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1222화 (1,222/1,277)

##  1222화

현대의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들에겐 흔히 요구되는 작곡가들이 있다. 그리고 쇼팽은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곡가에 속한다.

개인 연습이나 레슨, 음악 학교 입시, 콩쿠르, 거기에 콘서트까지 거의 모든 방면에서 쇼팽의 레퍼토리는 폭넓게 통용되었다.

이런 세상에서 쇼팽을 연주하지 않는 피아노 연주자는 정말 불리한 패널티를 안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기준으로 보면 난 여전히 반쪽짜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난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하려면 할 순 있지.’

근래 난 쇼팽의 곡을 거의 연주하지 않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누가 리퀘스트한다면 몇몇 곡은 바로 연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쇼팽에겐 여전히 애정이 많다. 다만 예전처럼 강박이나 집착 등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지 않을 뿐이다.

반드시 극복해서 되찾아야 할 조각이 아니라 천천히 다시 노력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음을 알게 되자 초연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 여유 위에서 나는 쇼팽에 더 깊게 파고드는 대신 우선 다른 작곡가들의 곡으로 내 음색을 찾고 전체적인 실력을 보다 탄탄하게 만드는 것을 우선하기로 했다.

그렇게 수많은 곡들을 만나 스스로를 돌아보다가 이 곡을 만나게 되었다.

‘신기한 곡이야.’

라흐마니노프가 바라본 쇼팽의 프렐류드 op.28의 20번.

난 이 프렐류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리듬감이나 테크닉 연습을 하기엔 느리고 음색 컨트롤 연습을 하기엔 다이내믹스가 부족해서 너무 일관적으로 들리기까지 하는 곡이다.

하지만 이 곡은 그만큼 투명해서 연주자의 근본을 모두 들추어내는 것 같은 진지함을 지니고 있었다. 솔직하지 않은 사람은 이 곡을 치지 못한다.

그런 이유에서 난 이 프렐류드를 다루는 데에 애를 먹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에 라흐마니노프가 가미되었다.

예상컨대, 어린 시절 라흐마니노프도 이 곡에서 진지한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솔직한 음악들을 변주곡 형식으로 이어 붙일 수 있었던 것이겠지.

그래서 이후의 변주들은 너무 난해하게 들리기도 했다. 평가는 그리 좋지 않고 연주자들은 이 곡을 기피하기도 했다.

나 역시 이 곡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한 사람이기도 했고.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이 곡을 어떻게 이해하고 연주해야 하는지.

그 마음을 담아서 난 건반을 차분하게 만졌다.

‘처음엔 이를 악물고 악으로 쳤었지.’

단련되지 않은 몸으로 피아노를 치고자 마음먹었을 때, 건반이 너무 무겁고 힘겹게 느껴졌었다.

지금 같은 자유로움은 꿈도 꿀 수 없었고 팔과 다리에 족쇄를 차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피아노를 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 음악을 1%도 채 구현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며 손을 움직였다.

족쇄를 찬 손이 누르는 건반은 깊이 없이 그저 둔탁한 울림만을 쏟아 낼 뿐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감정은 실린다.

이 변주곡의 메인 테마, 쇼팽 프렐류드의 원곡은 바로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기에 좋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기억을 굳이 내 음색으로 삼지 않았을 것이다.

미완성이고 볼품없으며 창피했으니까. 하지만 이젠 그 또한 내 긍지의 일부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테마 제시 후엔 가느다란 아르페지오가 이어졌다.

‘연습도 정말 많이 했고.’

엉망인 실력으로 솔직히 음악 학교는 상상도 못 했지만 나는 운 좋게 미하일 선생님을 만나 최고의 음악 학교에 편입할 수 있었다.

피아노에 익숙해지고 내가 다룰 수 있는 사운드를 찾기 위한 노력이 부단히 이어졌다. 난 그 모든 기억을 떠올렸다.

바흐부터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리스트, 슈만, 라벨, 라흐마니노프 그 외에도 정말 많은 작곡가의 곡들을 연습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닥치는 대로 음악들을 흡수한 나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기량을 상당히 되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사이에도 난 늘 불만이 가득했었다.

집념과 짜증 그리고 충동 속에서 방황하는 동안 간신히 정신을 한곳에 유지하고 있을 수 있었던 건 피아노와 좋은 사람들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기억 속 시간을 끌어내어 제5 변주까지 이어 갔다.

순식간에 흘러가는 짧은 변주들의 집합이라서 여기까지 연주해도 아직 곡의 시작 부분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 쇼팽 주제에 의한 변주곡의 진정한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균형은 이쯤이었지.’

제6 변주의 악장 지시는 메노 모소meno mosso. 느긋하게 연주하길 요구한다. 그러나 주어진 리듬은 6 대 9의 폴리리듬이었다.

오페라의 아리아처럼 멜로디를 흘려보내는 방식을 자주 쓰는 쇼팽이 애용하기도 하고 동시에 라흐마니노프에게도 종종 들어 볼 수 있는 음형이었다.

속도는 느릿하지만 이 변주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를 전부 표현하려면 느긋하게 다뤄선 안 될 구간이었다.

두 작곡가 사이에 있는 나는 곡의 중심을 잡고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잘 유지했다.

이것은 현대에 이르러 모든 것을 연구할 수 있는 연주자들만이 비로소 가능한 역할이었다. 난 내게 맡겨진 역할을 진지하게 다루었다.

다른 시대 작곡가들의 음악성이 병합된 음악은 계속 변주를 이어 나가면서 보다 복잡하게 커져 나갔다.

