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6화
음악만이 흐르는 스튜디오4의 상황과 달리 컨트롤 룸에선 흥분한 이들의 목소리가 낮게 오가고 있었다.
타티아나를 촬영한 영상이나 그 영상을 보낸 곳에서 되돌아오는 반응 등, 지금 이곳으로 모여드는 데이터들은 상식을 벗어나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이런 흥행은 처음인데요……?』
시스템 관리자인 아셀레는 기가 막혀서 웃었다.
물론 흥행할 줄은 알았다. 타티아나는 저번 주에도 엄청난 이목을 끈 스타 피아니스트였으니까.
콩쿠르 운영 측에서 그녀에게 특별히 기대를 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모든 지표가 저번의 거의 두 배에 달하고 있었다.
『그러게. 시청률도 조회 수도 예상 이상이야.』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영상 엔지니어 가브리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팔짱을 끼고 무대 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역시 흥분을 전부 감출 순 없는지 희미한 미소가 입가에 올라와 있었다.
아셀레는 다시 한번 데이터들을 확인했다.
각 방송국에서의 시청률도 압도적이었지만 인터넷 중계의 실시간 조회 수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 데이터는 해외에서의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상세 통계를 확인하자 미국과 러시아, 유럽 그리고 동아시아 쪽 시청자들의 숫자가 드러났다.
러시아 출신이니 당연히 그곳이 가장 많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런 예상과는 다르게 정말 골고루 시청자층이 분포해 있었다.
데이터를 분석하던 아셀레는 마우스에서 손을 놓았다. 이런 건 분석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였다.
거기엔 여러 조건이 부합되었을 것이다. 각 라운드 마지막 날 시청률이 올라가는 건 항상 있는 일이기도 했다.
아셀레는 웃으면서 가브리엘에게 물었다.
『마지막 날이라 가능한 것이겠죠?』
『관심이 쏠릴 시점이긴 하니까.』
『베르체노바는 운이 좋은 사람이네요.』
『글세…….』
가브리엘은 무뚝뚝하게 중얼거렸다. 대체 이 와중에 무슨 소릴 하려나 싶어서 아셀레는 삐딱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가브리엘은 드물게 미소를 짓더니 농담조로 말했다.
『운이 좋은 건 우리가 아닐까.』
『아하하, 그것도 그렇네요.』
아셀레는 거기에 적극 동의했다. 올해는 쇼팽 콩쿠르도 겹쳐 있어서 좋은 피아니스트들을 그쪽에 많이 빼앗길 예정이었다.
때문에 흥행이 조금 미흡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과 달리 훌륭한 피아니스트들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많이 선택해 주었고, 그중엔 정말 당첨된 복권이나 다름 없는 피아니스트도 있었다.
가브리엘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베르체노바 양 입장에서도 순서는 운이 좋다 쳐도 그걸 기회로 삼아 이 정도 이목을 끈 건…… 순전히 그녀의 실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아셀레는 천천히 앞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여러 각도에서 촬영되고 있는 타티아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 어떤 카메라를 봐도 그녀의 모습은 완벽했다.
‘그리고 귀에 들리는 이 사운드.’
아셀레는 음향보다는 영상 쪽 전문가라 사실 이 음악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그녀도 장르 불문 많은 음악을 들었고, 때문에 무엇이 조금 더 대단한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듣기에 타티아나의 음악은 일반적인 레벨을 한참이나 넘어서 있었다.
세계에 통용되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도 않을 정도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의 2악장. 아름답게 울리는 서정적인 선율을 연주하고 있는데도 그 음악은 멀리서부터 울려 홀의 천장을 타고는 컨트롤 룸으로 파고들었다.
마이크로 녹음 중인 사운드와는 현저히 다른 진동이 아셀레를 통째로 흔들었다.
이 역시 길게 말할 것 없었다. 아셀레는 피식 웃었다.
『뭐, 거의 초인적이네요.』
『수준이 다르다는 걸 알겠나?』
『딱 들으면 사운드가 다르잖아요. 오케스트라도 지금 더 충원된 상태인데 그걸 막 뚫고 나오고.』
모차르트가 남긴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이 24번은 가장 많은 악기를 동원하는 곡 중 하나였다.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두터워질수록 당연히 피아노의 기본적인 체급이 받쳐 줘야 음악이 성립된다.
그런데 피아노와 아예 하나가 되어 버린 듯한 타티아나에겐 이미 체급의 의미가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그녀는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음악을 쌓아 올렸다.
250년쯤 전에 있었을 음악회에 참가한 듯한 기분이었다.
아마 지금 이 음악을 듣고 있는 청중들도 모두 비슷한 감상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점점 더 늘고 있어요.』
『이 속도로 올라갔을 때 1시간 후에도 서버가 버틸 수 있나 체크해 봐. 문제 있을 것 같으면 미리 조치하고.』
가브리엘의 지시는 아주 적절했다. 지금도 수만 명이 타티아나의 연주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기술적 트러블로 중계가 중간에 끊어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정말 재난에 가까운 일이다.
