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8화
아침 연습이 길어져서 살짝 늦게 등교했더니, 반 문을 열자마자 난리였다.
반 한가운데에서 네 명의 여학생들이 모여 시끌시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온 반의 분위기가 그쪽으로 쏠려 있었다.
딱히 살그머니 들어가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스마트폰에 신경이 팔린 그 애들은 내가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계속 이야기했다.
“그 흔한 스캔들도 한 번 없더니 갑자기 결혼할 줄은 몰랐어.”
“나 진짜 깜짝 놀랐잖아.”
어쩐지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다.
팝 가수 올리거 리보비치 코롤레프의 결혼 소식은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우리 반에도 꽤나 큰 폭탄이 된 것 같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 너머를 돌아서 아나스타샤의 옆자리로 향했다.
그녀는 대화에 끼지 않고 혼자서 의자에 비스듬하게 앉은 채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는 중이었다.
옆에 다가가자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들고는 방긋 웃었다.
“왔니?”
“좋은 아침이에요.”
“응. 좋은 아침.”
짧은 인사를 나눈 후엔 그녀 옆에 앉으며 자연스레 물어보았다.
“무슨 일 있나요?”
“별로? 그냥 애들 평소 하던 이야기.”
아나스타샤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패션 등 유행에 굉장히 예민한 사람인데도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나만큼이나 고전적이었다.
발렌티나가 팝 음악을 자본주의의 젤리 같다며 즐겨 듣는 것과 꽤 대조적이다.
그런데 우리 반의 취향은 발렌티나에 가까웠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진 모르겠지만 올리거를 대화 주제로 하면서 그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그중에서 바르바라의 표정은 꽤 심각하기도 했다.
오늘의 뉴스 그 자체보다는 이 상황에 관심이 생긴 나는 넌지시 아나스타샤에게 물어보았다.
“바르바라가 아픈 것 같은데요?”
“실연당했거든.”
“……예?”
어떤 느낌인진 알겠지만 실연이라고 해야 할 정도인가요? 바르바라, 그 사람이랑 사귀었었나요?
가수와 음악을 좋아하고 꽤 진지하게 몰입하는 것까진 이해하지만 바르바라의 상태는 예상하는 수준을 넘어가 있었다.
울지만 않을 뿐 진심으로 비통해하는 것 같았다.
난 그 모습이 약간 걱정되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그 깊은 감정이 궁금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바르바라의 감정에 흥미를 가지는 게 친구로서 옳은 일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어서 얌전히 있긴 했지만, 나도 모르게 몇 번 그쪽으로 시선을 줬다.
그리고 때마침 고개를 돌린 바르바라와 눈을 마주했다.
그녀는 내가 반에 들어온 걸 이제야 알았는지 조금 놀라더니 내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온 줄도 모르고 있었네. 타티아나.”
“괜찮아요. 바르바라.”
가볍게 인사를 받아 주면서 난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바르바라가 진짜 미안함 절반, 그리고 내가 이 뉴스에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궁금증 절반으로 내 앞에 서 있음을 느꼈다.
친구의 감정에 흥미를 느끼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우습게도 약간 안심하고 있으니 바르바라는 은근하게 대화 주제를 이끌어 나갔다.
“저기, 무시했던 건 아냐. 오늘 조금 심각한 일이 있어서 거기에 집중하느라.”
“어떤 일이죠?”
“혹시 어제 소식 들었어? 올리거가 결혼…… 아니, 올리거가 누군지는 알지?”
내가 그간 너무 가십 등에 무관심하게 반응해 왔던 모양이다.
실제로 작년까진 진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었고 요즘은 딱히 할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래도 이젠 아는 이야기가 나와서 다행인 걸까. 그 이름을 갑자기 들으면 약간 당황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어제 뉴스를 보기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
“올리거 리보비치. 당연히 알죠. 저도 좋아해요.”
“의외……가 아니라, 혹시 직접 본 적이 있다거나? 어쩌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바르바라의 눈에 무언가 기대감이 반짝거렸다. 나라면 올리거 리보비치를 불러서 파티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녀는 주로 평범하게 날 대해 주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오늘은 바르바라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그런 상상을 하는 건 자유겠지만…… 내게 그럴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난 누군가 초대한다면 클래식 음악가를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괜한 소리를 할 상황은 아닌지라 장단을 맞춰 주었다.
“아쉽지만 없어요.”
“그렇구나. 아무튼, 올리거가 어제 결혼 발표한 거 알아?”
“예, 뉴스에서 봤어요. 꽤 오래 발표했었죠. 연예부 기자들이 애쓴 듯해요.”
