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9화
에르네스트는 멀찌감치서 다리를 꼰 채 무릎 위에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괴었다. 머리를 고정하고 힘을 풀었다.
음악은 보다 손쉽게 그를 쥐락펴락했다. 그는 유연하게 그 흐름에 온몸을 맡겼다.
‘조성도 마이너, 구성도 마이너. 여러모로 마이너한 작품이야.’
피아노 퀸텟은 19세기 전후로 나타나기 시작한 구성으로 현악기로만 구성된 실내악단과 확연히 다른 느낌을 내기 때문에 특정한 수요를 가지긴 했어도 크게 유행한 구성은 아니었다.
그 많은 곡을 작곡한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피아노 퀸텟은 한 곡씩밖에 쓰지 않았다.
그러나 피아노 퀸텟 중에서도 크게 호평을 받은 곡들은 분명 많았다. 브람스나 드보르작, 슈베르트, 슈만 등 유명 작곡가들의 피아노 퀸텟은 언제 어떤 무대에 올려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에 좋았다.
그런 길이 분명 있었을 텐데…… 아나스타샤가 직접 고른 곡은 그라나도스의 피아노 퀸텟이었다.
‘길이 때문이겠지?’
여러 이유를 따져 볼 수 있겠지만 당장 에르네스트가 떠올릴 수 있는 건 곡 길이의 문제였다.
브람스의 퀸텟을 본다면 그 길이가 총 40분에 달한다. 그쯤 되면 협주곡에 가깝다.
지금 이 자리는 연주회 미팅이자 리허설 자리이지만 간이 평가 자리이기도 했다. 40분짜리의 곡을 전부 연주하기엔 부담이 크다. 1악장만 연주하는 것 역시 평가에 유리하리라 볼 수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15분 정도로 적당히 끊어지는 곡을 고른 듯하다. 에르네스트는 연주 길이를 생각한 건 잘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곡으로 평가를 받으려면 정말 잘 해야 할걸.’
1867년 스페인 출신의 엔리케 그라나도스는 생전에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이름을 날리며 부와 명예를 동시에 손에 쥐었다.
피아니스트들에게 있어서도 그라나도스의 피아노 모음곡 고예스카goyesca는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다루어진다.
하지만 그라나도스가 44살이 되던 해 작곡한 고예스카는 그만한 작곡가로서의 연륜과 실력이 가미되어 완성된 마스터피스였고, 지금 연주되는 피아노 퀸텟은 20대에 쓴 작품이었다.
겹쳐진 두 개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에서 엮어진 20대의 논리정연하지 못한 생동감.
이제 에르네스트는 작곡가로서 그러한 냄새를 예민하게 맡을 수 있었다.
타티아나가 으레 말하듯 완성 위에 완성을 덧칠해 나가는 음악가의 삶에서 이 피아노 퀸텟은 젊은 그라나도스의 자랑스러운 완성품이라 할 수 있었지만, 곡을 쓰기 바로 몇 년 전까지 머물렀던 프랑스 특유의 음악성과 스페인 민족음악의 전문가인 펠리페 페드렐의 영향이 뒤섞여 있었다.
그 때문인지 이 피아노 퀸텟은 그라나도스 생전에 출판하는 일이 없었다. 다른 연주자들의 손에 연주되는 일 또한 없었다. 굉장히 오랜 시간동안 시대로부터 잊힌 곡으로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
그러나 페드렐과 알베니스를 거쳐 피어난 스페인 국민악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그라나도스의 천재적 면모는 이 곡에도 충분히 잠재되어 있었고, 미래에서 과거를 들여다보는 뛰어난 연주자들은 그 포텐셜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안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곡을 되살려 음악의 신들 앞에 제물로 바친다.
퀸텟이 연주하는 음악엔 그러한 비장함이 가미되어 있었다.
‘해석 괜찮네.’
레퍼런스가 굉장히 부족한 곡을 연주하고자 할 땐 결국 연주자의 센스와 연구가 굉장히 중요해진다.
혼자서 할 때에도 곡 전체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음악의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잦은데, 하물며 다섯 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 음악을 두고 정확한 합주를 하기 위해선 정말 면밀한 합의와 연습이 있어야 했다.
아나스타샤와 네 명의 연주자들은 그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최고의 합주를 선보였다.
“…….”
복잡한 폴리리듬으로 아나스타샤가 곡 전반의 무게를 만들어 내고 첼로가 함께 움직인다.
그 위에서 바이올린 두 대와 비올라가 스패니쉬한 풍취를 담은 정열적인 주제를 마음껏 쏟아냈다.
