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5화
론도. 프랑스어로 빙글빙글 돈다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본래 2박자의 춤곡에서 시작되어 18세기 무렵부터 클래식 음악의 한 형식으로 사용되었다.
클래식 음악에 와서 사용되는 론도 형식은 주제부와 삽입부를 번갈아 드러내며 되풀이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알기 쉬운 예술은 바흐와 하이든 등의 소나타, 그리고 빈 고전파의 협주곡의 마지막 악장에서 자주 드러난다.
고전파의 마지막 거인답게 훔멜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역시 마지막 악장은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론도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2악장은 이 론도를 위한 서주였다.
“…….”
작은 배를 타고 서서히 다가와선, 수면을 딛고 서서 노래하며 춤을 추다가 한 발로 빙글 돌며 무릎을 꿇고 앉았던 타티아나는 스르륵 일어나며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주 풍부한 감정으로, 몸이 가기 전에 손이 향하고, 뒤따라 몸과 다리가 향하는 우아한 춤이었다. 그 모든 것은 피아노로 향했고, 음악으로 화했다.
오케스트라는 타티아나가 고적하지 않도록 달빛처럼 무대를 환하게 밝힌다.
너무 맑고 투명한 음악은 달이 비치는 호수와도 같다. 그 위에서 타티아나는 그 달이 일그러지지도 않을 정도로 가볍고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달빛과 하나가 된 것처럼 금빛 드레스를 입은 소녀는 흐드러졌다. 그것은 눈이 아닌 귀를 타고 청중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나탈리아는 타티아나와 오케스트라가 그리는 환상적인 음악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예술성을 느낀다.
쉴 새 없이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아르페지오와 이 모든 음악의 근간과 기준을 이루는 다성부 합창. 타티아나는 피아노 한 대로 모든 것을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귀로 들리는 음악임에도 전신을 파고들어 오감을 자극하며 가슴 깊숙한 곳에 있는 무언가를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타티아나는 또다시 빙글 돌다가, 빠르게 달음박질친다. 그 절묘한 완급 조절이 거짓말 같다.
나탈리아는 약한 현기증을 느끼며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타티아나의 연주는 가볍고 경쾌하면서도 그 존재감이 분명했다. 크고 작음은 무의미했다. 가느다랗고 애틋한 흥얼거림조차 눈앞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나탈리아는 팔 위로 돋은 소름을 쓸어내리며 집중했다.
주제는 한 번 더 반복되며 사랑스럽게 빛났다.
지휘자 스타니슬라프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지휘봉을 톡 털었다. 바이올린을 위시한 현악기들의 합주가 홀 천장에 닿았다가 내리쬐는 것처럼 이어지고 플루트와 트럼펫, 바순이 마치 그 주변을 떠다니는 구름처럼 머물렀다.
오케스트라는 보다 화려하고 풍성한 달빛으로 타티아나에게 쏟아져 내렸다.
타티아나의 피아노는 보다 돋보이며 주인공으로서 피아노 협주곡에서 피아노가 보일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보인다.
‘맙소사.’
타티아나의 손은 때론 바람을, 때론 강물을, 때론 춤사위를 그리고 있었다. 하나씩 제시되었던 환상적이고 입체적인 이미지들은 합창, 아리아, 구슬픈 부름으로 목소리를 더한다.
타티아나는 음악을 양손에 쥔 채 자유자재로 그녀만의 소리를 구사했다. 모든 것들은 종국엔 하나로 합쳐져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뻗어 나갔다.
음악에 빠져 있다가 간신히 현실을 자각하면, 타티아나는 쉼 없이 피아노 건반을 터치하고 있었다. 어찌나 빠른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였지만, 힘겹게 어깨를 비틀거나 인상을 쓰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타티아나는 그 어떤 복잡한 패시지를 마주하더라도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눈을 살짝 내리깐 채 연주에 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우아함이 드레스를 입고 존재하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고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음악에서 느껴지는 고아함이 그 태도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그녀는 빠르게 순식간에 수십 개의 음들이 발산될 때도 한 번도 이성을 잃거나 화려함 그 자체에 매몰되는 일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박자를 잃거나 음을 놓치는 일 없이, 반듯한 정결함과 청아함으로 타티아나의 피아노는 그 가치를 드러냈다.
나탈리아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직접 듣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표현력과 테크닉이었다.
