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60화 (60/152)

60화. 사신소환

검은 머리에 안경을 쓴 남자 호너가 말하자, 게릭슨이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이봐, 우린 테러리스트가 아니야. 그런 용도로 쓰이는 줄 몰랐다고."

"그럼 도대체 어디다 쓰려고 삼중수소 카트리지를 10개나 구하는 건데?"

"우리 보스가 외골격로봇 제작에 관심이 많으셔. 너도 알겠지만, 아이언스톰만 한 외골격로봇을 일반 대용량 배터리만으로 돌리기엔 출력문제가 있잖아."

게릭슨의 말을 들은 호너는 다시 후드를 쓰며 말했다.

"아무튼, 다른 자재면 몰라도 삼중수소 카트리지 같은 경우엔 위험물로 등록돼서 어려워."

"미안하게 됐군. 그럼 이 목록 중에 또 위험물로 분류되는 물건이 있나?"

게릭슨은 조수석 차창을 올리며 물었다.

그러자 조수석 창에 수십 개의 재료 목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진은 : 40그램

- 마그니움나이트 : 1,080 킬로그램

- 오리하르콘...

.

.

- 총 매입대금 : 1,097억 크레딧

"자, 잠깐!"

그 목록을 본 호너는 빠르게 손바닥을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빨리 차창문을 내려보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번엔 규모가 조금 크지?"

"조금? 이게 조금이야? 도대체 뭘 만들 생각이길래 진은을 4억 크레딧 어치나 사겠다는 거야?"

호너는 엄청난 물량에 당황한 표정이었다.

"보스가 우리한테 그런 것까지 설명하겠어? 그냥 마법연구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구나 생각했지."

"게릭슨의 친구라더니, 마법사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어?"

호너는 공용주차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줄곧 긴장과 불안을 감추지 못했었다.

하지만 마법연구란 단어를 듣자 그런 불안증세는 사라지고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이 된 것이다.

"고작 나 같은 클라크 케미컬 자재매입부에서 일하는 말단과 뒷거래를 하는 걸 보면···. 당연히 팔미라 시 출신은 아닐 테고, 망명귀족인가?"

"호너. 피차 떳떳하지 않은 관계인데 너무 깊게 파고들진 말자고."

게릭슨은 조금은 단호하게 철벽을 쳤다.

보스에 관해서 만큼은 어떤 정보도 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흠···. 이 정도 규모를 사들이면 내 꼬리가 길어질 수밖에 없어."

호너는 클라크 케미컬 사의 말단 직원에 불과했다.

그는 클라크 케미컬 사가 뚫어놓은 거래처를 통해 게릭슨이 요구한 재료를 사서 건네주기만 해왔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규모가 너무 커서 문제였다.

"수수료 비율을 조정해달라?"

"아니. 그쪽 보스한테 내 이름 좀 전해드릴 수 있겠나?"

"이름? 갑자기 자네 이름은 왜?"

호너는 긴장했는지 손바닥에 묻은 땀을 후드에 문질러 닦더니 말했다.

"내가 이 거래에 손댔다가 클라크 케미컬에서 잘리면, 이 업계에 다시 발을 붙이긴 어려워."

"그렇게 되면 먹고 살길을 책임져라?"

"채, 책임지라는 말은 아니고. 한번 운이나 띄워봐 줄 수 있냐는 말이었지. 오해하지 말라고."

게릭슨이 조금 직설적으로 묻자, 호너는 고개까지 내저으며 한걸음 물러섰다.

"보고는 올려보지. 하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어."

"그 정도면 충분해!"

게릭슨의 입에서 긍정적인 말이 나오자 호너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소리쳤다.

"그럼 삼중수소 카트리지 외엔 모두 구할 수 있는 건가?"

"부지런 떨면 내일 중으론 확보할 수 있겠어."

호너는 허공을 두어 번 터치한 호너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가 쓰고 나온 안경이 어떤 디바이스 기능을 하는 모양이었다.

