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23화 (23/152)

23화. 포식진화

그 순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밀려왔다.

그건 태어나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강렬한 욕구였다.

그 때, 내 눈앞의 3레벨 좀비의 시체에서 고소한 향기가 풍겨왔다.

당장 자신을 먹어달라는 것처럼!

난 나도 모르게 놈의 외골격을 파헤치고 있었다.

놈의 목에 드러난 살점을 한움큼 쥔 순간!

지독한 허기가 한순간에 가셔버렸다.

'내가 좀비의 살점을 뜯어먹으려 했다고?'

3레벨 좀비의 살점을 헤짚던 난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좀비의 살점을 먹어버린 건가?'

< 사용자님은 좀비 포식 직전에 [연구자의 인내] 스킬의 효과로 이성을 되찾으셨습니다. >

시스템 메세지를 읽은 난 지난 시스템 메세지를 확인해봤다.

< 등급 외 스킬 [포식]이 사용자님의 사고과정을 왜곡합니다. >

< 등급 외 스킬 [포식]이 사용자님의 호르몬계에 이상을 일으켰습니다. >

< 경고! 정신공격의 영향으로 언데드 포식에 대한 거리낌이 사라졌습니다! >

< 좀비와 사체, 살아있는 생물에 대한 강력한 식욕이 폭증합니다. >

< 좀비 사체를 먹으면 좀비화가 진행될 가능성 87%! >

< 좀비화가 진행되면 팔미라 시에 거주할 수 없습니다. >

< 에어로트럭의 센서가 사용자님의 행동을 기록 중입니다. >

'하마터면 좀비가 될 뻔했군.'

하지만 그 아래로 이어진 시스템 메세지는 흥미로웠다.

< 3레벨 좀비의 정신과 육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신공격입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 [연구자의 인내]가 발동됩니다. >

< 등급 외 스킬 [포식]의 정신공격이 [연구자의 인내]의 정신공격 면역효과로 파훼됩니다. >

< [연구자의 인내] 스킬의 효과로 정신과 육체의 피로가 큰 폭으로 경감됩니다. >

< [연구자의 인내] 스킬의 효과로 집중력이 일시적으로 300% 증가합니다. >

'집중력이 증가했다고? 어디 한번 시험해볼까?'

내가 시스템 메세지를 읽고 3레벨 좀비의 포식 스킬에 대해 생각한 순간이었다.

한순간에 포식 스킬에 대한 정보가 내 눈앞에 명료하게 펼쳐져버렸다.

'권속과 단순히 의사를 주고받는 걸 넘어서 권속의 스킬과 자신의 권능을 연결한 구조라...?'

3레벨 좀비의 등급 외 스킬 포식과 좀비로드의 고유권능 [폭식진화]의 연결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건 스켈레톤들과 나 사이를 더 긴밀하게 이어줄 열쇠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등급 외 스킬 [포식]은 좀비로드의 고유권능 [폭식진화]와 연결되지 않으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스킬이란 걸 밝혀내셨습니다. >

< 등급 외 스킬 [포식]을 통해 좀비로드의 고유권능 [폭식진화]를 엿봅니다. >

< 신격의 고유권능입니다. >

< 불가사의한 영역! >

< 침해할 수 없는 격입니다. >

시스템은 좀비로드의 고유권능을 훔치는 건 불가능하다는 듯 한 메세지를 띄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지금이라면... 알 것도 같군.'

연구자의 인내 스킬의 효과로 바늘 끝처럼 바짝 곤두선 정신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 고유권능 [폭식진화]를 판별합니다. >

< 네크로맨시 계열임이 확인되었습니다. >

< 사령술에 관한 불가사의한 재능이 좀비로드의 고유권능 [폭식진화]를 해체합니다. >

< [연구자의 인내] 스킬의 효과로 폭증한 집중력이 [폭식진화]를 파헤칩니다! >

그 순간, 좀비진화에 관한 비밀이 내 눈앞에 고스란히 드러나버리고 말았다.

'괴이한 권능이야...!'

폭식진화는 단지 폭식하는 것만으로 진화를 거듭해 최종적으로는 신격까지 얻을 수 있는 말도 안되는 권능이었다.

난 좀비로드의 고유권능 폭식진화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어떻게 신격을 얻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쓸 수 없는 권능이었다.

'우선 좀비가 돼야한다니...'

그건 좀비가 아니면 익힐 수가 없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좀비가 되지않고 폭식을 통한 진화과정만 훔칠 수는 없을까?'