“뉴스 말고 인터넷 보면 다른 사진도 많아. 상대 누군지 봤어?”
스마트폰으로 아침 뉴스를 찾아보니 온통 올리거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하긴 했지만, 그에 대한 내용은 더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안 봤다. 난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지 보진 않았어요.”
“보여 줄까?”
“아뇨, 괜찮아요.”
“흥미 없니? 좋아한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바르바라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드디어 내게서 흥미를 이끌어내고 이 대화 주제에 포함시켜서 같이 떠들썩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가, 내가 그리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조금 당황한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난 바르바라와 이야기를 하고 싶긴 했지만 뉴스에서 공개되지 않고 파파라치들이 찍었을 사진 등엔 관심이 없었다.
그건 그야말로 사생활의 영역이니까. 나로선 굳이 그걸 왜 알아야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갔다.
물론 올리거 리보비치 코롤레프란 가수에 대해선 이전에도 좋아했었고 여전히 흥미가 있기도 했다.
“그가 발표한 신곡에 대해선 흥미가 있어요.”
“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바르바라를 생각해서, 내 딴엔 이야기를 좋게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르바라의 표정은 더더욱 안 좋아졌다. 그제야 난 그녀가 그 신곡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음을 느꼈다.
실수한 것 같다. 어떻게 수습할까 싶었는데, 바르바라가 스마트폰을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신곡이 있었지. 멜로디는 좋더라. 예전에도 올리거는 절절한 노래를 잘하는 편이었고. 응…….”
“……바르바라?”
“그런데 이젠 그 노래에 특정한 상대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니 영 몰입이 안 되는 거 있지. 무슨 말인지 알지?”
이해는 간다.
바르바라는 청자로서 노래에 잘 몰입해 왔던 것 같다.
노래의 내용이 무엇이든 가수에겐 특정 대상이 있었겠지만, 공식적으로 나온 정보가 없다면 그건 청자에게 향하는 것이라 느껴도 될 테니 그리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결혼까지 해 버리고 거기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고 하니까 갑자기 이상함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바르바라도 스스로 조금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말에 두서가 없기도 했지만, 난 그녀가 이상함을 느끼는 것도 평범한 일이라 생각했다.
꼭 다른 사람의 사랑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만 하는 건 아닐 테니까. 사람의 마음은 그만큼 복잡하다.
그런데 위로를 해 주자니 상황이 묘했다. 내겐 조언 등을 할 계제가 없기도 했고. 일단 바르바라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길 바라며 말했다.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수많은 오페라나 뮤지컬의 세레나데에도 모두 상대가 있…….”
“그거랑 이거랑 같아!? 올리거는 살아 있잖아!”
“……???”
난데없이 그녀가 버럭 소리를 쳐서 깜짝 놀랐다.
놀란 눈으로 올려다보았으나 바르바라는 딱히 내게 화가 난 게 아닌 것 같았다. 내 머리 위 어딘가를 바라보며 바르바라가 항의했다.
“열애설이라도 내 주든가! 그래야 천천히 마음의 준비라도 하지. 갑자기 덜컥 그래 버리면 난 어떡하라고?”
“지, 진정하세요.”
“아…… 우울해. 그냥 집에 갈까…….”
바르바라는 막 화를 내는가 싶더니 갑자기 침울해져선 중얼거렸다. 정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보인다. 이를 어쩌지.
난처하게 웃자 바르바라 옆에 있던 라리사가 말했다. 상상도 못한 차가운 목소리였다.
“신경 쓰지 마. 타티아나. 이 애 지금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내일이면 또 다른 사람 좋다고 할 테니까.”
“무슨 소리야? 내가?”
“저번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평소 굉장히 착하고 조용한 성격의 라리사가 이렇게 독하게 말할 정도인 걸 보니 바르바라가 오늘 좀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긴 했나 보다.
한바탕 태풍처럼 바르바라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옆에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아나스타샤가 물었다.
“타티아나, 너 올리거 노래 들었었니?”
“예전에요.”
음반을 사 놓고 광적으로 좋아했던 건 아니고 그냥 스트리밍 등으로 종종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가수로서의 일을 정말 열정적으로 즐기는 모습에 꽤 깊은 감명을 받아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이렇게 단편적으로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과 생각 그리고 감정 등은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와 내 자아에 편승된다.
그리고 난 거기에 대해 지금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사실 이제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더라구요. 그냥…… 평소엔 생각도 않고 잊고 있었는데 어제 뉴스에서 보고는 떠올랐네요.”