"대금은 물목을 확인할 때마다 지급할게. 괜찮지?"

"나도 천억 크레딧이 넘는 돈을 한 번에 받을 생각은 없었어."

호너는 예상보다 큰 거래금액에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거래를 엎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쪽 보스께서 뒷거래를 선호하시는 걸 보니, 삼중수소 카트리지를 루비치 그룹에서 직접 살 수는 없는 거겠지?"

"괜히 귀족들 이목을 끌 필요는 없잖아."

"망명귀족이시면 그럴 법하군···."

호너는 그렇게 말하며 팔짱을 꼈다.

그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구하려면 D 구역에서도 삼중수소 카트리지 10개 정도는 구할 수 있을 거야."

"방법이 있어?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나?"

호너는 조수석 차창으로 머리를 가까이 대며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누군가 들을까 무서운 모양이었다.

"여러 기업에 뒷구멍을 뚫어야겠지.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며칠 안에 10개나 확보하긴 어렵지."

"그럼···?"

"음···. 군에 연줄이 있으면 편할 텐데, 망명귀족이시면 그것도 어려울 테고."

호너가 군에 대해 언급하자, 게릭슨의 뇌리에 얼마 전에 만난 군인이 떠올랐다.

"군? 장벽 방어군에 아는 사람이 있긴 한데?"

"장벽 방어군?"

게릭슨은 전에 만난 바딤 하사에 관해 짧게 설명했다.

"정비소 거리의 바딤 머신건? 믿고 거래할 수 있을 만한 곳인지 내가 한번 알아보지."

"그래 주면 고맙겠군."

"일단 마그니움부터 사들여야겠군. 이쪽으로 부를 테니까 내가 연락하면 물건 확인하고 상대에게 직접 대금 지급하는 방식으로 하지. 어때?"

호너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좋아."

게릭슨은 호너의 손을 마주 잡았다.

***

두꺼운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갔다.

'다 읽었군.'

< 언커먼 등급의 스킬 [영혼초혼 주문]을 습득하셨습니다. >

< 언커먼 등급의 스킬 [혼령탑소환 주문]을 습득하셨습니다. >

< 레어 등급의 스킬 [골렘 마스터리]를 습득하셨습니다. >

< 레어 등급의 스킬 [누더기골렘소환 주문]을 습득하셨습니다. >

< 레어 등급의 스킬 [블러드골렘소환 주문]을 습득하셨습니다. >

< 레어 등급의 스킬 [사신소환 주문]을 습득하셨습니다. >

현대 사령술 전서를 모두 읽고 얻은 스킬은 고작 여덟 개뿐이었다.

네 권의 책에 언급된 사령술 주문은 서른 개에 가까웠다.

하지만 현대엔 쓸모가 없어졌거나, 너무 어려워서 익히는 사람이 없어서 사라진 주문들이 많았다.

'스켈레톤 계열과 저주 계열 주문들이 많이 사장된 건 안타깝지만···. 아예 소득이 없는 건 아니라 다행이군.'

영혼 초혼은 뼛조각 하나만 있으면 뼈의 주인인 영혼을 불러낼 수 있는 주문이었다.

주변의 영혼을 끌어모아 죽음의 기운으로 바꿔주는 혼령탑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든 건 따로 있었다.

'골렘소환 계열 주문이 나올 줄이야···!'

시체의 살점을 기워서 만든 누더기 골렘.

시전자의 피를 이용해 일으키는 블러드 골렘.

이 두 골렘은 게임 속에선 초반 보스몹으로 나올 정도로 강력한 개체였었다.

그중에서도 난 누더기골렘에 거는 기대가 상당했다.

이 세상은 장벽 밖에 널린 게 걸어 다니는 시체였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에서 시체를 활용한 누더기골렘이 얼마나 강력한 위용을 보일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골렘나이트 막스 벡허가 데리고 다니던 골렘보단 크기가 작군. 이름은 같은데···.'

