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0화
음악이 멎고 나서도 좀처럼 감동이 가시질 않는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나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야만 했고, 그것은 전부 박수로 나왔다.
아나스타샤와 스푸마토 콰르텟이 함께한 피아노 퀸텟은 내가 지금까지 봐 온 퀸텟 중 제일 좋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퀸텟 연주 자체를 그리 못 본 탓도 있었지만, 이런 연주라면 정말 자주 듣고 싶었다.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박수에 화답하여 퀸텟 연주자들이 일어나 이쪽으로 묵례를 보냈다. 박수 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나도 거기에 살짝 소리를 보태면서 옆을 돌아보았다.
분명 이 연주는 에르네스트도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을 터. 그 역시 박수를 치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내 예상과 달리 에르네스트는 똑바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에르네스트?”
“응?”
혼자 생각이 많은 것 같은 그를 살짝 부르자 그가 이쪽을 바라본다.
아까 처음 연주가 시작될 때만 해도 다리를 꼬고 있더니 지금 제대로 앉은 걸 보면 분명 집중해서 들었던 것 같긴 한데…… 지금 모습만 봐선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난 혹시나 싶어서 작게 소곤거렸다.
“별로였나요? 방금.”
에르네스트는 무슨 소리냐는 듯 대답했다.
“아니. 대단하던데.”
그는 충분히 음악에 만족하고 또 인정하고 있었다. 다만, 남은 여운과 생각 등이 있는 듯 보였다.
무뚝뚝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열렬하게 박수와 찬사를 보내며 감정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성격도 아닌 에르네스트는 진지한 경의만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성격을 이해하는 나는 옅게 웃으며 그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찬사에 몇 번이나 인사로 답한 아나스타샤가 입을 열어 말했다.
“감사합니다.”
큰 홀과 달리 작은 연습실에선 목소리로 감사를 전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녀의 진심 어린 감사인사에 다시 한번 박수 소리가 커졌다가, 이윽고 잦아들었다.
한 무대가 완벽히 끝나자 주변이 점차 부산해졌다.
이 연주회의 관계자들은 연주를 평가하고 순서를 어떻게 세울지 상의를 해야 한다.
물론 그만한 근거 또한 있어야만 하고.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감상과 의견을 공유하느라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살짝 귀를 기울여 보니 역시 아나스타샤와 게오르기의 언급이 제일 많은 듯했다.
두 사람은 각각 피아노와 바이올린에서 실력을 확실하게 증명해 보였다. 그건 달리 이견이랄 게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분명했다.
많은 사람들과 짧은 인사를 주고받으며 아나스타샤가 내 앞에 섰다.
어떤 말로 칭찬해 주어야 할까 생각하는데, 아나스타샤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그라나도스의 곡일 줄은 몰랐지?”
아나스타샤가 퀸텟을 준비하고 있다는 건 당연히 알았지만, 그녀가 우리 앞에서 피아노 파트만 따로 연습한 적은 없어서 어떤 곡인지는 오늘 처음 들어 보았다.
“예, 깜짝 놀랐어요.”
“꼭 숨기려던 건 아니었는데 연습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더라고.”
약간 미안하다는 듯 말하고 있지만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연습이 아니라 제대로 완성된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것을 알기에 나 역시 그녀에게 이전까지 무슨 곡을 연습하고 있느냐고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친한 친구일수록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기에 긴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칭찬마저 아낄 이유는 없었다.
“음, 어땠니?”
아나스타샤가 넌지시 물어오자마자 난 덥석 받아쥐고는 열렬하게 칭찬했다.
“최고였죠! 그 곡을 실황으로 듣는 건 처음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곡인 줄은 미처 몰랐어요. 아나스타샤가 처음 가르쳐 주었네요.”
“뭐, 다른 사람들이 워낙에 잘해서.”
혼자 한 연주는 아니지만, 난 저 자리에 아나스타샤 아닌 다른 연주자가 들어가는 건 상상을 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그녀가 그려낸 스페인의 향수는 선명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뒤이어 따라온 게오르기도 아나스타샤의 옆에 서며 말했다.
“저희도 이런 만족스러운 리허설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아나스타샤.”
