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230화 (230/1,277)

##  230화

아이들과 함께 합창하며, 마지막 한 호흡까지 모두 노래로 내보내고, 숨을 고른다.

“…….”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마지막까지 선율을 그렸다. 바이올린이 만드는 섬세한 음향이 여운을 남기며 서서히 잦아들었다.

막심 선배가 바이올린의 활을 내려놓고 날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놀라움과 즐거움이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주변이 떠들썩해졌다.

“언니!”

옆에서 누군가가 와락 달려들기에 깜짝 놀라 받아 주었다. 거의 넘어질 뻔했는데, 내 뒤에서도 누군가 지탱해 주었다. 순식간에 주위가 사람으로 가득해진다.

함께 합창을 했던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얼싸안고 찬사와 기쁨을 주고받았다.

“우리 연습 한 번도 안 하고 한 거 맞지? 어?”

“누나 피아노 전공 아니었어요?”

“우리 이대로 합창대회 나가면 상 탈 수 있어요. 장담해요!”

합창대회에서 상 타는 게 그리 쉽진 않을 텐데요.

“오늘 너무 좋았어요!”

“…….”

한 아이가 밝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지금 가장 중요한 말이었다. 이렇게 모두가 함께 공유한 이 순간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잊히지 않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난 내 주변에 몰려든 아이들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노래할 수 있어서 굉장히 기뻤어요.”

여러 사람이 음악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기적을 누리기 위해선 사람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또 지지해 주는 믿음을 필요로 한다.

아이들은 날 믿어 주었고, 난 아이들을 믿어 주었다. 우리는 지금 믿음의 음악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그렇게 한 명씩 안아 주는데, 아나스타샤와 에르네스트가 다가왔다. 저절로 아이들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난 웃으며 말했다.

“너무 멋졌어요. 아나스타샤. 에르네스트.”

“너도, 타티아나. 너무 예쁘더라.”

아나스타샤가 칭찬했다.

옆에 있던 에르네스트는 어딘가 약간 물러진 눈빛을 하고 있었다.

“네가 노래하는 건 처음 들어 보네, 타티아나.”

“아하하, 그랬나요?”

“늘 우리는 피아노만 쳤었으니까.”

그가 약간 아쉽다는 듯 말했다.

우리는 피아노만으로도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에 딱히 연습실에선 입을 여는 일도 드물었다.

에르네스트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피식 웃었다.

“아무튼……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어. 난 그것도 모르고 네가 어떤 노래를 할까 싶어서…….”

“걱정해 주신 건가요?”

“뭐? 아니!”

에르네스트는 화들짝 놀라며 부정한다. 그러더니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곧바로 첨언했다.

“넌 일단 무대에 올라가면 제대로 해내잖아? 뭐든지 간에.”

“믿어 주셨던 거네요.”

“…….”

이번에는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에르네스트는 입을 다물더니 곧 고개를 돌려 버렸다. 갑자기 귀엽게 왜 이러시죠?

난 에르네스트와 아나스타샤를 다시 돌아보았다. 두 사람 다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막심 선배님.”

막심 선배가 척척 다가오더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난 그 손을 맞잡아 악수했고, 두어 번 흔들었다. 함께 무대에 선 음악가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선배는 지금 이 합창을 아이들과 하는 장난이 아닌, 상당히 진지한 무대로 대하고 있었다. 바이올린에서 뿜어지던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그러했고, 포멀한 예의로 날 대하는 것이 그러했다.

난 이렇게 음악에 있어서 진지하게 날 대해 주는 막심 선배가 좋았다.

잠시 후 악수를 놓자, 그제야 막심 선배는 진지함을 거두고 한층 풀어진 평소 모습으로 킥킥거리며 웃었다.

“여기 안 온 니콜라이 녀석은 네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는 말을 들으면 아마 땅을 치고 후회할거다.”

“그, 그런가요?”

“당연하지. 생각만 해도 재미있겠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막심 선배는 이 자리에 없는 니콜라이 선배를 놀려 먹을 생각으로 기분이 좋은 듯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것은 아쉽지만, 그렇다고 그게 놀려 먹을 거리가 되는진 잘 모르겠다. 내가 말했다.