< 제니퍼의 데이터에 따르면 두 골렘의 어원은 같습니다. >

'그럼 포르티투도 같은 골렘도 원래는 사령술에서 발전한 거란 뜻이야?'

< 발상은 사령술에 기원했지만, 마법과 기계공학 등의 기술이 더해져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됐습니다. >

'그 둘이 어떻게 다른지 알려면 골렘을 만져보는 수밖에 없겠군.'

골렘 소환 주문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당장은 재료가 부족해서 만들 수가 없었다.

그에 반해 당장 건드려볼 수 있는 주문도 있었다.

'사신소환?'

< 현대 사령술 전서 4권 345페이지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

< 망령을 강제로 찢고 복구시키는 과정을 반복해서 망령의 격을 높이는 마법식입니다. >

< 정해진 대로 6번의 복구과정을 견뎌낸 망령은 사신으로 진화합니다. >

시스템은 해골이 검고 헤진 후드를 쓴 그림을 내 시야에 띄워줬다.

한 손에 서양 낫을 든 사신의 모습은 어딘가 낙후되어 보였다.

'상대해야 할 좀비가 수만 마리인데, 망령계열 언데드가 과연 전투에서 쓸모가 있을까?'

< 기록에 따르면 망령계열 주문을 사역하려면 높은 수준의 영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합니다. >

< 사신소환 주문은 4급 사령술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

< 하지만 영능력을 타고나지 않은 네크로맨서의 경우 6급에 도달한 후에야 사신을 소환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그렇게 어려운 주문인데 용케도 사장되지 않고 기록이 남아있군.'

< 망령계열 언데드는 물리 공격으로는 파괴되지 않습니다. >

< 또한 망령계열 언데드의 은신과 기습 또는 악몽 등의 공격은 마법과 신성유물이 아니면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

< 이러한 이유로 현대 네크로맨서 사회는 인간을 상대하는 데엔 망령계열 언데드가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

< 위와 같은 이유로 망령계열 언데드는 귀족들이 네크로맨서를 완전히 복속시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

'귀족들에 맞서려면 익혀야 하는 주문이란 뜻이군.'

내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었다.

띠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일단 마그니움이랑 진은부터 확보했어요."

테리는 들어오자마자 매입현황부터 보고했다.

그와 동시에 테리와 게릭슨, 제니퍼와 데스윙이 묵직한 철제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테리는 향수병만큼 작은 병을 내게 건넸다.

"진은 40 그램이에요."

"수고했어. 나머지는?"

"다른 재료는 내일까지 확보될 예정인데, 삼중수소 카트리지가 문제에요."

"삼중수소 카트리지? 왜지?"

"바딤 하사의 형이 운영하는 바딤 머신건에 문의해봤는데, 우리가 장벽 밖에 삼중수소 카트리지를 내다 팔 생각인 걸로 오해한 모양이더라고요."

- 바딤의 형이란 놈이 삼중수소 카트리지를 외부 쉘터 등에 팔았을 때, 무역수익의 20퍼센트를 요구해서 일단 돌아왔습니다.

내가 게릭슨을 돌아보자, 게릭슨이 정신파로 대답했다.

'우리가 정말 삼중수소 카트리지를 장벽 밖에 판다고 가정하면 보통 한 개에 얼마의 이익이 남을까?'

- 장벽 밖에선 1500만에서 2천만 크레딧까지 받을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게릭슨이 정신파로 대답했다.

바딤의 형은 내가 삼중수소 카트리지를 1,500만 크레딧에 팔면 300만 크레딧, 2천만 크레딧에 팔면 4백만 크레딧을 가져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내가 주문한 물량이 보따리 장사로 오해할 만큼 많은 양인가?"

"아서 씨가 쓰기엔 많은 물량이라고 판단한 거겠죠."

"흠···. 몇 개까지 구해올 수 있는지 묻고 개당 1,300만 달러까지는 받아."