“아, 게오르기.”
두 사람의 눈엔 성공적인 연주를 마치고 난 연주자들 사이에 오가는 신뢰의 눈빛이 깃들어 있었다.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좋은 연주를 해냈으니 정말 서로가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지켜보는 나도 그러한데 연주 당사자들은 더더욱 그러하리라.
그 점을 이해하면서 난 다시 작게 박수를 짝짝 쳤다.
“훌륭했어요.”
“하하, 고맙습니다.”
게오르기는 멋스럽게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거기엔 방금 보인 것에 대한 자신감과 더불어 일종의 경의, 그리고 시험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었다.
다시 허리를 든 그는 이전과는 분명 다른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물었다.
“이 정도 연주했으면 사실상 이긴 게 아닌가 싶은데.”
“?”
“어떻습니까? 타티아나.”
혹시 기권이라도 하라는 건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자 게오르기는 싱긋 웃었다. 분명 농담을 걸어오는 것 같았지만 그 저변에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진지한 모습이 있음을 몰라볼 수 없었다.
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정말 대단한 연주였다. 나 혼자였다면 쉽지 않았을 정도로.
하지만 지금은 에르네스트라는 굉장한 연주자가 나와 함께 한다. 세상 그 어떤 연주라도…… 아니, 그라나도스가 살아 돌아왔더라도 난 그 앞에서 분명 연주를 하고 말겠지.
……그리고 현실적으로 문화부 장관이 보고 있는데 갑자기 기권하겠다고 하면 앞으로 연주자 인생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 정도 현실감각은 있었다.
“과연 그럴까요?”
“음, 확실히 준비해 오신 게 있나 보군요?”
“그럼요. 저번 드보르작을 듣고도 최선을 다하지 않을 정도로 안이하진 않아서요.”
너무 경박하거나 자만한 것처럼 보이지 않게. 이미 당신들이 어떤 음악을 할 수 있는지 그 전력에 대해선 어느 정도 파악하고 연습을 해 왔고, 지금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내 말에 게오르기는 순간 할 말을 잃었는지 머뭇거리더니 곧 사람 좋게 껄껄 웃었다.
“정말 기대되는군요. 그럼 지켜보겠습니다.”
게오르기는 다음으로 프세볼로트 장관에게 가서 인사를 건넸다. 저편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프세볼로트는 짧은 찬사를 그에게 보냈다.
곧 게오르기가 다른 멤버들도 불러 모았고, 아나스타샤도 그쪽으로 향했다.
난 그 뒤를 바라보다가, 혼자 앉아 있는 에르네스트에게 다가갔다.
“…….”
그는 원래부터 누구에게 힘들다 소리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스스로 자처한 일들이라면 더더욱 책임감으로 해낼 뿐이었다.
때문에 난 그가 피곤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일에 대해서 말할 순 없었다. 그저 약간의 걱정과 많은 응원을 건넬 뿐이었다.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슬슬 우리 차례냐는 듯 눈을 깜빡였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일로 놀라게 하면 화를 낼 것 같았다.
대신 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 컨디션 어떠신가요? 에르네스트.”
“좋아. 넌?”
“저도 좋아요. 혼자서 해도 될 정도로.”
난 손목을 까딱이며 말했다. 듀엣은 물론이고 협주곡도 종종 혼자 연주한다는 걸 아는 에르네스트는 키득거리며 웃더니 나와 똑같은 방향으로 손을 들었다.
“그건 안 되지. 같이 해.”
“후후, 농담이었어요.”
싱겁게 말하며 옆을 보자 잔뜩 들떠서 이야기를 나누는 스푸마토 콰르텟과 아나스타샤가 보였다.
자신들의 연주에 충분히 만족한 그들은 이쪽은 지금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럼 우린 저들의 신경과 안도를 다시 빼앗아 올 뿐이다.
약간의 호승심이 꿈틀거린다. 내가 경쟁에 있어서 굉장히 냉철한 사람이라는 걸 아는 에르네스트는 슬슬 때가 왔음을 느낀 모양이다.