붉은 향기. 귀로도 들리고 눈으로도 보일 듯한 그 향기는 잠깐 주변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후각이라면 순식간에 마비되어 버릴 정도로 강렬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전혀 익숙해지거나 옅어질 기미 없이 더더욱 진하게 주변을 옥죄어 온다.
‘이건…….’
에르네스트는 온몸이 떨리게 하는 그 폭발적인 음악을 받아 내어 순수하게 즐기면서도 머리 한편으로는 하나하나 세심하게 분석했다.
선율은 몇 갈래로 나뉘어서 저마다 연습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모든 곳에 소리를 흩뿌리고는 다시 합쳐져서 투티. 동시에 노래한다.
그 선두엔 분명 제1 바이올린인 게오르기를 위시로 한 바이올린들이 위치하고 있었다.
게오르기와 다리아 두 사람의 현란한 연주는 스페인의 색을 사방에 칠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리고 뒤따르는 비올리스트 카엘.
비올라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사이에서 마치 불필요한 존재처럼 농담거리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연주자의 역량에 따라 정말로 차이가 많이 나는 고난이도의 악기이다.
그 음역대에 비해 작은 사이즈 때문에 제대로 소리를 낼 줄 모른다면 다른 악기들에 완전히 파묻혀 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설프게 활을 긋는 비올리스트는 음악에 아무런 보탬이 못 된다.
그러나 카엘의 연주는 순식간에 귀에 다다라 꽂힐 정도로 돋보였다. 특별한 솔로 부분을 받은 것도 아닌데, 비올라란 이런 악기였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 세 현악기 주자들의 연주를 마지막으로 거대하게 감싸듯 첼리스트 솔렌이 차분하게 선율을 추가하여 완벽성을 기했다.
마지막으로, 이 현악기 집단에 끼어든 이질적인 악기. 피아노를 다루는 아나스타샤는 천연덕스럽게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선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바이올린들의 선율을 자르지도 않고, 비올라의 음색을 묻어 버리지도 않으며 첼로의 웅장함을 퇴색시키지도 않는다.
그저 적절한 리듬과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며 피아노만이 가능한 광대한 음역대를 모두 사용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장점을 십분 활용한 실력발휘였다.
네 명의 연주자들을 앞세우고도 아나스타샤는 뒤에서 그들을 거느린 여왕처럼 위세를 보였다.
‘이건 아나스타샤이기에 가능한 연주겠지.’
스페인어라곤 인사말인 ‘올라’ 한 마디밖에 못 하는 그녀는 되레 밖에서 보는 스페인다운 느낌을 화끈하게 이끌어내려 하고 있었다.
조금은 도전적이고 독선적이다. 하지만 여러 세상을 봐 온 그녀의 해석은 그만한 합리와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따르게 하고 싶을 정도로 멋진 리더쉽이 거기에 존재했다.
“…….”
다섯 연주자의 화려한 첫 주제가 1분 정도에 걸쳐 소개되고, 다음으로 피아니시모의 아련한 바이올린 선율로 음악이 이어진다.
변화무쌍한 요정의 모습을 그리는 듯한 음형. 피아노가 그 곁을 지키며 생동감을 더한다.
나뭇잎이 휘몰아치고 잔가지가 흔들렸다. 아나스타샤는 요정에게 열매를 권했다.
미심쩍은 눈빛을 하던 요정은 그 열매를 한 입 베어 물고는 감사를 표하며 다섯 연주자들의 음악에 합류했다.
그 빛이 막 사그라들기도 전에 다시 주제는 첫 번째로 돌아가서 반복되었다. 같은 형태이지만 보다 웅장한 감동을 이끌고 온다.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는데, 게오르기는 보란 듯이 자신이 가진 실력을 더더욱 높게 이끌어냈다.
그 소리에 맞추어 당연히 다른 주자들의 소리 역시 커졌고, 그 누구도 버거워하거나 실수하지 않았다. 모두가 약속한대로의 음악을 완벽하게 연주해 냈다.
짧지만 인상적으로 표현된 1악장은 마치 뮤지컬의 마지막처럼 막을 내리며 정리되었다.
그리고 미처 쉴 틈도 없이 바로 2악장이 이어졌다.
“…….”
수면 위에 무언가를 던져 넣듯 피아노 소리가 둥근 파문을 그린다.
게오르기와 다른 현악기 주자들은 빠르게 악기에 약음기를 세팅하고는 연주에 임했다. 가느다랗게 따라붙는 바이올린의 선율은 수면 위에 또 다른 일렁임을 더한다.
노을이 지는 호수를 구경하는 기분으로 이 음악에 함께한다. 스페인의 노을은 따사롭게 비춰 오며 마을 곳곳에 스며들었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저마다 길게 늘어나며 서로 이어지고, 식사를 준비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소리들이 웃음으로 변한다.
