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65화 (64/152)

65화. 코소브 바이오 랩

'네크로맨서의 던전을 만들려면 필요한 자원은 어느 정도지?'

< [네크로맨서의 던전] 마법식의 규모를 측정합니다. >

< 대형 마법식입니다. >

< 대형 마법식 [네크로맨서의 던전]에 필요한 자원을 계산합니다 >

< 이전 마법 사용 데이터를 참고한 예측치이므로 실제와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 >

< 마력량 [삼중수소 카트리지] 5 개 분량이 필요합니다. >

< 생명력과 영혼의 양을 계산합니다. >

< 기준치를 인간으로 설정하시겠습니까? 좀비로 설정하시겠습니까? >

도시에서 대량학살을 벌일 생각은 없으니, 좀비로 기준을 잡는게 좋을것 같았다.

'장벽 밖에서 구하기 쉬운 1레벨 좀비 스토커를 기준으로 잡지'

< 1레벨 좀비 [스토커]를 기준으로 필요한 생명력을 계산합니다. >

< 8만 구의 [스토커] 시체가 필요합니다. >

< 1레벨 좀비 [스토커]를 기준으로 필요한 영혼의 수를 계산합니다. >

< 12만 구의 [스토커]의 영혼이 필요합니다. >

'안되겠군. 이대로 구축하기엔 재료가 너무 부족해.'

난 시스템의 질문에 고개를 내저으며 속으로 대답했다.

'반물질 코어와 비교해도 터무니 없이 많은 자원이 필요하군.'

마력이야 소형핵융합로를 7개씩이나 장착한 사일런스스톰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그것도 부족하면 여분의 삼중수소 카트리지를 갈아끼거나 부하들의 마력을 빌려도 된다.

하지만 네크로맨서의 던전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생명력과 영혼은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대규모 전투가 필요하겠어.'

내가 피와 살점을 갈구하는 순간이었다.

의뢰주 조셉 메를린이 테이블을 손으로 한번 훑더니 젖지 않은 걸 확인하곤 지도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그때 시스템 메세지가 울렸다.

< 새로운 종류의 데이터 [구식 종이지도]가 발견되었습니다. >

< [구식 종이지도]를 기존 설정인 [사용자 확인 없이 바로 저장]으로 지정하시겠습니까? >

'설계도뿐만 아니라 종이류와 문서류는 알아서 저장해.'

< 가칭 [조셉 메를린의 유적지도]를 저장했습니다. >

저장된 것을 확인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회색 바탕에 붉은 색 화살표로 진격로를 표시한 군사지도였다.

붉은 선으로 표시된 등고선.

더 높을수록 옅은 분홍색에서 진한 빨간색으로 색칠된 산.

그 위에 선명한 선홍색으로 표시된 화살표들까지.

그건 진격로 같았다.

문제는 붉은 화살표가 가리키는 장소에 써 있는 글자였다.

- Ратуша

- 市政府

- City hall

- больница

- 醫院

- Hospital

붉은 화살표가 가리키는 건물들이 죄다 러시아나 쓰던 키릴문자로 쓰여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엔 차례대로 중국어와 영어가 쓰여있었다.

"군사지도 같은데 세 가지 문자로 쓰다니... 독특하군요. 연합작전할 때 쓰던 작전지도인가?"

"세 가지 문자? 아서, 이런 글자를 본 적 있소?"

조셉 메를린은 눈이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

험한 용병일이나 하는 내가 자신의 보물에 적힌 글자를 알아봤다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네, 뭐... 어쩌다보니."

키릴문자는 배운 적이 없으니 읽을 수가 없었다.

그냥 모양이 알파벳과 달라서 러시아어나 우크라이나어에서 쓰는 글자라는 정도만 알뿐이었다.

그러나 간단한 한자와 알파벳은 달랐다.

눈에 익숙한 글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 사실을 조셉 메를린에게 밝힐 수가 없었다.

그는 내가 F 구역 출신 안드로이드 제작자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시스템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동하면서 작성한 지도와 조셉 메를린이 보여준 군사지도를 겹쳐서 보여줬다.

그렇게보니 조셉 메를린이 군사지도 상에서 찾은 장소가 어딘지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의뢰주께서 찾으신다는 잃어버린 기술이란 거... 어느 병원에 남아있는지 모르시는 겁니까?"

"병원? 병원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조셉 메를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홀로그램 창 띄워봐."

내가 명령하자, 옆에 주차된 1호차의 토르시스템이 나와 조셉 메를린 앞에 홀로그램 지도를 펼쳐보였다.

"어제만 여섯 곳의 병원을 들리셨잖습니까? 입구를 못 찾으신 겁니까?"