한참 고민해봤지만, 결론은 같았다.

'좀비가 되는 순간 지능은 바닥을 치고, 좀비로드의 권속이 되는 구조야.'

고민 끝에 좀비로드의 고유권능 폭식진화에서 내게 유용한 골자만 꺼내기 위해선 많은 부분을 쳐낼 수밖에 없었다.

< 좀비로드의 고유권능 [폭식진화]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

< 깨달음을 정리한 결과, 새로운 스킬 [포식진화]를 창안하셨습니다! >

< [포식진화] 스킬의 등급을 산정합니다. >

< 커먼, 언커먼, 레어, 유니크... >

< 사용자님께서 창안하신 스킬 [포식진화]가 레전드 등급으로 측정됐습니다. >

< 경이로운 업적입니다! >

내가 좀비진화의 비밀을 푼 순간이었다.

{ 미천한 놈이 감히 내 고유권능을 넘봐? }

마치 천둥소리처럼 세상을 뒤흔드는 것 같은 목소리가 내 머릿 속을 울렸다.

'좀비로드?'

내가 당황한 순간 3레벨 좀비의 머리와 몸 위로 죽음의 기운이 몰려들었다.

그 기운은 제멋대로 놈의 외골격 위에 기묘한 마법진을 이루었다.

그리곤 그 마법진이 문신처럼 외골격 위에 새겨지는 게 아닌가?

그때 시스템 메세지가 내 눈앞으로 빠르게 솟구쳐 올랐다.

< 적대적 마법진을 포착했습니다. >

< 마법진을 분석합니다. >

< 경고! 해당 마법진이 필요 이상의 죽음의 기운을 흡수 중입니다! >

< 경고! 마법진이 불안정한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

< 위험! 강력한 폭발이 예상됩니다. >

< 3레벨 좀비의 시신에서 멀어지셔야합니다! >

내가 뒤로 두 걸음 물러난 순간이었다.

사방에서 퍼버벙! 하는 공기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건 좀비장갑 스켈레톤들이 내 몸을 둘러싸는 모습이었다.

***

"으...읔!"

날 짓누르는 거체가 흔들리자, 온몸이 깨지는듯한 통증이 날 일깨워버렸다.

- 주군, 정신이 드십니까?

그 순간 좀비장갑을 걸친 아머드 스켈레톤의 정신파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날 짓누르던 좀비장갑 스켈레톤이 치워졌다.

치워진 좀비장갑은 내 몸을 가리던 면은 멀쩡한데, 그 반대편은 척추가 드러날만큼 반파된 모습이었다.

'에어백 역할을 해준건가?'

문제는 그렇게 망가진 좀비장갑 스켈레톤이 한 기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 현재 운용가능한 언데드 정보를 수신합니다. >

< 좀비장갑 스케레톤 19기. >

< 이 중 11기는 기동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

< 경고! 약 4분 16초 이후 좀비집단과 조우할 예정입니다. >

< 위험! 빠른 응급처치 후 현장을 이탈하셔야합니다. >

시스템 메세지를 읽고나니, 길바닥이 드드드드! 하고 약하게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어지러워서 세상이 흔들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일어나보니 3레벨 좀비의 시체가 있던 자리엔 약 1미터 깊이의 크레이터만 남아있었다.

그 뒤로 운신이 가능한 일곱 기의 좀비장갑 스켈레톤들이 힘겹게 수백 마리의 좀비들을 처치하고 있었다.

'좀비로드라... 신격을 갖췄으면 데스로드와 동급이란 뜻이겠지?'

어디에 존재하는 지도 모를 좀비로드가 자신의 고유권능을 엿본 날 처치하기 위해 시체폭발 주문을 원거리에서 사용한 게 틀림없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아직은 까마득하기만 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기술도 훔쳐주마.'

놈은 3레벨 좀비를 이용해 날 공격했고, 난 놈의 권속인 3레벨 좀비를 이용해 놈의 고유권능을 엿봤다.

그리고 이 세상은 좀비가 사방에 널려있는 세상이었다.

'나한테 시체폭발 마법진을 보여준 그 방심이라면...!'

놈을 따라잡는 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수복되라!"

내가 손을 들어올리며 주문을 외운 순간, 3천여 구의 좀비 사체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불꽃도 없이 검은 연기를 내뿜는 사체들.

그 연기는 고스란히 전투 중이거나 내 옆에 널브러진 좀비장갑 스켈레톤들에게 빨려들어갔다.