그는 자리에 일어나 무릎을 탁탁 털고는 손목을 스트레칭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날 볼 때까지 잠시 기다려주었다가, 미소로 제안했다.
“그럼…… 가 볼까요?”
“그러자.”
혹시 손을 내어 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담담하게 혼자 걸어 앞으로 나아갔다. 난 짧게 웃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앞서 걷던 에르네스트는 문득 생각났는지 휙 고개를 돌리더니 내게 말했다.
“잘 부탁해.”
꼭 이렇게 정중하다니까.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가볍게 받아 주자 그는 피식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마주 보고 겹쳐진 두 대의 피아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아노 앞에 나란히 서자 곧 벼락같은 박수 소리가 우리에게 향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수선하던 느낌은 순식간에 정돈되어 음악을 감상하는 콘서트홀의 분위기로 돌아와 있었다.
우린 동시에 작은 묵례로 그 박수에 답하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
에르네스트가 슬쩍 눈짓했다.
이제 준비하고 연주를 하면 되는데 무슨 뜻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곧 난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했다.
아까 전 아나스타샤가 곡을 소개한 것처럼 지금 기다리는 청중들에게 소개할 거냐고 묻는 것이었다.
프로그램북 없이 이렇게 이루어지는 무대에선 그렇게 미리 이해를 돕기 위해 작곡가와 곡 이름 그리고 간략한 설명 정도는 덧붙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내가 하자니 준비한 멘트도 딱히 없었다. 지금은 나보다 더 노련한 에르네스트가 주도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런 뜻으로 고개를 저었더니 에르네스트가 입을 열었다.
“더 기다릴 것 없이 저희도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말투가 그게 뭐예요?
옆구리라도 쿡 찔러 줄까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그럴 수도 없었다. 당황한 내가 돌아보아도 그는 태연하게 말을 마쳤다.
“곡 이름은 들으면 아실 겁니다. 아마도.”
“?”
지금 우리가 평가받아야 하는 자리라는 건 알고 있는 거죠?
어이없어하는 나와 달리 좌중에선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지하게 연주를 기다리며 팽팽해져 있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풀어졌다.
그제야 난 이 또한 에르네스트의 노련한 방식 중 하나라는 걸 깨달았다.
만약 그가 이전 퀸텟과 똑같이 소개를 했다면 어쩐지 봤던 걸 다시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처음 몰입할 때의 분위기가 그렇게 결정되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살짝 변화를 주면서 다른 방식으로 웃음을 이끌어내며 분위기를 우리만의 것으로 가져왔다.
이러한 베리에이션으로 신선함을 부여하는 일은 연주자에게 있어 당연히 필요로 하는 센스였지만 에르네스트는 악기 없이도 능수능란하게 그런 방법을 사용할 줄 알았다.
“…….”
감탄한 눈빛으로 바라보니 그는 눈웃음을 지었다. 지금부턴 말이 아니라 음악으로 저 청중들을 놀라게 할 때였다.
난 아나스타샤가 방금까지 다루었던 피아노에 가서 앉았고 에르네스트는 반대편으로 갔다.
“음…….”
의자를 높여 앉으며 건반을 내려다보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어마어마한 음악을 뿜어내던 악기는 다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살짝 만져 보았으나 마치 아무도 왔다 간 적 없는 것처럼 깨끗했다.
하지만 난 이 악기의 소리를 기억했다. 아나스타샤가 끌어내던 그 정열적인 스페인의 소리.
독일에서 만들어진 피아노로 러시아인이 연주하는 소리였지만, 국적과 시대는 우리들의 이해에 있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음악이란 정말 많은 것들을 관통하며 한데 엮는다.
공간, 시간. 그리고 사람들을.
“…….”
건너편을 바라보니 마침 에르네스트도 준비가 끝났는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천천히 건반에 손을 얹었다. 이 건반의 끝은 바로 현의 저편까지 닿는다.
약 3미터. 지난 며칠간 자주 봐 와서 익숙한 거리. 말을 하기엔 애매하게 멀지만 음악을 나누기엔 그 무엇보다 가까운 거리이다.
이 거리에서 우리는 시선과 표정을 교환하고 음악을 공유해 왔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우리는 서로 준비되었음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