“가끔 그런 거 있긴 하지.”
기억에 혼동이 없는 아나스타샤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도 가끔 잊고 지내던 것들을 주변에서 발견하고 떠올리는 일쯤은 종종 있는 듯 보였다.
정말로 내가 느끼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아나스타샤가 알 도리는 없겠지만, 약간 이해는 간다는 듯 그녀는 웃었다.
“그런데 신곡이 좋긴 했나 봐? 네가 흥미가 있다고 할 정도면.”
내가 꺼낸 음악 이야기를 바르바라는 트라우마처럼 느끼며 폭발했지만 아나스타샤는 가볍게 받아 주었다.
난 어제 오빠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가사가 직설적이라고 했더니 오빠는 그렇게 듣지 말라고 했었지.
아마 아나스타샤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다간 똑같은 이야기를 듣게 될 것 같았다. 난 적당히 감상을 말하려 했다.
“곡 자체보단…….”
“무슨 신곡?”
“!!”
화들짝 놀라 뒤를 바라보자 에르네스트가 인사 대신 고개를 까딱였다.
진짜 놀라서 소리지를 뻔했다. 난 간신히 심장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언제 오셨나요?”
“방금. 네가 다른 애들하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놀랐어요…….”
내가 온 걸 바르바라가 몰랐던 것처럼 나도 그가 오는 걸 전혀 몰랐다.
한숨을 내쉬자 에르네스트는 미안하다는 듯 웃으며 내 옆자리에 가방을 던졌다. 아까 나누었던 대화를 듣진 못했던 것 같다.
단편적으로 오가는 신곡이라든지 하는 이야기 때문에 그는 자기도 같이 끼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나저나 무슨 이야기야? 우리가 해야 하는 거야?”
“아뇨, 그게 아니라…….”
난 유명 가수의 결혼에 대해 이야기했다. 분명 빅 뉴스라 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바르바라가 특이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러시아의 모든 학교의 분위기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에르네스트는 마치 다른 나라 사람인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누군데?”
“너도 어지간하다 에르네스트. 그 유명한 가수를 모르니?”
“알아야 해?”
“…….”
태연하게 되묻자 아나스타샤도 어이가 없는지 눈을 흘겼으나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취향이 클래식 음악 쪽에만 편중되어 있는 건 나나 아나스타샤도 그랬지만 에르네스트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단 한 번도 대중음악을 듣지 않고 오로지 클래식만 들어온 건 아니겠지만,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가수에 대해서까지 알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럼 그렇지 하는 시선을 하는 아나스타샤가 그냥 대화를 그만두나 싶었는데, 한 번 더 그녀는 걸고넘어졌다.
“타티아나도 알고 좋아하는 가수라는데, 알아야 하는 거 아냐?”
“뭐?”
“저 애가 베토벤이나 슈만처럼 죽은 지 백 년도 넘은 사람들만 좋아하는 줄 알았지?”
대체 무슨 논리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날 놀리고 있다는 건 알겠다.
“아나스타샤…… 저 화낼 거예요.”
“아하하, 미안해. 미안. 농담이었어.”
아나스타샤는 빠르게 사과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날 무슨 클래식 귀신처럼 말하는 건 해도 너무했다.
그간 내가 보인 모습들이 조금 극단적이긴 했겠지만, 지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사이 에르네스트는 스마트폰으로 무언가 검색하고 있었다.
당장 올리거 리보비치 코롤레프가 누군지 알아봐야겠다는 것 같았다.
딱히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에르네스트는 검색 결과를 보고는 약간 눈을 찡그리더니 한참이나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내가 스마트폰을 보여 주며 물었다.
“이 사람 맞아?”
“예. 맞긴 한데…….”
그가 찾은 검색 결과는 올리거의 요즘 사진이라 그런지 턱수염이 덥수룩하기만 했다.
어떤 스타일을 하느냐는 본인의 취향이겠지만, 일단 내 취향은 아니었다. 이 와중에 엉뚱한 걱정이 들기도 했다.
혹시나 싶어 난 에르네스트를 올려다보았다. 걱정은 순간 안심으로 바뀌었다.
혹시라도 그가 수염을 기르진 않았으면 좋겠다.
“……저기, 에르네스트.”
“응.”
순간 나도 모르게 농담처럼 부탁할 뻔했다가, 간신히 말을 삼켰다.
지금 괜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에게도 나에게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불러 놓곤 아무 말도 않고 말을 흐리자 에르네스트는 무슨 일이냐는 듯 웃었다. 난 스스로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