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33화 (33/152)

33화. 4등 시민

테리는 내 질문을 듣고도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젠 아서 씨도 짐작하시겠지만, 전 돈이 없어서 F 구역에 숨어사는 게 아니에요."

"기갑토벌군과 관련된 문제인가?"

"제 아버지가 기갑토벌군 소속이셨어요. 기갑전술기동도 아버지께 배웠죠."

"역시 그랬었군."

아치스의 부하들이 테리의 몸놀림을 보고 도망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게릭슨, 기갑토벌군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 왜 그 얘기만 나오면 테리가 저렇게 긴장하는 거지?'

난 정신파를 이용해 문앞을 호위하고 있던 게릭슨에게 물었다.

- 기갑토벌군은 10년 전에 전멸한 부대로, 5만 명으로 이루어진 시정부 휘하의 배틀슈트 솔져 중 최정예 500명만 뽑아서 만든 부대입니다. 개개인이 3레벨 좀비를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실력이 있다고 알려졌으며 지난 52년 동안 사망자가 없는 부대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하지만 10년 전 라인란트 도시탈환전에서 4등급 좀비가 모여있는 섹터에 고립돼 몰살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단순히 전사했다면 테리가 저렇게 긴장하지는 않았겠지?'

- 용병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에 불과하지만 라인란트 도시탈환전에서 500기에 불과한 기갑토벌군만 좀비밀집지역에 밀어넣은 건 시정부 위쪽의 명령이 있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난 게릭슨의 정신파를 듣고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좀비가 장악한 도시라면 유틀란트 시보다 더 많은 좀비가 밀집되어있을텐데, 배틀슈트 500기면 할만한 작전 아니었나?'

내가 본 에디 겔로 같은 용병들은 각자 흩어져서 좀비집단에서 2레벨 좀비 스프린터만 쏙 빼서 유인해올만큼 능수능란한 사람들이었다.

기갑토벌군이 5만 명 중에 가려뽑은 500인이라면 에디 겔로보다 더 작전능력이 뛰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여러가지 의문점이 남았습니다. 당시 기갑토벌군이 전사한 작전지역에는 강한 좀비집단에 대한 토벌이 끝나 위험하지 않은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기갑토벌군을 배치한 직후 사방에서 강력한 좀비집단이 몰려들었습니다.

그건 아주 익숙한 상황이었다.

전파교란으로 통신을 마비시키고 사방에서 좀비집단을 불러들여 스톨즈를 죽이려고 했던 내 첫번째 의뢰와 너무 유사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 작전을 지시한 지휘관과 짜지 않고는 그들을 몰살시키긴 어려웠겠군. 그래서 그 지휘관은 어떻게 됐나? 이 정도로 논란이 된 사건이면 합당한 처벌을 받았겠군?'

- 당시 해당 작전을 지휘한 사람은 볼드윈 가문의 일원이었습니다.

'볼드윈?'

그건 시스템에게 들어본 적 있는 단어였다.

'바이오기술로 사이보그의 기계의체를 원래의 몸으로 복원해준다는 볼드윈 메딕스 사와 관련이 있나?'

- 볼드윈 메딕스는 볼드윈 그룹의 계열사 중 한 곳이고 볼드윈 그룹은 볼드윈 가문에서 운영하는 기업집단입니다.

'그 볼드윈 가문이 귀족 가문 중 하나고?'

- 빌헬름, 볼드윈, 오귀스트. 이 세 가문이 팔미라 시를 지배하는 귀족들입니다.

'시정부가 따로 있는데 그들이 귀족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해가 안가는군. 그리고 이 정도로 논란이 된 사건을 단지 귀족의 실수라는 변명으로 덮어버릴 수 있다고?'

- 시장선거 자체가 세 가문 사람들이 경쟁하는 장에 불과합니다. 지난 300년 동안 다른 성 씨를 쓰는 사람이 시장이된 기록이 없을 정도죠.

난 게릭슨의 대답을 듣고나서야 팔미라 시의 권력구도에 대해 조금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 당시 작전 지휘관이었던 버크 볼드윈에 대한 논란을 덮어준 게 라인란트 탈환사령관 윌헴 오귀스트 장군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직속상관인 스티페 빌헬름 국방장관도 이 작전을 문제삼지 않고 넘겨버렸죠.

'귀족들이 기갑토벌군을 의도적으로 사지로 내몰았다?'

