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화
3월이 가고, 모스크바에 4월이 찾아왔다.
난 팔짱을 끼고 창가에 기대어 섰다.
“…….”
잔잔한 빗소리가 들린다. 밖으로 보이는 온 건물들이 비안개에 파묻혀 있었다.
눈이 아닌 비를 보고 있자면 이제 봄이 올 차례라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작년 이맘때 뭘 했던가 생각했다. 그때 난 학교에 다니긴커녕 말도 똑바로 못 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연주자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이를 악물었었다.
그로부터 1년. 난 잘하고 있는 걸까.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며 난 상념에 잠겼다.
열심히 하려고 했고 무엇 하나 허투로 하지 않으려 했지만, 잘못한 것도 많고 포기한 것도 많았다.
잃어버린 것도, 타협해 버린 것도. 떠올리자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기억나는 것도, 기억나지 않는 것도, 정리된 것도, 정리가 아직 되지 않은 것도.
외부에서 답을 찾을 순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위안을 찾아 고개를 돌린다.
창에서 시선을 떼고 스터디룸을 돌아보았다. 이곳에 있는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
“비관이 뭐야? 처음 보는 말인데.”
“내가 지금 널 보면 생각나는 거.”
“뭔진 몰라도 나도 너한테 비관을 느끼거든?”
“그거 그렇게 쓰는 말 아닌데.”
“아, 진짜!”
아나톨리와 류보비는 문학 숙제를 하는지 책을 펼쳐 놓고 공책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과는 다르지만 같은 학년으로, 이렇게 스터디에 모이면 티격태격하면서도 같이 붙어 앉곤 했다.
서로 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은 둘 모두에게 좋은 일로 보였다.
그리고 여기엔 한 명이 더 추가되어 있었다.
“난 둘을 보면 환멸을 느껴.”
“환, 뭐……?”
“그게 뭐야?”
사샤가 귀엽게 한숨을 폭 내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나톨리는 대뜸 인상을 썼지만 사샤가 어지간한 일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난 그런 세 명의 어린 친구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모두 성격도 다르고 자주 티격태격한다.
하지만 난 저 세 명이 묘한 조화로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
각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으로 완전히 다른 소리들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것처럼 언제라도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다음으로 반대편 책상.
거기엔 아나스타샤와 발렌티나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턱을 괴고 볼펜을 빙빙 돌리고 있고, 발렌티나는 무언가 열심히 공책에 적고 있었다.
다가가서 아나스타샤의 공책을 살짝 보았다.
유려한 필기체로 써진 공책은, 그야말로 알고 있는 무언가를 글씨로 남겨서 보다 외우기 편하도록 하는 실용적인 목적만을 지니고 있었다.
그에 반해 발렌티나는 색색의 펜과 마커로 공책을 하나의 미술품으로 만들고 있었다.
내 스타일은 아나스타샤와 닮아 있었지만 뭐든 간에 공부만 잘되면 상관없는 일이다.
아나스타샤가 내 쪽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공부 다 했어?”
“아뇨, 스트레칭을 잠시 했어요.”
내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아나스타샤에게도 스트레칭이 필요해진 것 같다. 그녀는 양손을 깍지 끼고 머리 뒤로 넘기며 스트레칭을 했다.
신음을 흘리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머리에 쥐 날 것 같아.”
“평소 머리를 안 쓰니까 그렇지.”
“그러는 넌 자주 써?”
“당연하지?”
발렌티나가 말했고 아나스타샤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나스타샤는 일전에 피아노도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지키려는 것인지 부쩍 연습량도 늘고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도 늘었다.
그건 발렌티나도 안다. 하지만 발렌티나는 아나스타샤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너랑 타티아나 데리고 다음엔 어딜 가야 할지 고민하느라 내가 얼마나 머리가 복잡한 줄 아니?”
근래 들어 발렌티나는 더욱 아나스타샤와 자주 어울렸다.
원래도 발렌티나는 8학년 피아노과의 몇 안 되는 여자애들 중에선 아나스타샤와 가장 친하긴 했지만, 전교에 두루 친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우리랑만 어울려 다니고 하진 않았다.