제7, 제8, 제9 변주에 이르기까지 그 난이도는 점점 높아져 갔다.

그러나 난 단 한 번도 균형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유지했다.

‘내가 해 왔던 일들이 바로 이런 것이었으니까.’

지금까지 난 피아노 연주자로서 굉장히 치우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동시에 정상적인 사람으로서 실패하지 않기 위해 무척 애를 쓰기도 했다.

휩쓸리지 않는 객관적인 판단과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가 늘 내 마음속에 새겨져 있었다. 지금 역시 바뀌지 않았다.

난 짊어져야 할 것이 많고, 그럴수록 강해지고 자유로워졌다. 족쇄는 이미 사라졌고 육체의 구속도 느슨해진 지 오래다.

난 경쾌하게 손가락을 튕기며 건반 위를 거닐었고 그것만으로도 내가 바라는 음악이 당연하다는 듯 피아노에서 피어났다.

‘지금까지 여러 무대에 섰었지…….’

학교에서 하는 위클리 무대부터 청소년 콩쿠르, 리사이틀, 자선 연주회,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 난 피아노 연주자로서 활동해 왔다.

그때마다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 해서 한계에 도달한 음악을 연주하고자 노력했었고, 그런 노력은 계속 쌓여 지금까지 다다랐다.

제10 변주는 음 하나하나에 압력을 주라는 의미의 마르텔라토martellato로 시작되었다.

일관적이지 않은 악센트로 이루어지는 멜로디 라인을 구사하기 위해 정교한 아티큘레이션이 필요한 변주다.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연주하려고 들면 현실적인 벽에 가로막히고 만다.

각각의 손가락이 정해진 건반을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음을 믿으며 자연스럽게 이끌어 나가야 했다.

연주에 집중할수록 머릿속이 서서히 하얗게 변해 갔다.

이어서 느긋한 렌토lento와 모데라토moderato와 라르고largo까지 다양한 템포에 맞추어 각 변주를 연주했다.

느린 구간이지만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화성과 리듬이 개별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모두 다른 변주이기에 확실하게 구분지어 연주했다.

난 차분하게 한 걸음씩 라흐마니노프의 손짓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내가 온 길을 되짚어 보았다.

이 음악은 그저 빠져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길과 위치를 알아보기에 좋았다.

제14 변주에 이르면 메인 테마가 아르페지오의 긴 화성으로 늘어지고 그 위에 대위법적 음형이 얹어진다.

마치 몇 개나 되는 음악을 뒤섞은 것 같은 강력한 효과가 드러났다. 러시아의 피아니즘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난 에르네스트의 곡을 여럿 떠올렸다. 그의 작곡은 고전을 기초로 하여 낭만적 화성과 현대적 테크닉을 모두 합친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근간엔 확실하게 러시아 특유의 서늘한 분위기가 존재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 변주의 상징과 구도는 에르네스트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미장센을 따르고 있었다.

쇼팽도 라흐마니노프도 아니지만 이 순간 내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가까운 음악이었다.

냉정한 판단력과 강인함 그리고 불굴의 의지.

몇 개의 변주를 거쳐 그 모든 것들을 쏟아 내고 나니 어느새 제19 변주까지 도달해 있었다.

‘마지막 네 개의 변주는 흐름이 있어.’

경쾌한 리듬과 광대한 음역. 괜히 움츠러들 필요는 없었다.

지금 이곳은 오로지 나를 위해 준비된 무대이니 준비한 모든 것을 펼쳐서 모든 사람들을 휘어잡을 뿐이다.

마치 아나스타샤가 알캉을 연주할 때 과감한 테크닉들을 구사했던 것처럼 난 자신 있게 건반을 휘둘렀다.

태양처럼 떠오른 음악은 곧 홀 곳곳으로 쏟아져 내렸다.

이어지는 다음 변주는 프레스토presto의 빠른 템포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테크닉적인 부분은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

손은 너무나 가벼웠고 머릿속에 정리된 선율은 명료해서 정말 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중 성부를 손쉽게 펼치며 음악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이어지는 가변 리듬 옥타브 스케일을 노래하듯 불렀다.

난 이제 무언가 다른 레퍼런스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생각대로 치기만 해도 가장 최선의 선택을 지속해 나갈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스치고 끝나 버릴 것처럼 진정되던 음악은 다시 고조되며 마지막을 향해 갔다.

‘즐거워.’

마지막으로 주어진 제22 변주는 대성당의 합창처럼 시작되었다.

그러고는 라흐마니노프가 자주 사용하는 화음들로 장식되며 반짝이다가 다시 빠른 속도로 합창이 이어졌다.

라흐마니노프가 적어 놓은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도 까다롭고 있는 그대로 연주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지만 난 이 대단원에서 내 자신이 구원받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피아노 연주자로서 이 곡을 해석하고 연주할 수 있다는 것에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지금은 콩쿠르 무대에서 나 자신을 증명하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다시 한번 내가 허락받은 것들을 확인하고 감사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까다롭게 여겨졌던 리듬을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었다. 난 이미 이 곡에서 한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모든 것이 익숙했다.

그럼에도 최대한 한계에 가깝도록 밀어붙이고 또 밀어붙였다.

그 끝엔 밝은 빛이 비치고 있었다. 손을 뻗자 그 빛이 내 손에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아도 저절로 빛이 날 둘러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됐어.”

{브라바!}

양손을 건반에 꾹 누른 채로 잔향이 사라지기까지 기다렸다가 모든 것이 끝났음을 확인하고 들어 올리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최선을 다했고 후회는 없다. 난 기쁘게 웃으며 일어나 모든 청중에게 인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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