단순히 아고긱agogic과 뒤나믹dynamik으로 만들어 내는 효과처럼 들리진 않았다. 피아니스트로서 타티아나가 갖춘 모종의 능력은 그저 피아노의 건반을 눌러서 소리를 만드는 수준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연주에 심취해 있자니, 마지막으로 오케스트라와 함께 피아노가 대단원을 장식하듯 화려하게 춤을 추었다. 지휘봉이 흔들리며 무대가 부풀려지는 것처럼 웅장해지고, 금빛 요정은 살며시 손을 뻗는다.
그 환상적인 춤이 끝났다.
“……!”
도피오 모비멘토doppio movimento. 두배의 빠르기로.
넋을 놓고 빠져 있던 나탈리아는 화들짝 놀라며 무대 위로 온 신경을 집중했다.
거기엔 발레리나가 아닌 피아니스트 타티아나가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왼손이 거의 기계처럼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도약하고, 오른손은 마치 휘두르는 것처럼 건반 위에서 날뛴다. 하지만 그 모든 동작엔 절도가 있었고 하나의 음도 뭉개지지 않았다. 타티아나가 구사해 내는 음악적인 언어는 두루뭉술하거나 애매한 곳이 없었다.
번쩍이는 번개처럼, 금빛 드레스의 타티아나는 섬광이 되어 건반 위로 작렬했다. 더없이 명확하고 깔끔한 아르페지오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휘몰아치다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깜빡거리고, 주르륵 내려온다.
쇼팽의 연습곡을 연상케 하는 이 대목에선 이전까지의 우아함이 아닌 약간 광기 어린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궁동처럼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선율의 파도가 울렁거리며 서서히 차오른다.
그것은 순식간에 허리춤에서 목까지 차오르다가, 오케스트라의 클라이맥스로 폭발하고 다시 밀려 나오면서 빠진다.
“…….”
타티아나는 오케스트라에 이어 이 곡의 마무리를 짓겠다는 듯 건반을 타고 내려온다. 거기에 청량한 바람 소리처럼 들리는 플루트가 곁들여져 멋진 향신료가 되었다.
피아노가 다시 화려하게 이 음악의 끝으로 향하고, 타티아나는 엄청난 속도의 양손 아르페지오로 주제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회상하듯 빠르게 되살렸다.
지휘자 스타니슬라프는 보다 강렬하게 지휘봉을 흔들고, 다른 한 손을 휘저으면서 모든 파트들을 지휘했다.
오케스트라는 피아노를 서서히 뒤따르다가 장엄하게 커져 갔다.
다시 한 번 피날레로 치달으며 모두의 흥분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음악은, 거대한 대서사시의 방점을 찍듯 눈부시게 마무리되었다.
타티아나는 깊게 건반을 짚은 채 마지막 음까지 이어지도록 했고,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천천히 활을 그어 내렸다.
그 활의 끝이 현을 마지막으로 울렸을 때,
오케스트라와 타티아나 모두 악기에서 손을 떼었다.
지휘봉이 미처 완전히 바닥을 향하기도 전에, 응축되어 있던 1700명의 성원이 한 번에 폭발하듯 쏟아졌다.
“브라보!”
“브라비!”
모든 청중들이 일어서서 기립 박수를 쳤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내뱉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나탈리아도 격렬하게 박수를 보냈다.
끝없이 쏟아지는 박수 아래에서 타티아나는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각각 악장, 지휘자와 악수를 나누었다. 이 걸작을 성공적으로 연주한 것에 대한 인사가 오간다.
그렇게 악수를 마친 타티아나는 이어서 객석을 돌아보았다. 그것만으로도 환호성이 곱절은 더 커졌다.
누군가 무대로 뛰어들지는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거의 광적인 함성 속에서 타티아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깔끔한 인사로 모두의 성원에 화답하는 모습이 나탈리아에게 아주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멋진 인사 후 타티아나가 지휘자와 함께 무대 밖으로 나갔다가, 연이어지는 커튼콜에 다시 무대로 올라와 인사했다.
이제 1부가 끝났을 뿐이라 앙코르 곡을 연주할 순 없겠지만, 청중들은 딱히 앙코르를 바라지 않더라도 몇 번이고 커튼콜로 타티아나를 무대 위로 불러냈다.
연주자에게 보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찬사가 타티아나에게로 향했다. 커튼콜에 답사를 보내는 것은 촬영도 가능했기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였다. 나탈리아 역시 무대 위에 선 타티아나를 카메라 속에 담았다.