하지만 요 몇 주 사이 부쩍 아나스타샤와,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와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난 기분이 든다.
그녀는 10대들이 놀 만한 거리를 찾는 데엔 아나스타샤보다 훨씬 더 도가 터 있었다.
자기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아나스타샤와 그런 아나스타샤를 데리고 나가려는 발렌티나 사이에서 난 균형을 잘 잡아야 했다.
왜냐하면 아나스타샤는 거의 내가 하자는 대로 했기 때문이었다.
연습에 조금 더 비중을 둬야 하지 않느냐고 넌지시 물으면 두 말 않고 연습에 몰두하고, 하루쯤은 나가서 쉬자고 하면 함께 나갔다.
작년을 떠올려 보면 아나스타샤가 내가 너무 연습에만 매달린다며 끌고 나갔었는데, 이제 그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엔 두 남자가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예브게니아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는데?”
“네 선반을 찾아봐라. 라고 하셨어. 그런데 잘 모르겠어.”
“학교 홈페이지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런가?”
“그런가가 아니라. 그럴 땐 다시 물어보라고. 알아들은 척하지 말고.”
“일어서지 말고?”
“또 뭘 잘못 알아들은 거냐 대체?”
“뭘까? 리처드.”
“죽어, 제발.”
리처드는 투덜거리면서도 한승우와 대화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모든 대화가 한승우에겐 공부가 된다. 덕분에 한승우의 러시아어 실력은 반년 사이 일취월장해 있었다.
본래 음악적인 재능은 대단히 뛰어나니 말만 통하면 학교에 적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 리처드. 죽어랑 뒈져 중에 뭐가 더 품위 있는 말이었지?”
정말 잘 적응하는 것 같다…….
난 한승우를 봤다. 반년 전에 있었던 입학시험과 간단한 인사말도 못하고 어리바리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열네 살에 홀로 외국에 유학을 결심한 그 강단은 높게 사지만 그만큼 아찔하기도 했다.
주위에 도와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나라도 도와주어야겠다는 모종의 책임감을 느끼곤 했지만, 난 지금 리처드만큼 잘 도와주진 못했을 것 같다.
리처드는 늘 만사 귀찮아 보이는 태도였고 학교생활은 대충대충 하지만 의외로 책임감도 있고 상당히 꼼꼼한 편이었다.
리처드가 있어서 다행이다.
“할 말이라도 있어? 타티아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너무 빤히 바라봤나 보다. 리처드와 한승우가 이야기를 하다 말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두 분이 공부하시는걸 보니 좋아서요.”
“공부하는 걸 보는 게 좋아? 무슨 소리야 도대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모르면 말고.”
리처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흘러 넘겼다.
난 그런 그의 태도가 일종의 배려의 표현이라는 것을 안다. 그도 참 특이한 성격이다.
공부를 위해 스터디룸에 모인 우리들은 공부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같이 놀며 시간을 보냈다. 난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난 바라는 것이 있었다. 왜냐하면 한 명이 늘 없었기 때문이다.
“에르네스트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리처드가 날 홱 돌아보았다. 못 할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리처드는 윽 소릴 냈다.
“갑자기 그런 말 하지 말지? 나 방금 진짜 소름 돋았거든.”
“예?”
“지금 이 평화로운 스터디룸에 무슨 폭탄을 터뜨리려는 거야?”
“…….”
에르네스트가 이렇게 두루두루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는 좋게 말해 자존심이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사실 조금 오만한 편이었다.
사실 에르네스트는 진짜배기 천재니까 오만이 아니라 그냥 솔직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는 주변 사람들을 꽤나 자극하기도 했다. 은연중에 새어 나오는 자신만만함은 가끔 도를 지나친다.
물론 그 스스로도 그걸 아는지 요 몇 달 사이 굉장히 철이 든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 모습은 기특하지만, 아직도 그에게 애 같은 면이 없잖아 있다는 것을 안다.
애가 맞기도 하고.