솔직히 내가 조셉 메를린에게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지난 3일 동안 조셉 메를린은 우리를 떠난 적이 없었는데, 모래산 밖에 없는 지역에서 어떻게 자신이 찾는 유적이 지하에 없다고 확신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자고 한 거지?'

적어도 지난 70여 시간 동안 조셉 메를린은 워리어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동 중에 병원 건물과 같은 구조물은 본 적도 없었다.

의뢰주를 호위해야하는 입장이라 그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 지도를 대비해보면 그는 분명 여섯 곳의 병원이 위치하는 곳의 좌표를 정확히 찍어줬었다.

이어지는 조셉 메를린의 대답은 내 예상 밖이었다.

"하하! 자네가 뭔가 잘못알고 있나보군."

"네?"

"이건 병원이 아니라 연구소를 의미하는 단어네."

조셉 메를린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와 동시에 특정 단어들을 직접 가리키고 있었다.

- больница

- 醫院

- Hospital

의원과 하스피탈이 동시에 연구소로 뜻이 변했다는 말이었다.

"음... 한 가지 단어의 뜻이 변했다면 이해하겠지만, 두 단어의 뜻이 똑같이 변했다? 그건 좀 납득하기 어렵군요."

내가 고개를 내젓자, 조셉 메를린이 환하게 웃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 이 마크 보이나?"

그는 자신의 군사지도에서 네모 안에 네 방향의 길이가 같은 십자가 마크를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네."

"이게 바로 생명공학 연구소를 의미하는 마크네."

그는 당당하게 십자가 마크를 가리키며 헛소리를 해댔다.

십자가 마크가 현대에서 병원을 의미하는 용도로 쓰였던 걸 알기 때문에 난 속으로 헛웃음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조셉 메를린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었다.

"자네가 장벽방어군과 작전을 해봤다면 이 마크가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었겠지. 그나저나 고대어는 어디서 배웠나?"

조셉 메를린은 여유만만하게 물었다.

"여기선 이 십자가 마크를 생명공학 연구소를 가리키는 데 쓴다고요?"

"다음에 정규편제 용병단을 이끄는 선배 용병과 만난다면 한번 물어보게. 장벽방어군의 지휘를 받아본 용병이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거야."

조셉 메를린은 날 가르치듯 말했다.

평범한 의뢰였다면 의뢰인이 원하는대로 시간만 떼우고 의뢰금을 챙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 쓰는 마크와 내 눈에 익숙한 세 나라의 글자와 마크가 다르다는 걸 깨닫자 궁금해졌다.

'정말 뜻이 달라진 걸까?'

내가 살던 현대와 판타지게임 속 설정들이 엉망으로 뒤섞인 세상이니까 조셉 메를린의 말이 맞을수도 있었다.

그가 언급한 고대어, 그리고 그 언어가 쓰인 '고대'라는 시대에도 십자가 마크가 병원 대신 생명공학 연구소를 의미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아는 게 맞다면?

'이 단어들이 내가 배운 뜻이라면... 내가 살던 세상과 연결된 어느 시점이라는 말이 돼.'

만약 스톨즈가 썼던 일본어와 한국어 그리고 영어가 뒤섞인 괴상한 주문을 들어보지 못했다면 조셉 메를린의 말에 수긍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난 그 괴상한 주문을 정리했던 경험때문에라도 이 상황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이번 의뢰가 끝난다면, 언제 또 다시 고대어와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 조셉 메를린은 유적과 고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주인님의 고대어 지식에 엄청난 매력을 느낄겁니다.

그때 제니퍼가 조언해왔다.

그래서 난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미끼를 던져보았다.

"음... '지금'은 그런가보군요."

"지금?"

***

조셉 메를린은 당황스러웠다.

'지금은 그렇다? 그럼 옛날엔 달랐다는 의미인가?'

이번 의뢰를 맡은 아서라는 안드로이드 제작자는 지금까지 그가 만나본 어떤 용병과도 달랐다.

그 순간 조셉 메를린의 머릿 속에 아티팩트를 보곤 꾸밈없이 깜짝 놀라던 아서의 순박한 모습과 '지도'를 보더니 마치 읽을 줄 아는 것처럼 구는 모습이 교차됐다.

그건 단순히 지도의 지형을 훑는 수준이 아니었다.

세 가지 언어를 순차적으로 읽는 눈동자.

조셉 메를린은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정말 이 고대어들을 읽을 줄 아는 건가?'

사기꾼이라면 나라를 뒤흔들 정도로 대단한 연기능력이었다.

하지만 조셉 메를린은 그를 어설픈 사기꾼으로 취급할 수가 없었다.

'만약 아서가 고대어에 정통했다면...?'

이번 외출이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도 있었기 때문이다.

조셉 메를린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

난 어느새 진지한 표정으로 변한 조셉 메를린에게 물었다.

"말씀하신 고대어의 사용시기는 언제입니까? 이 지도는 언제 사용되던 지도죠?"