“전 언제든 같이 노래해도 좋아요.”

“원 참……. 그렇게 쉽게 쉽게 말하지 마. 넌 조금 더 깐깐하게 굴어도 되니까.”

“예?”

“그냥 그렇다고.”

막심 선배는 손사래를 치며 얼버무리더니 재차 말했다.

“어쨌든 잘했어, 타티아나.”

“고마워요. 막심 선배님.”

“그래, 음…….”

팔짱을 끼고 주위를 둘러보며 막심 선배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주변엔 아직도 아이들이 시끌시끌했다. 아나스타샤와 에르네스트도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막심 선배가 결정했는지 시원스레 말했다.

“이대로는 조금 아쉬운데. 난 저 애들 데리고 잠깐 놀아 주고 올까.”

그러더니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서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시선을 끌어모으고는, 밖에 나가서 연습하는 것을 봐주고 같이 합주도 하자며 그대로 우르르 끌고 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이곳에 오길 잘했어요.”

겨우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이곳에 어느 일방적인 관계란 없었다. 분명 여기 있는 우리들은 서로 믿음과 음악을 주고받는 관계일 것이다.

그것을 뚜렷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렴풋이나마 모두가 느꼈으면 좋겠다.

***

우리는 2시간 정도 루네에 있었다.

모두 즐거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웠던 것은 에르네스트의 태도였다.

처음에 그는 별 관심 없는 것처럼 쌀쌀맞게 굴고,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로 기선 제압을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후엔 모든 것이 장난이었던 것처럼 상냥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피아노를 연주하는가 하면, 심지어 재미있는 것을 보여 주겠다며 재킷을 벗어 얼굴에 덮어쓰고는 보지 않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묘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루네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차 안. 난 에르네스트를 살짝 불렀다.

“저기, 에르네스트.”

“응.”

“즐거우셨나요?”

그런데 내 질문에 에르네스트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냥 그래.”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같아 보였는걸요?”

“잘못 본 거야.”

“음…….”

내가 아는 에르네스트는 정말 프라이드가 높은 연주자였고, 연주에 있어선 늘 진지하고 냉정했다. 그런 그가 즐겁지도 않은데 스스로 재킷을 뒤집어쓰진 않았을 것 같은데.

이제 와서 부끄러워진 걸까? 그렇다면 살짝 없던 일로 해 줄 수도 있었지만……. 난 이미 유령처럼 재킷을 덮은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까지 했었다.

약간 아쉽기도 하고, 장난을 치고 싶기도 해서 다시 물어보았다.

“아까 바짐이라는 아이에게 명함도 주셨잖아요?”

“아.”

실제로 에르네스트는 바짐이라는 이름의 남자아이의 연주를 봐주고는 전공을 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기도 했었다. 취미가 아닌 전공의 추천에 바짐이 약간 난색을 표하자 잘 생각해 보고 각오가 서면 연락하라며 명함도 건네주었던 것이다.

내가 배시시 웃자 그는 대뜸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게 내 거야? 에이전시 거잖아.”

“저도 알아요. 어쨌든 에이전시를 소개해 주시면서 꼭 피아노를 놓지 말아 달라고 하셨잖아요?”

내가 이쯤에서 그만둘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에르네스트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건…… 그 녀석이 실력도 있으면서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니까…….”

“실제로 어렵기도 하지요. 연주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우린 모두 잘 알잖아요.”

“쉽지 않지.”

제대로 된 지원 없이 전문 연주자의 길을 택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선택이 될 것이다. 에이전시의 지원을 받는다면 조금 나아지겠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을 터.

때문에 그 길은 누군가에게 추천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에르네스트는 그 모든 어려움들을 발로 뻥 차버리듯 시원하게 말했다.

“그런데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

높은 자신감과 약간의 오만함. 열다섯 살이 하기엔, 하지만 열다섯 살이기에 할 수 있는 말들. 그 모든 것이 내 눈엔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거 신경 쓰고 살면 하고 싶은 거 못 해.”

“후후후.”

에르네스트의 말을 들으면서 난 기쁨과 부러움 등을 느꼈다.