그리고 여기 애가 또 있기도 하고.
“그렇게 에르네스트가 싫으신가요? 리처드.”
사실 가끔 반에서 에르네스트가 험악한 소리를 하게 되는 원인의 99%는 리처드였다.
에르네스트와 리처드는 아직도 서로 눈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비아냥거리고 트집 잡을 거리가 없는지 말로 쿡쿡 찌르곤 했다.
내가 보기엔 둘 중 누구도 서로 누가 잘못했다 할 수 없었다.
리처드는 내 말에 움찔했다. 하지만 곧 아랑곳 않고 대답했다.
“응. 싫은데.”
“앞으로도요?”
“아마?”
“영원히?”
“왜 이래 자꾸?”
몇 년 전부터 계속되어 온 악우라면 이제 와서 내가 뭘 하든 무의미하다는 걸 안다.
그래도 두 사람의 관계를 아예 되돌릴 기회가 영원히 없다고 생각하고 내버려 둬 버리는 것은 슬프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 그냥…….”
“형은 다른 사람이랑 같이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했어요.”
그때 내 옆에서 누군가 쏙 튀어나오며 말했다. 깜짝 놀라 내려다보니 사샤가 있었다.
“사샤?”
“사람이 많으면 집중이 어렵다고 했어요.”
“……제게도 그런 말을 했었죠.”
넌지시 에르네스트에게 같이 스터디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렇게 거절했었다.
리처드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싫다고 하는 것을 보면 괜히 사람들 사이에 끼어 공부하기 싫다는 것이 진심인 듯했다.
언제나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는 그의 공부법을 지적할 생각은 없다.
“대신 연습엔 필요하대요.”
“……그 말도 했었어요.”
에르네스트는 내가 친구들과 스터디를 하는 것엔 가타부타 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하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피아노 연습도 다 같이 할 게 아니라면 자신과 종종 어울려 달라 했었다.
“타티아나 누나. 아직도 형이랑 대결해요?”
“음……. 어제도 했었죠.”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가끔은 내가 연습하는 연습실에 찾아와서 음료수를 걸고 대결을 하자며 뜬금없이 제안하기도 했다.
조금 황당할 때도 있었지만, 난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아 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의 전적은 동점이다.
사샤가 말했다.
“형은 누나랑 노는 게 재미있나 봐요.”
“재미요……?”
“예. 전 형이 학교 다니면서 누구랑 피아노를 쳤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다는 듯 하는 걸 처음 봤는데. 그게 누나였어요.”
사샤가 방긋 웃으며 물었다.
“누나는 어때요?”
“저도 즐거워요.”
“사실 형 말고는 누나 실력을 받아 줄 사람도 없죠? 아나스타샤 누나랑 발렌티나 누나는 친구니까 빼고요.”
바로 답하지 못했다.
난 옆에 있는 리처드를 바라보았다. 리처드는 작년에 날 이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리처드가 대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모든 면에서 눈에 띄지 않도록 평균인 학생이었고, 난 그가 엄청난 실력을 지녔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에게 허락을 구해야 할 일이다.
리처드는 내게 무언가 허락하는 대신, 직접 입을 열었다.
“꼬마야.”
“사샤예요.”
“그래, 사샤.”
리처드는 에르네스트를 싫어하지만 그의 동생까지 싫어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이 학교 에르네스트 혼자 다니는 거 아니거든.”
“?”
“타티아나와 피아노로 대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에르네스트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야. 이 학교는 그리 녹록하지 않단다, 애기야.”
리처드, 사샤는 아무 관계없는 것 맞죠?
딱히 고저 없이 평이한 목소리였지만 마치 겁을 주려는 것처럼 들렸다. 난 리처드가 상식인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약간 불안해졌다.
그런데 사샤는 전혀 움츠러들지 않고 대뜸 말했다.
“그러면 또 누가 있어요?”
“…….”
리처드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그라도 바로 자신이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내가 나설 때였다.
“사샤. 리처드가 맞아요. 이 학교의 누구든 모두 저마다의 피아노를 가지고 있잖아요?”
