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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닉 x 네크로맨서-27화 (27/152)

27화. 지하터널

3일 뒤, D-93 구역으로 연결된 F-8 구역의 출입사무소.

이 팔미라 시에선 F 구역에서 D 구역으로 이동할 때, 마치 현대에서 외국에 입국할 때 출입국사무소를 지나는 것처럼 출입사무소를 거쳐야 했다.

내가 출입사무소로 들어가려는데, 외골격 로봇에 탑승한 위병이 날 불러세웠다.

"출입사무소에는 전투용 안드로이드 출입금지야."

빡빡한 절차 때문에, 난 아머드 스켈레톤들을 트럭에 다시 실어놓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출입사무소엔 이미 천 명 가까운 사이보그와 인간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한참 기다려야할지도 모르겠군."

그러자 내 앞에 홀로그램 미녀가 나타나더니, 말을 걸었다.

- 빠른 행정절차를 원하시면 스마트안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게 있었나? 그럼 왜 저 사람들은 천 명 가까이 기다리고 있는 거지?"

- 출입사무소는 1,000 크레딧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5분 안에 수속을 완료해드리는 스마트 안내 서비스를 운영 중입니다.

- 스마트 안내 서비스를 받으시겠습니까?

홀로그램 미녀는 그제야 본심을 드러냈다.

'1,000 크레딧이 저렴하다고? 미친 거 아닌가?'

출입사무소 안내 홀로그램은 팔미라 시 하층민의 5개월 생활비를 5분 상담요금으로 걷어가겠다고 얘기한 것과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였다.

< 브라우스 건설 미팅까지 3시간 17분 남았습니다. >

< 출입사무소의 업무처리 속도를 계산한 결과 6시간의 대기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

난 시스템 메세지를 보고, 100 크레딧짜리 코인 10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 스마트안내를 시작합니다.

홀로그램 안내원은 길게 늘어선 줄 대신, '관계자 외 출입금지'란 푯말이 붙은 사무실로 날 안내했다.

"5등 시민 아서, 본인 맞죠?"

"네."

"시민증 좀."

두툼한 고글을 쓴 사이보그 여성공무원이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녀의 기계팔 여섯 개 중 하나에 시민증을 올려두자, 그녀가 대충 내 얼굴과 시민증을 대조하듯 확인한 공무원이 내게 물었다.

"5등 시민이 D 구역엔 무슨 볼일이 있으실까요?"

"브라우스 건설에서 의뢰를 받았습니다."

"차량반입 허가서와 전투용 안드로이드 반입 허가서를 서면으로 제출해주세요."

여성공무원은 시민증의 5등 시민증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렇게 말했다.

'전뇌로 통신이 가능한 시대에 서면으로 서류제출을 해라?'

문제는 이런 서류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크릭에게 들어본 적도 없다는 점이었다.

< 뇌물수수 현장을 탐지했습니다. >

시스템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자, 옆 창구에서 수속을 기다리는 민원인이 주머니에서 100크레딧짜리 코인을 꺼내서 올려놓는 모습이 보였다.

'바라는게 저거였군.'

난 신분증을 건넸던 테이블 위에 100크레딧 짜리 코인 하나를 올려놨다.

그러자 눈 깜짝할 사이에 여섯 개의 팔들이 코인을 내려놓기 전에 내 손을 가리더니 코인만 슬쩍 빼가버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귀 밑의 통신모듈을 건드려 브라우스 건설에 확인전화를 걸었다.

"네, 브라우스 건설이죠? 5등 시민 아서님께 의뢰를 주셨다는데 사실입니까? 전투용 안드로이드는 강도토벌용이고요? 알겠습니다."

문제는 빛과 같은 속도로 해결됐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서님, 확인되셨습니다. 안전하게 복귀하시길 바랍니다."

팔미라시는 현대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발달한 사회였다.

하지만 동시에 뇌물이 아니면 행정처리가 지체되는 사회이기도 했다.

그 이질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

D-93 구역 사벨 빌딩.

엘리베이터는 현대와 그리 달라보이지 않았다.

'꽤 규모 있는 기업이라고해서 사옥 빌딩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사무실도 빌려서 쓰는 모양이군.'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251층 까지 몸이 쏠리는 느낌도 없이 순식간에 올라왔다.

'10초도 안되서 올라오다니 신기하군'

< 관련 기술을 검색할 수 없습니다. >

< D 구역 인터넷에 접근할 권한이 없습니다. >

브라우스 건설의 사무실은 251층에 입주한 열 곳의 사무실 중 가장 화장실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본 사람들은 대부분 기계의체를 이식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돈이 있으면 일단 몸부터 개조하고보는 F-8 구역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실례합니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남자직원이 내게 물었다.