바네사 왕비도 신중히 주목하고 있는 콩쿠르였다.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시말서로 끝나지 않는다.
이곳의 모두가 그날로 잘릴 것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혹시 모를 불상사가 제발 없길 기도하며 아셀레는 다시 시스템을 체크했다. 다행히 지금 별다른 문제가 보이진 않았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바네사 님의 지시로 미리 증축을 해 둬서…….』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계속 체크하겠습니다.』
『부탁하지.』
가브리엘은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그도 아셀레도 지금 이 상황이 결코 흔하게 오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있었다.
타티아나에게도 엄청난 기회가 됨과 동시에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곳의 엔지니어들이 한 번의 실수로 잘릴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것처럼 타티아나 역시 한 번의 실수가 그녀의 피아니스트 인생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어떻게 그런 압박감을 이겨 내고 저 자리에서 유려하게 연주라는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상상도 안 갈 지경이었다.
그러나 타티아나는 그런 생각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가 내리쳤다.
건반에 정확하게 떨어진 손가락은 이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2악장을 마치고 손을 늘어뜨린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
좋은 오케스트라와 좋은 피아노, 좋은 음악이었다. 이 완벽하게 주어진 조건에서 나는 그간 준비해 온 연주를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이쪽을 힐끔 바라본 가스파르는 고개를 까딱이더니 혼자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3악장을 열었다.
1악장과 마찬가지로 이 3악장도 1분가량 오케스트라가 먼저 음악을 시작하게 되어 있었다.
난 눈만 살짝 들어 정면에 위치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지금 몇 명이 보고 있을까. 전화로 날 응원한다고 했었던 사람들은 아마 지금 모두 이 무대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사람에게 선물이 될 만한 연주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은 그 목적에 꽤 적합한 곡이었다.
왼쪽에서 스며드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느끼면서 난 천천히 그 리듬에 귀를 적응시켰다.
가스파르와 유능한 단원들은 어제 리허설로 내 음악의 상당 부분을 알아주었다. 마치 내가 저곳에서 이미 연주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대단한 사람들이야.’
마음속으로 감탄하면서 난 그 음악을 믿고 따를 수 있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난 빠르게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3악장은 협주곡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과 동시에 화려하게 피어나는 악장이었다. 난 고음역대의 소리들을 특히 신경 써서 표현했다.
행진곡이라기엔 리듬이 복잡하고 춤곡이라기엔 빠른 기악 예술의 극치를 재현해 냈다.
모차르트는 하프시코드로 이 곡을 연주했겠지만 더 크고 풍부한 소리를 낼 수 있는 피아노는 그보다 가능한 테크닉과 스펙트럼이 넓었다.
그러니 피아노 연주자라면 모차르트의 음악을 연주할 땐 항상 그 이상을 의식하며 연주해야 한다.
주눅들어 있을 필요는 없었다. 아마 모차르트도 그것을 바랐을 테니까.
원전 연주의 방향성을 알고 있다면 엇나가지 않는다. 그간의 연구가 다행히 헛되지 않아서 나는 자신 있게 연주에 임할 수 있었다.
‘소리가 너무 뻗지 않게…….’
절도 있는 동작으로 건반을 탁 끊어 치고 바로 다음 오케스트라에게 턴을 넘겼다.
정확하게 내가 원했던 타이밍에 오케스트라는 내 음악을 받아 연주해 주었다. 흡족한 연계였다.
감동한 나는 이어서 오케스트라가 분명히 원할 만한 타이밍에 피아노를 개입시켰다.
그 순간 마치 자석처럼 오케스트라가 내 쪽에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고전 피아노 협주곡의 탄탄함은 연주자들 사이의 신뢰가 두터울수록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 신뢰라는 것은 단순히 오랜 리허설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것을 난 이번에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3악장의 테마가 몇 번 반복되며 피아노에게 서서히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난 그것을 감사히 받아들이며 보다 신경을 기울여 건반을 연주했다.
결코 밝은 분위기의 곡은 아니다. 하지만 어둡고 칙칙하지도 않았다. 이 곡에서 나는 진지한 존중과 애정 그리고 평화를 느낄 수 있었다.
형이상학적인 가치들을 현실의 음악으로 표현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빌어 발현시키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완벽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미 난 후회 같은 걸 전혀 느끼지 않을 정도로 이 곡에 만족했다. 내 나름의 완전을 기했다고 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상을 노리는 완벽한 곡이 되었을지……. 그건 나 혼자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류해 둬야 했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기다려야 한다는 건 심장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난 마지막으로 달려 나가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오케스트라의 소리에도 열기가 뒤섞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연주가 마무리되었을 때, 난 즉각적으로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평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브라바!}
난 또 계단을 하나 올라섰다는 것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