“전 에르네스트의 그런 말들이 좋아요.”

“어?”

“자신 있고 멋지게 그런 말…… 저는 못하거든요.”

아이들과 함께 음악을 공유한다는 것엔 큰 기쁨을 느꼈지만, 언제나 머리 한쪽에 도사리고 있는 미련과 굴레 혹은 운명, 그런 것들에 불안해하는 나는 영원히 에르네스트처럼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에르네스트는 쭉 이런 연주자였으면 좋겠다.

밝은 미소를 보내자 에르네스트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모로 틀며 입을 열었다.

“타티아나.”

“예.”

“너도 우리 에이전시에 들어올래?”

“예?”

소속사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일단 학교 졸업 후로 미뤄 두었다. 지금 내 소속은 중앙음악학교 외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래도 에르네스트와 같은 에이전시라니 구미가 당기기도 한다. 진담인가 싶어 가만히 바라보자 그가 갑자기 목을 바짝 세우며 말했다.

“아니지, 아니야. 음, 내가 미쳤나 보다. 이런 악덕 에이전시에 너까지 끌어들이려고 하고.”

“악덕……이요?”

“그러니까 그냥 못 들은 걸로 해.”

들어오라고 했다가, 안 된다고 했다가……. 그보다 에르네스트, 악덕이라면서 아까 바짐에게 소개해 주었던 건가요?

의아함 반 걱정 반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흐응…….”

아나스타샤가 작게 콧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그럼 다른 이야기 해 볼까.”

“무슨 이야기.”

불안감이 담긴 목소리로 에르네스트가 물었고, 아나스타샤는 웃으며 말했다.

“재킷을 뒤집어쓴 피아니스트에 대한 이야기.”

“……야.”

에르네스트가 정색했다. 그는 그 일을 정말 창피해하는 것 같았다.

그것을 귀신같이 캐치해 낸 아나스타샤는 작정하고 에르네스트를 놀려 먹을 심산이다. 난 그를 약간 도와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약간 진지하게 받아쳤다.

“사실 앙코르 무대에서 쓸 퍼포먼스로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요. 모차르트도 눈을 가리고 하프시코드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했었잖아요?”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그 후로도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 기량을 뽐내기 위해 그런 일들을 했다. 진지해야 할 본 프로그램이 아닌 앙코르 무대에서라면 청중들에게 팬 서비스 차원에서 굉장히 좋은 퍼포먼스이기도 했다.

에르네스트가 대꾸했다.

“무슨 말을 하는진 알겠는데……. 그거 너무 답답해.”

“안대를 준비하시면 되죠.”

사람은 재킷을 얼굴에 덮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그렇다면 안대를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내 제안에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저었다.

“안대보단 재킷이 나을걸. 멀리서 보기에도 한눈에 파격적으로 확 들어오는 건 재킷이니까. 준비할 필요도 없고. 프로그램 마치고 앙코르 무대 시작할 때 입고 있는 걸 벗으면 되잖아?

듣고 보니 그것도 그랬다. 안대보단 재킷이 나을 것 같았다.

에르네스트는 볼멘소리를 냈다.

“난 숨 막혀 죽으라는 거야?”

“앙코르곡이라 해 봐야 3분에서 5분 정도일 것 아냐? 숨 참으면 되잖아.”

“야, 네가 해 봐.”

“나도 할 수 있으면 하고 싶네요.”

아나스타샤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드레스라서 그렇게 할 수 없거든. 남자들은 부럽네.”

“숄로 하던가.”

“숄? 그게 얼마나 거추장스러운지 알아?”

“방금 전까지 나 숨 막히는 이야기 하고 있었던 거 맞지?”

그렇게 또 에르네스트와 아나스타샤는 숨을 참는 게 답답한지 어깨에 숄을 두르는 게 답답한지에 대해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아나스타샤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난 이러한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겨워서 싱긋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설전을 벌이던 에르네스트는 더 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듯 진저리치더니, 문득 물었다.

“말하다가 생각난 건데 말야.”

그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아나스타샤.”

“응?”

“너 사진 찍었지.”

“……!?”