- 모두 용병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에 불과합니다. 골렘전술기동을 모방했던 기갑토벌군의 시도를 괘씸하게 여겼다는 설도 있고, 3등 시민들의 힘이 커지는 걸 미연에 방지하려고 가지치기를 한 것에 불과하다는 설도 있었죠.

정확히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팔미라 시를 쥐고 흔드는 세 귀족가문에게 밉보인 건 사실인 것 같았다.

'이미 몰살당한 기갑토벌군과 엮여서 이 도시의 지배자들과 척을 질 필요는 없겠군.'

내가 테리를 놔줘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 물론 귀족들의 눈 밖에 나는 건 경계해야할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주군께는 그녀를 거둬들이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뜻이지?'

- 주군께선 저를 생전만큼 아니, 생전보다 더 강한 존재로 일으켜 주시지 않았습니까? 만약 기갑토벌군의 시신과 배틀슈트를 발견하실 수 있다면...

'게릭슨, 너보다 강한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 저 정도가 아닙니다. 제가 입은 배틀슈트는 보급형에 불과합니다.

그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아머드 스켈레톤으로 일으켜세우면서 확인한 게릭슨의 배틀슈트는 내가 신체 재구성에 사용한 배틀슈트와 성능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릭슨은 내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 기갑토벌군은 최소 솔져급 배틀슈트를 보유했다고 알고있습니다. 가격만 따져도 보급형 배틀슈트보다 다섯배 이상 비싼 기종입니다.

'호오?'

-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기갑토벌군 소속 병사들은 한 명, 한 명이 정예입니다. 3단계 강화시술자들 중 그들을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사람은 9명뿐인 랭커들뿐이죠. 저보다 좋은 재료가 될 게 분명합니다.

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보급형 배틀슈트와 게릭슨을 융합해서 만들어낸 결과가 유니크 등급의 언데드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 배틀슈트보다 5배 이상 비싼 솔져급 배틀슈트와 게릭슨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기갑토벌군의 시체로 만든 언데드는 어떤 등급을 받을 수 있을까?

'절대... 절대 유니크 등급은 아닐거야!'

유니크 등급 위엔 레전드 등급이 있었다.

그리고 언데드 중 레전드 등급에 속한 언데드는...

'데스나이트지!'

난 그 단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코어가 요동치는 걸 느꼈다.

- 제가 알기론 지난 10년 동안 기갑토벌군의 유족이 살아남았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만약 테리 양이 그 생존자라면 아버지가 어디에 묻혔는지 알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녀의 아버지가 지휘관급이었다면 기갑토벌군의 지하벙커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지하벙커?'

- 기갑토벌군 몰살사건 이후, 당시 작전의 지휘관이었던 버크 볼드윈은 기갑토벌군의 전멸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배틀슈트가 전한 사망선고기록이 남아있으니 그건 거짓일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전사자들의 유해는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많은 보물사냥꾼들은 아직도 기갑토벌군의 유해와 배틀슈트가 잠들어있다는 지하벙커를 찾아헤매고 있죠.

난 그 말을 듣자마자 테리에게 물었다.

"네 아버지의 이름이 뭐지?"

"저와 관련되면 귀족들의 표적이 되실지도 몰라요."

"난 그딴 건 신경쓰지 않아!"

지금 내 머릿 속은 데스나이트로 가득 차 있었다.

테리는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곤 대답했다.

"피어스 클라이스트. 제 아버지의 성함이에요."

- 주군, 피어스 클라이스트는 기갑토벌군의 4명의 부대장 중 한 명입니다!

게릭슨의 대답을 들은 순간 난 테리를 거두기로 결심했다.

'생전의 기억과 자아를 갖춘 언데드의 충성심을 사려면... 자신의 딸을 보호해주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

게릭슨의 명예를 세워주기로 약속한 후에야 그가 내게 무릎 꿇었던 걸 생각하면 답은 아주 간단했다.

"테리 클라이스트. 그게 네 이름이었군."

"네."

"앞으론 내가 널 책임질테니, 날 두려워하지마."

"그, 그럼 너무 폐가 되고말 거에요."

방금 전까지만해도 내게 뭔가 기대하는 표정이었던 테리는 막상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더니, 오히려 한발 물러서려 들었다.

"그런 걱정은 하지말고 일어나지. 4등 시민증을 발급받고 새로운 거처까지 마련하려면 바쁘겠어."

난 테리의 어깨를 한번 토닥여준 후, 은신처를 나섰다.