"그쪽이 아서 씨?"

"네."

"제가 아서 씨를 소개한 대리 틸 홀든입니다. 머신컴퍼니에서 얘기들었겠지만, 이번 의뢰에 아서 씨를 꽂아준 게 나에요. 원래 우리 회사는 F구역 용병업체에는 의뢰를 주지 않습니다."

"20%는 소개해주신 분 몫이라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원래 브라우스 건설에서 이번 의뢰에 지불하는 금액은 2천만 크레딧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날 꽂아넣어준 틸 홀든의 몫이 400만 크레딧이었다.

거기에 크릭의 몫 100만 크레딧을 제외하고 1,500만 크레딧을 받기로 처음부터 얘기가 끝난 일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로 다툴 이유는 없었다.

"같은 이유로 용병들이 텃세를 부릴 수도 있는데 탈 없게 알아서 대응해주세요."

"알아들었습니다."

"통신모듈 등록번호가 어떻게되시죠? 다른 용병들과 합류지점을 알려드리죠."

***

< 합류지점 기차역에 도착했습니다. >

틸 홀든이 알려준 장소는 기차역이었다.

기차역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머드 스켈레톤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높이 40미터짜리 초거대 지하터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F-3 구역 방향

난 안내 표지판을 따라 이동해 어렵지 않게 화물열차를 찾을 수 있었다.

신기한 건 모양 자체는 내가 알던 화물열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그 크기가 터무니없이 거대했다는 점이었다.

화물열차의 높이만 20미터에 달했고 폭도 15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내가 거대한 지하터널과 그에 어울리는 화물열차의 크기를 보고 놀라는데, 틸 홀든으로부터 통신이 연결됐다.

- 기관실 뒷칸에 도착하시면 임무관련 정보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내가 기관실쪽으로 향하자, 중기관총으로 무장한 안드로이드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 본 열차는 화물전용 열차로, 승객을 태우지 않습니다.

- 본 열차에 접근하신 이유와 신분을 알려주십시오.

"브라우스 건설에서 의뢰를 받은 용병, 아서다."

- 5등 시민 아서님.

-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무장한 안드로이드는 내 신원을 확인한 후에야 기관실 뒷칸으로 날 안내했다.

그곳엔 이미 네 사람의 용병들이 각자의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쪽도 용병이요?"

내가 들어서자, 왼쪽 눈가에서 턱에 이르는 칼자국의 남자가 내게 물었다.

"난 게릭슨이라고하고 보시다시피 칼밥 먹는 사람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자신의 허리에 두른 체인소드를 토닥이며 소개해왔다.

< 베스터 블레이드 사의 V-300 체인소드입니다. >

< 제품가격은 200만 크레딧입니다. >

< 진동수를 올려 칼끝으로 갈수록 절삭력을 높힌 하이엔드 급 체인소드로 유명합니다. >

< 사용자의 설정에 의해 V-300의 설계를 자동 저장합니다 >

"아서요. 안드로이드 제작자고."

"안드로이드 제작자?"

대물저격총을 손질하던 붉은 머리 남자가 조금 놀란듯 말했다.

< 사스키아 사의 SS-3 대물저격총입니다. >

< 사용자의 설정에 의해 SS-3의 설계를 자동저장합니다 >

< 특수탄 사용이 가능한 전문 스나이퍼 계의 베스트셀러입니다. >

< 대상의 어깨에서 특수탄 탄띠 발견! >

< 탄피 표지색은 하늘색입니다. >

< 특수액화질소탄으로 판단됩니다. >

< 대상의 허리에서 특수 수류탄 발견했습니다. >

< 백린 기반으로 다수의 생명체에게 불에 타들어가는 고통과 화염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

"난 아인즈요. 후방저격을 맡고 있지. 그런데 안드로이드 제작자가 직접 전투에 참여하다니... 좀 의외군."

"전투용 안드로이드가 17기나 되면 든든하겠군."

그때, 소음기가 달린 샷건을 든 남자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볼카요. 원래는 장벽 밖에서 놀다가 늙어서 이젠 이런 자잘한 임무만 맡고 있소. 잘부탁합니다."

그때, 허벅지와 가슴에 레이저 커터만 네 자루나 꽂은 썬글라스를 낀 남자가 내게 물었다.

< 비카리 블레이드 사의 보급형 레이저커터 VIC-3000 모델 네 자루 입니다. >

"근데 어디 출신이쇼? D 90번대 구역에서 형씨처럼 많은 안드로이드를 끌고다니는 용병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는데?"