아나스타샤가 눈에 띄게 당황해했다. 에르네스트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싸늘하게 손짓했다.

“지워라. 좋은 말 할 때.”

“안 찍었어.”

“거짓말하네.”

“진짜 안 했다니까? 왜 그래?”

“셔터 소리 들렸거든. 그 자리에서 내가 안 보는 사이 사진 찍을 사람이 있다면 그게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아나스타샤는 말이 없다. 어차피 에르네스트가 강제로 스마트폰을 뺏어 들지는 못 할 테고, 딱 잡아떼서 이 상황을 벗어날지, 아니면 그래 찍었는데 어쩔 거냐고 맞서 싸울지 고민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고민 자체가 이상한 것이었다.

“……? 뭐야, 이 분위기.”

그제야 에르네스트도 이해한 것 같다. 아나스타샤는 설령 본인이 사진을 찍었더라도 이렇게 당황할 사람이 아니다. 그녀가 당황해하는 것은 바로 내가 사진을 찍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분위기만으로 모든 것을 눈치챈 에르네스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날 본다.

“타티아나……?”

“…….”

식은땀이 흘렀다.

친구들끼리 재미있는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건 아무 문제도 아니지만, 에르네스트가 이렇게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보니 죄책감에 심장이 아플 정도였다.

그런 적 없다고 해야 할까? 난 거짓말에 정말 능숙한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코너에까지 몰린 상황에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결국 난 실토했다.

“지울……게요…….”

에르네스트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진짜야?”

“미안해요. 전 그저……. 이걸 왜 찍었을까요, 정말…….”

두서없이 중얼거리며 사과하다가 난 급히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에르네스트가 원하는 대로 일단 지워 줘야 할 것 같다. 그다음 다시 사과해야지.

“지금 지울게요.”

“아니. 그냥 둬.”

“……?”

“…….”

사진 지워 달라는 것 아니었나요?

이번엔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니 에르네스트가 헛기침을 하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뭐 딱히……. 타티아나 넌 SNS 같은 것도 안 하니까 어디 올리지도 않을 거고……. 얼굴도 안 보일 테니 손해 볼 일도 없고. 안 그래?”

“……용서해 주시는 건가요?”

“상관없어.”

그는 대인배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약간 편해진다. 하지만 곧 다시 죄책감이 물밀듯이 옥죄어 온다.

왜냐하면 내가 에르네스트에게 잘못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난 아직도 그의 허락 없이 전화상으로 연주했던 리스트 스페셜 연주 녹음 파일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

하지만 난 더 가지고 싶었다. 더 많이.

순간 이때다 싶어 난 넌지시 제안했다.

“아……. 그, 저희 셋만 기념사진 찍지 않으실래요.”

“기념사진?”

“예. 루네에서 단체로 찍긴 했지만, 지금 저희끼리요.”

이 타이밍에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 우리 세 명을 사진으로 영원히 남기고 싶었다. 평소 내 사진을 찍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이 아이들과 함께라면 언제나 남기고 싶다.

에르네스트와 아나스타샤는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러지 뭐.”

“저번에 디저트 뷔페에서 찍었던 거 생각나네.”

“윽.”

에르네스트가 신음을 흘리며 기억을 떠올리는 듯했다. 난 그때가 생각나서 웃어버렸다.

그렇게 우리 세 명은 뒷좌석에 조금 더 가까이 붙어 앉았고, 내가 대표로 스마트폰을 멀찍이 들었다. 하지만 팔이 짧은 건지 제대로 구도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조수석의 빅토르에게 부탁했다.

“저기, 빅토르. 다 같이 찍어 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아가씨.”

우리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었을 빅토르가 흔쾌히 응해 주었다.

스마트폰을 넘겨주자 그는 운전 중인 소로킨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너무 과장된 움직임 없이 뒤로 돌아 우리들에게 렌즈를 향했다.

난 아나스타샤의 팔을 감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나스타샤 역시 확실하게 날 자신의 쪽으로 당긴다. 저편의 에르네스트도 더 밀착한다.

“보기 좋군요.”

우리 세 명의 사진을 찍은 빅토르가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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