***

- 5등 시민 아서님.

- 10만 크레딧을 지불하고 4등 시민증을 획득하시겠습니까?

"그래."

출장사무소 로봇이 코인 투입구를 열어주자, 10만 크레딧짜리 코인을 넣었다.

- 축하합니다!

- 5등 시민 아서님께 4등 시민증을 획득할 권리증서를 발급해드리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출장사무소 로봇의 화면 아래에서 A4 용지만 한 종이가 출력됐다.

"이게 뭐지? 10만 크레딧만 주면 4등 시민증을 발급해주는 거 아니었어?"

내가 돌아보며 테리에게 묻자,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저는 태어날 때부터 3등 시민증을 발급받아서 이런 절차가 있는 줄 몰랐어요."

"하... 그래서 원하는 게 뭐지? 세금을 더 내면되나?"

난 고개를 내저으며 출장사무소 로봇에게 물었다.

놈이 원하는 건 항상 세금이었으니까.

- 5등 시민 아서님은 모든 자격을 갖추셨습니다.

- 간단한 질문 몇 가지에 대답하시면 4등 시민증을 발급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럼 이런 종이는 왜 준거야?"

- 질문을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출장사무소 로봇은 이번에도 불친절하게 자신이 묻고 싶은 말만 물어왔다.

"그래."

- 질문을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고지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 질문 과정에서 5등 시민 아서님의 생체반응을 기록할 예정입니다.

- 이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생체반응?"

- 심장박동, 동공반응, 호흡의 변화 등입니다.

"그게 왜 필요하지?"

- 5등 시민 아서님은 해당 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없습니다.

- 생체반응 기록에 동의하시겠습니까?

"동의한다."

난 출장사무소 로봇의 요구에 응하고 말았다.

거부하면 10만 크레딧이 눈깜짝할 사이에 날아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 로두스, 아키텐, 리옹, 트리어, 알자스, 로렌, 라인란트...

그러자 출장사무소 로봇은 알 수 없는 단어를 쉴 새 없이 내뱉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는 거지?"

- 아서 님께선 질문할 권한이 없습니다.

- 4등 시민 승급심사를 거부하시겠습니까?

"아니. 계속해."

- 로두스 성국에 관해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성국? 나라라는 뜻인가? 처음 들어보는데?"

- 로두스 성국에 살았거나 잠시라도 머물러본 적이 있으십니까?

"처음 들어본다니까?"

- 로두스 성국의 초대국왕 아서 란징크에 대해 아십니까?

그 순간, 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서 란징크? 그건 던전 오브 어비스에서 플레이했던 프리스트 캐릭터의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난 출장사무소가 란징크라는 단어를 언급한 순간, 프리스트 캐릭터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로두스 성국의 초대국왕 이름이 왜 그 모양이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질서왕 아서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로두스 성국이나 란징크란 단어는 처음 듣는군."

내가 말을 마친 순간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 심박수 조절에 성공했습니다. >

< 동공반응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

< 호흡이 흐트러졌습니다. >

< 레어 등급 스킬 [해킹]을 사용해 출장사무소 로봇의 심사기록을 삭제하시겠습니까? >

난 시스템 메세지를 확인하자마자 게릭슨에게 명령했다.

'전파교란기를 사용해서 외부통신을 막아라.'

- 전파교란기를 작동시켰습니다.

< 출장사무소의 숨겨진 부분에 외부통신이 가능한 유선 통신단말이 연결되어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해킹 스킬 사용을 허가한다. 만약 내 심사기록을 외부로 송출하려할 경우 먼저 내게 허락을 구하도록.'

< 사용자님의 명령에 따라 [해킹]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

< 승급심사 이후 외부로 송출된 데이터는 없습니다. >

난 시스템 메세지를 읽고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 칠마회 또는 마인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처음 들어본다."

- 수고하셨습니다.

수 많은 도시와 나라, 단체에 대해 질문한 끝에 출장사무소가 마침내 질문을 마쳤다.

- 심사결과, 5등 시민 아서님은 팔미라 시에 필요한 인재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 4등 시민으로서 인류와 팔미라 시를 위해 봉사하십시오!

- 군은 언제나 유능한 안드로이드 제작자에게 열려있습니다.

출장사무소는 끝까지 날 입대시키려고 들었다.

난 새로 일으킨 게릭슨을 안드로이드로 등록하고 요금을 낸 후에야 4등 시민증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D 구역으로 가볼까?"