"머신컴퍼니."

내가 대답한 순간이었다.

"머신컴퍼니가 어디야?"

"처음 들어보는데?"

"90번대에 그런 용병사무소가 있었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호의적이었던 용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

그때 썬글라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러자 용병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였다.

"검색해봤는데, F-8 구역에 있는 정비소라고 뜨네? 아저씨, 정말 정비소에서 의뢰받고 온 거에요?"

"톨맨, 그게 사실이야?"

"구라지?"

내게 묻는 톨맨과 그에게 장난하지 말라는듯 묻는 볼카와 아인즈였다.

"뭐, 문제있나?"

"하... 진짜였어?"

"F 구역 출신한테 뒤를 맡겨야 해?"

"어쩐지... 능력있는 안드로이드 제작자가 이런 허접한 일에 발을 담굴리가 없지."

"아무리 폭주족 나부랭이들 소탕작전이라지만 어느 정도 수준은 맞춰줘야하는 거 아니야?"

내가 반문한 순간, 용병들이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한마디 하려는데, 틸 홀든으로부터 통신이 연결됐다.

- 본사는 시정부로부터 F 구역 도시재건사업 중 아파트 건설 부문 일부를 수주했습니다.

- 여러분도 시정부가 직접 발주한 공사를 D 구역의 건설사가 따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실겁니다.

- 하지만 우리는 최신형 아파트를 73%나 지어놓고 손가락만 빨아야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 폭주족 놈들때문이오?"

"아파트 공사면 하루만 지체되도 수억 크레딧이 날아갈텐데?"

"그래서 놈들의 정확한 숫자가 어떻게 됩니까?"

- 정확한 수는 모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 지금까지 발생한 27번의 강도사건에서 살아돌아온 사람이 한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 다만 강도현장에 남은 바퀴자국으로 추산했을 때, 700명 이상의 폭주족이 동원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틸 홀든의 목소리가 울린 순간, 기관실 뒷칸엔 정막만 맴돌았다.

"홀든 씨, 폭주족 700명은 문제가 안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강도사건이 27번이나 발생했으면 호송을 위해 용병들에게 일을 맡겼을 거 아닙니까?"

"게릭슨 말이 맞아. 분명 용병들을 딸려보냈을텐데 생존자가 한명도 안 나왔다는 게 말이 돼?"

"브라우스 건설 입장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임무를 맡기 전까지 알려주지 않은 건 아주 곤란해보이는군요."

"폭주족 수가 수백이란 말과 살아돌아온 사람이 없다는 건 아예 다른 이야기입니다!"

용병들의 여론이 들끓자, 틸 홀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괜한 오해하지 마시고 진정하시죠.

- 지금까지 동원한 용병들 중엔 2단계 강화시술자가 가장 강력한 전력이었습니다.

- 이 중 그보다 약한 분은 없다고 알고 연락드린 건데, 제가 잘못 생각한 겁니까?

- 폭주족 인원수가 명시 되지 않은 의뢰를 받으신 분들은 여러분들입니다.

- 이런 경우 의뢰주에겐 책임이 없다는 걸 모두들 아실텐데요?

"하! 싸게 해결하려다 회삿돈만 날렸나보군."

그때 톨맨이 툭하고 말을 던졌다.

- 톨맨 씨, 말을 가려서 하시죠.

- 이번 건에서 우리는 톨맨 씨의 고용주지 친구가 아니잖습니까?

"크흠. 실수했군."

의뢰비를 한번 올려볼 속셈으로 항의했다가 틸 홀든의 신경을 건드리고 만 톨맨은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줄였다.

- 그동안 충분한 수의 저가용병들을 고용했지만, 실패한 임무입니다.

- 지금이라도 임무를 포기하고 싶으신 분은 열차에서 내려드리겠습니다.

- 포기하실 분 있습니까?

틸 홀든의 질문에도 포기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화물열차가 덜컹거리는 소리만 들릴뿐이었다.

- 그럼 포기할 분은 없으신 걸로 알고 다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 건설자재 운송지체 문제로 본사는 하루에 13억 크레딧이라는 거금을 손해보고 있습니다.

- 건설예정일도 2달 앞으로 다가왔기때문에 여러분이 강도를 토벌해주시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 지금 보내드리는 지도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폐지하철역의 지도입니다.

- 본사는 이번 사건에 폭주족과 지하인들의 연계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 용병님들께선 그 점을 기억해주시고, 습격 시에 폭주족뿐만 아니라 지하인들의 협공도 고려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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