정말 뚜렷한 음형과 주제를 지닌 악장이라 듣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진 못했다. 작곡가로서 많은 음악을 들어온 에르네스트는 그라나도스의 음악적 세계관 역시 쉽게 이해했다.
다만 피아니스트로서, 이렇게 이해하기 쉽게 음악을 표현하려면 얼마나 많은 연구가 집약되었을지 궁금해졌다.
합주란 늘 쉽지 않다. 그것도 이렇게 민족적 색채감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곡이라면 더더욱.
산이나 바다에 대해 느끼는 해석과 나라나 문화에 대한 해석은 각개 연주자간의 괴리가 보다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게오르기와 아나스타샤가 주도하는 이 일련의 해석은 특별히 튀지 않게 보편적이면서도 인상적이었다.
훌륭한 실력으로 균형을 이루어 한 지점을 향해 간다는 느낌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
에르네스트는 턱을 괸 손으로 입을 가리며 아나스타샤를 바라보았다.
의식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종종 그는 목에 닿은 칼끝처럼 예리하게 다듬어진 무언가가 아나스타샤의 시선에 담겨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그에 대한 어떠한 도전의식에 가까운 것이었다.
어떤 이유로 생겨난 감정인진 모르겠지만 에르네스트는 그 부분을 당장 곧이곧대로 받는 것은 모두에게 안 좋은 일이 되리라 직감했다.
때문에 모르쇠로 회피하고, 당장은 같은 위치에 서서 한 무대를 경험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경험이 아닌 선험적 판단의 일환이었다.
때문에 몰래 그녀를 추천한 것이다. 물론 낌새를 느낀 예민한 그녀에게 의심을 사기도 하고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지금 이 연주를 듣고 있자면 그 결정이 적절했음이 확실했다.
위치와 역할을 부여받은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완성된 현악기 팀과 함께하며 음악을 이루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거기엔 물론 에르네스트와 타티아나의 듀엣과 대결을 하여 원하는 순서를 가져오겠단 이유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을 다 떠나서 아나스타샤는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고 있었다.
숨길 수 없는 음악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그 풍부한 감정에 에르네스트는 안도감을 느꼈다.
조금 더 느긋한 기분으로 그는 천천히 저무는 저녁노을을 감상했다. 빛은 점차 약해지면서 점점 더 붉게 세상을 물들이다가, 곧 어두워지며 2악장이 사그라졌다.
그 잔잔한 어둠 속에서 현악기 주자들이 약음기를 떼 냈고, 다시 바이올린을 들었다.
활을 긋자 현과 활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며 불꽃이 생겨난다.
‘어둠, 모닥불.’
몇몇 단어가 음악에 실려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2악장이 해가 지는 스페인 마을의 풍경을 그려 냈다면 3악장은 저녁의 파티장이었다.
지펴 놓은 불꽃은 낮보다 밤에 훨씬 잘 보이며, 그 일렁임은 곧 사람을 미치게 한다. 밝은 빛과 불꽃을 따르는 동물적인 부분은 그 누구에게나 잠들어 있다. 퀸텟은 그것을 서서히 일깨웠다.
정돈되지 않은 불꽃으로부터 흔들리는 그림자와 붉은 빛으로 흔들리는 옷자락들.
다채로운 느낌은 아니나 화려하고, 역동적이지만 깊은 안락함이 그곳에 있었다.
아마 수백 년 전부터 이곳의 사람들은 이 불꽃 곁에서 춤을 추었으리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숨을 쉬어 온 음악이었다.
그 음악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이 연습실에서 단 다섯 명의 연주자들의 손으로 연주되고 있었다.
에르네스트는 손끝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다시 반복되는 주제를 묵묵히 받아들였다.
미친 듯이 달려 나가던 3악장은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잠시 꺼져 가는가 싶더니, 곧 세차게 불타오르며 주변을 장식하고는 마무리되었다.
세 악장 중 가장 짧지만 그만큼 강렬한 마지막 피날레였다.
“브라바, 브라바.”
동시에 박수가 터져 나오고 칭찬 세례가 이어졌다. 연주를 마친 아나스타샤와 다른 연주자들은 악기를 놓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굉장한 결과물이었다.
같은 연주자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아낌없이 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잠시 후 이 음악을 상대해야 하는 경쟁자로서 진지해지기 위해 참기로 했다.
에르네스트는 딱 세 번 박수를 치고 손을 내렸다. 이 손으로 내어야 하는 소리는 이런 박수 소리가 아니라 다른 소리라는 뜻으로.
그렇게 가만히 앉아 지켜보는 에르네스트를 보며 아나스타샤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환한 미소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