"에너지 드레인!"

난 녀석들이 모두 몸을 회복하는 걸 본 후에야 에너지 드레인 주문을 외웠다.

< 폭발적으로 흡수한 죽음의 기운을 반물질 코어가 마력으로 전환합니다. >

< 풍족한 마력 공급으로 신체가 급속회복을 시작합니다. >

< 완전회복에 성공하셨습니다. >

한걸음만 내디뎌도 몸이 무너져내릴 것처럼 아팠던 몸이 두세번 호흡하는 동안 깨끗이 나아버렸다.

그때 저 멀리 널부러져있던 레이쓰 헤비머신건 아치스가 죽음의 기운을 흡수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체폭발의 여파에 충격은 입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서님. 괜찮으십니까?"

돌아보니 스톨즈였다.

그는 목소리와는 달리 경외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무사해보이는군요?"

"더, 덕분입니다."

그는 내 뒤에 시립한 두 기의 좀비장갑 스켈레톤과 남은 좀비들을 처리 중인 17기의 좀비장갑 스켈레톤을 번갈아보며 대답했다.

"발렌틴 학파의 유지가 이런 형태로 이어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스톨즈는 내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단어를 꺼내들어 날 당황하게 만들었다.

'발렌틴 학파?'

하지만 그는 내가 당황한 줄도 모르고 신이 난 듯 떠들어댔다.

"네크로폴리스 함락 이후 발렌틴 학파의 가르침이 완전히 끊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마법과 네크로맨시를 융합하셨다니... 이건 사령술 역사에 한 획을 그을만 한 발명입니다!"

그는 내 사령술을 보고 상당히 놀란 것 같았다.

'발렌틴? 네크로폴리스? 일단 정보를 수집할 시간이 필요해.'

난 테리를 상대할 때처럼 최대한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며 말했다.

"좀비집단이 접근 중입니다. 여기서 얘기하긴 적절하지 않은 주제 같군요."

"마, 맞습니다. 제가 상황파악도 못하고 주제 넘은 소리를 했습니다."

그때 타이밍 좋게 전투를 마무리한 좀비장갑 스켈레톤들이 자폭한 지미의 잔해와 프랭크, 빅터 등을 들고왔다.

"저 미친놈 때문에 우리가...!"

스톨즈는 지미의 머리와 오른쪽 어깨 일부를 짓밟으며 울분을 토해냈다.

"이런 놈은 제대로 재판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재산을 몰수당하고 도시수복전쟁에 끌려가서 죽을 때까지 싸우길 반복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쉽게 죽어버리다니!"

그때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 스톨즈의 반응을 분석합니다. >

< 사용자님의 정보가 외부에 노출되면 대응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

'저들이 확보한 정보 수준은 어느 정도지?'

< 에어로트럭과 에디, 빅터, 프랭크의 배틀슈트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사용자님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

< 아머드 스켈레톤과 좀비장갑에 관한 기록뿐만 아니라 사용자님께서 이성을 잃고 좀비의 살점을 섭취하시려고 했던 기록도 포함됐습니다. >

< 레어 등급 스킬 [해킹]을 사용해 해당기록을 삭제하시겠습니까? >

'허가한다.'

< 사용자님에 관한 모든 기록을 삭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시스템 메세지를 확인한 후 난 스톨즈에게 물었다.

"프랭크는 죽었지만, 빅터와 에디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조수석에 태울 수 있겠습니까?"

"조수석보다 저온수면 캡슐에 넣는 게 나을 겁니다."

스톨즈는 좀비장갑 스켈레톤들이 에어로트럭을 바로세우는 걸 보더니, 우측면 아랫부분을 조작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누울만 한 캡슐 두 정이 튀어나왔다.

"다행이 이쪽은 폭발의 영향을 덜 받아서 정상작동합니다. 하지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에디 팀장과 빅터는 의식을 잃은 상황이라 배틀슈트를 벗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스톨즈는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배틀슈트를 입은 채로 들어가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저온수면 상태에 접어들어야 출혈을 늦출 수 있고 그래야 장기손상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이대로 싣고 간다면요?"

"모두 잃을 수 있겠죠."

난 스톨즈의 대답을 듣고 시스템에게 물었다.

'해킹 스킬로 배틀슈트를 벗길 수 있나?'

< 가능합니다. >

< 레어 등급 스킬 [해킹]을 사용해 배틀슈트의 제어권을 강탈하시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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