"고대어가 언제부터 사용됐는지는 아마 아무도 모를거네. 내 어머니의 가문은 이 지도를 지난 300년 동안 연구했지만 이 글자들을 완전히 해석하지는 못하셨어."

"그럼 적어도 300년 이전이란 뜻이군요?"

"보통 천 년 전이라고 알려져있지."

"천년이요?"

그건 내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시간이었다.

'만약 내가 천년 후의 미래에 떨어진거라면? 아냐... 천년이 흐른 게임 세계관 속일지도 모르지.'

혼란스러운 생각이 내 뇌리를 스친 순간이었다.

"아카데미에선 그렇게 가르쳤네. 그들도 고대어에 정통했다고 얘기할 순 없지만, 그 시기만큼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추측이야."

조셉 메를린은 마치 아카데미의 지식을 내려다보는 듯이 말했다.

'아카데미에서 고대의 역사를 가르치나?'

내가 묻자 제니퍼가 정신파로 대답했다.

- 제가 다녔던 사령술 아카데미에선 2천년 전에서 1천년 전에 쓰였던 언어들을 고대어라고 정의했습니다.

조셉 메를린의 말이 영 엉뚱한 소리는 아니란 뜻이었다.

난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후 조셉 메를린에게 말했다.

"사람의 말은 매년 바뀝니다. 매년 새로운 단어가 생겨나고 옛 단어가 사라지죠. 천년 전에 쓰였던 단어라면 사라지거나 뜻이 바뀐 채 전해졌어도 이상하진 않습니다."

"음... 그것도 일리있군. 자네가 얘기하고 싶은 게 뭔가?"

"제가 배운 바로는 이 단어는 생명공학 연구소가 아니라 병원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난 십자가 마크와 그 위에 쓰인 세 가지 언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곤 빨간 화살표들이 시청과 경찰서, 전력시설등을 가리키는 모습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마 이건 세 나라의 군부대가 이 도시의 기간시설들을 공격하기 위한 작전지도였을 겁니다. 이들이 노린 건 시청, 경찰서, 전력시설, 주요도로죠."

빨간 화살표들은 정확히 도시의 주요 기간시설들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었다.

"이게 생명공학 연구소가 아니라 병원을 가리키는 마크라면 생명공학 연구소는 어디라는 뜻인가?"

조셉 메를린은 그렇게 물어보면서도 내 말을 그리 믿지 않는듯 했다.

하지만 내가 하나의 건물마크를 가리키며 영어를 읽는 순간 그의 표정이 달라져버렸다.

- Косовская биолаборатория

- 科索沃生物实验室

- Kosove Bio Lab

"코소브 바이오 랩."

"방금 뭐라고 했나? 정말 이 단어를 읽은 건가?"

그는 내게 물으면서도 내가 말한 언어가 이 시대에 쓰이는 언어가 아니란 걸 확신한 것 같았다.

"저도 팔미라 시에서 태어나진 않았습니다."

난 그의 질문에 우회적으로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들은 조셉 메를린은 간이의자에 주저앉아 톡톡 거리며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 손끝에 담긴 불안과 흥분을 감추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드러낸 채 숨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제가 틀렸다면 추가대금을 받지않고 열흘을 더 호위해드리겠습니다."

"자네 말이 맞다면?"

"3천억 크레딧."

"뭐?"

"벨루치 가문이 지난 300년 동안 찾아헤맸던 기술을 제가 찾아드린 값입니다. 터무니없습니까?"

내가 묻자, 조셉 메를린이 허를 찔린 표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는 뒤늦게 표정을 수습하려고 했지만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내 얼굴을 보곤 이미 한발 늦었다는 걸 깨달은 표정이었다.

"정말 그 연구소에 인공자궁기술이 남아있다면, 3천억 크레딧을 지불하지."

"좋습니다."

내가 손을 내밀자, 조셉 메를린이 힘 있게 내 손을 마주잡았다.

***

2시간 후.

발굴현장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모래산 상공 1킬로미터.

새끼손톱만 한 드론 3천 대가 발굴현장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래 모래산 정상.

검은 고글을 쓴 남자가 왼팔의 디바이스를 조작했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홀로그램 영상이 펼쳐졌다.

홀로그램은 조셉 메를린과 닮았지만 선이 굵은 30대 중반의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련님, 조셉이 발굴을 시작했습니다."

- 발굴? 정말 뭔가를 찾았다는 말이냐?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안드로이드들이 1시간 째 땅을 파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 이번 여정에서 처음 있는 일이로군.

"코뿔소 팀을 운용할까요?"

- 아니. 놈들이 발굴을 끝낸 후에 들이쳐야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타겟 제거가 아니라 기술 확보다. 알겠나?

"넵! 기술확보를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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