그렇게 네 번의 커튼콜이 끝나고 나서야 지휘자가 타티아나와 함께 나갔고, 다음으로 악장과 다른 단원들이 박수를 받으며 퇴장했다.
무대에 수십 개의 의자들과 피아노만 남고 나서야 함성이 줄어들고, 여기저기에서 감탄사와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생겨났다. 이 기막힌 연주회에 대해 저마다 감상을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누구라도 한 마디씩은 할 말이 있다는 듯 목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홀에 안내 방송이 있었다. 사회자가 1부가 끝났으니 15분간의 인터미션이 있겠다고 안내했다. 그제야 청중들은 샴페인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가거나, 그대로 객석에 앉은 채 방금 전 있었던 곡을 되짚으며 여운에 잠겼다.
나탈리아는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있는 쪽이었다.
주변은 엄청나게 시끄러웠지만 아직도 타티아나와 오케스트라가 보여 주었던 피아노 협주곡의 피날레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었다.
음악 평론가로서 그녀는 이 무대를 어떻게 평론해야 할지 고민했다. 일반적인 청중들처럼 그저 훌륭했다는 감상만으로 이 무대를 논할 순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달리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쉽게 접할 수 없는 귀한 레퍼토리, 환상적이고 멋진 해석, 지휘자에게서 비롯된 확고한 통일성, 기적 같은 테크닉과 표현력을 지닌 피아니스트까지. 특히 15세의 학생인 타티아나가 보여 준 연주자로서의 태도와 카리스마는 반할 정도로 멋졌다.
곧 나탈리아는 무의미한 단어를 몇 개 끼워 넣어서 이 음악을 시시콜콜하게 풀어 헤치는 것이 불가능하고 무의미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음악이 지닌 힘과 예술성이 확실하게 드러난 완벽한 무대였다.
***
무대를 마치고 연주자 대기실로 돌아온 나는 온몸의 피가 들끓는 듯한 성취감과 동시에 급격한 피로를 느꼈다.
“…….”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근처의 의자에 앉았다. 연주에 집중하고 있을 땐 전혀 느끼지 못했던 피로가 전신에 차오른다.
극도의 집중력을 쏟아부으면서 되도록 리허설에서 했었던 것과 똑같이, 그대로 모두를 이끌면서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게 해 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어쩌면 훨씬 더 잘된 것 같았다.
음악은 꽤나 만족스럽게 만들어졌다. 청중들께서도 굉장히 만족해 주셨는지 아직도 박수 소리가 들렸다.
정말 다행이었다. 난 옅게 웃으며 전신에 힘을 풀었다.
“…….”
힘들고 목도 말라서 물이라도 마시려고 앞의 탁자에 놓인 생수병을 잡았다. 그리고 난 병뚜껑을 잡고 한 번 비틀었다가 바로 놓았다. 힘도 없고 손아귀가 너무 아팠다.
피아노 건반은 온몸의 힘을 실어서 수백 번이고 때려도 멀쩡한 손이지만, 그건 모두 기술이 뒷받침되어 주는 덕분이었다. 내 손은 아무 기술도 없이 힘만 놓고 보면 정말 평균 이하였다.
포기하고 다시 생수병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는데,
“……아.”
커다란 그림자가 다가오더니 생수병을 낚아채선 순식간에 우두둑 따서 내 쪽으로 내밀었다.
“마시게나.”
“아……. 감사합니다. 스타니슬라프.”
스타니슬라프는 표정 변화가 그리 많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약간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난 컵을 준비할 새도 없이 그냥 병째로 물을 한 모금 꼴깍거린 후 내려놓았다. 그리고 스타니슬라프에게 말했다.
“좋은 무대였어요. 지휘자님.”
“나야말로. 좋은 연주였다네. 타티아나.”
스타니슬라프가 내 옆에 앉으며 눈웃음을 지었다.
“앞으로도 우리 오케스트라의 주된 레퍼토리로 삼고 싶을 정도로 아주 훌륭했네. 자네가 잘 해 준 덕분이겠지만.”
이후에도 레퍼토리로 삼고 싶다는 것은 스타니슬라프 역시 이 연주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는 표현이었다.
난 첫 피아노 협주곡 협연을 너무나 성공적으로 끝마친 것에 대해 안도했고, 기뻤다.
혼자서 하는 독주곡이 아니라 여럿이서 하는 협주곡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늘 나를 불안하게 만들곤 했었는데, 이제 그 강박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후, 박수 소리와 함께 다른 단원들도 모두 들어왔다.