“누나…….”
어린 사샤의 머릿속엔 중앙음악학교의 피아노과 투톱이 에르네스트와 나로 그려져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둘째 치고 에르네스트만 놓고 보자면 사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런 믿음이 너무 공고해지는 것은 좋지 않았다.
에르네스트가 빼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열다섯 살에 매겨진 순위가 몇 년 후에도 그대로 가란 법은 없었다.
이 학교의 대부분 학생들은 자신이 하는 악기에 미쳐 있기 때문이다.
“사샤도 몇 년만 지나면 곧 절 위협하겠죠.”
“네? 제가 타티아나 누나를요?”
“후후, 전 그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 형에 그 동생 아니랄까 봐 사샤의 실력도 1학년 치고는 굉장히 높은 수준이었다.
앞으로 5년, 10년을 본다면 사샤가 날 앞지르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그냥 밀려 줄 생각은 없지만.
경악하고 있는 사샤를 한 번 껴안아 주고, 난 책상 위로 모두에게 말했다.
“저기, 모두 공부 중에 죄송해요. 휴식하면서 드실 다과와 음료를 조금 사 올 생각인데 드시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잠깐 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벌써 1시간이 훌쩍 넘었고. 내 제안에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때 리처드가 말했다.
“그냥 그렇게 하지 말고 내기를 하자.”
“내기요?”
“그래.”
리처드는 자신의 공책을 길게 찢었다. 그리고 몇 개로 갈라 제비를 만들었다.
“이쪽이 더 재미있잖아.”
리처드의 제안에 아나스타샤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재미있긴 하지만 네 지갑은 재미없어 할 것 같은데.”
“난 이길 생각인데?”
“아무튼…… 제비 숫자가 조금 모자라지 않아?”
“8학년들만 하자고. 애기들까지 끼워서 했다간 선생님들이 우릴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니.”
8학년 5명이 1학년 1명과 2학년 2명을 끼워 같이 과자내기로 제비를 돌렸는데 저학년들이 져서 과자를 사기라도 했다간, 선생님의 귀에 무언가 말이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지도 모른다.
아나스타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네. 좋아. 다섯 명만 하자고.”
“걸리면 두 말 않고 사는 거다?”
난 상관없지만 유학생인 한승우나 리처드의 경우엔 형편이 빡빡한 걸로 아는데…….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저러지? 조금 걱정이다.
리처드가 무작위로 만든 제비를 쥐고, 한승우부터 뽑았다.
“휴…….”
다행히 운명의 신은 한승우를 살려 주었다. 담담하게 제비를 뽑긴 했지만 정말 걸렸다간 며칠 점심을 굶어야 할 상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발렌티나였다.
“와!”
발렌티나도 살아남았다. 다음은 나.
상당히 긴장된다. 원래 내가 사려고 했으니 걸리든 말든 상관없었지만, 그래도 내기의 형태를 하고 있으니 떨렸다.
“……전 아니네요.”
뽑아 든 제비엔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남은 건 두 사람. 아나스타샤와 리처드였다.
“…….”
두 사람은 뚫어져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 다 말없이 인상을 찡그리고 있으면 굉장히 사납게 보이는 터라 분위기가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남은 여섯 명은 모두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내기의 행방을 지켜보았다.
아나스타샤가 삐딱하게 말했다.
“설마하니 여기서 둘이서 사자고 하진 않겠지? 리처드?”
“잔말 말고 뽑아.”
“내가 먼저 해도 돼?”
“어차피 네가 살 건데 뭐.”
리처드가 담담하게 말했고 아나스타샤는 거침없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리처드는 마지막으로 남은 제비를 망연자실하게 내려다보았다. 그 제비엔 작은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와, 당첨이에요. 축하해요, 리처드.
리처드는 이번에도 쿨하진 못했다. 그가 머리를 싸매자 한승우가 옆에서 말했다.
“꼭 이런 건 제안한 사람이 걸리더라.”
“안 닥쳐?”
리처드가 으르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