"그건 루비치 그룹이 판매하는 가격보다 30%나 더 쳐주는 셈이잖아요?"

테리는 왜 가격을 더 쳐주는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다.

"사일런스스톰을 변신형으로 만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주변의 관심을 끌지 않기 위해서죠."

"루비치 그룹과 직접 거래해서 대기업들의 관심을 끄는 것보단 300만 크레딧씩 손해 보는 게 나아."

"아서 씨 생각이 그렇다면 그대로 진행할게요."

테리는 고개를 끄덕인 후 곧바로 집을 나서려고 했다.

난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일단 그 배틀슈트부터 벗어볼래?"

"네? 여, 여기서요?"

테리는 무슨 오해를 했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게릭슨과 데스윙 그리고 다른 워리어들의 눈치를 살펴댔다.

- 사모님 저희는 언데드로 다시 태어난 몸입니다. 성욕이란 욕망 자체를 잃어버렸으니 마음 편히 벗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때 데스윙이 스피커로 테리를 안심시키려는 듯한 말을 했다.

"이것들이 무슨 개소리야? 솔져급 배틀슈트를 따로 쓸 곳이 있으니까 벗으라고 한 거지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니라고!"

내 말을 들은 테리는 가벼운 한숨을 내쉰 후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주군,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데스윙은 한쪽 무릎까지 꿇으며 사죄했다.

난 그에게 손을 내저으며 아치스에게 말했다.

"됐어. 아치스?"

- 네, 주인님!

무기 거치대에 거치되어있던 아치스가 신이 난 목소리와 함께 날아왔다.

"네가 강해질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매우 고통스럽고 성공확률이 낮은 방법이야. 도전해볼 생각 있나?"

- 주인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불사를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아치스는 충성스럽기 그지없는 태도를 보였다.

그때, 테리가 작은 서류가방만 하게 접힌 배틀슈트를 들고 나왔다.

그녀는 뭔가 아쉬운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기간트워리어급으로 바꿔줄 테니까 너무 서운해하지 마. 솔져급보다 기간트워리어 급이 세 단계 이상 높은 등급인 건 알고 있지?"

"네. 알아요."

테리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럼 다녀올게요."

내게 솔져급 배틀슈트를 건넨 테리는 나와 배틀슈트를 번갈아 보더니 인사하고 집을 떠났다.

그녀 뒤로 데스윙과 제니퍼 그리고 게릭슨이 테리를 따라 집을 나섰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들었나 보군."

지금은 아쉬워하지만 기간트워리어 급 배틀슈트를 선물하면 솔져급 배틀슈트를 받았을 때보다 기뻐할 게 뻔했다.

난 테리에 관한 생각을 뒤로하고 시스템에게 물었다.

'지금 아치스 수준을 감안하면 성공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 사신소환 주문은 재료가 되는 망령이 강력할수록 성공확률이 높아집니다. >

< 해당 [언데드웨폰]의 전투력을 계산합니다. >

< [레이스 헤비머신건 아치스]의 등급은 레어 등급입니다. >

< 다섯 가지 주문을 사역하는 수준 높은 망령입니다. >

< 많은 수의 영혼과 죽음의 기운을 흡수해 진화하기 직전 단계입니다. >

< 6번의 영혼 복구과정을 이겨낼 확률은···. 9%입니다. >

"아치스. 네 영혼을 여섯 번 찢고 복구시킬 거다. 그 고통을 버텨내지 못하면 영혼조차 소멸하고 말아. 성공확률이 고작 9%라는데 감당할 수 있겠어?"

난 테리의 솔져급 배틀슈트를 아치스 위에 걸쳐놓으며 물었다.

- 전 주인님 손에 이미 한번 죽은 몸입니다. 처음엔 두려웠지만 이젠 주인님 손에 죽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아치스의 각오는 단단해 보였다.

- 영혼이 소멸하는 것보다 두려운 건, 주인님께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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