가장 앞서 있던 크리스티나가 바이올린을 옆에 대충 내려놓고는 내 손을 잡고 말 그대로 방방 뛰었다.
“타티아나! 정말 멋졌어!”
“크리스티나도요. 너무 완벽했어요. 다른 분들도요!”
너무나 기뻐하는 크리스티나에게 동화되어 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다른 단원들이 내 쪽을 바라보며 한마디씩 칭찬을 보냈다.
“정말 무대에서 전혀 떨지 않는군요, 타티아나. 놀랐습니다.”
“1부로선 최고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충분히 느끼고 있었지만, 그 실력이 어디 가진 않는군요?”
“곡 시작 전에 있었던 일도 해결해 버리고 말입니다.”
한 명이 연주회 시작 전에 벨소리가 울렸던 것을 내가 카피해서 연주했던 것을 언급했다.
흥분한 와중에도 점잖게 한 마디씩 칭찬을 해주던 단원들은 그 일이 정말 놀라웠었는지 갑자기 시끌벅적하게 이야기했다.
“맞아. 그거 정말 놀랐죠.”
“난 깜짝 놀랐다니까? 스타니슬라프가 지시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난 그렇게 대응해 본 것 처음인 것 같은데.”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는군요. 타티아나.”
“원래 그렇게 위기에 강합니까?”
딱히 그런 건 아니었다.
시시각각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해결책을 빠르게 떠올리고 행동했을 뿐이다.
난 으스대지 않고 말했다.
“그저 전 연주자로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할 뿐이에요.”
“멋진 연주자의 귀감이로군요. 타티아나.”
“아뇨. 여러분도 곧바로 도와주셨잖아요? 감사드려요.”
“하하하! 저흰 따라갔을 뿐이죠. 그 분위기를 살려 낸 건 전부 타티아나 덕분입니다.”
놀랍다는 칭찬이 이어졌지만 난 그저 가볍게 받았다.
사실은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홀에서 벨소리가 울리게 하는 것은 중대한 에티켓 위반이었고, 만약 곡을 연주하던 중에 벨소리가 울려서 방해받았다면 난 그녀를 배려심으로 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 곡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벨소리가 울려도 해결 가능한 타이밍이다. 그뿐이었다.
난 연주자로서 즉각 움직인 내 대응에 특별한 의미를 둘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적어도 그 이름 모를 여성분이 앞으로도 클래식 연주회를 두려워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건 정말 다행이었다.
어쨌건 1부 시작 직전의 깜짝 무대도 좋았고, 본무대는 말 할 것도 없이 흡족했다.
나와 단원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서로 감사와 칭찬을 보내며 웃었다.
스타니슬라프가 그런 우리를 보며 말했다.
“자, 1부는 모두들 수고했다. 잠시 쉬면서 다음 무대 준비를 하도록 하지.”
“예. 지휘자님.”
“커피는 괜찮지만 샴페인이나 담배는 금지다.”
“저희가 어린애입니까?”
“다네르. 저기 진짜 성실한 친구 앞에서 망신 한 번 당하고 싶나?”
다네르는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아마 모종의 전적이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난 순간 스타니슬라프가 날 어떻게 불렀는지 깨달았다.
“……스타니슬라프?”
“음.”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이며 이 근엄한 지휘자의 이름을 부르자 스타니슬라프가 헛기침을 했다. 순간 말실수를 했다는 듯 그가 말했다.
“성실한 친구라고 한 건 미안하네. 얕보는 뜻은 아니었네.”
빠른 사과였지만 난 스타니슬라프가 왜 사과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성실하다는 건 일단 칭찬이었다.
난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알아요. 저번에 에르네스트에겐 건방진 친구라고 하셨었죠?”
“……그런 것도 기억하나?”
“물론이죠.”
일전에 스타니슬라프는 수년 전 협연을 했었던 에르네스트를 건방진 친구라고 부르면서도 좋게 기억해 주고 있었다. 난 그것을 꽤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때문에 늘 나를 이름으로 부르던 스타니슬라프가 지금 날 친구라고 불러 주는 것은 더없이 큰 친애와 인정의 표시이기도 했다.
나이가 내 세 배도 넘는 음악가 선배에게 그런 말을 듣자니 기분이 조금 묘하기도 하지만,
“기뻐요. 스타니슬라프.”
“험.”
더없이 기쁜 건 사실이었다.
스타니슬라프는 행복하게 웃는 날 보더니 연달아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그 얼굴엔 유쾌함이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