***

어두운 동굴.

울퉁불퉁한 바닥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동굴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들것에 실린 드라고니안을 든 채, 미끄럽고 울퉁불퉁한 길을 움직이려니 폭주족들조차도 조심스럽게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시몬, 대장이 숨을 안 쉬는 것 같아."

스킨헤드 한센이 들것에 실린 대장을 보더니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문제는 그 말을 들은 다른 놈들이었다.

"이미 죽은 것 같은데 우리가 이런 고생을 할 필요까지 있을까?"

"맞아. 대장은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의식을 잃은지 3시간이나 지났는데 살아있을리 없지."

"시몬! 대장의 시체를 들고 미궁으로 들어가다니... 다시 생각해봤는데 이건 미친 짓 같아!"

들것을 양쪽에서 든 사람은 시몬까지 열 명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지하철 역보다 더 깊은 미궁으로 내려가길 바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시몬까지도.

"폴, 네가 뭣도 모르고 무역상 따라 장벽 밖으로 나갔다가 다리를 잃고 돌아왔을 때 기억해? 거리에서 구걸하다가 베놈펜스 놈들한테 잡혀서 장기까지 털릴 뻔한 걸 누가 구해줬는지 벌써 잊어버렸어?"

대장이 이미 죽은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폴은 시몬의 말을 듣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렉, 너 이 개새끼야! 대장이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고? 네 아버지가 지금까지 숨 쉬고 있는 게 누구 덕분이야? 대장이 그 도박빚 안 갚아줬으면 알마티 패밀리가 네 가족들을 지금까지 살려뒀을까?"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었어."

그렉은 변명했지만 감히 시몬의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시몬이 뒤에 선 폭주족들을 돌아보자, 다들 눈을 내리깔기 바빴다.

'은혜도 모르는 새끼들.'

꼴도 보기 싫은 놈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놈들의 손이라도 빌리지 않으면 대장을 옮길 수 조차도 없었다.

'왜 원래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질 않는 거야? 정말 이대로 죽어버린 건 아니지?'

시몬이 입으로 뱉지 못한 말을 속으로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어두워서 천장이 보이지 않는 동굴의 허공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리 있는 자로군."

시몬이 올려다봤을 땐,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남자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허억!"

"대, 대장로님!"

"대장로님이 정말로 살아계셨어!"

머리가 하얗게 센 남자를 보고 놀란 폭주족들은 들것을 놓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옆으로 넘어지기까지 했다.

발에 하얀 실이 연결된 채, 허공에 매달려 있는 대장로.

그리고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시나무 떨듯 떠는 폭주족들.

그때 부르릉! 하는 엔진음이 들렸다.

"대, 대장을 부탁드립니다!"

그렉이 소리치며 도망치자, 다른 폭주족들이 빠쁘게 그 뒤를 쫓았다.

남은 건 시몬뿐이었다.

"시몬이라고 했지? 넌 왜 도망치지 않느냐? 내가 잡아먹을까봐 두렵지 않은 것인가?"

대장로는 자신을 올려다보면서도 들것의 손잡이를 놓지 않은 채 떠는 시몬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대장을 옮기기위해 친구들을 다그쳤지만, 사실 대장에게 가장 큰 빚을 진 건 접니다. 필요하시면 절 잡아드시고 대장을 살려주십시오."

대장로는 시몬을 보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검지손가락으로 들것과 함께 내팽개쳐진 드라고니안을 가리켰다.

그러자, 허공에서 하얀 실이 날아와 드라고니안의 이마에 딱! 소리를 내며 달라붙었다.

대장로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드라고니안은 하얀실에 매달린 채 대장로 앞으로 끌려갔다.

"어리석은 것, 3년만 기다리면 모든 힘을 체화하고 도시로 올라가 귀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텐데 섣부르게 여의주를 삼켜서 공든 탑을 무너트렸구나!"

"대장로님! 대장을 살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만 해주십시오. 뭐든 구해오겠습니다."

시몬을 내려다본 대장로는 무심한 눈으로 그의 하체를 보며 말했다.

"그 무거운 것부터 내려놓지 않으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

대장로의 말을 들은 시몬은 오토바이와 연결된 하체를 내려다보며 칼을 뽑아들었다.

"대장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잠시 후, 어두운 동굴 안에 서걱서걱!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칼날이 피부와 인공근육을 가르는 소리였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

대장로는 자신의 허리를 반이나 베어낸 시몬을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