아나는 초음파도 MRI도 처음인데 오늘 생전 처음 신기한 일 많이도 겪는다고 생각하며 하라는 대로 지시에 따랐다.
다시 진료실로 돌아와서 의사가 말했다.
“전치 2주입니다.”
“예?”
타티아나가 어이가 없어서 소리를 지르자 의사가 MRI 사진을 보여 주며 설명했다.
“오른손 TFCC, 그러니까 이쪽 보이세요? 이게 손목 인대인데 외상으로 변연부 세부 파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 심하진 않지만 피아니스트라면 신경을 써야겠지요?”
“……?”
의학에 대해 전혀 모르는 타티아나가 검은색 배경의 사진을 본다고 해서 무언가 알아볼 리 만무했다.
의사가 계속 설명을 이어 나갔다.
“수술이나 약물을 써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니 걱정 마시고, 2주 정도 손목을 쓰지 말고 안정을 취하세요. 그 후로도 심하게 사용하시는 건 안 되고요. 학교에 제출할 진단서는 써 드리겠습니다. 손목 관리는 일단 냉찜질로 통증을 가라앉히고 진정이 되면 온찜질을 해 주세요.”
“……?”
손목 상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손목 고정용 보호대와 밴드까지 받아서 밖으로 나온 타티아나의 얼굴엔 당혹감과 얼떨떨함이 서려 있었다.
빅토르가 창백하게 질려서 타티아나에게 물었다.
“아가씨, 괜찮으신 겁니까?”
“예, 괜찮아요. 전치 2주라네요……?”
“뭐라고요? 그게 어떻게 괜찮으신 겁니까?”
타티아나는 빅토르 옆에 서 있는 리처드를 바라보았다. 그는 정말 타티아나에 대한 걱정뿐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타티아나는 별일 아니니 괜찮다고 하는 대신 차갑게 말했다.
“이거, 책임질 수 있어요?”
손목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상황 자체를 책임질 수 있냔 말이었다.
리처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타티아나는 짧게 헛웃음을 흘리곤 말했다.
“오늘 준비해 두신 것이 많은 것 같네요.”
“설명은 나중에.”
“알았어요.”
리처드의 설명이 정말 기대되었다. 타티아나는 이렇게 과격한 쇼까지 만들어 낸 리처드를 보며 이젠 흥미진진하기까지 했다.
일단,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리처드는 정확하게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이래서야 구세프가 아무리 독한 선생이라도 최소 2주간은 타티아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타티아나는 새삼 리처드를 다시 바라보며 감탄했다.
정말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엄청난 승부사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